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왕기상 8:33-43

왕상 8:33-43

솔로몬의 기도가 이어진다.
[이스라엘이 당신께 죄를 얻어/지어 적에게 패하였다가도 뉘우치고 돌아와 이 전안에서 당신의 이름을 기리며 간절히 빌거든 하늘에서 들으시고 당신의 백성의 잘못을 용서하여 주시고 그들의 선조들에게 주신 땅으로 돌아가게 해주십시오.
이 백성이 당신께 죄를 지어 그 값으로 하늘이 닫혀 비가 내리지 않게 되었을 때에도 당신께 벌받은 줄 알고 뉘우쳐 이 전을 바라보며 기도하고 당신의 이름을 기리거든 하늘에서 들으시고 용서해 주실 뿐만 아니라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도 가르쳐 주십시오. 그리고 약속의 땅에 다시 비를 내려 주십시오.
이 땅에 기근이 들거나 역병이 돌거나 소출이 적거나 적에게 포위 되었을 때, 재앙과 전염병이 번졌을 때, 당신의 백성이 마음으로부터 뉘우치고 이 전을 바라보며 간절히 빌거든 당신께서 하늘에서 들으시고 용서해 주십시오. 사람의 마음을 아시는 하느님, 사람의 행실에 따라 갚아 주십시오. 당신만의 사람의 마음을 낱낱이 아십니다. 그리하시면 이스라엘 백성은 당신께서 주신 약속의 땅에 살면서 영원히 당신을 경외할 것입니다.]

//솔로몬의 기도는 잘못한 일에 대한 뉘우침과 용서를 구하는 것이 아니다. 미래를 위한 소망이다. 그런데 잘못할지도 모를 미래를 대비하는 기도다. 미래에 잘못하지 않게 해달라는 예방차원이 아니라 아예 잘못을 전제로 한다. 잘못하더라도 뉘우치면 용서해달라는 기도다. 잘못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연약성을 드러내는 기도다. 그렇다 하더라도 하나님께서는 이미 어떻게 살아야 할지 그 길을 가르쳐 주셨는데, 지을 죄에 대한 용서를 빌면 죄를 사해주시고, 어떻게 살아야 할지 주님의 길을 다시 가르쳐 달라고 기도하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뉘우치는 마음이 생기고, 하나님을 부를 것이라는 소망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절실하기는 하다. //오늘 본문에서도 기도와 간구의 핵심은 용서를 구하는 것이다. 온 이스라엘의 잘못도 이스라엘에 속한 각각의 개인의 잘못도 그 잘못에 따른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라는 벌을 받아야 했다. 그렇다고 돌이킬 수 없는 것은 아니다. 주의해서 살펴야 할 것은 솔로몬의 기도는 전쟁과 기근과 가뭄과 재앙과 질병이 생기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불순종으로 말미암아 벌을 받을 때 뉘우치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용서해달라고 기도한다. 은혜의 통로를 만들어 놓는 기도다.

https://quietwaters.blog/2023/09/23/

열왕기상 8:22-32

열왕기상 8:22-32

솔로몬은 이스라엘 온 회중이 보는 가운데 야훼의 제단 앞에 서서 하늘을 향하여 두 팔을 들어올리고 다음과 같이 기도했다.
[천지에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 같은 신은 없습니다. 주님 앞에서 한 마음으로 살아가는 종들에게 신실하시며 언약을 지켜주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의 종인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것을 그대로 지켜주셨습니다. 약속하신 것을 손수 이루어주셨습니다. 이제 다윗에게 약속하신 대로 자손들도 길을 벗어나지 않고 주님 앞에서 살아가기만 하면 이스라엘 왕위에 오를 후손이 끊기지 않겠다는 약속도 지켜주십시오. 이스라엘의 하느님이여 당신의 종 저의 아버지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주십시오. 그러나 하느님, 하느님께서 이 땅에 사람과 같이 자리잡으시기를 바라지는 않습니다. 하늘의 하늘이라도 주를 모시지 못할 터인데 제가 지은 이 전이야 말로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그러나 나의 하느님 야훼여 소인의 기도와 간청에 귀를 기울여 주십시오. 나의 이 기도를 들어주십시오. 주님께서 내 이름이 거기에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신 곳, 이 전을 보살펴 주십시오. 소인이 이 곳을 바라보며 올리는 기도를 부디 들어주십시오. 소인과 당신의 백성이 이곳을 바라보며 간절히 기도할 때 부디 들어주십시오. 당신께서 계시는 곳, 하늘에서 들어주십시오. 들으시고 용서해주십시오. 개인적인 잘못에 대해서도 당신께서 하늘에서 그 말을 들으시고 판결을 내려 주십시오. 잘못이 있으면 벌을 내리시고 잘못이 없으면 무죄를 선고해 주십시오]

//솔로몬의 기도는 골방의 기도가 아닌 대표기도다. 그래선가 미사여구적 수사가 많은 것 같다. 솔직히 앞으로도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주님 앞에서 살겠습니다 하고 언약의 내용을 확인하고 다짐하는 기도면 족하지 않을까 싶은데… 삐딱하게 읽으니 솔로몬이 중언부언하는 것 같다. //솔로몬은 주님이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이루어 주셨으니 앞으로도 약속을 이루어 달라고 간청한다. 그렇다면 간청의 내용은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지 않고 주님 앞에서 살게 해달라고 하면 깔끔하다. 그런데 마치 주님의 길에서 벗어나고 주님 앞에서 살지 않을 수도 있으니 라는 뉘앙스가 깔린 기도를 한다. //주님의 약속은 변함이 없다. 우리의 신실함이 변한다는 것이 문제다. 변화는 하여도 변함은 없기를 기도해야 한다.

열왕기상 8:12-21

열왕기상 8:12-21

언약궤를 성전에 들인 후 솔로몬이 야훼의 영광이 가득 차 있어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 성소를 향해 입을 열었다. 솔로몬은 야훼께서 몸소 캄캄한 데 계시겠다고 하셨으니 자신이 주님을 위하여 세운 이 전에 영원히 여기에서 사십시오 하고 말했다. 솔로몬은 고개를 돌려 모여 있는 온 회중을 향해 복을 빌어주었다. 솔로몬은 먼저 이스라엘의 하느님 야훼께서 다윗에게 약속하신 말씀을 모두 그대로 이루어주셨으니 그를 찬양하라고 입을 뗀 후,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다윗 왕조를 세우신 분도, 다윗에게 성전을 지을 마음을 품게 하신 분도, 다윗 대신 다윗에게서 태어날 아들이 성전을 지은 것도 주님이 다윗에게 하신 약속의 성취라고 말했다. 그래서 야훼께서 이스라엘 선조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때 맺어주신 계약을 넣은 궤를 성소에 마련했다고 말한다.

//십계명은 단순한 율법이 아니다. 계약서다. 다윗도 솔로몬도 십계명이 적힌 두 돌판이 들어 있는 언약궤를 보관하는 이유다. 오늘날로 말하면 하늘나라 집/땅문서를 장롱 깊숙히 보관하는 것이다. 그러나 계약서를 보관하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계약의 내용을 숙지하고 지키는 일이다. 가끔이라도 꺼내 보고 계약자의 이름이 조상의 이름이 맞는지, 자신이 상속자가 맞는지 따져야 하고, 무엇보다도 계약조건에 맞게 살고 있는지 돌아보고 후대에 물려주어야 한다.

열왕기상 7:40-51

열왕기상 7:40-51

51절 이렇게 해서 솔로몬 왕은 성전 건축을 완성했다. 그런데 40절에서 사관은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해 성전 짓는 일을 마쳤다고 기록한다. 45절에서는 후람이 솔로몬 왕을 위해서 (도와서) 온갖 성전의 기구들을 만들었다고 기록한다. 48절에 가면 사관은 솔로몬이 성전에 있는 온갖 기구를 만들었다고 마무리 한다. 삐딱하게 보면 솔로몬 왕을 우상화하는 시도다. 성전을 세우는 것은 결코 사람을 위하는 일이 되어서는 안 된다. //교회의 각종 프로그램, 예를 들어 성경공부, 제자반, 찬양 등등 교회를 세우는 일이 하나님을 위하는 일이 아니라 교회지도자를 위한 일이 되는 경우가 있다. 하나님은 간곳 없고 사람의 이름만 남는다면 이 역시 우상화가 아니면 무엇이랴?

//저녁이면 한국으로 돌아간다. 선교가 무엇인지 갈수록 모르겠다.

열왕기상 7:27-39

열왕기상 7:27-39

사관은 청동기술의 명장 히람(후람)이 놋받침대와 놋대야 열세트를 만든 사건을 기록한다. 놋대야와 놋받침대의 쓸모는 번제물을 씻을 때 사용하는 물을 담아 놓기 위해서다. 사용하기 편하라고 바퀴까지 달아 놓았다.  그런데 반복해 읽어도 머리에 확 와닿지 않는 히람의 작업을 상세히 기록하는 이유는 모르겠다.  기록 당시의 독자들도 쉽게 이해하지 못했을 것 같다. 후대를 위한 시방서도 아닌 것 같다. 놋받침대와 놋대야의 기능이나 의미보다 문양의 화려함과 구조의 상세한 기록은 후람의 재주만 부각 시키는 것 같다. 그렇다고 후람의 재주에 성막을 지을 때처럼 ‘하나님이 기술자를 지명하여 부르시고 하나님의 영을 충만하게 하여 지혜와 총명과 지식으로 일을 했다’ 와 같은 출애굽기 식의 설명이 따라붙지도 않는다. 성막과 다르게 솔로몬 성전은 왠지 사람의 힘으로 지어진다는 느낌이다. 아무리 정교한 작업이라도 구리 조각으로 해체되어 바빌론으로 옮겨질 운명이 아니던가? 하나님이 세우지 않으시면, 사람이 세운 것은 헛되다. 

발릭빠빤 선교탐방 1일차 시작이다. 뱅기가 연발해서 환승에 어려움이 있었다. 그러나 짐이 다 도착하지 못했으나 몸은 안전하게왔다. 짐으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배우게 하신다. 오늘 임할 은혜를 사모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