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4:15-31

신명기 4:15-31

약속의 땅을 앞두고 모세는 출애굽 2세대를 가르친다.

15-20 주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불길 속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형상을 본 사람은 없다. 아니 영이신 하나님을 사람은 볼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형상이라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한다. 우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부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형상뿐만 아니라 동물의 형상으로도 우상 만들면 안 되고, 해와 달과 별들 같은 천체만물을 우상시해도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른 민족들이 우상을 섬긴다고 하나님이 친히 건져내신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21-24 모세는 또 한번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차지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약속 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강조한다. 주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히 말한다.

25-31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은 이스라엘 자자손손 지켜야 할 명령이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면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에서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여러 민족 사이에 흩어지고, 그들은  사람이 만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는) 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을 다해 찾아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환난을 당하고 마지막 날에 이 모든 일이 닥쳐야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 하나님께로 돌아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버리시거나 멸하시지 않고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잊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주님에게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뻔히 보인다. 주 하나님 대신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길 것이 뻔하다. 그래도 주님이 모세를 통해 세대를 이어 가르치고 또 가르치시는 이유는 주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마음과 성품을 다해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언약이 변치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도 마음과 성품을 다해 말씀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시다. – 지리적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못가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마음과 성품을 다해 주님을 찾아야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기 때문이다. //우리로 마음과 성품을 다해 주의 말씀 앞에 서게 하는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의 불순종(우상숭배)도 뻔하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다면 하늘 나라가 아니고, 약속의 땅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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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라는 계명은 우리가 주님의 피조물임을 다시금 선언한다. 우리가 새기고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형상으로도 주님을 가둘 수 없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는데 어떤 형상으로 주님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결국 남는 것은 언약이다. 말씀이다.

신명기 4:1-14

신명기 4:1-14

1-4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앞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그대로 지키라고 명령한다. 그래야 약속의 땅을 차지하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모세는 주님의 명령에 첨삭을 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한다.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브올 산에서의 일을 상기 시킨다. 바알 신을 따라간 모든 사람들과 하나님을 충실하게 따른 사람들의 차이가 죽음과 생명이라고 확실하게 선을 긋는다.

5-6 모세는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가르쳐주었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들어가 그대로 지키라고 가르쳤다. 주님의 명령에 순종하면 여러 민족이 이스라엘 자손이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7-8 모세는 하나님은 주의 백성이 기도할 때마다 가까이 계시는 분이라고 소개한다.가까이 계시는 신(하나님)을 모시는 민족보다 더 위대한 민족은 없다고 말한다. 임마누엘을 누리는 민족보다 위대한 민족은 없다. 임마누엘은 바른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곳에서 누릴 수 있다.

9-10 이스라엘 자손들은 자신들이 맛본 임마누엘을 잊지 않아야 한다. 임마누엘을 자손에게 유산으로 전해야 한다. 임마누엘은 주님의 말씀을 듣는 것에서 시작한다. 주님을 경외하는 것을 배우고 가르침으로 이어진다.

11-14 하나님은 불길과 구름속에서 말씀하심으로 임재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아무 형상도 보지 못하고 오직 주님의 말씀만 들었을 뿐이다. 그 때에 주님이 언약을 선포하시고 십계명을 손수 써서 주셨다. 그 주님이 백성들에게 약속의 땅에서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라고 모세에게 명하셨다.

//약속의 땅이 지리적 땅이 아니고 하나님의 다스림이라고 했다. 그래서 모세가 가나안을 앞둔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님의 규례와 법도를 가르치고 그대로 지키라고 명령하는 것이다. 일차적으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거주하게 될 가나안이 약속의 땅이 맞지만, 주님의 말씀에 불순종한다면 그 땅은 더이상 약속의 땅이 아니다. 가나안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의 땅으로 유지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임재가 필요하다. 임마누엘이 필요하다. 임마누엘이 이스라엘을 위대한 민족으로 만든다. 이땅에서 우리는 영이신 하나님의 임재를 눈으로 볼 수 없다. 이스라엘 자손도 하나님의 형상을 보지 못하고 오직 말씀만 들었을 뿐이다. 우리도 주님의 말씀으로만 하나님의 임재를 알 수 있다. 주님의 계명을 마음에 둘 때, 계명을 실천할 때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할 수 있다. “이제 이스라엘아 들어라!” 하고 말씀하신 주님은 우리에게도 말씀하신다.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살라고, 하나님나라를 자손에게 유산으로 남겨주라고. 말씀을 듣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어제 김ㄷㅇ 교수님의 사모님이 별세하셨다. 동역자의 가족도 돌아보지 못했다.

신명기 3:12-29

신명기 3:12-29

12-17요단 동쪽에서 헤스본과 바산의 모든 성읍들을 차지한 이스라엘. 모세는 르우벤과 갓지파와 므낫세 지파의 절반에게 이들 지역을 배분해 주었다.

18-20 모세는 요단 동편을 배분받은 두지판 반에게 동기들인 이스라엘의 다른 지파들이 요단 서쪽 가나안 땅을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와 주어야 한다고 명령했다. 그것도 선봉에서서 도우라고 말했다. 물론 가족들은 요단 동편에 머물러 있게 하라고 말했다. 주님께서 다른 지파들이 요단 강 서쪽 약속의 땅을 차지한 다음에야 요단 동편으로 돌아올 수 있다고 말했다.

21-22 모세는 요단 서편 가나안 땅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다. 그래서 여호수아에게 주 우리의 하나님이 요단 동쪽에서 두 아모리 왕에게 하신 것 같이, 요단 서쪽에서도 행하실 것이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겨려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대신하여 싸우실 것이라고 말했다.

23-29 모세는 요단 서쪽으로 건너가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모세는 약속의 땅이 보고 싶다고 주님께 간구했다. 그러나 주님께서는 허락하지 않으셨다. 주님은 모세에게 “이것으로 네게 족하니, 이 일 때문에 더 이상 나에게 말하지 말아라” 하고 말씀하셨다. 대신 비스가 산에 올라가서 동서남북 사방을 보라고 하셨다. 그리고 여호수아에게 지도자의 자리를 물려주고, 그를 격려하고, 그에게 용기를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제는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자손을 이끌고 요단강을 건너가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약속의 땅을 유산으로 나누어줄 사람이라고 하셨다.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 머물러 있을 때의 일이다.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다. 이 실상은 그 땅에 들어가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임마누엘로 본다. 예수께서는 다시 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다고 하셨다. 임마누엘이 없었다면 어떻게 모세가 여호수아를 격려하고 용기를 줄 수 있을까? //모세가 본 땅은 비스가 산 (느보산) 동서남북 사방이다. 들어갈 약속의 땅뿐만 아니라, 이미 차지한 요단 동편도 포함한다. 이렇듯 약속의 땅은 지리적 땅에 한정되지 않는다. 임마누엘이 이루어지는 땅이다. 모세가 하나님의 다스림(율법)을 약속의 땅에 들어가기 앞서 다시 가르치는 이유다. //성도가 자녀에게 물려주어야 할 땅이 바로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의 다스림 곧 하나님나라다. 자녀들이 세상의 거센 조류에 휩쓸리지 않고 하나님나라 곧 임마누엘을 누리도록 격려하고 용기를 주어야한다. 이보다 더 큰 유산은 없다.

신명기 3:1-11

신명기 3:1-11

1-2 헤스본 왕 시혼을 무찌른 이스라엘 자손은 방향을 바꾸어 바산길로 올라갔다. 바산 왕 옥이 싸우러 나왔다. 주님은 헤스본 왕 시혼을 무찌른 것처럼 두려워하지 말고 그를 무찌르라고 명하셨다.

3-7 이스라엘 자손은 주님의 말씀대로 바산 왕 옥을 무찔렀다. 바산 왕국의 모든 성읍을 점령했다. 모든 성읍에서 남녀노유 할 것 없이 전멸시켰다. 성읍에서 노획한 모든 가축과 물건들을 전리품으로 삼았다.

8-11 이스라엘은 요단 강 동쪽 아르논 개울 가에서 헤르몬 산지까지의 땅을 시혼과 옥의 손에서 빼앗았다. (바산 왕 옥의 침대가 아홉자 곱하기 넉자라는 주석이 달려있다.)

//방향을 바꾸어. 이스라엘의 목적지가 헤스본 땅이 아님을 알 수 있다. 많은 성읍들과 전리품을 차지했더라도 그곳은 눌러 앉을 약속의 땅이 아니다. 하나님의 백성은 언약에 따라 방향을 바꾸어 나아가는 사람들이다. //”전에 ~처럼” 바산과의 전쟁은 헤스본과의 싸움의 판박이다. 이처럼 경험이 중요하다. 단 한번의 경험인데도 이스라엘 자손은 전에 헤스본 왕 시혼을 물리친 것처럼 바산 왕 옥을 물리쳤다. 성도는 순종의 열매들을 기억해야 한다. 순종의 열매들을 구슬처럼 꿰어 나가야 한다.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이 바산으로 올라오자, 바산 왕 옥이 군대를 끌고 나왔다. 그 자신감의 근거가 11절이다. 옥은 침대 크기가 4×1.8미터 정도였다고 한다. 한마디로 옥은 자신의 덩치만 믿고 나왔다고 할 수 있다. 아마 평생 덩치만 믿고 싸워왔을 것이고, 지금까지는 모두 이겼을지 모른다. 세상 싸움은 덩치나 숫자놀음일 수 있다. 그러나 하나님의 뜻에 따른 싸움은 다르다. 세상조류가 아무리 거세도 하나님을 이길 수는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6

////세상조류에는 어리버리해도 하나님의 뜻에는 민감한 사람이 되자.

신명기 2:26-37

신명기 2:26-37

26-30 (주님은 모세에게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과 그의 땅을 너희의 손에 넘겼으니, 싸워서 차지하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24절) 그런데 모세는 헤스본 왕 시혼에게 사절을 보내어 그 땅을 평화롭게 지나가게  해달라고 요청했다. 주님이 에서의 자손과 모압 땅과 암몬 땅에서 하라고 했던 방법처럼 그 땅을 지나는데 필요한 비용도 지불하겠다고 말했다. 에서의 자손과 모압과 암몬 사람들이 자신들을 지나가게 해 주었다고 설명까지 했다. 그러나 헤스본 왕 시혼은 거절했다. 주님이 그 땅을 이스라엘에 넘겨 주시려고 그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셨기 때문이라고 모세는 말한다.

31-37 주님께서 다시 모세에게 시혼과 그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셨다고 말씀하셨다. 그 땅을 점령하여 유산으로 삼으라고 하셨다. 시혼이 군대를 이끌고 이스라엘과 싸우려고 나왔으나, 주 하나님이 그들을 이스라엘 손에 넘겨주셨다. 이스라엘은 그 땅을 점령하고 남녀노유 한 사람도 남기지 않고 전멸시켰다. 오직 가축과 성읍에서 탈취한 물건만 전리품으로 삼았다. 이스라엘은 시혼 왕에게 속한 모든 땅을 빼앗았다. 그러나 주님의 말씀을 따라 주님이 가지 말라고 하신, 암몬 자손의 땅과 얍복강 주변과 산지에 있는 성읍들은 접근하지도 않았다.

//모세가 아모리 사람 헤스본 왕 시혼에게 평화를 요구한 것은 주님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일까? 친족이 아닌 이방 족속에 대해서도 친족처럼 대하고자 했던 모세는 과연 지면에서 가장 온유/겸손한 사람이다. 주님도 모세의 이런 진행에 기뻐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모사재인이라도 성사재천이다. 주님은 시혼의 마음을 완고하게 하셔서 주님의 일을 진행시키신다. 온유한 마음을 완고하게 했다기 보다는 완고한 마음으로 그대로 내버려 두신 것이다. //화평은 주님이 기뻐하시는 일이다. 이것을 거부하는 완고함은 주님이 질색하시는 일이다. 결국 어리석은 시혼 왕을 따르는 사람들은 남녀노유를 불문하고 전멸당하고 만다. 출애굽 2세대 백성에게 자비를 베푸신 하나님께서 아무것도 모르고 시혼 왕을 따르는 어린아이들에게는 자비를 베풀지 않으셨다. 성사재천이라는 큰 뜻에서 받아들여 보지만 마음 아픈 대목이다. 그만큼 지도자와 부모의 책임이 크다는 것을 배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이제 주님의 말씀을 따라 취할 것은 취하고 손대지 말아야 할 것은 접근도 하지 않을만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랐다. 그러나 얼마나 지속될지… 순종은 단회성에 그쳐서는 안 된다. 우리 구원이 그렇다. 우리 믿음이 그렇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