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98편

시편 98편

새 노래로 주님을 찬송하여라.

주님은 기적을 일으키는 분. 기적은 구원을 베푸시는 것. 기적은 주님께서 베푸신 구원을 친히 알려 주시는 것. 기적은 주님의 의로우심을 모든 나라에게 드러내 보이신 것. 먼저는 이스라엘 가문에 베푸신 인자와 성실하심. 나중에는 땅 끝에 있는 모든 사람까지도 하나님의 구원하심을 보여주심. 

시인은 온 땅에게 주님을 찬양하라고, 함성으로 즐거운 노래로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수금과 악기들을 타면서, 관악기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부른다. 생명이 있는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뇌성치듯 큰소리로 환호하라고 노래한다. 심지어 강들과 산들에게도 환호성을 울리라고 노래한다. 왜?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신다.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러, 백성을 공정하게 다스리시러 오신다.

//심판이 없으면 구원도 없다. 새 노래는 마직막까지 항상 불려질 노래다. 주님이 베푸신 기적중의 기적은 주의 백성을 향한 구원의 선포다.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인자와 성실하심이다. 땅 끝까지 모든 백성에게 보여질 이 구원의 복음이 새 노래다. 모든 피조물들이 고대하는 하는 것이 구원을 합창하는 것이다. 너와 나의 다른 구원의 새 노래가 하나의 합창으로 울려지는 곳이 하나님의 나라다. 불협화음일 것 같은 우리 각작의 노래를 하나의 완성된 새 노래 곧 ‘하나님의 나라’를 지휘하시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시편 97편

시편 97편

주님께서 다스리시니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은 온 땅과 바다를 다스리신다. 구름과 흑암으로도 가릴 수 없으신 영광으로 다스리신다. 정의와 공평으로 다스리신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대적하는 것들은 불살라 버리신다. 주님이 번개를 치시면 세상은 두려워 떤다. 주님은 산들도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들을) 납작하게 낮추신다. 하늘은 하나님의 의를 선포하고 백성들은 주님의 영광을 본다. 하나님의 나라다.

우상을 섬기고 자랑하는 자들은 수치를 당할 것이다. 모든 신들은 주님 앞에 굴복한다. 그러나 성도들은 주님의 공의로우심을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 가장 높으신 주님이 다스리신다. 모든 신들까지 다스리는 분이 바로 주님이시다.

악을 미워하는 것이 곧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다. 주님은 성도들을 악인으로부터 지켜주신다. 빛은 의인에게 비치며, 마음이 정직한 자에게 즐거움이 넘친다. 의인들은 주님 한 분만으로 기뻐하며 감사드린다.

시편 96

시편 96

새 노래로 주님께 노래하여라.

온 땅아 새 노래로 주님께 노래하여라.

주님께 노래하며 주의 구원을 날마다 전하며 주님의 이름에 영광을 돌려라.

주의 영광을 만국에 주의 기적을 만민에게 알려라.

주님은 위대하시고 끝없이 찬양받으실 분이시다. 어떤 하나님(신)들 보다 더 경외해야 할 분이시다. 

만방의 모든 백성이 만든 신은 헛된 우상이지만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주님께 위엄과 영광이 있고, 주님이 머무시는 성소에 권능과 아름다움이 있다.

모든 민족들아 주님을 주님의 영광과 권능을  찬양하여라.

주님의 이름에 어울리는 영광을 주님께 드리고, 예물을 드려라.

거룩한 옷을 입고 주님께 경배하며 주님을 경외하라.

주님의 다스림을 선포하라. 주님의 다스림은 굳건하며, 주님의 다스림은 공정하다.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모든 만물들아 기뻐하며 즐거이 노래하라.

주님이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주님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진실하심으로 모든 백성들을 다스릴 것이다.

주님이 오실 것이다. 주님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다. 모든 만물들아 주님 앞에서 즐거니 노래하라. 주님은 정의로 세상을 심판하시며 진실하심으로 다스릴 것이다.

//시인은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그러나 내용은 전혀 새로울 것이 없다. 주님의 영광과 구원이 새로울리 없다. 그러나 노래를 처음 듣는 사람에게는 새 노래일 것이다. 복음이라는 노래를 듣지 못한 사람들이 여전히 있기 때문에 새 노래로 주님을 찬양하라는 시인의 노래가 여전히 유효하다. 정의와 진실로 다스리시는 주님의 오심을 노래하는 시인의 노래는 모든 피조세계가 불러야할 복음이다. //한편 하나님의 다스림은 늘 새롭다. 같은 본문을 읽어도 보혜사 성령의 깨닫게 하심과 적용은 비슷할지 몰라도 늘 새롭다. 그러니 내가 부르는 노래도 늘 새롭다. 주의 인자와 성실이 아침마다 새롭고 늘 새롭기 때문이다.

시편 95

시편 95

와서 우리가 함께 우리를 구원하시는 반석이신 주님께 찬양하자

찬송하며 주님 앞으로 나가자 노래를 부르며 즐겁게 찬양하자

주님은 크신 하나님(신)이시요 하나님(신)들의 왕이시다.

땅의 깊은 곳에서부터 산의 높은 꼭대기까지 주님의 것이다.

바다도 육지도 주님이 지으시고 빚으셨다.

와서 우리가 함께 우리를 지은신 주님 앞에 무릎 굻고 경배하자

주님은 우리의 하나님(신)이시요, 우리는 그의 백성이며, 선한 목자이신 주님이 양 떼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어보자

너희는 선한 목자이신 주님의 음성을 듣지 않겠다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아라

너희 조상들은 주님이 하신 놀라운 일들을 보고서도 주님을 시험하고 또 시험하였다.

주님은 사십년 동안 주님을 시험하고 또 시험한 세대에게 싫증이 나셨다. 그들을 마음이 빗나간 백성이요 주님의 길을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라고 평가하셨다.

결국 주님은 그들의 주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하게 하시겠다고 맹세하셨다.

//시인은 구원의 반석이신 주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배하는 자리에 독자들을 초대한다. 그런데 창조주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경배해도 주님의 안식을 누리지 못하는 자들이 있다고 노래한다. 바로 이스라엘 조상들과 같이 선한 목자 되신 주님의 음성을 청종하지 않는 사람들이다. 선한 목자의 음성을 모르는 양들은  각기 제 길로 갈 뿐이다. 주님은 이들에 대해 근심하신다. (새번역 성경은 싫증이 났다고 번역하는데, 싫증보다는 개역개정의 근심하다는 번역이 나아보인다. 주님의 근심거리가 되지 말자! 시인이 노래한 “오늘, 너희는 그의 음성을 들어보아라” 라는 권면처럼, 선한 목자의 음성을 들어보자. 말씀을 꾸준히 읽고 순종하자. 

빌립보서 4:1-23

빌립보서 4:1-23

1 바울은 부활을 소망하는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한다. 빌립보 성도들을 바울 자신의 기쁨이요 면류관이라고 말한다. 주 안에서만 가능한 일이다. 2 바울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한다.3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과 같은 멍에를 매었다고 말한다. 두말할 필요도 없이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한 멍에다. 이런 빌립보 성도들에게 복음에 힘쓰던 저 여인들을 (유오디아와 순두게가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도록) 도우라고 당부한다. 또 글레멘드와 바울의 동역자 모두를 도우라고 부탁한다. 성도는 서로 도와야 하는 관계다. 4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고 거듭 강권한다. 5 관용의 기쁨을 누리라고 말한다. 주께서 곧 오실 것이라고 말한다. 6,7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고 가르친다. 주님께 감사함으로 기도하고 간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도의 마음과 생각을 지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8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듣지 참되고 경건하고 옳고 정결하고 사랑받을 만하고 칭찬받을 만한 일인지 생각하라고 명령한다. 9 바울은 자신이 좋은 본보기라고 말한다. 바울의 봅보기를 따르면 평강의 하나님이 (하나님의 평강이) 성도와 함께 계실 것이다. 임마누엘!

10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기억해 주는 것에 대해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한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도울 생각을 하였느나 기회가 없었던 모양이다. 11 바울은 궁핍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바울은 어떠한 형편에든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말한다. 12 가난해도 부유해도 주 안에 거하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말한다. 13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능력주시는 주 안에 있기 때문에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자신한다. 14 그래도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도움을 마다하지 않고 잘했다고 칭찬한다. 15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을 일찍부터 도왔다. 16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는 한 번뿐만 아니라 두 번이나 바울의 필요를 보내 주었다. 17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의 구제가 자신에게만 아니라 빌립보 성도들에게도 유익하다고 말한다. 18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에바브로디도편에 보내 준 것을 받아 풍족하다고 말한다. 바울이 풍족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일이라고 말한다. 19 바울은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빌립보 성도들의 쓸것을 채우실 것이라고 축복한다. 20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린다. 21-23 바울은 문안을 주고 받는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

https://quietwaters.blog/2019/10/20/

https://quietwaters.blog/2019/10/21/

편지를 시작하면서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하며 하나님께 감사하고 기뻐했던 바울은, 편지를 마치면서는 빌립보 성도들이 바울을 생각해주기 때문에 크게 기뻐한다고 적는다. 바울의 쓸 것을 도우려는 빌립보 성도들의 마음을 전달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바울은 물질의 후원때문만이 아님을 분명히 한다. 바울은 자족하기를 배웠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비천하거나 풍부하거나 배부르거나 배고프거나 처한 상황이 달라도 주 안에서는 자족하는 감사를 배웠다고 한다. 능력 주시는 주님 안에서 바울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한다. 바울의 강세는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에 있지 않다.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곧 ‘주 안에서’가 여전히 중심어다. ‘주 안에서’라고 반복하지 않고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라고 적는 것은 바울이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것은 주 안에서도 바울 자신의 능력이 결코 아니라는 것이다. // 속으면 안된다. 주 안에 있다고 성도는 욕심을 따라 , 혹은 자기 뜻을 따라 모든 것을 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자가 결코 아니다. 반대로 주 안에서 능력을 주시면 성도는 불가능한 일처럼 보여도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의 뜻에는 불가능이 없으시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