이사야 28:14-29 읽기

14 주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다스리는 오만한 자들에게 (교만한 지도자들, 술취해 횡설수설하는 지도자들, 백성들 발이 꼬여 넘어지게 하는 지도자들) 말씀하신다.

15-16 오만한 지도자들이 ‘죽어 지옥가면 어때’라고 큰소리 쳤다고 지적하신다. 이들은 죽음이 자신들에게 미치지 않는다는 ‘거짓’을 피난처로 삼은 자들이라고 하신다. 오히려 피난처되시는 주하나님을 숨겨버렸다고 책망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런 오만한 지도자들 대신 ‘한 돌’을 시온에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 새로운 지도자(기초)로 삼을 것이라고 하신다. 시험을(검사를) 통해 견고함을 인증받은 견고한 (올곧은) 기초돌(지도자)라고 하신다. 이 지도자를 믿는 자는 다급할 이유가 없다고 하신다.

17-20하나님은 정의와 공의로 다스리신다고 하신다. 거짓을 피난처로 삼은 자들을 소탕하신다고 하신다. ‘지옥가면 어때’라고 큰소리 치던 자들이 죽음을 맛보게  하신다. 재앙이 밀려올 때에 피하지 못하고 밟힐 것이라고 하신다. 여기저기서 죽음의 소식을 받을 것을 것이라고 하신다. 죽음의 소식을 듣는 것이 두려움이 될 것이라고 하신다. 침대에 편히 눕지 못하고 평안히 이불덥고 자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21-23 주하나님은 축복의 하나님이시만 한편으로는 저주의 하나님이시다. 정의와 공의가 무너진 곳에 진노하신다. 정의와 공의로 경영하시는 하나님의 일이 비상하고 기이하게 여겨질 것이라고 하신다. 따라서 오만한 자가 되지 말라고 하신다. 오만이 지나치면 용서받지 못할 수도 있다고 염려하신다. 이사야는 온 땅을 멸망시키기로 작성하신 만군의 주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니  귀를 기울여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이사야의 목소리를 들으라고 한다. 그것도 자세히 들으라고 명령한다.

24-29 파종하려는 자는 기경만 반복하지 않는다. 기경이 끝났으면 씨를 줄줄이 정한곳에 심는다. 농부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주신 적당한 방법을 배운자들이다. (이사야는 이것을 하나님이 농부에게 자연섭리를 통해 보여주시고 가르시셨다고 표현한다. 그러나 자라게 하시고 수확하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농부는 수확한다. 탈곡은 하되 곡식(알곡)은 부수지 않는다. 이 모든 지혜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다. 하나님의 경영은 기묘하며 하나님의 지혜는 광대하시다.

>> 정의와 공의는 하나님이 경영하시는 하나님나라의 기초돌이다. 오만한 자들이 설곳은 없다. 정의와 공의를  믿어야 한다. 곧 정의와 공의를 충실하게 (성실하게) 실천해야 한다. 하나님이 농부되셔서 성도들을 세상에 심으시고 자라게 하시고 열매맺어 알곡이 되게 하신다. 그날에 (이땅을 살아가면서, 성도들이 사는 날동안), 곧 탈곡하시는 날에 도리깨, 작대기, 막대기로 떨리며, 수렛바퀴와 말굽에 밟힌다고 해도 알곡은 부서지지 않는다. 세상에서는 성도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해야 할 이유다. 그리스도께서 세상을 이미 이기셨기 때문이다. 오만한 자의 거짓 평안이 아니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평안을 누리라고 하신다.

이사야 28:1-13 읽기

화가 있다. 에브라임의 술취한 자들의 교만한 면류관. 술에 빠진 영화롭고 기름진 성도 (유다, 예루살렘?) 시드는 꽃 같이 화가 있다. 주께서 강한 손으로 교만의 면류관을 던지신다. 에브라임의 교만한 면류관은 땅에 버려져 밟힐 것이다. 기름진 성의 영화도 쇠잔하고 무화과 열매도 채익기 전에 먹힐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오직 남은 자들의 면류관요 아름다운 화관이 되어주신다. 재판의 영 싸움의 힘도 주께 있다. 그런데도 백성은 술취해 비틀거리고 지도자들도 술취해 하나님의 영을 잘못깨달아 재판할때 잘못된 판단을 한다. 결국 더러운 곳, 깨끗한 곳이 없는 나라가 된다.
술취해서도 가르치려 드는 자들은 경계에 경계를 더하고 또 더해도, 교훈에 교훈을 더하고 또 더해도 이곳 저곳에서 조금씩 하다보니 말씀을 잘못 깨달아 백성에게 잘못 가르친다. 안식이라고 말하는지 쉬라고 말하는지 횡설수설한다. 지도자가 횡설수설하니 백성은 발이 꼬여 자빠질 수밖에 없다고 하신다.

>> 막내 외삼촌 발인

이사야 27:2-13 읽기

2 그날은 하루가 아닐 것이다. 종말의 때를 말할 것이다. 그때 너희는 (구원받은 백성은) 아름다운 포도원을 두고 (하나님나라를 에서) 노래를 부른다고 하신다. – 아름다운 포도원은 하나님 보시기에 좋은 포도원이다.

3-5 포도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주하나님께서 포도원지기가 되셔서 가꾸시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라’고. 주하나님은 친히 포도원지기가 되셔서 포도원을 아름답게 가꾸신다. 창조주 하나님이 가꾸시는 포도원을 해칠자 없으며,  찔레와 가시도 포도원지기를 화나게 못한다고 하신다. 아니 자연만물이 (당연히) 창조주 하나님께 의지하고 굴복하여 화친을 맺을 것이라고 하신다.

6-9 창조주 하나님이 포도원지기가 되셔서 아름답게 가꾼 포도원에 심긴 것은 이스라엘이다. 주의 백성이다. 이스라엘이 싹이 나고 움이 돋고 꽃이피고 포도 결실로 지면을 채운다고 하신다. 주께서 포도원지기가 되셔서 백성을 치시고 (가지치시고) 죽이시고 (마른 가지를 모아 태우시고) 하시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포도원을 가꾸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백성을 적당하게 (합당하게) 견책하시는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백성의 불의를 속하는 농법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포도원을 가꾸는 방식이다.  포도나무가 태양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자라는 것을 알라고 하신다.

 10-11 사람이 세운 성읍은 결국 황무하며 버림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짐승들만 먹고 마시는 곳이 된다고 하신다. 마른 가지는 꺾여 불쏘시개가 된다고 하신다. 창조주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각없는 백성들의 운명이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모르는 피조물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은혜를 베풀지 않으실 것이다.

12-13 그날에, 종말의 때에 주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하나하나 모으신다고 하신다. 앗수르에 멸망당하고 애굽으로 피난갔던 자들이 돌아와서 예루살렘 성산에서 주하나님께 예배할 것이라고 하신다.

>> 이 포도원이 아름다운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포도원지기가 되셔서 친치 농사를 짓기 때문이다. 다른 것이 없다. 합당하게 견책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 순종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을 기억하지 못하는 지각없는 (어리석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하나님의 은혜를 입지 못한다고 하신다. 예루살렘은 멸망당하지 않을 것이라는 꼰대 믿음이 아니라 예언의 말씀에 순종해 앗수르를 피해 애굽땅으로 쫓겨난 자들이 돌아와 예루살렘 성산에서 다시 예배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사야 25:1-12 읽기

1-5이사야는 노래한다. 주하나님은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주를 높이고 주의 이름을 찬송합니다. 주는 세상을 옛적에 정하신 뜻대로 성실함과 진실함으로 경영하십니다. 이사야는 주께서 땅을 갈아엎으셔서 황무하게 공허하게 만드신다고 하신다. 다시말해 세상나라가 건설되지 못하게 하신다. 강한 민족도 포학한 나라들도 세상을 경영하시는 주를 경외하게 된다고 노래한다. 포학한 자가 기세등등할지라도 주께서는 빈궁한 자들의 요새가 되신다. 환난 당한 가난한 자들의 요새가 되신다. 포학당하는 빈궁한 자, 환난 당한 가난한 자들의 피난처며, 쉴만한 그늘이 되어주신다. 가물어 메마른 땅에 쏟아지는 폭양을 구름으로 가려주시고 포학한 자의 고성방가를 잠잠케 하신다. 대신

6-8 주하나님께서는 이 산에서 (시온 산, 주님의 말씀이 선포되는 곳에서) 만민을 위하여 기름진 음식과 고급 포도주로 연회를 베푸신다. 포학한 자들 앞에서 남은 자들에게 상을 베푸신다. 백성들에게 드리운 죽음의 기운을 없애신다. 새번역 성경은 얼굴 가리개와 덮개를 수의라고 번역한다. 사망을 영원히 멸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모든 얼굴에서 눈물을 씻기시며 주의 백성이 더이상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라고 주하나님은 말씀하신다.

9-12그날에 주의 백성은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 하나님을 우리 하나님으로, 학수고대하던 하나님으로, 구원의 하나님으로 기뻐하며 즐거워 할 것이다. 반면에 주하나님의 손이 나타나셔서 모압을, 교만한 모압을 누르실 것이다. 높아진 모압을 헐어버리시되 진토가 되게 하실 것이다.

>>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베푸시고 기름으로 내 머리에 바르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빈궁하고 가난한 자와 교만하고 능숙한자가 비교된다. 하나님께서는 빈궁하고 가난한 자들의 요새요 피난처요 그늘이 되어주시지만 교만하고 교활한 자들은 누르실 것이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경영하시는 원리다.

이사야 24:14-23 읽기

14-16하나님께서는 세상을 흔들어 엎으시고 아주 적은 무리만 주우신다고 했다. 14절의 무리는 살아남은 무리를 뜻하는 것일까? 하여간 무리는 소리 높여 주하나님의 위엄을 바다에서부터 크게 외친다. 동방과 바다 모든 섬에서 이스라엘의 하나님, 주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다. 동방과 바다 모든 섬은 땅 끝을 상징하는 듯. 땅끝에서부터 ‘의로우신 분께 영광을 돌리세’라는 영광의 노래 소리가 들려온다. 그러나 이사야는 (혹은 땅의 주민은) ‘나는 쇠잔하였고 x2” 라는 애가를 부른다. 내게 화가 있도다. 배신도 큰 배신을 하였다고 애가를 부른다.

17-20 땅의 주민은 주하나님께서 갈아엎으실 죄인을 뜻할까? 이들은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에 걸린 자들과 마찬가지 처지다. 이들에게는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라는 노래 소리가 기쁨의 노래가 아니라 두려운 소리로 들린다. 이들이 도망해 봤자 함정에 빠지고 함정에서 탈출해도 올무에 걸릴 것이다. 하나님께서 땅을 갈아엎으시기 때문이다. 땅은 깨지고 갈라지고 흔들린다. 땅이 마치 취한 자 같이 비틀비틀 한다. 땅위의 원도막도 흔들리며 쓰러진다. 이렇게 죄인들도 자신들의 죄악으로 떨어져서 다시는 일어나지 못한다.

21-23 그날에 주하나님께서 하늘에서 교만한 자들을 벌하신 것 같이 땅에서도 왕들을 벌하실 것이다. 왕들이 감옥에 갇히고 형벌을 받을 것이라고 한다. 달도 해도 수치를 당하고 부끄러워 할 것이다. 오직 만군의 주하나님께서 시온산과 예루살렘에서 왕이 되시고,  지도자들 앞에서 영광을 나타내실 것이다.

>> 누구에게는 ‘의로우신 이에게 영광을 돌리세’라는 노래가 영광의 찬송으로 들리지만, 죄악 가운데 있는  누구에게는 두려운 소리로 들린다. 그러나 죄인들은 두려움에서 도망칠 수 없다. 특별히 왕, 높은데 있는 자들은 형벌을 피할 수 없다. ‘나는 쇠잔하였고’를 부르는 이사야의 노래에서 세례요한의 향기를 느낀다. ‘그는 흥하여야 하겠고 나는 쇠하여야 하리라 하니라’ (요 3:30) 자신이 쇠잔하였고 배신자가 되었음을 깨닫지 못하고 죄악에서 돌이키지 않는다면 형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시온 산 (말씀이 선포되는 곳)과 예루살렘 (말씀이 실천되는 곳)에서 왕이 되신다. 하나님나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