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9:1-19

다윗은 성전건축이 사람을 위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선언한다. 오늘날의 예배당 건축이 성전건축이 아님이 여기서 드러난다. 요즘 예배당 건축은 말로는 하나님을 위한 것이라고 포장될 지 몰라도 철저히 예배드리는 사람들을 위해 설계된다.

다윗은 솔선수범하여 성전건축의 자재를 준비했다. 힘을 다하여 준비하였다고 온 회중에게 밝힌다. 무엇보다도 다윗의 마음이 성전을 사모해서 자신이 가진 금과 은을 성전건축을 위해 드렸다고 한다. ‘네 보물이 있는 그 곳에는 네 마음도 있느니라’ 라는 예수님의 교훈을 이미 알고 있었나보다.

다윗의 솔선수범에 이스라엘 모든 가문의 지도자들, 모든 지파의 지도자들,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의 사무관들이 ‘하늘에 보화쌓기’에 즐거이 동참했다. 지도자들의 동참소식에 백성들도 자원하여 동참했다. 백성들은 자원할 수 있어서 기뻤고 백성들이 자원하자 다윗 왕도 심히 기뻤다.

다윗은 성전건축 준비의 기쁨을 하나님을 송축함으로 온 백성과 나눴다. 다윗은 성전건축을 준비할 수 있음을 하나님의 위대하심과 권능과 영광과 승리와 위엄에 돌렸다. 하나님께 감사할 따름이었다. 다윗 자신과 온 백성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성전건축에 물질을 드릴 수 있는 힘도 하나님으로 말미암았다고 고백한다. 주님께서 주신 것을 주님께 드리는 것이라고 한다.

다윗은 이스라엘이 조상들과 같이 여전히 주님앞에서는 이방나그네와 거류민들, 즉 난민들이라고 한다. 다윗왕국이라고 하여도 세상에 있는 날이 그림자 같아서 희망이 없다고 한다. 이땅에 부룰 쌓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일 것이다. 그래서 가시적인 성전건축에 재물을 쌓음으로 모든 것이 주의 손에서 왔고 주의 것임을 시인한다. 다윗은 주님께서 정직을 기뻐하심을 안다고 말한다. 그리고 성전건축을 위한 자신과 백성들의 행동이 정직한 마음에서 나온 것임을 다시금 고백하며 기뻐한다. 다윗은 주님께 이 정직한 마음이 이스라엘 백성의 마음에 영원히 있어, 백성들이 주님께 돌아오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솔로몬에게도 정성된 (정직한) 마음을 주시도록 기도한다. 정직이란 주의 계명과 권면과 율례를 지키는 마음이다. 다윗은 정직한 마음으로 드린 건축자재로 솔로몬이 정성된 (정직한) 마음으로 성전을 건축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역대상 28 (1-21)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지도자들을 소집했다. 성전건축 설명회로 열었다. 다윗은 자신에게 성전건축할 마음이 있어 건축할 재료를 준비했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으셨고 성전건축은 다윗의 아들 중에서 솔로몬에게 허락하셨다고 선언한다. 다윗은 성전건축 설명회를 통해 자연스럽게 솔론몬에게 왕위 계승까지 한다.

더군다나 하나님께서 솔론몬을 택하사 하나님의 아들로 삼고 하나님께서는 솔로몬의 아버지가 될 것임이라는 신탁을 공개함으로 성전건축을 통해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가 될 것임을 선언한다. 다윗은 하나님나라는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는 나라임을 분명히 선언한다. 하나님의 계명과 법도를 힘써 준행하는 나라가 영원히 견고할 것이라고 선언한다.

다윗은 솔로몬을 향해 말했다. 너는 네 아버지의 하나님을 알아라. 온전한 마음과 기쁜 뜻으로 하나님을 섬겨라. 하나님께서는 모든 마음을 감찰하시고 모든 의도를 아시는 분이시니 하나님을 찾으면 만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네가 하나님을 버리면 하나님께서도 너를 영원히 버리실 것이다. 그러니 삼가라. 하나님께서 너로 (아들 삼아) 성전의 건물을 건축하게 하셨으니 힘써 행할지니라. (성전의 건물은 솔로몬이 짓겠지만 참 성전을 지어가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다윗은 성전 설계도를 솔로몬에게 주었다. 성전 설계도는 다윗이 영감으로 받은 것이다. 건물의 설계도뿐만 아니라 성전 방들과 기물의 설계도와 쓰임새까지 설명되어 있는 종합메뉴얼이었다. 다윗은 하나님의 손이 다윗에게 임하여 이 모든 일의 설계를 그려서 자신에게 알려 주셨다고 분명히 선언한다. 한마디로 신정을 선언한 것이다. 따라서 성전의 설계도가 솔로몬에게 쥐어졌다는 것은 왕관의 씌워주는 대관식보다 솔로몬이 왕위계승자임을 더 분명히 밝히는 사건임에 틀림없다.

다윗은 또 솔로몬에게 향한다. 너는 강하고 담해하게 이 일을 행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이일을 마치기까지 나의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사 (임마누엘) 네게서 떠나지 아니하고 너를 버리지 아니하시리라. 그리고 설계도뿐만 아니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 유능할 기술자들이 기쁜 마음으로 솔로몬과 함께 할 것이라고 알려준다. 마지막으로 공회로 모인 모든 지휘관과 백성이 온전히 솔로몬의 명령아래 있다고, 왕위도 계승되었음을 선언한다.

역대상 27 (1-34)

다윗왕국의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관원들은 이만사천명씩 나뉘어 각 반마다 한달 씩 집무하였다. 일년 열두 달 중 한달만 국가를 위해 일하고 나머지 열한 달은 생업에 종사하도록 했던 모양이다. 이들을 ‘천부장과 백부장과 왕을 섬기는 관원들’이라고 표현한 것으로보아 예비군 조직이었을 것이다.

사관은 이어서 이스라엘 각 지파를 관할하는 자들의 명단도 기록한다. 이들은 각 지파의 수장이었을 것이다. 레위지파의 지도자를 언급할 때 아론자손을 따로 언급한다. 다윗왕국이 중앙집권적이지만 여전히 각 지파별로 상당한 자치가 허용되었음을 알 수 있는 기록이 아닐까?

사관은 다윗의 인구조사를 언급한다. 요압이 인구조사를 끝내지 못하기도 했지만 하나님의 진노하심으로 인해 그 결과를 기록하지 않았다고 토를 단다.

이어서 다윗 왕의 곳간, 밭과 성읍과 마을과 망대의 곳간을 맡은 자, 농민을 지도하는 자, 포도원을 맡은 자, 포도원의 소산과 포도주 곳간을 맡은자, 뽕나무를 맡은자, 기름 곳간을 맡은자, 소 떼를 맡은 자, 낙타를 맡은 자, 나귀를 맡은 자, 양 떼를 맡은 자 등등 다윗 왕의 재산을 맡은 자들의 명단이 나온다.

마지막으로 다윗의 모사이자 서기관인 다윗의 숙부 요나단, 왕자들을 가르친 학모니의 아들 여히엘, 왕의 모사 이히도벨, 왕의 벗 후새, 아히도벨의 뒤를 이은 브나야의 아들 여호야다와 아비아달, 그리고 군대장관 요압의 이름이 거명된다.

// 모사와 벗. 아히도벨은 모사로 후새는 다윗의 벗으로 사관은 기록한다. 아히멜렉은 모사로서의 길을 가지 위해 압살롬 편에 서지만 후새는 벗으로서 다윗편에 끝까지 선다. 모사의 길을 고집했던 아히벨렉은 자기 묘략이 압살롬에 의해 시행되지 못하자 고향에 내려가 결국 스스로 목매어 죽고 만다. 후새가 압살롬을 설득할 수 있었던 것은 후새의 계획이 좋아서라기 보다 하나님께서 압살롬에게 화를 내리시기로 결정하셨기 때문이었다. 이랬든 저랬든 모사에 의해 사는 것이 아니라 벗에 의해 산다. 예수님은 우리의 친구가 되어주셨다.

역대상 26 (1-32)

25장 찬양대에 이어 26장은 문지기에 대해 언급한다. 25장에서 찬양대를 언급하면서 1절 ‘군대지휘관들과 더불어’라는 표현이 특이하다. 성전에서 찬양하는 사람들이지만 전쟁에서는 군악대의 역할도 담당했을 것이라는 짐작을 할 수 있다. 이들의 직무도 제비를 뽑아 정했다.

아삽 자손들은 찬양대에도 참여하는데 문지기 직무에도 참여한다. 4절에는 언약궤를 석달동안 보관했던 오벧에돔의 아들들도 문지기 직무에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문지기는 단순한 수위가 아니라 용사였다고, 큰 용사요 능력있는 자들이라고 사관은 토를 단다. 찬양대와 마찬가지로 전쟁때 성전을 지키는, 오늘날로 말하면 수도방위사령부의 역할일 것이다.

문지기들 역시 가문의 대소를 막론하고 다 제비를 뽑아 직무가 정해졌다. 성전 각 문을 지키는 직무, 곳간을 지키는 직무, 성전 뜰을 지키는 직무, 성전 곳간, 성물 곳간을 지키는 직무 등등. 성전 곳간 외에 성물 곳간이 있었다는 것도 특이하다. 이 성물 곳간에는 다윗 왕과 각 가문의 지도자들과 천부장과 백부장과 군대의 모든 지휘관이 구별하여 드린 성물을 보관하는 곳이라고 한다. 이들은 전쟁에서 얻은 전리품을 구별하여 성전 개수(건축)에 사용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 드렸던 모양이다.

마지막으로 성전 밖에서 이스라엘의 일을 다스리는 관원과 재판관도 언급된다. 사관은 성전 밖의 일을 하나님의 일과 왕의 일이라고 적는다. 성전 밖에서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일도 하나님의 일이며, 사사로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하나님과 왕에게 위임받은 권위로 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게 해 준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 2:9)

역대상 24 (1-31)

사관은 다윗왕국을 이야기 하면서, 성전건축 준비를 하면서 레위자손을 소환하고 모세와 아들들을 불러내더니 아론의 아들들도 다시 불러낸다. 사관은 아론의 두 아들 나답과 아비후가 아론보다 먼저 죽은 것만 언급하지 굳이 그 이유를 밝히지는 않는다. 그리고 세째 엘르아살과 네째 이다말을 통해 제자장 직분이 이어졌다고 적는다.

다윗시대에는 엘르아살 자손 사독과 이다말의 자손 아히멜렉 두 제사장이 있었다. 다윗은 이들에게 업무를 나눠 맡겼다고 한다. 16:8로 엘르아살의 후손이 이다말의 후손보다 두배로 많았으나 직무는 제비를뽑아 두 가문에 차등없이 나누었다고 한다.

그리고 아주 구체적으로 다윗왕과 사독과 아히멜렉과 제사장과 레위사람의 대표 입회하에 서기관 스마야가 엘르아살 집안에서 한집 (대표 한명) 이다말의 자손 중에서 한집 이렇게 번갈아 가며 성전의 일을 다스리는 자와 하나님의 일을 다스리는 자를 뽑았다. 아론의 자손 24가문 (엘르아살 16, 이다말 8) 모두 제비 뽑힌 순서에 따라 하나님께서 명하신 직무를 맡았다.

사관은 레위자손 중 남은 자들의 직무도 아론의 자손들의 직무를 정할 때처럼 다윗왕과 사독과 아히멜렉과 제사장과 레위사람 대표 앞에서 제비 뽑아 정해졌다고 기록한다. 제비를 뽑음으로 장자의 가문과 막내동생의 가문에 차별이 없었다고 기록한다.

제비뽑기는 가히 혁명적이다. 다수당이라고 상임위자리를 독차지 할 수 없고 순서에 따라 제비를 뽑아야 했다. 먼저 제비를 뽑았어도 상대적으로 힘든 직무를 맡을 수도 있었을 것이다. 장자와 막내의 차별도 막을 수 있었다. 장자가 두배의 몫을 상속받던 유대 전통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하나님나라는 기득권이 없는 제비뽑기 나라임을 미리 보여주는 기록이다. 레위 자손들은 이스라엘 중에 분깃이 없고 기업(유산)도 없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의 기업이 되신다. 성도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 (벧젠 2:9)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주인이 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