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5:13-20

너희는 소금이다. 너희는 빛이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아무 쓸데 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다. 빛이 착한 행실로 사람들에게 비치지 않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낼 수 없다.

착한행실은 율법과 선지자들의 가르침을 완전하게 하는 사랑이다. 예수님은 사랑의 법의 바탕이 되는 율법을 폐하시지 않는다. 오히려 율법을 버리고 또 버려도 된다고 가르치는 사람은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되고 율법을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큰 자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여기서 마귀의 속삭임에 혹해서는 안된다.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된다는 것은 천국 백성의 삶을 누리지 못한다는 것이다. 천국에만 들어가면 천국에서 작은 자가 된들 어떠리라는 태도를 경계해야 한다. 마귀의 속삭임이다. 그래서 혹시나해서 예수님은 덧붙이신다.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래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나은 의란 바로 사랑이다.

바울도 로마서 13:10에서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라고 말한다.

“남에게 해야 할 의무를 다하십시오. 그러나 아무리 해도 다할 수 없는 의무가 한 가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랑의 의무입니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습니다.” (롬 13:8 공동번역)

공동번역은 세다. 남을 사랑하는 사람은 이미 율법을 완성했다고 하지 않은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우리의 본이다. 우리가 따라 살아내야 할 삶이다. 난 할 수 없어요라고 핑계대는 것이 아니라 내가 죽고 내 안에 사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따라야 한다.

소금과 빛은 성도의 착한 행실이다. 사랑이다.

 

마태복음 5:1-12

수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예수님은 무리를 보시고 산에 올라가 앉으셨다. 예수님 곁으로 모여든 사람은 제자들이었다. 많은 무리는 아마도 멀찍이서 관망하지 않았을까? 말씀보다 이적과 기사에 관심을 가졌을 것이다.

예수님은 가까이 다가온 제자들에게 말씀으로 천국에 대해 가르치셨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회개한) 제자들에게 천국이 무엇인지 가르치셨듯이 나에게도 동일하게 누가 천국백성이 될 것인지 가르쳐 주신다.

천국의 복은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하게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을 받은 자가 누린다.

천국에서의 삶은 이 땅의 행복과 다르다. 예수님을 위하여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한 말로 비난을 받을 때 복이 있다고 하신다. 이런 복이 있다는 것은 곧 천국 삶을 산다는 것이다. 오늘도 여기서 막힌다. 나는 예수님을 위해 욕을 먹고 박해를 받고 악한 말로 비난을 받고 있는가? 이런 천국의 삶을 누리고 있는가? 천국에서의 복을 나의 탐욕으로 바꿔버리지는 않았는가?

예수님은 말씀하신다. 천국 백성의 삶을 기뻐하고 즐거워하라고 하신다. 이 땅에서 예수를 위하여 박해받음은 하늘, 곧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천국 백성의 삶을 사는 것을 박해 받은 선지자의 삶에 비유하신다. 결국 천국의 삶은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삶이다. 선지자들처럼 말씀에 순종하는 것이 천국백성이 누리는 복이다.

임마누엘의 삶이다. 천국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다.

마태복음 4:12-25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는 새물결은 세례자 요한의 투옥으로 위기를 맞았다. 예수님도 갈릴리로 물러가셨다. 그러나 위기가 곧 기회였다. 이방땅과 마찬가지인 갈릴리에도 빛이 비친 것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 그러나 유대 땅에 나셨지만 유대 백성이 영접하지 않았다. 그런데 흑암과 사망과 그늘인 갈릴리 지역에 빛이 비쳤다. 예수님의 첫 말씀도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였다. 그리고 갈릴리 해변에서 영접하는 자, 예수님의 이름을 믿는 자를 부르셨다. 바로 베드로와 안드레 형제와 야고보와 요한 형제였다.

그들은 모두 어부였다. 예수님이 저들에게 ‘나를 따라오라’고 부르시자 그들은 모두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예수를 따랐다. 예수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자신의 모든 소유를 버리는 희생을 요구한다. 내것을 가지고 예수님을 따를 수 없다.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 보화가 뭍힌 밭을 산 농부나, 값진 진주를 사는 진주 장사처럼 자신의 모든 소유를 팔아야  천국 시민권을 살 수 있다. 예수님이 천국은 이와 같다고 비유로 가르쳐 주셨다.

예수님은 온 갈릴리에 두루 다니시며 빛을 비추셨다. 말씀을 가르치시고 천국복음을 전파하시고 병든자를 고치셨다.

예수님의 소문은 수리아까지 퍼졌다. 그곳사람들도 고통당하는 자 병든자들을 예수님께 데려왔고 예수님은 그들을 고쳐주셨다.

예수님의 소문은 퍼지고 퍼져 갈릴리뿐만 아니라 데가볼리와 예루살렘과 유대와 요단강 건너편에서 수 많은 무리가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했다.

예수님의 천국복음은 예루살렘부터 온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 순서가 아니라 지역적으로 이스라엘과 이방의 경계 갈릴리에서 시작되었다. 천국복음은 그 시작부터 유대 (이스라엘)만이 아닌 이방을 포함하는 복음이다. 수 많은 무리들이 예수님을 따르기 시작하였지만 제자로 남을 수 있는 자는 적다. 자신의 소유를 버리고 예수님을 따르기 쉽지 않기 때문이다.

마태복음 3:13-4:11

예수님께서 등장하신다. 마태는 예수님의 등장을 당시 전국적으르로 떠들썩 한 요한이 세례주던 요단강에서 시작한다. 예수님께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려고 나오신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당연히 예수님을 알아보았다. 그는 자신이 예수님께 성령과 불로 세례를 받아야 하는데 어떻게 예수님께 세례를 줄 수 있는냐고 항변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합당한 것이니 허락하라고 말씀하셨고 요한은 이 말씀을 받아드려 예수님께 세례를 준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시자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예수님 위에 임하셨고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라는 성부 하나님의 말씀이 들렸다.
세례 받으신 주님은 성령에 이끌리셨다.
예수님께서 세례자 요한에게 한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다는 것은 무슨의미일까? 예수님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사람들 가운데 거하셨다. 바울의 가르침에 따르면 종의 형체를 가지사 사람들과 같이 되셨다. 모든 사람은 죄를 범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는 존재다. 결국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온전한 사람으로 이땅에 오심을 의미한다. 죄인인 우리 성도들이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죄 없다고 인정함을 받는 것과 마찬가지다. 이렇게 완전한 사람으로 오신 예수님께서 이제 완전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드러내시는 것이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아닐까? 세례를 통하여 예수님께서는 성부 하나님과 성령 하나님과 함께 성자 하나님으로 삼위 하나님의 한분으로 자신을 드러내신다. 복음서 기자들이 모두 이 사건을 기록하는데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오심과 성부 하나님의 음성을 그자리에 있던 모든 사람들이 보고 들었는지는 명확하지 않다.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만 보고 들었을 수도 있다. 하여간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것이다. 두 사람 세례자 요한과 예수님의 순종를 통하여 일찍이 하나님을 본 사람은 아무도 없었지만 성부 하나님과 함께 하셨던 성자 하나님이 드러난 것이다.
마귀는 스스로도 속인다. 예수님께서 세례를 통하여 공식적으로 성자 하나님으로 계시되었건만, 이제 예수님께서 성령에 이끌리시는 분이시건만 네가 만일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고 도전한다. 마귀 자신이 스스로를 속이는 행위다. 물론 예수님은 마귀의 모든 시험을 물리치신다.
토요일 거의 하루 종일 정전이었다.

마태복음 3:1-12

예수님보다 앞서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라고 외친 사람이 있었다. 그는 세례요한이다.

세례자 요한이 선포한 회개는 무엇이고 천국은 무엇이었을까? 회개는 뉘우치는 것이다. 잘못된 행실에서 돌이키는 것이니 이해하기 어렵지 않다. 그러나 천국이라는 개념은 쉽지 않다.

그러나 우선 쉽게 생각하면 지금의 가치관에서 돌이켜 새로운 가치관을 따라 살라는 가르침이다.

마태는 세례자 요한이 이사야서에 나오는 ‘광야에 외치는 자의 소리’의 주인공이라고 소개한다. 이 세례자 요한이 낙타털 옷을 입고 허리에 가족 띠를 띠고 메뚜기와 석청을 먹으며 지냈다고 한다. 나름 구약의 선지자의 모습을 따랐다. 세례자 요한도 전하는 내용만큼이나 자신에게서 풍기는 삶의 모습이 중요하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아니 말씀을 적용한 삶의 모습이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외치는 세례자 요한에게 나아와 자기들의 죄를 자복하고 (회개하고) 요단강에서 세례를 받았다.

세례자 요한에게 나오는 사람들 중에는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도 많았다. 세례자 요한은 저들에게 독사의 자식들이라고 독설을 퍼부었다.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이 세례자 요한에게 나와 세례를 받고자 한 것은 회개가 아니라 만의하나 있을 지 모를 심판을 면하기 위한 면벌/면죄부를 받기 위함임을 세례자 요한은 직시했던 것이다.

세례자 요한은 바리새인과 사두개인들에게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으라고 책망한다. 세례자 요한은 진정한 아브라함의 자손은 (사도 요한의 주석처럼)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라고 강조한다. 육적 아브라함의 자손이니까 세례만 받으면 된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미 시작되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한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세례자 요한에게 세례받음의 의미인 것이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기 위한 첫걸음이다. 그러나 우리의 결심으로만 회개에 합당한 열매을 맺을 순 없다. 그래서 세례자 요한은 자신보다 능력이 많으신 그리스도를 소개한다. 성령과 불로 세례를 베푸실 그 분을 소개한다. 나의 결심과 능력으로는 할 수 없지만 보혜사의 도우심을 받으면 우리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을 수 있다. 우리가 세례받음은 그리스도 예수의 영이 함께 하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다. 천국은 복음이지만 알곡만 누릴 수 있는 것이다. 쭉정이는 불에 던져진다. 꺼지지 않는 불에 태움을 당한다.

천국은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이 함께 계셔서 우리를 다스려 주시는 나라다. 형식적인 세례가 아니라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주님이 함께 하신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지 않으면 속으로 아무리 난 (물)세례받았다고 생각해봐야 심판대 앞에서면 주님께서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것이다. 세례자 요한 처럼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