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4 (1-23)

// 13장은 몸이 아파 읽기만 하고 기록은 못했다. 거짓 선지자, 허탄한 묵시나 복술로 백성들을 사냥하는 자들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심판의 목적은 반복된다. 내가 하나님인 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에스겔 앞에 나아왔다. 8장에서는 유다 장로들이 에스겔 집에 찾아왔는데 (분위기상 여러명이 민족적인 문제로) 오늘은 두어 장로만 (아마도 개인적인 문제로) 나아왔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이 두어 장로는 우상을 마음에 들인 자들이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둔 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런 그들에게 아무것도 응답하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약 1:6-8) 대신 이들에게도 심판의 말씀을 전라하고 하신다.

이들 두어 장로는 에스겔에게 나아왔지만 거짓 선지자들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다를게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우상취급하는 자들이요 죄를 짓게 하는 것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결국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여기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우상의 수효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우상은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그들은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그래도 주님은 기회를 주신다.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지내는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마음에 들여 죄를 짓고자 하면 하나님의 백성가운데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이신줄 알리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인줄을 너희가 알리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의 꾐에 빠졌더라도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지자에게 나아가는 자나 다 자기 죄악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는 미혹되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사람들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심판하실 것을 예로 드신다. 기근으로 심판하실 때 노아 다니엘 욥 세사람이 그들 중에 있다면 이 세사람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 생명만을 건질 것이라고 하신다. 불법의 나라를 황폐하게 하실 때에도 이 세사람만 건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자기 자녀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구원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칼로 심판하실 때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으로 심판하실 때도 동일하다.  // 그나저나 다니엘이 대단하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다고 노아와 욥과 자리를 나란히 하다니… 하나 더, 이 세사람 모두 이스라엘 땅이 아닌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공의를 행했다는 것. 음~ 다니엘만 유다 사람이고 노아와 욥은 히브리 사람 이전 사람.

하나님은 이 기근과 황폐케 됨과 칼과 전염병을 동시에 예루살렘에 내리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결국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불법을 행하는 어떤 나라요, 범죄한 어떤 나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서 노아 다니엘 욥처럼 피하는 자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들을 ‘자녀’들이라고 부르신다. 이들을 구원함을 통해 범죄함에서 돌이킨 자들을 자녀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유없이 재앙(심판)을 내리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에스겔 12:17-28

주님은 또 말씀하신다. 에스겔에게 떨면서 음식을 먹으며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라고 하신다.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에게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이 처한 상황을 상징행위로 보이라고 하신다. 쉽게 말하면 포로로 잡혀온 것이 예루살렘에 남아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면서 물을 마시다가 자신들의 포악함으로 결국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이 황폐해 지는 것을 목도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 예루살렘의 패망은 정해진 것이다. 굳이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의 폐망을 예언하는 것은 사로잡혀 온 사람들에게도 남아 있는 잘못된 성전신앙, 곧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곳이 곧 성전임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주님은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난 세월동안 주님의 환상이 이루어진 것을 본적이 있느냐?’ 라는 속담이 어찌됨이냐고 물으신다. 주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심판의 날과 묵시, 곧 하나님 말씀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말씀대신 높아진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이 더디지 않고 속히 응하겠다고 하신다. 너희 생전에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주님은 거듭 거듭 말씀하신다. 주님의 묵시는 반역의 이스라엘 족속이 생각하듯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주님의 묵시는 한 말씀도 더디지 아니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 포스트모던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도 묵시는 사라지고 있다. 주님은 교회의 몰락을 통해서라도 교훈을 배우게 하실지 모를 일이다. 주님은 거듭 거듭 말씀하시는데…

에스겔 12:1-16

심판의 말씀이지만 끊임없이 주의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직까지는 듣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없다면 말씀은 희귀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사람들도 반역하는 족속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에 남아 반역하는 자들보다 나을게 없다는 뜻이다. 이들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는 눈뜬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반역하는 족속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행위를 시연해 보이라고 명하신다. 혹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에스겔의 행위를 보고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신다. 성문을 지나서가 아니라 성벽을 뚫고 야반도주해야 하는 자들처럼 얼굴도 들지 못하고 포로로 잡혀갈 예루살렘의 운명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하신다. 에스겔은 순종했다.

다음날 하나님은 다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곧 반역의 족속이 에스겔에게 에스겔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거든 에스겔의 행위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고 대답하라고 알려주신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유다) 사람들과 왕이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 밤에 얼굴을 가리고 성벽을 뚫고 도망하겠지만 결국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하신다. 올무에 걸린 먹이감처럼 바벨론에 끌려갈 것이고 (왕은) 다시는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열왕기하 사관은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고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갔다고 기록한다. 왕을 호위하는 모든 군대도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시드기야를 떠나 흩어졌다.  심판은 목적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계시하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신 은혜를 베푸신 것도, 남은 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자백하는 (회개하는) 모습을 이방인들로 보게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신 줄 알리신다. 심판과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음. 이제는 말과 혀로는 안통한다. 진실한 행동이 필요하다. 특별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선교지에서의 삶이랴.

에스겔 11:14-25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한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라 예루살렘은 이제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게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라라’ 라고 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잠깐 (즉 포로로 흩어져 있는 동안) 그들에게 성소가 되시겠다고 하신다. 임마누엘이다. 즉 성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다. 성전에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 성소다. // 교회당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흩어진 가나안 성도들에게도 성소가 되어주신다.

또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회복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다. 그런데 회복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땅을 다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들을 제거하여 버리는 것이다. 대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마음, 새 영으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다.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순종하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선언하신다. 한편으로 미운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 교회당에 남겨진 성도나 가나안성도나 그 행위대로 심판받는다. 성령에 이끌리어 순종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에스겔은 그룹들이 (네 생물이) 날개치며 하나님께서 영광가운데 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에서 떠올라 성읍 동쪽 산위에 머물렀고 에스겔은 주의 영에 이끌리어 예루살렘에서 환상을 다본 후에 다시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돌아왔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일을 말했다. //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했을 것이다. 심판의 두려움과 회복의 소망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포로지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성소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은 힘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신다는 위로의 메시지다. 성령에 이끌리어 순종하라.

에스겔 11:1-13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올려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에스겔을 성령으로 이끄신다. 이번에는 성전 동문에 있는 고관 스물다섯 명의 작태를 들려주신다.

백성의 고관들을 불의를 품고 성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들은 (새)집을 지을 필요가 없고, 즉 집은 이미 잘 지어 놓았으니 성 안의 백성들을 착취하여 뒤룩뒤룩 살찌자고 서로 말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이 자신들이 압제하고 착취할 가마솥이요, 백성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울 고기가 된다고 속삭인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불법을 행하는 고관들에게 예언할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고관들의 탐욕스럽고 불법이 가득한 마음을 다 아신다고 책망하게 하신다. 예루살렘 성읍에서 애꿎은 백성들을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다고 하신다. 그들이 죽인 시체가 너희들이 생각하는 고기라고 정곡을 찌르신다. 예루살렘 성읍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가마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루살렘에서 끌려 나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고관들은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혹은 성전이) 가마솥의 솥두껑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고관들에게 이스라엘에서 이보다 더 좋은 압제와 착취의 성읍이 어디 있으랴.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을 (성전을) 솥두껑처럼 의지하여 너희가 두려워 하는 칼을 피하려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방나라를 사용하셔서) 칼로 치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을 타국인의 손에 넘겨 하나님의 벌을 받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탐욕으로 백성들을 압제하고 착취한 고관들의 결국은 칼에 엎드려 질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포로로 잡혀가다가 변경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불순종하면 죽을 때 심판의 하나님만 알게될 것이다.)

고관들은 예루살렘 성을 가마로 삼고 백성들을 착취하여 뒤룩뒤룩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자 불법을 꾀하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제발 내가 하나님이신줄 알라고 하신다. 왜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지 않고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오히려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느냐고 책망하신다. (불순종의 백성들에게 평안이 아니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할 때 고관 중의 한 명인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었다. 에스겔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었다.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을 남겨두소서.”

// 바벨론의 속국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고관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정의와 사랑과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아니 모른채했다. 하나님도 이들을 모른채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