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14-36

사도행전 2:14-36 (공동번역)

성령에 충만한 신도들이 듣는 사람들의 방언으로 하느님의 큰 일을 말하자, 군중들은 놀라고 어안이 벙벙했다. 어떤 이들은 신도들이 술에 취했다고 말했다. 그때

14-32 베드로가 다른 열한 사도들과 함께 군중을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베드로는 유다 동포와 예루살렘 시민들에게 아침 아홉시에 술취해서 말하는 것이 가당하냐고 반문한뒤 술 취한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 오히려 예언자 요엘이 예언한 말씀의 성취라고 말한다. 베드로는 ‘하느님께서 말슴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의 성령을 부어주면 자녀들은 예언을 하고 젊은이들은 계시의 영상을 보며 늙은이들은 꿈을 꾸리라. 그때에는 종들에게도 나의 성령을 부어주리니 종들도 예언을 하리라.하느님은 높은 곳에서 표징을, 땅에서 기적을 행하셔서, 하느님의 영광을 드러내리니, 그 때 주의 이름을 부르는 자가 구원을 받으리라’ 라는 요엘서의 말씀을 선포한다. 그리고 이스라엘 동포를 향해 나사렛 예수는 하느님께로부터 오셨으며, 하느님께서 여러 놀라운 일을 통해 이 사실을 드러내셨음을 청자들이 잘 알고 있다고 말한다. 그런데도 하느님께서는 미리 정하신 뜻과 계획에 따라 이 예수를 악인들의 손을 빌려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다가, 하느님께서 그분을 되살리시고 죽음의 고통에서 풀어주셨다. 예수께서 죽음의 세력에 사로잡혀 계실 분이 아니시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다윗이 말한 예수님도 소개한다. 다윗은 예수를 주님으로 만났다. 다윗의 마음이 흔들지 않고 기쁨이 넘치고 노래하고 희망가운데 산 이유다. 다윗은 주님(예수)께서 자신의 영혼을 죽음의 세계에 버려두지 않았다고 감사한다….

33 하느님께서는 이 예수를 높이 올려 당신의 오른편에 앉히시고 약속하신 성령을 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아버지께로부터 받은 성령을 지금 여러분이 보고 듣는 대로 우리에게 부어주셨습니다.

//성령의 능력은 베드로로 하여금 요엘 예언자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고 다윗에게 하신 약속과 다윗이 부른 노래를 기억나게 한다. 예수께서 보혜사 성령을 보내주시겠다고 약속하신 말씀한 그대로다. 가말리엘 문하에서 배운 구약에 정통한 바울이라면 모를까 갈릴리 어부 출신인 베드로는 성령이 아니면 이야기로만 알고 있었을 요엘의 예언과 다윗과의 언약과 다윗의 시를  이렇게 풀어내지 못했을 것이다. //누가는 복음서에서 (12:11-12) “너희는 회당이나 관리나 권력자들 앞에 끌려갈 때에 무슨 말로 어떻게 항변할까 걱정하지 마라. 성령께서 너희가 해야 할 말을 바로 그 자리에서 일러주실 것이다.”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기록했다. 평소에 말씀을 마음에 새겨 두어야 성령께서 역사하신다. 베드로는 (벧전3:15) “여러분의 마음속에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우러러 모시고 여러분이 간직하고 있는 희망에 대하여 설명을 듣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는 언제라도 답변할 수 있도록 준비해 두십시오” 라고 훗날 편지한다. 어떻게 준비할 것인가? 성령의 사역의 언제나 말씀을 근거로 함을 기억하자.  

사도행전 2:1-13 (공동번역)

사도행전 2:1-13 (공동번역)

1-4 오순절이 되었다. 신도들이 모두 한 곳에 모여 있었다. 갑자기 하늘에서 세찬 바람이 부는 듯한 소리가 들려오더니 그들이 앉아 있는 온 집안을 가득채웠다. 그리고 혀 같은 것들이 나타나 불길처럼 갈라지며 각 사람 위에 내렸다. 그들의 마음은 성령으로 가득차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여러가지 외국어로 말을 하기 시작했다. 

5-13 그때 예루살렘에는 세계 각국에서 온 경건한 유다인들이 살고 있었다. 신도들이 여러가지 외국어로 말하는 소리가 나자 많은 사람이 그곳으로 몰려들었다. 그들은 사도들이 말하는 것이 저마다 자기네 지방 말로 들려 모두 어리둥절했다. 그들은 갈릴래아 사람들이 자기네 지방말로  말하는 것에 놀라고 신기해 했다. 그들은 바르티아, 메대, 엘람, 메소포타미아, 유다,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프리기아, 밤필리아, 이집트, 키레네에 가까운 리비야, 로마에서 온 유다인들과 유다교에 개종한 이방인들, 그리고 그레데 사람들과 아라비아 사람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자기네 말로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을 들으니 모두 놀라 어안이 벙벙하여 웅성거렸다. 그들중에는 사도들이 술취했다고 빈정거리는 사람들도 있었다.

//드디어 성령이 오셨다. 예수께서 승천하시고 열흘이 지났다. 성령께서는 개인에게 은밀하게 오지 않으셨다. 신도들이 모여 기도하는 가운데 오셨다. 바람 같은 소리로 오셨고 불꽂 같은 빛으로 오셨다. 모세가 보았던 불에 타지 않는 가시떨기 나무같이, 성령께서 불길처럼 오셨지만 신도들을 해치지는 않았다. 성령께서는 신도 공동체에만 은밀하게 오지 않으셨다. 신도 공동체가 들썩할 정도로 오셨다. 그래서 신도 공동체 바깥 사람들도 신도들의 변화를 알 수 있었다. 신도들이 성령 충만해서 성령이 시키는 대로 여러 방언으로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들을 말했기 때문이다. 이때 방언은 해석해 주는 사람이 필요한 방언이 아니다. 오순절로 세계 도처에서 예루살렘에 방문한 사람들이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는 모국어로 들리는 방언이었다. 성령께서 말씀하시면 이렇듯 누구나 하느님께서 하신 큰 일을 이해할 수 있다. (복음을 전할 때도 성령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이유다.) //이번 달부터는 공동번역으로 매일성경 본문을 읽는다. 하나님을 하느님으로 번역한다. 크게 어색하지 않다. 어느 번역본으로 읽든지 성령께서 본문을 가장 잘 이해할 수 있도록 도와주시길 기도한다.

사도행전 1:12-26

사도행전 1:12-26 (공동번역)

승천하신 예수님을 뒤로하고 제자들은 올리브 산을 떠나 안식일에 걸어도 괜찮을 거리에 있는 (제자들은 성령을 받기까지는 안식일이라는 율법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예루살렘에 돌아와 점호를 하니 사도는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아, 필립보, 토마, 바르톨로메오, 마태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혁명단원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 11명이었다. 그 자리에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를 비롯한 여러 여자들과 예수의 형제들도 있었다. 이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 함께 모여 기도하는 무리가 백이십명으로 늘어났다. 그 자리에서 베드로가 일어나 시편을 기억하고 예수님을 배반한 유다와 유다의 자리를 보선하자고 적용했다. 예수의 공생에 동안 함께 있었던 사람 중에서 주 예수의 부활의 증인이 될 사람을 뽑자고 말했다. 후보로 바르사빠 혹은 유스도라고 불리는 요셉과 마티아아 천거되었다. 사람들은 주님께 두 사람 중 누구를 뽑으셨는지 기도하고 제비를 뽑았다. 마티아가 뽑혀서 열한 사도와 같이 사도직을 맡게 되었다. 

//누가는 사도들이 안식일이라는 율법적 원리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기록한다. 성령을 받기까지는 당연한 결과다. //예루살렘에 돌아온 사도들은 마음을 모아 기도에만 힘썼다. 그들은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시기를 기도했을 것이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라 마음을 모아 기도한 사람들의 수는 백이십명으로 늘어났다. (더이상 마가의 다락방에서 기도하지 못하는 규모가 되었다. 성전 뜰에 모여 기도했다는 설도 있다. 모두가 한자리에 모여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삼삼오오 그러나 같은 기도를 하는 사람들의 총 수가 백이십이라고 이해하자.) //기도는 내가 원하는 것을 구하는 것이 아니다. 예수께서 약속하신 것을 구하는 것이다. 예수께서는 기도를 가르치시면서 기도하면 아버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 성령을 주신다고 말씀하셨다. 보혜사 성령께서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또 적용할 수 있는 깨달음과 힘을 주신다. 모인 무리는 약속을 따라 성령을 구했는데, 하나님은 우선 베드로에게 말씀을 기억나게 해 주셨다. 그리고 사도직 보선이라는 적용을 하게 하셨다. 성령은 이렇게 일을 시작하신다. //사도의 자격으로 예수님과 동고동락했고,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이어야 함을 내걸었다. 한마디로 하면 임마누엘이다. 성령을 온전히 받기 전에는 제비뽑기가 하나님의 인도를 받는 좋은 방편이다.

사도행전 1:1-11 (공동번역 읽기)

사도행전 1:1-11 (공동번역 읽기)

저자는 이미 예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침을 다 기록했었다. 우리는 사도행전의 저자를 누가복음의 저자 의사 누가라고 알고 있다. 누가는 예수께서 사도를 뽑으시고 사도들에게 성령의 힘으로 가르치시고 승천하신 그날까지의 일을 낱낱이 기족했다고 적는다. 

누가는 부활 후 승천까지의 일들을 정리한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시고 부활하신 뒤 사십일 동안 사도들에게 자주 나타나셔서 여러가지 확실한 증거로 부활의 주님을 보여주시며 하느님 나라에 관한 말씀을 들려주셨다. 예수께서는 사도들에게 ‘너희는 예루살렘을 떠나지 말고 내가 전에 일러준 아버지의 약속을 기다려라. 요한은 물로 세례를 베풀었지만 오래지 않아 너희는 성령으로 세례를 받게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사도들은 예수께 ‘이스라엘 왕국을 다시 세워주실 때가 지금입니까?’ 하고 물었다. 예수께서는 ‘그 때와 시기는 아버지께서 당신의 권능으로 결정하셨으니 너희가 알 바 아니. 그러나 성령이 너희에게 오시면 너희는 힘을 받아 예루살렘과 온 유다와 사마리아뿐만 아니라 땅 끝에 이르기까지 어디에서나 나의 증인이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는 이 말씀을 하시고 사도들이 보는 앞에서 승천하셨다. 사도들은 하늘만 쳐다보고 있었는데, 흰 옷을 입을 두 사람이 ‘갈릴래아 사람들아, 왜 너희는 여기에서 서서 하늘만 쳐다보고 있느냐? 승천하신 예수께서는 너희가 보는 앞에서 하늘로 올라가시던 그 모양으로 다시 오실 것이다’ 하고 말했다.

//예수님의 모든 행적과 가르침은 성령의 사역이었다. 성령의 힘으로 하셨다. 예수께서는 성령의 힘으로 사는 것이 하느님의 나라에서 사는 것임을 본으로 보여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사도들도 성령으로 세례를 받을 때까지 기다리라고 당부하셨다.  물로 죄를 씻을 수는 있을지 몰라도, 성령의 힘이 아니면 돌이켜 살 수는 없기 때문일 것이다. //성령의 힘으로 사는 하느님 나라는  이스라엘 왕국의 회복과 다르다. 오히려 이스라엘 왕국의 울타리를 무너뜨리고 땅 끝에 이르기까지 성령의 힘으로 사는 나라가 하느님나라다. //사도들은 부활하신 예수님께 사십일 동안 하느님나라에 대해 복습을 받았음에도 하느님나라를 온전하게 이해하지 못했다. 예수님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해주시는 보혜사 성령을 받기까지는 어쩔 수 없다. 물리적 임마누엘의 한계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승천하시고 성령으로 함께 하시겠다는 약속을 지키셨다. //우리는 무엇을 볼것인가? 하늘만 쳐다 볼 것인가?  아니다. 우리 속에 내주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봐야한다. 눈으로 볼 수는 없다. 성령께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니, 결국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보혜사 성령께서는 말씀을 수구적으로 깨우쳐주시지 않으신다. 전통과 관습을 깨뜨리는 풍성한/완성된 해석을 주신다. 예수께서 성령의 힘으로 율법을 사랑으로 완성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말씀을 성령의 힘으로 깨닫고 순종해야 한다. 우리가 써내려가야 할 성령행전이다.

시편 104

시편 104

1-18 시인은 영혼으로 주님을 찬송한다. 주님의 위대하심과, 주님의 권위와 위엄을 찬양한다. 주님은 빛을 옷으로 입으시고 하늘을 천막처럼 펼치신다. 물위에 누각의 들보를 놓으시고, 구름으로 병거를 삼고, 바람 날개를 타고 다니신다. 바람을 심부름꾼으로 삼으시고 번갯불을 시종으로 삼으신다.  주님이 창조주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이 모든 것이 가능하다.주님은 자연만물도 주님께서 정하신 대로 다스리신다. 자연만물이 주님의 법칙에 순종한다. 대지도 주님께 만족한다. 주님이 사람들에게 먹거리를 주시며, 동물들도 돌보신다.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노래한다. 티끌 같은 사람의 지혜로는 도무지 부를 수 없는 노래다. 오직 성령의 도우심으로만 부를 수 있는 노래다. 성령이 나에게서 떠나지 않기를 기도해야 한다.  정결한 마음으로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담고 살아야 한다. 

19-35 (시인의 창조주 하나님에 대한 찬송이 이어진다.) 주님은 해와 달을 통해 때를 알려 주시는 분. 해와 달이 뜨고 지는 것에 따라 삼라만상의 움직임도 달라진다. 사람들도 해가 뜨면 일을 시작해서 해가 저물 때까지 일을 한다. 주님은 무형적인 것만 아니라 주님의 지혜로 땅에 속한 모든 것을 만드시고 채우셨다. 바다의 크고 작은 물고기도, 바다 위를 오가는 배들이어야 볼 수 있는 리워야단도 주님이 지으셨다. 주님은 모든 피조물을 바라보시며 때를 따라 먹여주시고 입혀주신다. 자연만물은 주님의 돌보심에 만족한다. 혹여 주님께서 얼굴을 숨기시면 그들은 떨면서 두려워한다. 피조물의 생명을 거두시는 분도 주님이시다. 주님께서 주님의 영으로 창조하셨듯이 재창조도 주님의 영으로 이루어진다. 주님의 영광은 영원하다. 주님은 주님이 행하신 일로 기뻐하신다. 천지만물은 창조주 주님을 경외한다. 시인은 이런 주님을 노래한다. 숨을 거두는 그때까지 하나님을 노래하길 원한다. 시인은 자신의 묵상을 주님께서 받아주시기를 노래한다. 주님의 품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길 원한다. 죄인도 없고 악인도 없는 세상에서 주님을 찬송하기를 원한다. 할렐루야!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의 일용할 양식도 채워주신다. 큰 톱니바퀴와 작은 톱니 바퀴들이 맞물려 있다. 마치 시계의 큰 바늘(시침)이 안 움직이시는 것 같지만, 긴 바늘(초침)을 보면 시계가 열심히 돌아가는 것을 알 수 있듯이, 하나님이 잠잠하시는 것 같지만, 피조물들을 보면 하나님의 손 길이 닿지 않는 곳이 없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시인처럼 우리도 창조주 하나님의 품 안에서 즐거움을 누리게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