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10:1-18 읽기

1-6 나 바울은… 보다 개인적인 편지임을 강조하는 듯하다. 바울은 그리스도의 온유하심과 관대하심을 힘입어 고린도 성도들에게 권면한다. 사람들은 바울을 대면하여 함께 일할 때는 분명히 유순한 사람이었는데, 떠나 있는 지금 강경하게 바뀌었다고 말하는 것을 들었다고 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바울이 다시 고린도를 찾았을 때에 고린도 성도들에게 강경하게 대해야 할 일이 없게 해 달라고 간청한다. 고린도 성도들 중에는 바울 일행이 육정을 따라서 처신한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있었나보다. 그러나 바울은 육신을 입고 살고 있지만 육정을 따라 싸우는 것은 아니라고 담대히 말한다. 바울은 자신들이 무기는 육체의 무기가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견고하다고 높아진 요새라도 무너뜨리는 강력한 무기라고 말한다. 세상의 모든 궤변을 무찌르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을 가로막는 모든 교만을 쳐부수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강력한 무기라고 선언한다. 자신들이 그리스도께 복종하듯 고린도 성도들이 온전히 순종하게 될 때, 바울 일행은 순종하지 않는 자를 처벌할 것이라고 말한다. (가장 강력한 무기는 그리스도께 복종시키는 것이다.)

7-1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겉모양으로 판단한다고 지적한다.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고 확신하는 사람이라면 바울 일행도 그리스도께 속한 사람이라는 것을 명심하라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뜻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의 사도되었음을 (1:1) 지나치게 자랑했다 하더라도, 자신이 받은 사도의 권위는 주님이 고린도 성도들을 세우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에 부끄러워 하지 않고 자랑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말한다. 바울은 편지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강경하게 (겁을 주려고) 대하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어떤 사람들은 바울의 편지는 강경하지만 대면하면 바울은 약하고 말주변도 변변치 못하다고 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바울은 이런 사람들에게 자신들은 편지로 쓰는 말이나 대면하여 행하는 일 사이에 아무런 차이가 없다는 것을 알라고 한다.

12-18 바울 일행은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이 아니라고 말한다. 자기를 내세우는 사람들과 비교하지도 않는다고 한다. 자화자찬하는 (혹은 자포자기하는) 자들은 어리석기 짝이 없다고 책망한다. 바울 일행은 믿음의 분수대로 자랑한다고 말한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를 방문한 것도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에게 정해 주신 한계 안에서 된 일이라고 말한다. 주제넘게 다른 사람들이 수고한 일을 가지고 자랑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이 사도권을 운운하는 것은 고린도 성도들의 믿음이 자라서 복음을 전하는 사역이 고린도 성도들로 말미암아 (도움으로?) 다른 지역에도 더 넓게 확장 되기를 바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결코 다른 사람들이 이미 이루어 놓은 일을 가로채로는 마음이 없다고 말한다. 자랑하려는 사람은 주님 안에서 자랑해야 합니다. (공동번역에서는 ‘자랑하려거든 주님을 자랑하십시오’라고 번역한다.) 참된 인정을 받는 사람은 자화자찬하는 사람이 아니라 주님께서 칭찬하시는 사람이라고 말한다.

>> 착하고 충성된 종은 주님 안에서 자랑하는 자다. 주님 안에서 자화자찬이란 있을 수 없다. 공동번역처럼 주님을 자랑하는 자다. 물론 자포자기하는 자도 아니다. 오히려 세상의 궤변을  무너뜨리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교만한 생각도 내려놓고 그리스도께 온전히 복종하는 것이 주님을 자랑하는 방법이라고  교훈한다. 바울은 사도권의 스팩을 쌓기 위해 사역하지 않는다고 분명히 한다. 예수께서는 자기를 드러내는 자들은 이미 자기 상을 받은 자들이라고 가르치셨다. 성도들은 참된 인정, 주님의 칭찬을 받아야 한다.

** 예수께서는 달란트 비유에서 주인이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라고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받은 종 모두에게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하라고 말했다고 하신다. 믿음의 분수대로 충성하라고 하신다. 자포자기하는 것은 악하고 게으르다고 하신다. 주님의 칭찬이야 말로 영생이다. 영생은 주님만 자랑하는 자들에게 주어지는 칭찬이다.

고린도후서 9:1-15 읽기

1-5 바울은 ‘이 은혜로운 일’이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는 일이라고 구체적으로 밝힌다. 바울은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구제하자고 더 이상 고린도 성도들에게 편지할 필요가 없다고 말한다. 바울은 이미 고린도 성도들의 열성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마케도니아 성도들에, 아가야 성도들은 지난 해부터 유대에 있는 성도들을 돕기 위한 준비가 되어 있다고 자랑했다고 말한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고린도 성도들의 이런 열성을 듣고서 분발하였다고 말한다. 바울이 형제들을 보낸 것은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고린도 성도들의 열성을 듣고서 분발한 것과 같이, 바울이 고린도 성도들을 자랑한 것이 헛된 말이 되지 않도록, 고린도 성도들이 유대 성도들을 돕는 일에 준비하는 일에 분발하도록 격려하기 위함이라고 편지한다. 혹 마케도니아 성도들이 바울과 함게 고린도에 갔을 때, 고린도 성도들이 준비하고 있지 않는것을보면, 준비 안한 고린도 성도들은 말할 것도 없고 바울 일행도 고린도 성도들의 열성을 자랑한 확신 때문에 부끄러움을 당할 까 염려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고린도 성도들이 전에 약속한 선물을 준비하도록 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형제들을 먼저 보낸다고 말한다. 유대 성도들을 구제하는 일은 선물이요, 마지 못해서 낸 것이 아니라 기쁜 마음으로 마련한 것이 되어야 한다고 권면한다.

6-10 바울은 (구제의) 요점정리를 한다.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 일괄적으로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각자 마음에 정한대로 해야 한다. 아까워하면서 혹은 마지 못해서 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 하나님은 기쁜 마음으로 내는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께서야 말로 성도들에게 온갖 은혜가 넘치게 하실 수 있는 분이시다. 따라서 하나님의 은혜로 여러분은 모든 일에 언제나, 쓸 것을 넉넉하게 가지게 되어, 온갖 선한 일을 얼마든지 할 수 있다. 바울은 “그가 가난한 사람드레게 아낌없이 뿌려 주셨으니, 그의 의가 영원히 있다”는 성경 말씀을 인용한다. 하나님께서 심는 사람에게 씨와 먹을 양식을 공급하시는 분이시듯, 성도들에게도 씨를 마련해 주시고, 그것을 여러 갑절로 늘려 주시고, 성도들의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이라고 인용한 말씀을 적용한다.

11-15 (이렇듯) 고린도 성도들을 모든 일에 부요하게 하시는 하나님께서 고린도 성도들이 후하게 헌금하게 하실 것이라고 전한다. 바울 일행이 고린도 성도들의 헌금을 전달하면,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 감사들 드리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구제(물질의 봉사)는 가난한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감사를 넘치게 드리게 할 것이다. 이 구제의 결과로 (유대 성도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이라고 말한다. 물질 때문이 아니라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께 순종해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고백하고, (그 결과로) 다른 사람에게 너그럽게 도움을 보냈다는 사실이 입증되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그들은 감사와 함께, 고린도 성도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를 사모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말로 다 형언 할 수 없는 선물을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라고 기도할 것이라고 말한다.

>> 구제는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는 가장 구체적인 삶이다. 눅12:31-34 에서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너희는 그의 나라를 구하라고 말씀하셨다. 적은 무리의 사람이겠지만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사람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고 말씀하신다. 그리고 너희 소유를 팔아서 자선을 베풀라고 가르치셨다. 그의 나라를 구하는 삶을 구제의 삶으로 적용하셨다. 구제의 삶을 하늘에 재물을 쌓아두는 것이요, 하나님께 대하여 부요한 삶이라고 가르치셨다. 바울은 ‘균등’의 원리를 이미 말했다. 시이소 타는 것이다. 무거운 어른이 발을 딛어주어야 가벼운 아이도 시이소를 탈 수 있다. 남는 것이 아니라 아낌없이 주어도 하나님께서는 주는 자에게 의의 열매를 증가시켜 주실 것이다. 구제는 궁핍만 채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나라를 전하는 가장 구체적인 삶이라고 하신다.

고린도후서 8:16-24 읽기

바울은 디도에게 고린도 성도를 위한 자신의 열성과 똑같은 열성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한다. 디도는 바울 일행의 청을 받아들여 고린도 교회로 갔다. 바울은 디도가 열심을 내어서 자진하여 고린도로 갔다고 말한다. 그리고 디도와 함께 복음을 전하는 일로 모든 교회에서 칭찬이 자자한 형제 한 사람도  같이 보냈다. 디도와 동행한 형제는 여러 교회로부터 바울 일행의 동반자로 추천받은 자로 이 은혜로운 일을(곧 구제를) 돕는 자라고 소개한다. 이렇게 팀이 되어 주님의 영광을 드러내고 좋은 뜻을 이루려고 구제를 한다고 전한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봉사하고 있는 구제로 많은 헌금이 들어오자, 아무도 바울 일행을 비난하지 못하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한다고 말한다. 주님 앞에서 뿐만 아니라, 사람들 앞에서도 좋은 일을 바르게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그래서) 디도와 은혜로운 일을 돕는 자와 함께 또 다른 형제 한 사람도 보냈다고 말한다. 그도 열성이 있는 자라고 소개한다. 고린도 성도들이 이미 그를 크게 신뢰하고 있기 때문에 그도 더욱더 열심을 내고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다시한번 디도를 언급한다. (다른 두 형제와 달리 디도는 이름을 부른다.) 디도를 바울의 동료요 고린도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동역자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함께 간 두 형제들은 여러 교회의 심부름꾼들이요, 그리스도의 영광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두 형제들에게도 고린도 성도들의 사랑을 보여달라고 부탁한다. 그러면 그 두형제들을 파송한 교회들이 바울 일행이 고린도 성도들을 자랑한 것이 참된 것이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고 말한다.

>> “좋은 일을 바르게 하려고 한다.” 좋은 일이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바르게 하지 않고 편법을 쓰려고 하는 성도들도 적지 않다. 그러나 좋은 일이라도 바르게 해야 한다. 특별히 구제로 많은 헌금을 다루는 일에는 비난 받지 않도록 조심하고 또 조심해야 한다. 그래서 바울 일행은 투명한 구제를 위해 모금책 디도와 함께, 안전을 위해 여러 교회의 추천을 받은 열성있는 익명의 운반책/감사 두명을 붙였다고 말하는 것 같다. 오늘날에도 좋은 일을 한다는 여러 단체들이 구설수에 휘말리는 이유는 대부분 후원금의 투명성 문제다. 좋은 일을 바르게 하는 것이 좋은 일을 맘대로 하는 것보다 중요하다고 교훈한다. 구제할 때에 오른 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하라는 예수의 가르침은 사람에게 보이려고 (자랑하려고) 의를 행하지 말라고 교훈하시는 것이지, 일을 은밀하게 하라는 것을 강조하는 가르침이 아니다. 교회는, 성도는 모든 일을 투명하게, 바르게 해야 한다.

고린도후서 8:1-15 읽기

1-7 바울 일행은  고린도 성도들을 형제자매 여러분이라고 다정히 부른다. (신뢰가 회복되었기 때문이리라.)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서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에 베풀어주신 은혜를 고린도 성도들에게 알려준다. 마케도니아 여러 교회가 큰 환난의 시련을 겪으면서도 기쁨이 넘치고, 극심한 가난에 쪼들리면서도 넉넉한 마음으로 남에게 (예루살렘교회에?) 베풀었다고 바울은 증언한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은 힘이 닿는대로 구제하였을 뿐만아니라, 오히려 힘에 지나도록 자원해서 구제했다고 말한다. 그들은 성도들을 구제하는 특권에 동참하게 해 달라고, 바울 일행에게 간청했었다고 말한다. 그들은 바울 일행이 기대한 이상으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자신들을 주님께 헌신하고, 바울 일행에게도 헌신했다. 그래서 디도를 보내 마케도니아에서 시작한 대로 이 은혜로운 일을 고린도 교회에서 완수하라고 보냈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믿음, 말솜씨, 지식, 열성,  그리고 바울일행과의 사이에서 사랑 등, 모든 일에 있어서 뛰어나다고 칭찬한다. 그리고 이 은혜로운 활동, 곧 구제에서도 뛰어나야 한다고 권면한다.

8-15 바울은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한다고 명령하는 것이 아님을 분명히한다. 마케도니아 성도들의 열성을 말하는 이유는 고린도 성도들의 사랑도 진실하다는 것을 확인하기 위함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다고 말한다. 부요하신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성도들을 위해 가난하게 되셨다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심으로 고린도 성도들을 부요하게 하셨다고 말한다.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이 은혜로운 일에 참여해야 할 자신의 의견을 말한다. 이 일이 고린도 성도들에게 유익하기 때문에 권면한다. 고린도 성도들이 지난 해부터 이미 이 일을 실행하기 시작했고, 그렇게 하기을 원했다는 것을 상기시킨다. 그러니 이제 그 일을 완성하라고 권하는 것이다. 고린도 성도들이 자원해서 시작할 대 보여준 열성에 어울리게, 고린도 성도들이 가지고 있는 것으로 이 은혜로운 일을 (구제를) 마무리지으라고 권면한다.  기쁜 마음으로 각자의 형편에 맞게 하라고 권한다. 그러면 하나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없는 것까지 바치는 것을 바라지 않는다고 가르친다. 구제를 통해 다른 사람을 편안하게 하고 , 구제하는 사람이 괴롭게 되는 것을 바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 평형을 이루기 위해 구제하라고 가르친다. 고린도 성도들의 넉넉한 살림이 구제가 필요한 자들의 궁핍을 채워주면, 그들의 살림이 넉넉해질 때에, 그들이 고린도 성도들의 궁핍을 채워줄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평형을 이루는 것이라고 한다. 바울은 구약을 인용한다. “많이 거둔 사람도 남지 아니하고, 적게 거둔 사람도 모자라지 아니하였다.”

>> 바울은 성도라면 은혜로운 활동에서도 뛰어나야 할 것입니다 라고 권면한다. 이 은혜로운 활동은, 성도들이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를 다른 사람들과 평형을 이루기 위해 나누는 것이라고 한다. 평형은 그냥 이루어 지지 않는다. 시이소다. 천칭이다. 국민학교 때 읽은 볏단을 옮기는 형제의 우애다. 내게 남는 것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내가 모자라도록 나누는 것이고 내가 부족할 때 겸손히 나눔을 받을 줄 아는 것이다. 시이소를 탈 때, 특별히 무거운 자가 발을 딛어주어야 하듯, 천칭을 달 때, 많은 쪽에서 적은 쪽으로 옮겨야 하듯, 성도라면 아버지 하나님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받은 은혜를 나누는 특권에 참여해야 한다.

고린도후서 7:2-16 읽기

2-4 바울 일행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넒은 아량으로 자신들을 받아달라고 편지한다. 자신들은 아무에게도 부당한 일을 한 적이 없고, 아무도 망친 적이 없고, 아무도 속여서 빼앗은 일이 없다고 자부한다. 그렇다고 고린도 성도들을 책망하려고 편지하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바울 일행은 고린도 성도들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공동운명체라고 말한다.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살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신뢰하며 자랑스럽게 생각한다고 말한다. 온갖 환난 가운데서도 (고린도 성도로 말미암아) 위로가 가득하고 기쁨이 넘친다고 고백한다.

5-7 바울 일행이 마케도니아에 이르렀을 때 바울 일행은 피곤에 지쳐있었다. 여러 환난으로 쉴 수 없었다. 내우외환이 겹쳤다. (안으로는 두려움이 있었다고 고백한다.) 그러나 자신들이 실의에 빠져 있을 때 하나님께서 디로를 보내 주셔서 위로해 주셨다고 말한다. 단순히 디도가 돌아온 것만이 아니라, 디도가 고린도 성도들에게서 받은 위로로 자신들도 위로를 받았다고 편지한다. 디도는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그리워하고, 바울에게 잘못한 일을 뉘우치고, 오히려 바울을 열렬히 변호한다는 소식을 가지고 왔기에 바울은 더욱더 기뻐했다.

8-11 바울은 먼저 쓴 편지가 (디도편에보낸 전후서 사이의 편지?)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물론 바울은 먼저 쓴 편지가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는 편지 쓴 것을 후회하기는 했다. 그러나 (디도의 소식을 받은) 지금은 편지를 잘 썼다고, 기뻐한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고린도성도들이 마음에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이다. 고린도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기 때문에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이 먼저 쓴 편지로 말미암아 손해 본것이 없다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근심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외할 것이 없다고 가르친다. (반면)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고 말한다. 그 증거가 고린도 성도들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함으로 고린도 성도들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는지 스스로를 돌아보라고 말한다. 고린도 성도들의 바울을 위한 열성, 변호, 의분, 두려워하는 마음, 그리워하는 마음, 열정, 응징은 참으로 놀라운 것이라고 감사해 한다. 고린도 성도들의 이런 변화에 잘못이 없다고 말한다.

12-16 바울은 지난 번에 편지를 쓴 이유를, 불의를 행한 사람이나 불의를 당한 사람 때문이 아니라, 바울 일행을 향한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이 하나님 앞에서 환히 나타나게 하려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고린도 성도들의 마음을 (디도를 통해) 확인하고 위로를 받았다고 말한다. 바울 대신 간 디도가 고린도 성도들로부터 환대를 받고 마음의 안정을 얻었다는 기쁨의 소식을 가져왔기에 더욱 기뻐한다고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을 부끄럽게 하지 않았기 때문에 고린도 성도들을  디도에게 칭찬(자랑)했다고 편지한다. 바울은 먼저 쓴 편지에서도, 그리고 지금 디도에게, 고린도 성도들을 칭찬(자랑)했다는 얘기도 모두 진실되다고 말한다. 바울은 디도가 고린도 성도들의 환대와 순종을 기억하면서, 고린도 성도들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졌다고 전한다. 물론 바울 자신이 고린도 성도들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게 되어서 기쁘다고 편지한다.

>> 바울은, 성도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사는 공동 운명체라고 말한다. 공동운명체에 필요한 것은 신뢰다. 이 신뢰가 깨어지면 마음 아파하는 것은 당연한 것이요, 이 근심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이다.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근심하는 것이 아니라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기 위한 근심이다. 하나님의 뜻에 따른 근심이 회개와 구원에 이르게 하고 그 열매가 신뢰회복, 곧 화해로 나타났다. 성도가 공동체로 함께 세워져 갈 때, 신뢰가 회복될 때 기쁨이 넘친다. 나의 문제, 나의 건강이 아니라 교회 공동체의 문제와 건강을 위해 기도하라고 하신다. 한국교회도 외환보다 내우에 대한 치유가 필요한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