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5:1-9

예레미야 15:1-9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다. 비록 모세와 사무엘이 중보한다고 해도 주님은 이 불순종의 백성에게 마음을 기울이지 않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이 백성을 쫓아내라고 화를 내신다. 이 백성이 어디로 가야 구원을 얻으냐고 묻거든 어디를 가든지 염병에 걸려 죽거나 칼에 맞아 죽거나 굶어 죽거나 포로로 끌려갈 것이라고 대답하라고 하신다. 주님이 소위 자기 백성을 칼에 맞아 죽게 하시고 개가 그들을 뜯어먹게 하시며 공중의 새가 그들의 시체를 쪼아먹게 하시며 들짐승이 그들을 먹어치우게 하실 것이다. 세상 만국은 주님이 주님의 백성에게 행하신 일을 보고 놀랄 것이다. 이 모든 일은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예루살렘에서 죄를 지었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을 불쌍히 여길 자는 더 이상 없다고 하신다. 주님이 버리셨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은 주의 백성이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갔다. 주님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기에도 지쳤다고 하신다. 그래서 멸망시키기로 작정하셨다. 그래서 주의 백성들을 키질하여 흩어버리실 것이다. 그릇된 길에서 돌이키지 않으려고 하니 망할 것이다. 주님은 침략군을 끌어들여 주의 백성을 치실 것이고 주의 백성가운데는고아와 과부만 남게 될 것이라고 주님께서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지치실 이유가 없다. 그런데 지쳤다고 하신다. 그러나 주님이 지치신 것이 아니라 주의 백성이 주님에게 등을 돌리고 떠나가는데 지치지 않는다는 것이 문제다. 끊임없이 멀어져 가는 것은 주님이 아니시라 주의 백성이다. ㅠㅠ 주님과의 간극을 매울 중보자는 없다고 하신다. 모세도 사무엘이 중보해도 소용이 없다. 사실 주님에게 등을 돌리는 순간 이미 주님과의 관계가 끊어진 것이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중보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바울이 로마의 성도들에게 “그러면 누가 감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떼어 놓을 수 있겠습니까? 환난입니까? 역경입니까? 박해입니까? 굶주림입니까? 헐벗음입니까? 혹 위험이나 칼입니까?” 하고 반문한다.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우리를 대적할 수 있는 것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우리가 하나님으로부터 달아나면 아무 소용이 없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없다. 하나님의 자비를 깨닫기는 커녕 하나님의 자비와 관용과 인내를 업신여기는 자가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각 사람에게 그 행한 대로 보응하시는분이시다. 하나님에게 등을 돌리지 말아야 한다.

예레미야 14:13-22

예레미야 14:13-22

예레미야는 주님께 주님께서 확실한 평화를 주신다는 예언을 하는 예언자가 있다고 아뢴다. 그러자 주님께서 예레미야에게 그 예언자들은 주님의 이름으로 거짓 예언을 한다고 대답하신다. 주님은 그들을 보내지도 명하지도 말씀하시지도 않았다고 말씀하신다. 모두 거짓 예언자들이 거짓된 환상과 허황된 점괘와 그들의 마음에서 꾸며낸 거짓말이라고 말씀하신다.
주님께서는 평화를 예언한 거짓 선지자들은 전쟁과 기근으로 죽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들의 가족도 마찬가지라고 하신다. 주님이 그들에게 재앙을 퍼부을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예레미야의 애통과 눈물을 그들에게 전하라고 하신다. 주님의 사랑하는 백성이 죽을 지경에 이르렀기 때문에, 주의 백성이 기근으로 고통으로 받기에, 예언자와 제사장과 같은 지도자들이 어쩔 줄 모르기 때문에 예레미야는 울 수 밖에 없다.
예레미야는 주님께 유다를 완전히 내버리셨느냐고 반문한다. 주님께서 진정으로 시원을 미워하시느냐고 묻는다. 왜 불치병에 걸리도록 심하게 벌하시냐고 묻는다. 유다가 기다린 것은 평화였는데 오히려 재앙만 당하고 있다고 항변한다. 그러면서 우리의 사악함과 조상들의 죄악을 인정한다.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자백한다. 그러니 주님의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박대하지 말고 언약을 기억하시고, 그 언약을 깨뜨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예레미야는 허황된 우상들이 아닌 창조주 하나님께만 희망이 있다고 간구한다.

//거짓 예언자들이 존재한다. 그들은 주님의 이름을 팔아먹는다. 그러나 그들의 결국은 드러나게 마련이다. 거짓 예언자들은 평화만 알지 환난과 인내와 연단의 의미를 모른다. 그들은 평화만 부르짖다가 재앙을 당하자 뭐가 잘못됐는지 몰라 어쩔 줄을 모른다. 오직 예레미야만이 주님께 죄를 지었다고 자백하며 나아간다. 조상의 죄까지 인정한다. 그리고 주님의 이름을 생각해서라도 언약을 깨뜨리지 말아달라고 간청한다. //언약이 유효하려면 주의 백성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한다. 주님은 언약을 깨뜨리지 않으신다. 정작 언약을 깨뜨리는 쪽은 우리다. 우리가 주께 돌아가야 한다. 주님을 허황된 우상들의 하나로 여겨서는 안 된다. 우리 주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알아야 한다. 거짓 종교지도자들의 망설이 아닌, 주님의 말씀, 성령의 깨닫게 하심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주님께서 주시는 평화는 주님 자신이다. 따라서 평화는 전쟁 기근 재앙이 없는 것이 아니라, 주님과 함께 함이다. 임마누엘!

예레미야 14:1-12

예레미야 14:1-12

불순종의 땅에 가뭄이 계속된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애통한다. 귀족들이 물을 구하려고 종들을 보내지만 종들도 어쩔 수 없이 빈손으로 돌아온다. 땅이 갈라지고 농부는 상한 마음에 어찌할 바를 모른다. 들짐승도 신음한다. 드디어 주님께 기도한다. 주님께 수없이 반역했다고 이실직고 하면서 주님의 이름을 위해 선처해달라고 간청한다. 주님만이 이스라엘의 희망이라고 아부한다. 주님만이 이스라엘을 환난에서 구해 주시는 분이라고 떠받든다. (그러나 주님은 나그네처럼 행하신다. 주님은 놀라서 어쩔 줄을 모르는 사람처럼 반응하신다. 힘을 잃은 용사처럼 뒤꽁무니를 빼신다.) 주의 백성은 주님이 자신들 가운데 계시고, 자신들은 주님의 백성이라며 제발 그냥 버려두지 말라고 탄원한다.
주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기억하고 그들의 죄악을 징벌하실 것이다. 그러니 그들에게 은총을 베풀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들이 금식하여도 그들의 호소를 들어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제사도 받지 않으시겠다고 하신다. 오히려 칼과 기근과 염병으로 그들을 전멸시켜 버리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주님이 우리에게 나그네처럼 행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처음보는 양 우리를 모른다 하시고, 주님이 우리를 돕지 않고 뒤꽁무니를 빼시다니…ㅠㅠ 사실은 반대다. 우리가 주님으로부터 멀어지고, 우리가 주님을 모르는 사람처럼 대하고, 우리가 주님의 형제자매들을 돕지 않고 뒤꽁무니를 빼기 때문이다. 주님은 이런 죄악을 벌하신다. 이런 주님의 형상을 잃은 곳에는 주님의 은총이 없다. 이런 곳에서 드리는 기도와 금식과 제사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주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전멸이다. //내가 주님께로 가야 한다. 종들을 보내 주님께 물을 달라고 간구하는 것으로는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을 수 없다. 내가 가야한다. 가뭄의 땅을 버리고 생수가 흐르는 주님께로 내가 가야한다. 임시방편의 선처를 간구해서는 아무런 소용이 없다. 기도와 금식과 제사가 아니라 (내가 주인된 삶이 아니라)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깨달아 순종해야 한다. 비록 그 길이 환난의 길이라도.

예레미야 13:15-27

예레미야 13:12-19

https://quietwaters.blog/2017/10/12

//하나님을 잊어 버리고 헛된 것을 믿은 자의 결국은 수치다. 이들에게 닥칠 것은 화뿐이다. 그들은 주님을 부르지만, 주님은 그들을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이라고 부르신다. 언제까지 이렇게 지내려느냐? 하고 물으신다.

//예수께서 말씀하셨다. “나더러 ‘주님, 주님!’ 하고 부른다고 다 하늘 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의 뜻을 실천하는 사람이라야 들어간다. 그 날에는 많은 사람이 나를 보고 ‘주님, 주님! 우리가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을 하고 주님의 이름으로 마귀를 쫓아내고 또 주님의 이름으로 많은 기적을 행하지 않았습니까?’ 하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그 때에 나는 분명히 그들에게 ‘악한 일을 일삼는 자들아, 나에게서 물러가거라. 나는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 하고 말할 것이다.” 평생 예수 믿는다고 살아왔는데 주님 앞에 서는 그날 주님으로부터 나는 너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는 말을 듣는 것보다 더 큰 수치는 없다. 이보다 더 큰 화는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3/

예레미야 13:1-14

예레미야 13:1-14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베로 만든 허리띠를 띠고 물에 적시는 일이 없도록 하라고 명하셨다. 예레미야는 순종했다.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그 허리띠를 유프라테스 강 바위 틈에 숨기라고 명하셨고, 예레미야는 순종했다. 며칠후 주님은 예레미야에게 숨려둔 허리띠를 가져오라고 하셨다. 예레미야가 허리띠를 숨겨둔 곳을 파자, 허리띠는 썩어서 전혀 쓸모가 없게 되었다.
주님은 유다와 예루살렘의 교만이 허리띠처럼 썩게하겠다고 말씀하신다. 유다와 예루살렘이 완악해서 주님의 말씀 듣는 것을 거부하고 자기들의 마음에서 나오는 고집대로 살아가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다른 신들을 섬기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이런 백성은 주님의 나라에서는 전혀 쓸모가 없다. 허리띠는 허리에 동여져야 되듯이, 주님의 백성은 주님께 동여매어져야 되는데, 주의 백성들이 주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았다.
주님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사람들에게 항아리마다 포도주가 가득담겼다고 말하라고 하신다. 그들은 포도주 항아리에 포도주가 담기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응할 것이다. 주님은 그들이 포도주에 잔뜩 취해 서로 부딪쳐서 깨질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도 주님은 (술취한)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실 것이다. 동정하지 않으실 것이다. 사정없이 멸망시키실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다.

//강 바위 틈에 묻어 두었던 베 허리띠가 썩지 않으면 이상하다. 항아리 가득한 포도주를 마시고도 술취하지 않으면 이상하다. 주님은 예레미야를 통해 유다와 예루살렘의 결국을 보여주신다. 베로 만든 허리띠에 물을 묻히지 않으려면 물가에 가지 않아야 한다. 술취하지 않으려면 포도주 항아리를 깨뜨려야 한다. 그런데 유다와 예루살렘은 베로 만든 허리띠를 강가에 묻어도 썩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포도주 항아리를 비워도 술취하지 않을 것이라고 자신할 정도로 교만했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사실 예레미야에게 강가에 베로 만든 허리띠를 묻으라는 주님의 명령은 베 허리띠를 물에 적지는 일이 없도록 하라는 주님의 명령과 모순된다. 모순된 명령에 대한 예레미야의 순종은, 이스라엘 백성의 진정성 없는 순종을 상징하는지도 모르겠다. 두 주인을 섬기는 그들의 모습을 꼬집는 것이다. 주님은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지 않으신다. 동정하지 않으시고 사정없이 멸망시키실 것이라고 하신다. 허리띠는 허리에 동여져야 하듯, 주님의 백성은 주님께 동여매어져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