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 10:17-25

예레미야 10:17-25

“포위된 성읍에 사는 자들아, 이제 이 땅을 떠날 터이니 짐을 꾸려라.” 주님께서는 주님의 백성을 멀리 내던지셔서, 그들이 자신들의 죄를 깨달아 알게 하신다. 그들은 자신들의 몸만 심하게 다쳤다고 생각했지만, 실상은 삶의 터전도 잃었다. 일이 이지경에 이른 것은 지도자들이 주님의 인도를 따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주님께서 일으키신 북쪽의 대적이 유다의 성읍들을 무너뜨리려고 진군해 온다. 이제서야 사람이 자기 운명(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지만 늦었다. 이제 구할 것은 벌을 달게 받는 것이다. 다만 죽지 않을 정도로 벌을 내려달라고 주님의 너그러우심에 기댈뿐이다. 주님께서 불순종의 주의 백성을 심판하시는 도구로 쓰이는 이방백성들이라고 안심할 처지는 아니다. 그들도 주님을 알지 못하고 주님의 이 름을 부르지 않기에 주님의 진노 아래 있다. 이스라엘 자손을 삼키고 멸망시키고 그 땅을 황무지로 만들었기 때문이다.

//모사재인 성사재천! 사람이 자기 운명(생명)의 주인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기가 이리 어렵다. 주님을 알라고 하신다. 주님의 이름을 부르라고 하신다.

예레미야 10:1-16

예레미야 10:1-16

주님이 말씀하신다. 이방사람의 풍습을 배우지 말라고 하신다. 하늘의 온갖 징조에 두려워하는 것은 우상을 숭배하는 이방사람들의 허황된 짓이라고 하신다. 피조된 우상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하고, 늘 누가 메고 다녀야 한다. 이런 우상이 어찌 재앙과 복을 내릴 수 있느냐고 하신다. 그러니 우상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대신 주님과 같으신 분이 없다는 것을 알라고 하신다. 주님은 위대하시며, 주님의 이름은 크시고, 주님이 권능을 지니셨다! 주님은 세계 만민의 임금님이시다. 주님은 마땅히 모든 사람의 공경을 받아야 할 분이시다. 세상 어느 왕도 주님과 같으신 분은 없다. 대신 우상에게서 배운다는 사람들은 모두가 한결같이 어리석고 미련하다. 우상은 솜씨 좋은 사람이 만든 것에 불과하다. 오직 주님만이 참 하나님(신)이시요, 주님만이 살아 계시는 하나님(신)이시며, 영원한 임금님이시다.
우상은 결국 없어질 것들이다. 주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는 자들은 누구나 어리석다. 피조된 신상, 곧 우상은 허황된 것이요 조롱거리에 지나지 않는다. 모두 멸망당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주님은 우상과 다르다. 주님은 창조주요, 이스라엘을 자신의 소유로 삼으신 분이시다. 그분의 이름은 ‘만군의 주’이시다.

//우상이냐 아니냐의 기준은 피조물이냐 창조주냐 만큼 확실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이 피조된 우상을 두려워하며 생명이 없는 우상을 섬기는 어리석음을 범하는 이유는, 그 사람이 어리석기 때문이다. 어리석음은 다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지 않는 것이다. 말씀을 청종하지 않으니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도 않는다. 말씀을 듣지 않으니 어리석을 수 밖에 없다. 말씀부재의 악순환이라고 말할 수 있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를 일으켜 살리시는 하나님(신)이시다. 세상 신(하나님)들은 죽이느냐 살리느냐의 권세만 있지만 (사실 생명이 없는 우상은 이럴 권세도 없다. 다만 사람들 중에 하나님(신)의 자리에 앉은 오만한 자들이 하는 말이다.) 우리 주님은 죽은 자도 살리시는 권세를 가지셨다. 피조된 신(하나님)이 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우리가 마땅히 두려워 해야 할 하나님(신)이시다. 주님과 같은 분은 세상에 없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않는 세상 사람들의 풍습을 배우지 말라고 하신다. 이 시대를 본받지 말라고 하신다. 허황된 것에 눈을 돌리지 않으려면 말씀을 마음에 두는 수 밖에 없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05/

예레미야 9:17-26

예레미야 9:17-26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주님! 주님은 애곡할 때라고 하신다. 조가를 부를 때라고 하신다. 울 때라고 하신다. 시온이 망했다. 포로로 잡혀가야 한다. 주님은 여인들에게 주님의 말씀에 청종하라고 명령한다. 자녀에게 애도하는 법을 가르치라고 하신다. 서로서로 장송곡을 부르는 법을 익히라고 하신다. 죽음이 닥쳤기 때문이다. 젊은이들도 죽어 간다. 시체가 도처에 널려있다. 지혜도 소용없고 힘도 소용없다. 재산도 자랑할 것이 못된다. 자랑할 것이라곤 주님을 아는 것, 주님의 긍휼과 공평과 공의라고 하신다. 주 하나님을 아는 것만 자랑하라고 하신다. 주님을 아는 지혜를 가지게 되었음을 자랑하라고 하신다.
주님은 몸에만 할례를 받은 사람들은 벌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아니 몸에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들에게도 벌을 내릴 것이라고 하신다. 오직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들만 벌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우리나라에는고려때부터 상을 당했을 때 상주를 대신하여 대신 울어주는 ‘곡비’가 있었다. 유다에도 ‘곡비’와 같이 대신 울어주는 사람이 있었나 보다. 그러나 유다에는 울어 줄 사람을 더이상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시체로 가득하다. 서로를 위해 울어줘야 할 지경이다. 울어줄 사람을 찾아야 하는 것이 아니라 내가 울어야 한다. 서로서로 울어줘야 한다. 함께 울어야 한다. 지혜로도 힘으로도 재산으로도 죽음을 면할 수 없다. //벌을 받지 않는 유일한 길은 마음에 할례를 받는 것이다. 몸에만 할례를 받은 사람도, 아예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도 차별이 없이 벌을 받는다. 마음에 할례를 받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음에 할례를 받은 사람만 면벌부를 받는다.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는 벌을 면할 수 없다.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나야 한다. 하나님으로부터 나지 않았다면 애곡해야 한다. 울며 조가를 불러야 한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 긍휼과 공평과 공의의 하나님을 따라 살아가는 사람이 영생을 누리는 사람이다. – 이웃을 위해 울어주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7/10/04/

예레미야 9:7-16

예레미야 9:7-16

만군의 주 하나님의 말씀이 이어진다. 주님은 주님의 백성을 연단한다. 악을 저지른 주의 백성을 다루는 방법은 시험밖에 없다. 주의 백성의 입에서 평화의 말 대신 거짓말만 나오고, 서로 해칠 생각만 품고 있으니 주님이 벌하지 않을 수 없다. 주님은 백성이 행한대로 갚으시는 분이시다.
예레미야는 황무지가 된 예루살렘을 보고 애가를 부를 수 밖에 없다. 주님이 (불순종의) 예루살렘을 돌무더기로 만드시고 짐승들만 우글거리는 소굴이 되게하고 유다의 성읍들을 황무지로 바꾸어 놓아 사람이 살 수 없게 하신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유다가 왜 망했는지 깨닫지 못한다. 예레미야가 주님의 말씀을 전해도 깨닫는 자가 없다.
주님께서 유다가 망한 이유를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에게 율법을 주어 지키라고 했지만, 그들이 그것을 버리고 주님의 말을 순종하지 않았다. 실천하지 않았다. 오히려 자기들의 고집대로 살았다. 조상들처럼 바알 신들을 따랐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주님은 이런 주의 백성에게 벌을 내리신다. 쓴 쑥을 먹으며 독을 탄 물을 마시게 하신다. 이방 민족 가운데 그들을 흩으신다. 불순종의 백성을 전멸시킬 때까지 그들을 뒤쫓게 하실 것이다.

//불순종의 백성 진멸되기까지… 주님은 주의 백성이 연단을 받아 불순물이 제거 되기까지 풀무질을 계속하실 것이다. 그러니 벌이, 진멸이 최종목적지가 아님을 알 수 있다. 정결케 된 남은자가 있다는 소망을 갖게 한다. 이 소망을 가로막는 것은 우리 마음의 완악함과, 조상들의 가르침, 곧 전통과 관습이다. 우리가 따라야 할 것은 주님의 법이요 주님의 말씀이다. (주의 말씀을 듣기만 하는 자는 어리석은 자다. 듣고 행하는 자가 지혜로운 자다.) 우리의 완악함을 녹여주는 것도 주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인도에 따르는 것이며, 전통과 관습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도 주의 말씀과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이다. 깨닫는 자가 없어도 주님이 끊임없이 말씀하시는 이유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성령 하나님이 계시다.

예레미야 8:18-9:6

예레미야 8:18-9:6

예레미야는 자신의 심정을 ‘기쁨이 사라졌다. 슬픔이 나을 길 없다. 가슴이 멍들었다.’ 하고 표현한다. 백성들은 주님이 시온을 떠나셨다고 울부짖는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는 시온은 더 이상 시온이 아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 곧 하나님이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위 주의 백성들이 우상들을 하나님 대신 섬기니 주님은 노하실 수 밖에 없다. 주님의 노하심에 백성들은 구출 되지 못한다. 예레미야는 이런 상황에 마음에 상처를 입는다.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이 돌이키지 않음을 불치병이라며 한탄한다.
예레미야는 주의 백성이 살해 당한 것과 마찬가지라고 탄식의 노래를 부른다. 마치 자녀를 잃은 부모처럼 오열한다. 오죽했으면 간음하고 배신한 주의 백성을 멀리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할까? 주님의 백성이라면서 거짓만 일삼고 진신은 없고 폭력만 판을친다. 주님을 하나님인 줄 알지 모르는 백성이 되어버렸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을 알지 못하니 친척끼리도 거침 없이 사기를 치고 이웃끼리 비방하는 불신의 사회가 되어버렸다. 죄를 짓는 일을 그치려 하지 않는 백성. 서로 속고 속이는 일만 되풀이 하면서 기만 가운데 사는 백성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다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주님을 왕으로 모시지 않으니 시온은 더 이상 시온이 아니다. 시온은 하나님의 법이 있는 곳, 곧 하나님께서 다스리는 곳이기 때문이다. 주님을 알고, 주님이 보내신 예수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예수께서 말씀하셨는데, 주님을 알려고 하지 않으니, 그들에게는 생명이 없다. 사망이다.그렇다 하나님을 알려고 하지 않는 불치병에 걸린 사람들의 결국은 사망이다. 이들 가운데서 주님의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예레미야의 탄식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하나님이 없는 불치병에 걸린 사회는 결국 서로를 믿지 못하는 불신의 사회가 된다. ㅠㅠ –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힘써 하나님을 알게 하소서.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힘써 이웃을 사랑하게 하소서.

https://quietwaters.blog/2017/10/0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