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하 7:3-20

열왕기하 7:3-20 (공동번역)

그때 성문 밖에 있던 나병환자 넷이 서로 의논하였다. “어찌하여 여기에서 죽기만 기다리고 있을 것이냐? 성안에 들어가 보아도 먹을 것이 없으니 살 수 없겠지만 그렇다고 여기 그대로 있어도 죽기는 마찬가지다. 그러니 시리아 군이 주둔하고 있는 진지에 가서 항복이나 하자. 살려주면 다행이고 죽이면 어차피 죽을 몸, 죽는 거다.” 그리고는 황혼에 떠나 시리아 군 진영에 다다라서 보니, 사람이라고는 그림자도 하나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주께서 시리아 군에게 대군이 쳐들어 오는 소리를, 병거대가 밀려오고 기마대가 달려오는 소리를 들려주셨던 것이다. 그리하여 그들은 서로 “큰일났다. 이스라엘 왕이 헷의 왕들과 이집트 왕들에게 돈을 주고 군대를 사다가 우리를 치는구나!” 하며 황혼녘에 군마와 나귀를 막사째 그냥 버려두고 진지를 떠나 목숨을 구하여 도망쳤다.
나병환자들은 적 진지에 다다라 한 천막에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은과 금, 의복을 챙겨 들고 나와 감추어두고는 또 다른 천막 안으로 들어가서 챙겨 들고 나와 숨겨두었다. 그렇게 한 후 서로 의논하였다. “이래서야 되겠느냐? 우리가 이 좋은 소식을 전하지 않고 그냥 내일 아침까지 있다가는 죄를 받으리라. 당장 왕궁에 가서 이 소식을 전하자.” 그리하여 그들은 성으로 가서 문지기들에게 큰소리로 알렸다. “우리가 시리아 군 진지에 갔더니 사람은 그림자 하나 보이지 않았고 인기척도 없었습니다. 다만 군마와 나귀가 매여 있을 뿐, 막사들도 그대로 있었습니다.”
성문지기들이 이 소식을 외치자 왕궁 안에까지 전해졌다. 왕은 밤중에 일어나 신하들과 의논하였다. “나는 시리아 군이, 우리가 굶어 죽게 된 것을 알고 이런 계략을 썼다고 생각한다. 적군은 진지를 떠나 들판에 잠복하여 있다가 우리가 나가면 생포하고는 이 성으로 쳐들어 오려는 것이다.” 한 신하가 아뢰었다. “이 성 안에 남아 있는 이스라엘 군마는 다 모아도 다섯마리 뿐입니다. 그냥 두어도 어차피 죽을 텐데, 이 말에 사람을 태워 정찰을 내보내는 것이 좋을까 합니다.” 그의 말대로 왕은 병거 두 대에 말을 메워 보내며 시리아 군의 뒤를 쫓아가 정찰하라고 하였다. 그들이 시리아 군의 뒤를 쫓아 요르단 강까지 가면서 보니, 길가에 시리아 군이 황급히 도망치며 버리고 간 의복이며 군비가 널려있는 것이었다. 정찰대는 돌아와서 왕에게 이 사실을 보고하였다.
그러자 백성들은 성을 나가 시리아 군 진지를 털었다. 그리하여 야훼께서 말씀하신 대로 밀가루 한 말이 한 세겔, 보리 두 말이 한 세겔에 팔리게 되었다. 왕은 시종무관을 성문의 경비대장으로 임명하였다. 그러나 그는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다. 왕이 찾아왔을 때 하느님의 사람이 미리 말했던 그대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 때 하느님의 사람은 왕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내일 이맘때쯤 되면 사마리아 성 문에서 밀가루 한 말을 한 세겔, 보리 두 말을 한 세겔로 살 수 있을 것이오.” 그 때 그 무관은 이렇게 대답했었다. “야훼께서 하늘의 창고 문을 여신다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그러자 하느님의 사람이 “너는 네 눈으로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다.” 하고 말했던 것이다. 그 말 그대로 되어 그는 성문에서 사람들에게 밟혀 죽었다.

왕하 7:3-20
//나병환자 넷! 이들은 공동체에 들어가 살 수 없었다. 사마리아 성문이 닫혔으니 성으로부터 아무런 공급을 받을 수도 없었다. 그들이 돌에 맞을 각오를 하고 고사 직전의 사마리아 성으로 들어간들 빵 한 조각이라도 기대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생각을 바꿔 시리아 진지로 가기로 했다. 시리아 군에 항복했을 때 살려주면 다행이고, 죽임을 면치 못하더라도 죽을 몸이 죽었으니 상관없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나병환자 넷은 시리아 진지로 갔다. 전쟁 물자는 그대로 있는데 시리아 진지에는 개미새끼 한마리도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이 천말 저 천막을 다니며 먹고 마시고 값비싼 물건들을 챙겨 숨겨두었다. 그들이 충분히 배가 불렀을 때, 그들은 고사 직전의 사마리아 성을 기억했다. 그리고 이 좋은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전하기로 했다. //이스라엘 왕은 나병 환자들의 소식에 반신반의가 아니라 아예 불신했다. 이스라엘 왕은 시리아의 빈 진지를 트로이목마처럼 생각했다. 다행히 신하들은 지푸라기라도 잡으려는 심정으로 시리아 진지를 정탐하자고 했다. 절박한 왕은 허락했다. 정탐결과 나병환자들의 보고가 옳았다.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정탐 결과가 나오자마자 시리아 진지로 달려가 전리품을 취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열어도 안 된다고 말했던 신하는 성문 관리을 맡고 있다가 밀려드는 군중에 밟혀 죽었다.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은 성취되었다. 사관은 성취된 하나님의 말씀을 거듭해서 적었다. //나병환자들은 좋은 소식을 사마리아 성에 전했다. 복음은 좋은 소식이다. 나만 배부르면 되는 소식이 아니다. 사회적 소외자들도 이런 생각을 할 줄 아는데, 오늘 배부른 한국교회는 이런 생각을 못한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기 때문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르다는 것은 정의와 공의가 사회에 편만하기를 바라기에 기꺼이 자신을 희생하려는 마음이다. 기득권을 내려놓으려는 마음이 없다면 의에 주리고 목마르지 않다는 반증일 뿐이다.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다. 그들이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다.

열왕기하 6:24-7:2

열왕기하 6:24-7:2 (공동번역)

그러나 후에 시리아 왕 벤하닷이 전군을 이끌고 사마리아로 와서 포위하였다. 그들이 포위망을 조금도 늦추지 않자 사마리아 성 사람들은 마침내 모두들 굶어 죽을 지경이 되었다. 그래서 나귀 머리 하나가 은 팔십세겔로 거래되고 비둘기 똥 사분의 일 캅이 은 다섯 세겔로 거래되었다.
어느날 이스라엘 왕이 성벽을 따라 걸어가고 있는데 한 여인이 울부짖었다. “임금님이여, 이 계집을 도와주십시오.” 왕이 대답하였다. “야훼께서 돕지 않으시는데, 내가 무슨 수로 너를 돕는단 말이냐? 타작마당 일을 돕겠느냐? 포도주 술틀을 밟아주겠느냐?” 그러면서 왕은 그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여인이 대답하였다. “이 여자가 저에게 말하기를 ‘오늘은 당신 아기를 잡아서 같이 먹고, 내일은 우리 아기를 잡아서 같이 먹읍시다.’ 하였습니다. 그래서 제 아기를 잡아서 끓여 먹었습니다. 이튿날 ‘이제 당신 아기를 잡아먹읍시다.’ 했더니 자기 아기를 감추어버렸습니다.” 왕은 여인의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혀 옷을 찢었다. 왕이 성벽 위를 지나갈 때 백성들은 그가 속에 베옷을 입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자리에서 왕은 내뱉듯이 말하였다. “오늘 중으로 사밧의 아들 엘리사의 목이 떨어지지 않으면, 내가 천벌이 아니라 그 이상의 것도 받으리라.”
그 때 엘리사는 장로들과 함께 집에 앉아 있었다. 왕이 사람을 보냈는데 그 전령이 오기 전에 엘리사가 장로들에게 말하였다. “이제 살인자의 아들이 내 목을 베라고 사람을 보냈습니다. 전령이 올 터이니, 미리 문을 잠그고 들어오지 못하게 단단히 막아야 합니다. 그를 보내놓고 뒤따라오는 상전의 발소리가 저렇게 들리지 않습니까?” 엘리사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왕이 들이닥치며 말하였다. “보아라, 이 재앙을 야훼가 내렸다. 그런데 이제 내가 야훼에게 무엇을 더 기다려야 한단 말이냐?” “야훼의 말씀을 들으시오.” 하며 엘리사는 말씀을 전하였다. “야훼게서 말씀하십니다. ‘내일 이맘때쯤 되면 사마리아 성 문에서 밀가루 한 말을 한 세겔, 보리 두말을 한 세겔로 살 수 있을 것이다.'” 그 때 왕을 부축하고 있던 시종무관이 하느님의 사람에게 말하였다. “야훼께서 하늘의 창고 문을 여신다 해도 그런 일이 일어날 리 없다.”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너는 네 눈으로 그것을 보게 될 것이다. 그러나 그것을 먹지는 못할 것이다.”

왕하 6:24-7:2
//이스라엘과 시리아의 평화가 깨어졌다. 시리아(아람) 왕을 굳이 벤하닷(하닷신의 아들)이라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이번 시리아와의 전쟁도 숫자 놀음이 아니라 신들의 전쟁이라는 것을 암시한다. //시리아는 사마리아 성을 포위하고 직접 공격하는 대신 고사작전을 썼다. 사마리아 성은 어미가 아기를 잡아먹을 정도로 상황이 악화되었다. 나귀 머리 하나 (한 마리)가 보통 사람의 일년 연봉까지 치솟았고, (땔감으로 썼는지 약재로 썼는지 알 수 없지만) 비둘기 똥 조금도 한 달 급여에 가까웠다. 한마디로 고사 직전이었다. //한때 엘리사를 잡으러 온 시리아 군대를 배불리 먹여 돌려보냈던 이스라엘 왕으로서는 기가찰 노릇이었다. 그래도 이스라엘 왕은 이것이 하나님의 재앙(벌)이라는 것을 알았다. 그런데도 왕은 국가적 회개를 선포하지 않았다. 아기를 잡아먹어야 했던 한 어미의 고발에야 옷을 찢어 자신은 이미 속에 베옷을 입고 개인적인 회개를 시작했음을 드러냈을 뿐이다. 그러나 여전히 국가적 회개운동을 촉구하는 대신에,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에게 따지려고 출발했다. 한때는 엘리사를 이스라엘의 국부라고 불렀던 그다. //엘리사는 따지러 온 이스라엘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 고사 직전의 상황이 급반전한다는 내용이었다. 왕의 참모는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었다. 상상할 수 없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모르면 게하시처럼 세상 일에 대해 두려워 떨거나, 왕의 참모처럼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을 수밖에 없다. 그나마 두려워 떨 때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기회가 남아 있지만, 만약 하나님의 말씀을 비웃는다면 실오라기 같은 희망도 사라지고 말 것이다. ////나아만의 겸손을 기억하자. 하나님은 겸손한 자에게 은혜를 베푸신다.

열왕기하 6:14-23

열왕기하 6:14-23 (공동번역)

그는 (시리아 왕은) 기마부대와 병거부대와 강한 부대를 보냈다. 그 군대는 밤중에 그 곳에 도착하여 성을 포위하였다. 하느님의 사람의 시종이 아침 일찍 일어나서 밖에 나갔다가 대군이 군마와 병거로 성을 포위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그 시종이 “선생님, 큰일났습니다. 이걸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하고 물었다. 엘리사는 “두려워 마라. 우리 편이 저편보다 많다.” 하면서 이렇게 기도하였다. “야훼여, 이 시종의 눈을 열어 보게 해주십시오.” 그러자 야훼께서 그 시종의 눈을 열어주셨다. 그리하여 그는 불말을 탄 기마부대와 불병거부대가 엘리사를 둘러싸고 온 산에 덮여 있는 것을 보았다.
시라아 군대가 엘리사에게 쳐내려오자 엘리사는 야훼께 “저 오랑케들의 눈을 멀게 해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그러자 야훼께서 엘리사가 기도한 대로 그들의 눈을 멀게 하셨다. 이에 엘리사가 그들에게 말하였다. “당신들은 길을 잘못 들었소. 여기는 당신들이 치려던 그 성이 아니오. 나를 따라오시오. 당신들이 찾는 사람이 있는 곳으로 인도해 드리리다.” 이렇게 해서 그는 그들을 사마리아로 유인하였다. 그들이 사마리아로 들어가자 엘리사는 “야훼여, 이들의 눈을 열어 다시 볼 수 있게 하여주십시오.” 하고 기도하였다. 야훼께서 그들의 눈을 열어주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자기네가 사라리아 성 안에 있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스라엘 왕이 그들을 보고 엘리사에게 말하였다. “국사님, 저들을 쳐죽일까요?”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쳐죽여서는 안 됩니다. 전장에서 사로잡은 포로도 아닌데 죽여서야 되겠습니까? 차라리 음식과 물을 주어서 먹고 마시게 한 다음 자기들 상전에게로 돌려보내십시오.” 그리하여 이스라엘 왕은 큰 잔치를 베풀어 잘 먹고 마시게 한 다음 그들을 상전에게로 돌려보냈다. 이라하여 시리아 강도떼가 다시는 이스라엘에 발을 들여놓지 않게 되었다.

왕하6:14-23
//눈으로 보는 것이 다가 아니다. 사환 게하시는 장님이 아니었다. 그러나 시리아 군대가 성읍을 포위한 것을 볼 수 있었지만, 불 말과 불전차가 엘리사를 호위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없었다. 엘리사가 하나님께 게하시의 눈을 열어달라고 기도하자 그제서야 볼 수 있었다. 그렇다면 열려야 할 눈은 게하시의 육체적 눈이 아니라 마음의 눈이며, 소위 영안(靈眼)이다. 주님의 눈으로 세상을 볼 수 있어야 한다. 주님의 마음으로 세상을 대해야 한다. 주님의 관점으로 세상을 볼 수 있으려면, 결국은 성령을 받아야 한다고 적용하게 된다. //엘리사는 시리아 군대의 눈을 멀게 해서 그들을 사마리아에 있는 이스라엘 왕에게 데려간다. 시리아 군인들도 육신의 눈이 먼 것이 아니다. 넋이 나간 사람들처럼, 무엇엔가 홀린 사람들처럼, 비유로 말한다면 엘리사의 최면에 걸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최면에 걸려서 산다. 출세와 성공이라는 환상에 붙들려 정의와 사랑을 보지 못한다. 교회도 세상의 색안경을 끼고 있다. 다시 성령의 안경을 써야 한다. //사마리아 이스라엘 왕도 세상의 색안경을 끼고 있으니 엘리사에게 시리아 군인들을 쳐죽일지 물었다. 성령의 안경을 끼고 있는 엘리사는 시리아 군인들을 대접해서 보낸다. 평화로 대하면 평화로 돌아온다. 이스라엘 왕은 엘리사가 엘리야를 ‘아버지, 아버지, 이스라엘의 병거’라고 부른 것처럼 엘리사를 ‘아버지(국부)’라고 불렀다. ////하나님의 사람을 아버지로 부를 수 있다는 것이 복이다. 성도는 서로에게 영적 가족이 되어야 한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가족이라고 말씀하셨다. 임마누엘을 서로 나누는 사람들은 가족이다. 이웃에게도 나눠야할 복이다.

열왕기하 6:1-13

열왕기하 6:1-13 (공동번역)

예언자 수련생들이 엘리사에게 와서 말하였다. “보십시오. 선생님을 모시고 사는 이 곳이 너무 좁습니다. 우리 모두 요르단으로 가서 들보 감을 하나씩 베어다가 살 집을 증축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엘리사가 가보라고 하자 한 사람이 청하였다. “선생님도 같이 가시는 것이 좋겠습니다.” 엘리사가 “같이 가지.” 하고 그들과 함께 떠났다. 요르단 지방에 이르러 그들이 나무를 자르기 시작하였다. 한 사람이 들보 감을 찍다가 도끼를 물에 떨어뜨렸다. “아이구, 선생님, 이걸 어쩌지요? 빌려온 도낀데.” 하고 그가 소리치자 하느님의 사람이 도끼가 떨어진 자리가 어디냐고 물었다. 그가 자리를 알려주자, 엘리사는 나뭇가지를 꺾어 그 곳에 집어 넣었다. 그러자 도끼가 떠올랐다. 엘리사가 “도끼를 집어올려라.” 하자 그가 손을 뻗어 도끼를 집어올렸다.
시리아 왕이 이스라엘과 전쟁을 하고 있었다. 그는 참모들과 의논하고 이러이러한 방향으로 기습해 들어가라고 작전 명령을 내렸다. 그러나 하느님의 사람이 이스라엘 왕에게 전갈을 보내었다. “삼가 이러이러한 지역는 지나가지 마십시오. 시리아 군이 그리로 기습해 올 것입니다.” 이 말을 듣고 이스라엘 왕은 하느님의 사람이 일러준 지역을 특별히 경계하라고 지시를 내릴 뿐 아니라 자신도 그 곳을 경계하였다. 이러기가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이렇게 되자 시리아 왕은 안절부절 못하고 참모들을 소집하여 엄하게 추궁하였다. “우리들 가운데 이스라엘 왕과 내통하는 자가 있다. 그가 누구인지 고하여라.” 그러자 “임금님, 그럴리가 없습니다.” 하며 한 참모가 말하였다. “이스라엘에는 엘리사라는 예언자가 있어, 임금님께서 침실에서 은밀히 하신 말씀까지도 다 알고 낱낱이 이스라엘 왕에게 고해 바치고 있습니다.” 시리아 왕은 “가서 그가 어디 있는지 알아오너라. 내가 군사를 보내어 그를 사로잡으리라.” 하고 명령하였다. 이내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보고가 들어왔다.

왕하 6:1-13
//열왕기 사관은 왕조실록에 엘리사의 이적을 지속적으로 포함시킨다. 이번에는 산신령 엘리사다. 선지자 생도가 나무를 하다 도끼를 물에 빠뜨리자 건져주었다. 굳이 넣지 않아도 될 것 같은 내용을 포함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 생각보다 훨씬 세밀하게 개인사정도 살펴주신다.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함이 하나님과 함께하는 복이 된다. 우리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이웃에게 임마누엘의 복을 나누어야 한다. //시리아 왕은 이스라엘과 전쟁 중이었다. 그런데 시리아의 작전은 번번이 이스라엘에 간파되어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 시리아 왕은 내통자가 있을 것이라고 확신했지만, 시리아 왕의 참모들은 이스라엘에 엘리사라는 레이더가 있기 때문이라고 보고했다. 시리아 왕은 엘리사의 위치를 알아내어 그를 사로잡으라고 명령했다. 마침내 엘리사가 도단에 있다는 첩보가 들어왔다. //도단에 있는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와 함께함이 이스라엘에게는 국가적-민족적 복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함으로 임마누엘의 복을 누릴 수 있었다. 그리고 이 복을 주변 나라들과 나눠야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 주님의 소유된 백성으로의 자격을 스스로 걷어차는 경우가 허다했다. ㅠㅠ ////하나님과 함께함이 복이다. 곧 임마누엘이 복이다. 하나님의 사람과 함께함으로 임마누엘의 복을 누릴 수 있으니 감사합니다. 믿음의 형제와 동거하는 것이 복임을 고백합니다. 임마누엘을 나눌 수 있는 믿음의 형제자매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믿음의 형제자매들과 임마누엘을 나누는 기쁨과 감사를 불신의 이웃들에게도 나누며 살게 하옵소서. 교제의 복을 걷어차지 않게 하소서.

열왕기하 5:15-27

열왕기하 5:15-27 (공동번역)

나아만은 수행원을 모두 거느리고 하느님의 사람에게로 돌아와 그 앞에 서서 말하였다. “이제 저는 알았습니다. 이스라엘 밖에는 온 세상에 신이 없습니다. 소인이 감사하여 드리는 이 선물을 부디 받아주십시오.” 엘리사가 “내가 모시는 야훼께서 살아 계십니다. 결코 이것을 받을 수 없습니다.” 하고 거절했지만 나아만은 받아달라고 간청하였다. 그래도 거절하자, 나아만은 이렇게 말하였다. “진정 받지 못하시겠으면, 이 한 가지 청만은 들어주십시오. 이제부터 저는 야훼 외에 다른 어떤 신에게도 번제나 희생제사를 드리지 않겠습니다. 그러니 나귀 두 마리에 실을 만큼 흙을 주십시오. 그러나 한 가지 야훼께 용서를 빌 일이 있습니다. 저는 왕께서서 림몬 신저에 예배하러 가실 때에 부축해 드려야 하고 왕께서 림몬 신전에서 예배할 때 같이 엎드려야 합니다. 이것만은 야훼께서 용서해 주셔야 하겠습니다.” 엘리사가 대답하였다. “걱정말고 가시오.” 이 말을 듣고 나아만은 길을 조금 갔는데
하느님의 사람 엘리사의 시종 게하지에게 이런 생각이 들었다. “스승께서 이 시리아 사람 나아만이 바치는 것을 거절하시고 그냥 돌려보내시니 뒤쫓아가서 무엇이든 좀 받아오고 말겠다.” 이렇게 생각하고 게하지는 나아만을 쫓아갔다. 나아만은 게하지가 뒤쫓아오는 것을 보고 마차에서 내려 그를 만나 무슨 일이 있느냐고 물었다. 게하지가 말하였다. “별일 없습니다. 지금 막 에브라임 산악 지방에서 예언자 수련생 두 사람이 왔습니다. 그들에게 줄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보내달라고 스승께서 저를 보내셨습니다. .” 나아만은 “드리다뿐이겠는가? 한 달란트를 더 드리겠다.” 하며 은 두달란트를 어지로 두 자루에 넣고 옷 두벌을 꺼내서 부하 두사람에게 들려 게하지 앞에 세워 보냈다. 게하지가 집 있는 언덕에 돌아와서 짐을 받아 집 안에 넣고 그 사람들을 돌려보낸 후 들어가서 스승 앞에 서자, 엘리사가 물었다. “게하지야, 어디를 갔다 왔느냐?” 소인은 아무 데도 갔다오지 않았습니다.” 하고 그가 대답하였다. 그러나 엘리사는 이렇게 말하였다. “누군가가 마차에서 내려 너를 만나기 위하여 돌아설 때 내 마음이 거기에 가 있지 않을 줄 아느냐? 그래, 너는 돈을 받았다. 네가 그 돈으로 정원을 사서 울리브나무, 포도나무를 심고 양과 소를 사고 하인과 하녀를 거느릴 수야 있겠지만, 너와 네 자손은 나아만에게서 옮은 나병을 영원히 앓으리라.” 게하지는 나병으로 피부가 눈처럼 하얗게 되어 엘리사를 떠났다.

왕하 5:15-27
//나아만의 회심! 어쩌면 우리는 나아만이 개종하기를 기대했을 것이다. 그러나 나아만은 개종하지 않았다. 그러나 나아만은 분명히 회심을 했다. 하나님 밖에는 다른 신에게는 제사를 드리지 않겠다고 분명한 신앙고백을 했다. //그러나 나아만은 이방 시리아 왕의 신하였다. 회심했다고 이방 왕의 신하로서 마땅히 해야할 일을 버리지 않았다. 나아만이 이스라엘로 망명하기를 기대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자리에서 하나님을 섬기겠다고 선언했다. //개종과 회심. 복음주의는 나아만의 딜레마를 해결해주지 못하는 것 같다. 그런데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반응을 보면, 엘리사는 개종이 아니더라도 회심을 받아들인다. ‘걱정말고 가시오!’ 회심한 나아만에게 평안을 선포한다. //이방 땅에서 회심자로 살아가는 것은 물론 쉽지 않다. 군대 장관인 나아만은 왕의 권위를 알았다. 그래서 하나님(이스라엘의 신)의 권위 아래 복종하듯 자신이 모시는 왕의 권위에 복종한다. 만약 시리아 왕이 나아만에게 림몬을 섬길 것인지 여호와를 섬길 것인지 선택하라고 했다면 나아만은 목숨을 내놓고서라도 여호와를 섬겼을 것임에 틀림없다. 평안이 함께 하기 때문이다. //이렇듯 자신이 속한 공동체의 관습을 존중하면서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 물론 회심이 전제된다. 성령께서 두 주인을 섬기지 않도록 지혜를 주신다. 제삼자가 겉모습만 보고 이래라 저래라 할 수 없다. 소녀 하녀의 말을 귀담은 들을 줄 아는 겸손. 왕의 권위에 복종하는 겸손. 하나님의 용서를 미리 구하는 겸손. 이런 나아만이라면 언제 어디서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살았을 것이다. 개종자는 아니었지만 회심자로 살았다. 하나님께서 이런 나아만을 의롭다 하셨다는 증거는 예수께서 (눅4:27) 나아만을 언급하셨다는 것이다. 반대로 회심의 삶이 없다면 개종은 무의미하다. //한편으로 하나님의 사람을 시종들며 사는 게하시는 어떤가? 한순간의 탐욕으로 나병의 저주를 받고 만다. 그것도 대대로. 물론 게하시도 진정으로 회심했다면 다시 하나님의 자비를 입었을 것이다. ////하나님의 자비하심에 합당하게 살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