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6:1-13 읽기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 이사야는 환상을 본다.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다. 주의 옷자락은 성적에 가득했다. 천사들이 주를 모시고 서 있었다. 천사들은 여섯날개가 있었다. 두 날개로는 자기 얼굴을 두 날개로는 자기 발을 가리고 두 날개로 날고 있었다. 천사들은 찬양했다.‘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 그의 영광이 온땅에 충만하도다’ 천사들의 화답하는 노래소리에 성전에는 연기, 곧 하나님의 임재가 충만했다.

주하나님의 임재를 친히 목도한 이사야는 자신에게 화가 임하였다고 망하게 되었다고 고백한다. 이사야는 주하나님의 이름을 경홀히 부르는 선지자요, 주하나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백성들과 다름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때 천사중의 하나가 제단에서 불이 핀 숯을 가지고 이사야에게 날아와서 그것을 이사야 입술에 대었다. 천사는 제단 숫불로 이사야의 악이 제하여졌고 이사야의 죄가 용서받았다고 선언한다.

용서를 받은 이사야는 주의 목소리를 듣는다. ‘내가 누구를 보내면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그때 이사야는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라고 응답한다. 주하나님께서는 이사야에게 ‘너희가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라고 백성들에게 가서 말하라고 하신다.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백성의 귀를 막으며 백성의 눈을 감기게 하라고 명하신다. 이는 백성들이 불순종할 것에 대한 신탁의 말씀이다. 불순종한 백성이 눈으로 보고 귀를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염려하신다고 하신다. 불순종하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비가 없다는 뜻이다.

이사야는 주께 어느 때까지 이런 말씀을 신탁해야 하는지 묻는다. 주께서는 백성들이 포로로 잡혀가서 이 땅이 황폐하게 될 때까지라고 말씀하신다. 십분의 일이 남아도 더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러나 주는 인자하시다. 밤나무와 상수리 나무를 베어버리셔도 그 그루터기는 남겨두신다. 거룩한 씨가 그 땅을 회복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 이사야가 받은 소명은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다. 보고 듣고 깨달아 고침을 받지 못하게 하라는 반어법 메세지가 복음이 될 수 없다. 이런 사명을 감당해야 하는 이사야는 얼마나 힘들었을까? 그래도 감당해야 한다. 이사야는 어느 때까지 ‘숨겨진 복음’을  전해야 하는지 묻는다. 주께서는 십분의 일도 남지 않을 때까지, 그루터기만 남을 때까지라고 답하신다. 그래야 거룩한 씨가 (예수께서) 그 땅을 회복시키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라는 복음을 전파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숨겨진 복음’이 ‘복음’으로 드러났다. 그러나 여전히 들어도 보아도 깨닫지도 알지도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 깨닫고 알았으면서도 돌아와 고침을 받지 않기 때문이다.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무슨 대단한 전도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 아니다. 그루터기만 남더라도 시온의 딸이요 예루살렘 거주민이 되어야 한다. 고침을 받으라고 하신다. 율법과 말씀에 순종하라고 하신다.

이사야 5:18-30 읽기

정의와 공의에 관심없는 자들, 위선자들과 교만한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노래한 시인은 이어서 거짓과 죄악을 일삼는 자들에게도 화가 있다고 노래한다. 거짓과 죄악을 일삼는 자들은 자신들의 말을 합리화 시키고, 자신들의 일이 하나님의 계획에 따른 것이라고 정당화시키는 자들이다.

악을 선하다 선을 악하다고 뒤집니다. 흑암으로 광명을 광명으로 흑암을 삼는다. 쓴 것으로 단 것을 단 것으로 쓴 것을 삼는 자들에게도 화가 있을 것이다. 스스로 지혜롭고 명철하다고 하는 자들에게도 화가 있다. 포도중에 취하고 독주를 빚는 자들에게도 화가 있다. 이들은 뇌물을 받고 악인을 의롭다하고 의인에게서 공의를 빼앗는다. 이들의 결국도 나락에 떨어져 불타 없어지고 말것이다. 왜냐하면 만군의 주하나님의 율법을 버리며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의 말씀을 멸시하였기 때문이다. (더이상 시온의 백성, 예루살렘 거주자라고 불릴 자격이 없다.) 따라서

주하나님께서 (불순종하는) 자기 백성(시온의 백성, 예루살렘 거주자)에게 노를 발하시고 매로 치신다. 자기 백성이 죽어나가는 것을 보시면서도 하나님께서는 노를 돌이키시지 않으신다. 여전히 (사랑의) 회초리를 들고 계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자기 백성 대신 먼나라들을 부르신다. 열방은 주하나님께 달려올 것이다. 빨리 달려와도 곤핍하거나 넘어지는 자가 없고 졸거나 자는 자도 없을 것이다. 지체하지 않고 서둘러 올 것이다. 주님은 이들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신다. 주하나님의 백성이었어도 불순종한 백성들은 포로로 잡혀갈 것이나 그들을 구해줄 자가 없을 것이다. 이방인들의 포효에 주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들은 슬픔과 고통에 빠질 것이다. 주하나님의 빛은 (구원의 빛은) 구름에 가려서 보이지 않게 될 것이다.

>> 정의와 공의에 관심없는 자들은 결국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관심없는 자들이다. 더이상 시온의 백성으로, 예루살렘 거민이라고 불린 자격이 없는 자들이다.  곧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지 않는다면 화가 있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거역하는 것이 곧 ‘화’다. 나의 말을 합리화시키고 정당화 시키는 거짓과 죄악을 버리게 하시고 하나님의 뜻에 굴복하는 하루가 되게 하소서.

이사야 5:1-17 읽기

나는 내가 사랑하는 자를 위하여노래한다. 시의 소재는 포도원이다. 내가 사랑하는 자에게 포도원이 있다. 기름진 산에 있다. 포도원을 기경하고 최고 품종의 포도나무를 심었다. 망대를 세워 포도원을 지켰다. 포도주를 만들 곳도 세웠다. 좋은 포도만 맺으면 된다. 그런데 들포도를 맺었다.


시의 독자들은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사람들이다. 시인은 독자들에게 극상품 포도나무에 들포도 맺은 것을 평가해 달라고 명령한다. 시인이자 화자인 하나님은 극상품 포도를 맺기위해 최선을 다했는데도 들포도를 맺은 이유가 무엇인지 묻는다. 그리고 들포도를 맺는 포도원 울타리와 담을 헐어버리며 황폐하게 하시겠다고, 더이상 포도농사를 짓지 않아 찔레와 가시 덤불을 내고 가문 땅이되게 하실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시인은 만군의 주하나님이시다. 포도원은 이스라엘 족속이다. 포도원에 심긴 극상품 포도나무는 유다사람이다. 극상품 포도나무가 맺어야 할 극상품 포도열매는 정의와 공의다. 그러나 유다사람들이 맺은 들포도는 포학이요 차별로 말미암은 신음이다.


들포도를 맺은 유다 사람들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다. 많은 주택과 땅에 투기하여 혼자 배부르려는 사람들에게 화가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찔레와 가시덤불을 내는 곳으로 만들고 황폐하게 하실 것이다. 포도 수확량이 바닥을 치게 하실 것이다. 일을 하지 않고 독주를 마시고 포도주에 흥청망청 취하는 자들도 화가 있을 것이다. 술에 취해 하나님의 일에, 곧 정의와 공의에 관심을 두지 않는 어리석은 자들은 굶주리고 목마를 것이다. 그 결국은 지옥이다. 위선자들도 교만한 자들도 나락으로 떨어질 것이다.


오직 주하나님께서 정의와 공으로 거룩하심을 아는 어린양들이 하나님의 초장에서 꼴을 먹고, 유리하는 자들이 나락으로 떨어진 부자들이 남긴 밭을 차지할 것이다.

≥≥ 정의와 공의

이사야 3:13-26 & 4;:1-6 읽기

의인은 자기 행위의 열매를 먹는 복이 있고, 악인은 자기 손으로 행한대로 심판을 받는 화가 있다. 이 기준으로 주하나님께서 일어나 심판석에 서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장로들과 지도자들에게도 이 기준을 적용시킨다. 지도자들이 기득권을 사용해 가난한 자들의 것을 착취한 증거를 내미신다. 백성들과 가난한 자들에게 갑질했다고 분명히 밝히신다.


지도자뿐만 아니라 백성들도 책망하신다. 교만함과 음욕을 품는 것과 다른 사람들을 미혹하기 위해 바쁘게 다닌다. 그것도 공개적으로 꼬리치며 다닌다고 지적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런 시온의 딸들에게 꿀밤도 때리시고 바리깡으로 머리를 밀어버리시면서까지 부끄럽게 하신다. 마지막 심판의 날에는


시온의 딸들이 (율법과 말씀 대신으로) 자신들을 치장한 발목거리로부터 머리수건과 너물까지 다 벗겨 버리신다고 하신다. 향수를 뿌려 가렸던 썩은 냄새가 진동하며 화려한 화려한 팔찌는 포승줄로 바뀌고 삭발을 당하고 화려한 옷대신 죄수복이 대신할 것이라고 하신다. 장정과 용사도 전장에서 죽을 것이고 온 성이슬퍼하며 울 것이라고 하신다. 시온이 황폐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 주하나님은 살아남은 시온의 딸들이 과부같은 신세라고 하신다. 그제서야 일곱여자가 한 남자를 붙잡고 살려달라고 간정하는 꼴이라고 하신다. 신약적으로 하면 거룩한 성 예루살렘으로 회복시켜 달라고 간청한다. 그리스도 예수의 신부로 단장하게 해서 수치를 면하고자 한다. 주하나님은 남은 자들에게 긍휼을 배푸신다. 이전 것은 제하여 버리시고 새로운 싹을 내신다. 이 싹을 아름답고 영화롭게 하셔서 영화롭고 아름다운 열매를 맺게하신다. 시온에 남아 있는 자,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는 자들을 거룩하게 구별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이들의 더러움을 씻어주시고 청결하게하신다.이들을 밤 낮으로 주의 영광으로 인도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시온의 백성들이 낮의 더위를 피할 수 있게 하시고 비바람도 피할 수 있는 곳이 되어주시겠다고 말씀하신다.


≥≥ 시온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이요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말씀이 있는 곳이다. 불순종하면 더 이상 시온의 딸이 아니고 예루살렘 거주자가 아니다. 불순종의 결국은 심판을 면할 수 없다. 시온에 남아 있어야 (율법,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죄씻음 받고 청결케 된다. 예루살렘에 거해야 (말씀에 순종해야)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따라 살수 있다. 물론 시온에 남아있고 예루살렘에 거하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다.

이사야 3:1-12 읽기

주하나님께서 제하여 버리시는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지하는 것: 먹는 것, 마시는 것, 용사, 전사, 재판관, 선지자, 복술자, 장로, 오십부장, 귀인, 모사, 정교한 장인, 능란한 요술자. 주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의지하는 것이 마치 소년과 아이들을 지도자로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어리석다고 하신다. 그결과 백성이 서로 학대하고 이웃을 해치고 어른 공경이 무너지고 사회질서가 없어진다고 말씀하신다. 터가 무너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있는자를 지도자로 삼으려 하겠지만 있는 자는 그 책임을 회피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오히려 말과 행동으로 거역한 예루살렘과 유다는 멸망하였다고 선언하신다. (암혈과 바위틈에 숨어보겠지만) 심판하시는 주하나님의 눈을 피할 인생은 없다. 변명하려고 해도 이미 바뀐 안색이 유죄의 증거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을 의지하지 않음으로 재앙을 자초했다고 하신다.


의인은 복이 있다. 의로운 행위의 열매를 먹을 것이다. 악인에게는 화가 있다. 악한 행위에 대해 벌을 받을 것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이 행한대로 심판하시는 분이시다. 이런 하나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고


위에서 열거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지하는 것들을 주인삼는 것은 아이와 여자를 지도자로 삼아 학대와 사회혼란을 자초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아이와 여자는 당시 사회적으로 발언권이 없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여기서는 결코 나이와 성별의 문제가 아니다.)


≥≥ 권선징악! 선과 악에 대한 기준이 동서양이 다르고 옛과 지금이 다르지만 하나님나라에서도 통용된다.

≥≥ 컴이 죽었다.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