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3:7-19

히브리서 저자는 7절에서 성령께서는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15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한번 더 권면한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여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던 이스라엘 조상들의 예를 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믿지) 않는 것이 곧 악한 마음이요, 악한 마음을 품으면 곧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할 성도의 삶이다. 성전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하여 성전의 지체로 지어져 가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곧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한다. 원망과 불평이 곧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저자는 출애굽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원망과 불평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한 자들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광야 사십년동안 악한 마음을 품고 (범죄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한 그들이 광야에서 죽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아서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로보건대 그들이 밎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을 격노케하고 범죄하고 불순종해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범죄하고 불순종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리적으로 안식(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이미 광야 생활에서부터 안식을 (하나님과의 사귐,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했다. 참 안식은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모세는 안식을 (하나님과의 사귐, 임마누엘을) 누리지 않았던가? 안식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누리는 것이다. 순종은 쉽지 않다. 예수 이름으로 두세사람이 모여서 기도로 순종할 힘을 구해야 한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여 가야 한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영생을 누려야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을 알고 성자 예수님을 아는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여러분은 조심하십시오.” (12 새번역)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공동번역)

 

히브리서 2:10-3:6

창조주이시며 하나님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상속자들이 하나님나라의 시민이 되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원의 창시자, 곧 맏아들을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

구원의 창시자, 성자 예수님이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받을 상속자들은 거룩하게 함을 입는다. 모두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서로 형제다. 예수님은 성도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우리도 서로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는데…예수님은 형제들에게 (보이지 않는) 성부하나님을 선포하고 형제들 가운데서 성부하나님을 찬미하시는 분이시다. 형제들 가운데서 예수님은 성부하나님만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신다. 그리고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원받을 상속자들인 형제들이 육신을 입고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과 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이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하셨다. 구원받을 상속자들, 곧 형제들이 더이상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지 않도록 해방(구원)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상속자들,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형제들 가운데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 그래서 성부하나님의 자비롭고 진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들, 형제들의 죄를 대신 갚아 주셨다. 예수님은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이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죽는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다. 그래서 시험(고난과 박해를)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을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를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한다. 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종된 모세와 비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 상속자라고 소개한다. 아니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한다. 하나님나라를 지으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이 소망을 확신하고 이 소망을 자랑하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하나님나라의 지체라고) 선언한다. 성전이신 예수님과 성전을 이루어가는 지체가 된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엡 2:2)

히브리서 2:1-9

‘그러므로 우리는’에서 우리는 히브리서 저자와 독자들이요 1장 마지막절 ‘구원받을 상속자들’ 이다. 우리는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으로 우리가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해야 한다. 예수님은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반석위에 집을 세운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하셨다. 우리가 들은 것에 더욱 유념함은 결국 들은 말씀을 순종/실천해야 함을 뜻한다. 그렇지 않고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모래위에 집을 지은 어리석은 사람과 같다고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모래위에 세운 집은 비가 내래고 홍수가 나고 바람이 불어서 그 집에 들이치면 무너진다. 흘러 떠내려 간다. 그러니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유념해야 한다.

히브리서저자는 천사들을 통하여 하신 말씀을 순종한 자와 불순종하여 범죄한 자들이 각각 자기 행위대로 심판을 받았듯이 예수님께서 구원받을 상속자들에게 주신 말씀도 유념해야함을 강조한다.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들은 믿음의 선배들을 통해 배울 수 있는 교훈이다. 성부 하나님께서도 표적과 기사와 능력으로, 성령 하나님께서도 하나님의 뜻을 깨닫게 하심으로 순종과 불순종이 공정하게 심판받음을 증언하신다. 삼위하나님께서 즐거움의 기름부음으로 하나님나라를 통치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천사들이 아니라 주님께 복종하게 하셨다고 히브리서 저자는 분명히 한다. 문제는 사람을 주관하시며 돌보시는 성자 예수님을 성부하나님께서 잠시 천사보다 못하게 하셨다가 잠시후에 영광과 존귀로 관을 씌우셔서 만물을 주님의 발아래 복종하게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만물이 아직 주님께 복종하고 있는 것을 보지 못하는 현실이다. 예수님께서 성육신하셔서 천사들보다 잠시 못하게 하심을 입어 죽음의 고난을 받으시고 부활하셔서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것은 우리를 대속하시려고 죽기까지 복종하신 예수님의 사랑이요, 이것이 곧 하나님의 은혜다. (만물이 아직 주님께 복종하지 않으니 예수님의 사랑이 전해져야하고 하나님의 은혜가 선포되어져야 한다. 해방의 소식이 전해져야 한다. 복음이다.)

삼위 하나님께서 하나님나라를 통치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에 유념하라고 하신다.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기만 해서는 안된다. 순종해야 한다. 유념은 내가 말씀을 품는 것만이 아니라 내가 말씀에 안기는 것이다. 말씀의 바다에서 헤엄치는 것이다. 성령하나님이 구명대가 되어주신다. 청년이 무엇으로 그 행실을 깨끗게 하리이까? 주의 말씀을 따라 삼갈 것이니이다. 내가 주께 범죄하지 아니하려고 주의 말씀을 내 마음 깊이 두었나이다. 주님은 우리의 행위대로 정직하게 심판하신다. 흘러 떠내려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히브리서 1 (1-14)

하나님께서는 옛적에 선지자들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말씀하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창조주이자 만유의 상속자이신 아들을 통하여 말씀하셨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아들을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시요 그 본체의 형상으로 능력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창조하셨듯이 능력의 말씀으로 천지 만물을 통치하시며 하늘보좌 우편에 앉으셔서 하늘 법칙을 거스리는 죄를 정화하는 일을 하신다고 소개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아들을 천사와 비교한다. 사실 비교불가다. 족히 비교할 수 없다. 천사는 사자, 즉 보냄을 받은 자이고 아들은 왕자이자 상속자, 즉 보내시는 분이다.  천사는 보냄을 받은 자다. 그러나 아들은 상속자다. 상속자 중에서도 맏아들이다. 모든 천사들이 경배해야 할 분이시다. 천사들은 잠잠해질 수 있는 바람이요 꺼질 수 있는 불꽃이다. 즉 대사로서의 역할이 한시적이지만 상속자 아들의 보좌는 영원하다. 영원히 다스리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 아들을 주라고 부른다. 정의를 사랑하고 불의를 미워하시는 창조주요 영원한 주라고 찬양한다. 성부 하나님께서는 성자 주에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주님을 따르는 모든 자들보게 뛰어나게 하셨다. 주는 이렇게 천지의 창조주요, 영존하시는 주요, 변함없으신 주다. 그 어떤 천사도 하늘 보좌 우편의 자리를 제안받지 못했다. 천사들은 즐거움의 기름이 아닌 섬기는 영으로 구원받을 상속자 (성도)들을 위하여 섬기라고 보내심을 받은 자들이라고 한다. (반면에 주님은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위해 섬기러 친히 오셨다. 많은 사람을 위하여 자기 목숨을 몸 값으로 치러 주시려고 오셨다. ) 즐거움의 기름(자발성)과 섬기는 영(의존성)의 차이다.

// 히브리서. 누가 썼는지 누구에게 썼는지 언급이 없다. 중요하지 않아서, 일차독자들은 굳이 언급하지 않아도 알 수 있어서일까? 궁금해 하지 말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통해 주님의 영광, 즉 성부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시는 주님의 영광을 보고, 주님에게 충만한 은혜와 진리가 무엇인지 깨달으라고 하신다. 우리는 이 성경 말씀을 읽을 때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는 주님을 만날 수 있다. 말씀을 읽을 때 저에게도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주소서. 구원의 기쁨을 누리게 하소서.

역대상 29:20-30

다윗의 왕위가 솔로몬에게 위임된다. 위임식은 ‘왕 만세’가 아니라 ‘할렐루야’로 시작한다. 왕과 온 이스라엘이 하나님께 제사하고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셨다. 그리고 솔로몬에게 기름부어 왕으로 삼는다.

‘솔로몬을 왕으로 삼아 기름을 부어 여호와께 돌려 주권자가 되게하고’ 라고 사관은 기록한다. 솔로몬 위에 하나님이 계시다는 의미가 아닐까? 그래서 굳이 사독에게도 기름을 부어 (대)제사장이 되게 한다. 이렇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왕위에 앉아 다윗을 이어 통치했다. 혈통적으로는 다윗의 아들이지만 하나님께서 솔로몬을 하나님의 아들 삼으시겠다는 신탁이 성취됨을 강조한다. 그결과 온 이스라엘이, 지도권이, 다윗 왕의 여러 아들들도 솔로몬 왕에게 복종한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 삼은 솔로몬을 형통하게 하셨다. 그전 이스라엘 모든 왕보다 (사울과 다윗보다) 뛰어나게 하셨다.

사십년간 이스라엘을 다스렸던 다윗이 퇴위한다. 사관은 다윗은 장수했고 부했고 존귀했다고 기록한다. 자세한 기록은 사무엘의 글과 나단의 글과 갓의 글에 다 기록되었다고 떠넘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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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위 위임식에서 ‘왕 만세’보다 ‘할렐루야’가 먼저 울려퍼졌다. 솔로몬은 혈통적으로 다윗의 아들이지만 하나님의 아들로서 다윗의 위를 계승한다.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나라가 된다. 하나님이 하나님나라의 주권자 이심을 드러내신다. 그래서 왕에게 기름붓는 현장에서 제사장 사독에게도 기름을 붓는다.

성도도 다 누구누구의 아들과 딸들이다. 그러나 성도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난 자들이 아니고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들이다. 하나님의 아들(자녀)이다. 상속자들이다. 왕같은 제사장으로 살아가라고 하신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벧전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