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가복음 14:32-42

32-42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러 제자들에게 예수게서 기도할 동안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만 데리고 좀 더 가셨다. 기도의 자리에 나가시는 예수께서는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셨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도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조금 더 가셔서 죽음의 고민에 대해 무거운 마음으로 기도하셨다. 예수께서는 아빠 아버지에게 이 때가 지나가기를 간구했다. 이 잔을 내게서 옮겨달라고,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 라고 기도했다. 돌아오시니 베드로를 비롯한 야고보와 요한이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깨어 있을 수 없더냐,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고 당부하신후 (마음에는 아버지 뜻대로 하고 싶지만 육신으로는 감당하기 힘든 마음으로) 다시 나아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다. 예수께서 다시 돌아와서 보니 제자들이 피곤해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 깨우셔도 비몽사몽 정신이 없었다. 세번째 기도하신후 제자들에게 오신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제는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릴 때가 왔다고 말씀하셨다. 자고 쉬는 제자들을 깨우신 예수께서는 자신을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하시면서 일어나서 함께 가자고 하셨다.

// 예수의 겟세마네의 기도. 기도하러 나가시는 예수의 마음은 심히 놀랍고 슬펐다. 아들의 생명을 내놓으시는 아버지의 결정에 아들이 심히 놀라고 슬퍼하는 것은 당연한 반응일 것이다. 이 무거운 짐을 지고 아버지께 나아가는 것이다. 차마 모든 제자들을 다 데리고 기도의 자리에 나가지 못하시고 베드로와 야고보 요한 셋만 데리고 나가셨다. 그러나 이들 셋에게도 죽음에 대한 고민이 가득한 기도 제목을 온전히 나누지 못하셨다. 결국 하나님의 뜻을 세 제자들에게 나누지 못하신 채 기도부탁을 (아마도 기도 내용과 상관없이 아버지의 뜻을 잘 들을 수 있게 해 달라고) 하곤, 혼자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셨다. 예수께서는 이때와 이잔을 지나가게 해달라고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했다. 그러나 아버지의 뜻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했다. 예수께서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에게 돌아오셨을 때 세 제자는 피곤해서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고 명하셨다. 그러나 시험에 빠지지 않아야 할 분은 예수셨다. 그래서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자신이 시험에 빠지지 않도록 깨어있을 수 있도록 기도부탁을 하시는 것 처럼 들린다.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라는 말씀도 결국은 예수께서 스스로에게 하시는 말씀으로 들린다. 예수께서는 다시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했다. 이때와 이잔을 지나가게 해 달라고, 그러나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라고. 예수께서 다시 세 제자에게 돌아왔을 때, 셋은 여전히 피곤해서 자고 있었다. 예수께서 깨워도 그들은 비몽사몽간에 정신이 없었다. 예수께서는 세번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하고 제자들에게 돌아왔다. 아버지의 원대로 이때와 이잔을 받으시기로 하셨다. 제자들에게 때가 왔도다라고 하셨다. 자신이 팔릴 것이라고 두번이나 강조하신다.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다.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제자들을 십자가의 길에 초청하신다.

>>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하나님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다고 하신다. 하나님나라는 이렇게 예수의 팔림으로 가까이 왔다. 이때와 이잔을 받는 것이 아버지 하나님의 뜻인 줄 알고 순종하시는 예수와 달리 제자들은 눈이 충혈될 정도도, 비몽사몽간에 예수의 기도에 동참했지만 십자가의 길에 대해서는 여전히 무지했다. 잠을 자는 것과 마찬가지였다. 아니 깨어 기도하지 못하고 아예 잠을 잤다. 깨어 기도하는 것은 맑은 정신에 기도하는 것이라기 보다는 마치 종이 주인이 언제 돌아올지 몰라 깨어 기다리는 것 처럼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여 깨닫도록 기도하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 기다리는 것이 기도의 핵심이다. 내 뜻을 관철시키는 것은 깨어 기도하는 것이 아니라 자는 것과 마찬가지다. 기도는 하나님 뜻이 나를 움직이도록 하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아가는 삶이 곧 기도다. 예수께서 자신이 팔릴 것을 아시면서도 순종하시는 그 길이 하나님나라의 길이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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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가복음 14:22-31

 22-26a 유월절 식사가 시작되었다. 예수께서 떡을 가지사 축복하시고 떼어 제자들에게 주셨다. 이것은 내 몸이다. 또 잔을 가지사 감사 기도 하시고 제자들에게 마시게 하셨다. 이것은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나의 피 곧 언약의 피다.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에서 새 것으로 마시는 날까지 다시 마시지 않겠다고 하셨다.) 유월절 식사는 찬미로 끝났다.

// 식탁의 교제는 하나님의 축복과 감사 기도의 자리다. (요한복음에서는 가룟유다가 떡 한조각 받고 나간 것으로 묘사되나) 가룟유다가 여전히 참여하고 있음에 주목한다. 따라서 중요한 것은 식탁에 그냥 손님으로  앉아 있는 것이 아니라, 곧 함께 먹고 마시는 것이 전부가 아니라 식구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가족으로 참여해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사람들이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라고 하신 말씀을 기억해야 한다. 식탁의 전식은 배신이었지만  메인코스는 축복과 감사기도였고 후식은 찬미였다. 바울은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고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하나님나라는 식탁의 주인되신 예수께 가족으로 (식구로) 참여하는 나라다. (예수께서는 하나님나라에서 만날가족들과 다시 식탁에 마주 앉을 때까지 다른 식탁의 교제는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26b-31 예수께서는 제자들을 이끌고 감람산으로 가셨다. 마가는 유월절 식사를 가룟유다의 배신 이야기로 시작하더니 감람산에서는 나머지 제자들도 예수를 버릴 것이라고 이야기를 이어간다. 이것은 ‘내가 목자를 치리니 양들이 흩어지리라’ 라는 말씀의 성취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살아난 후에 제자들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실 것이라고 하신다. 십자가와 부활의 일정을 들은 베드로는 예수께 다른 사람은 예수를 버릴지라도 자신은 그러하지 않겠다고 맹세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오늘 밤에 닭이 두번 울기전에 베드로가 세번씩이나 부인할 것이라고 하셨다. 베드로는 힘주어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맹세했다. 다른 모든 제자도 베드로와 같이 말했다.

// 식탁에서 ‘나는 아니지요?’라고 물었던 제자들. 예수님은 제자들도 배신은 아닐지라도 예수를 부인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말씀하신 오늘 밤에 닭이 두번 울기 전에는 전현철 님이 올려주신 이진경 교수님의 ‘닭은두번 울지 않았다’에 나오는 ‘오늘 밤 채 삼경이 끝나기 전에’, 즉 삼경을 알리는 소리가 끝나기 전에로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의 예수님에 대한 부인을 목자 잃은 양들이 흩어지는 것에 대한 말씀의 성취라고 하신다. 가룟유다의 배신처럼 적극적으로 예수를 팔아 넘기는 것은 아니지만, 소극적으로 예수를 모른다고 부인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제자들을 목자을 잃은 양떼에 비유하셨으니, 목자를 배신하는 양이 아니라, 목자의 음성을 더이상 듣지 못하는 처지가 될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이다.

>> 목자의 음성을 듣지 못하면 양떼는 각기 제길로 간다. 각기 제길로 간 제자들을, 곧 예수를 부인하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사람들은 결국 예수를 부인하는 자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는 사람도 어리석다 하셨다. 하물며 듣지도 못하는 사람들이랴.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라야 지혜롭다고 하셨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는다 라고 바울을 로마 성도들에게 편지했다. 우리에게 목자를 잃은 양 같이 살지 말라고 하신다. 선한 목자되신 예수의 음성을 분별하라고 하신다. 보혜사 성령께 도우심을 구할 수 밖에 없는 이유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게 될 날이 생기지 않도록 기도해야 한다.

마가복음 14:12-21

12-16 무교절 첫날이다. 유월절 양을 잡는 날이다. 제자들은 예수께 유월절 음식을 어디에서 먹을 지 물었다. 예수께서는 제자 둘을 성내로 보내시며, 물 한 동이를 가지고 가는 사람을 만나면 그를 따라가서 어디든지 그가 들어가는 그 집 주인에게 유월절 음식을 먹을 ‘나의 객실’이 어디에 있는지 물으라고 하셨다.  그러면 그 집 주인이 자리를 펴고 준비한 큰 다락방을 보여줄 것이니 거기에다 유월절 음식을 준비하라고 하셨다. 제자들이 순종하여 성내로 가서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만나 유월절 음식을 준비했다.

//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타실 나귀 새끼를 찾으실 때와 마찬가지다. 예수께서는 제자 둘을 보내 유월절 음식을 먹을 객실을을 찾게 하셨다. 향유로 예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한 여자처럼 곳곳에 예수님의 길을 준비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자기 향유 옥합을 드린 여자 처럼, 자기 나귀 새끼를 드려, 자기 유월절 객실을 드려 예수를 섬기는 사람들이 있었다. 물리적으로 예수와 함께 동행하지 않아보여도, 저들은 모두 예수와 동행하는 자들이라고 할 수 있다.

>> 나의 인생길에도 참 많은 돕는 손길이 있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그들은 나의 사역에 직접적으로 함께 동행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필요할 때마다 자원하여 돕는 손길을 나에게 내민다. 그들은  그들의 사역을 통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간다. 이런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기쁨일 것이다.

 17-21 날이 저물어 유월절이 되었다. 예수께서는 열둘을 데리고 제자들과 앉아 식사를 하셨다. 이때 예수께서 제자들 중 한 사람이, 예수와 함께 먹는 자 중 한 사람이 예수를 팔리라 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근심하여 한명씩 “나는 아니지요” 예수께 묻기 시작했다. 예수께서는 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인자는 말씀에 기록된 대로 죽겠지만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 사람은 차라리 태어자니 않았으면 좋을 뻔하였다고 하신다.

// 유월적 식탁에서 함께  먹는 자 중 하나가 배신자가 된다. 예수와 함께 쭉 동행하지 않았음에도 유월절 객실을 빌려주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예수와 함께 동고동락한 제자 중에 배신자가 있었다.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이 아니다. 열둘 중 열하나는 ‘나는 아니지요’라고 근심하며 예수께 물었다.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이다. 이들은 예수의 죽음과 부활에 대해 여전히 무지했다. 그러나 하나님 뜻대로 하는 근심으로 후회할 것이 없는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를 이룬다. 그러나 한명 가룟유다는 예수님의 지적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예수를 넘길까 사망을 이루는 세상근심을 했다. 예수께서는 이런 가룟유다가 차라리 태어나니 않았으면 좋을 뻔 하였다고 말씀하신다. 예수께서는 가룟 유다에게는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 곧 구원에 이르게 하는 회개의 기회를 주셨건만 결국 그에게는 회개가 없을 것이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 예수와 함께 먹는 자, 예수와 함께 그릇에 손을 넣는 자. 이 유월절 식탁은 예수께서 친히 주관하시는 성찬의 식탁이다. 그러나 같은 식탁에 앉아 같은 음식을 함께 먹어도, 함께 그릇에 손을 넣어도 마음이 하나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다. 예배에 참석하는 나의 마음은 어떤지? 성찬에 참여하는 나의 자세는 어떤지 돌아보게 된다.

마가복음 14:1-11

1-2 이틀후면 유월절이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이 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고자 하나 명절에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민란이 날 수 있으니 가급적이면 유월절과 이어지는 무교절을 피해 예수를 죽이려고 했다.

3-9 예수께서는 예루살렘 성이 머무시지 않으시고 베다니에 머무셨다. 베다니 나병환자 시몬의 집에서 식사하실 때 한 여자가 매우 값진 향유 곧 순전한 나드 한 옥합을  가져와 깨뜨려 예수의 머리에 부었다. 어떤 사람들은 향유를 낭비한다고 화를 내었다. 삼백 데나리온 이상의 가치를 지닌 향유였다며 그 여자를 책망했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를 괴롭게 하지 말라고 하시며, 그 여자가 예수께 좋은 일을 하였다고 오히려 칭찬하셨다. 여자의 행동을 예수의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하셨다.  예수께서는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이 여자의 일도 전해 이 여자를 기억하리라고 하셨다.

7 가난한 자들은 항상 너희와 함께 있으니 아무 때라도 원하는 대로 도울 수 있지만,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10-11 열둘 중 하나인 가룟 유다가 예수를 대제사장들에게 팔러갔다. 대제사장들은 가룟유다의 제안을 돈주고 샀다. 유다는 예수를 넘길 기회를 찾았다.

// 대제사장들은 지금을 놓치면 열흘이 지나야 다시 예수를 죽일 기회를 찾을 수 있었다. 때마침 가룟유다가 예수를 넘겨준다니 더할나위 없이 좋았을 것이다. 대제사장들과 가룟유다는 아마도 유월절 전에 예수를 죽일 기회를 찾는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세울지라고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 예수의 죽음에 대해 제자들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다. 그러나 한 여자는 예수의 죽음에 대해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삼백 데나리온 (보통 남자 일꾼의) 일년 연봉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그러니 이 여자는 몇년(평생)을 모았을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것이다. 성전 헌금함에 두랩돈을 넣은 과부와 다를게 없다. 자기의 소유 전부를 부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님나라를 샀다. 사람들은 향유를 낭비했다고 화를 내었지만, 사람들은 여자에게  마치 왜 돌밭을 옥토 값을 주고 샀냐고  화를 내었지만, 그들은 이 여자가 그 밭에 묻혀있는 보화를 발견했다는 것을 몰랐을 뿐이다. 우리 주 예수가 값비싼 진주가 아니면 무엇이랴.

// 예수께서는 가나한 자들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니 아무때라도 도울 수 있다고 하신다. 꼭 향유를 팔아 도우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전 재산을 팔아 도우라고 하시는 것이 아니라, 평소의 나눔으로 가난한 자들을 도우라고 하신다. 평생을 모은 것으로 단 한번 가난한 자를 도울 수도 있겠지만 일상에서 가난한 자를 도우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나라를 먼저 구하는 삶이다.

// ‘나는 너희와 항상 함께 있지 아니하리라.’ 예수께서는 죽음을 염두에 두신다. 그래서 직설적으로 여자가 향유를 예수의 머리에 부은 것을 내 장례를 미리 준비하는 것이라고 답하신다. 가끔 농담삼아 예수와 함께 하고 싶으면 가난해지라고 한다. 왜냐하면 가난한 자가 복이 있고 천국이 가난한 자의 것이기 때문이다. 의역하면 가난한 자에게 하나님이 함께 하신다. 가난한 자들이 있는 곳에는 항상 주님이 계신다고 적용하면 안될까? 그러니 하나님께서 저 멀리 계시다고 느끼는 성도가 있다면 가난한 자들을 찾아가면 된다고 얘기한다. 그곳에 주님이 계신다. 아니면 보다 적극적으로 우리 소유를 팔아 구제하여 낡아지지 아니하는 배낭을 만들면 된다.

>> 보화를, 값비싼 진주를 발견하지 못한 대제사장들과 유다는 결국 예수를 싼 값에라도 팔아 넘길 기회를 찾는다. 한 여자는 저들이 팔아 넘기려는 예수 안에 있는 보화를,  아니 값비싼 진주이신 예수를 샀다. 한 여자 처럼 내게 가치 있다고 생각하는 것을 깨뜨려 버리지 않는다면 예수를 주인으로 모실 수 없다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그 여자가 예수께 좋은 일을 하였다고 칭찬하셨다. 좋은 일은 선한 일이요 선한 일은 하나님의 뜻이다. 결국 여자가 칭찬받은 이유는 하나님의 뜻에 순종했기 때문이다.)

마가복음 13:14-37

14 멸망의 가증한 것이 서지 못할 곳에 선 것을 보게 될 때가 성전건물이 무너질 때라고 하신다. 그 때에 산으로 도망하라고 하신다.  //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이 얼마나 많은 때인가? 산은 어떤 곳인가? 아마 덜 세속적인 곳이 아닐까? 소돔성에 있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에게 하나님의 천사는 산으로 도망하라고 했었다.

15-18어느 곳에 있든지 세상 것에 미련을 두어 그것들을 챙기러 가지 말라고 하신다. 임산부와 해산한지 얼마 안되는 자들에게 화가 있다고 하신다. 이런 일이 겨울에 일어나지 않도록 기도하라고 하신다. // 유대 땅의 겨울은 추울 때가 아니었을 것이다. 아마도 우리의 보릿고개에 해당하지 않을까 한다. 기도하라고 하신 이유도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계획을 바꾸시겠다는 것보다는 견딜 수 있는 긍휼을 구하라고 이해하는 것이 좋을 듯하다.

19-20 시작이 (창조가) 있으면 마지막이 있다고 하신다. 마지막의 가장 큰 특징은 환난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환난의 날들을 감하셨다고 하신다 왜냐하면 환난의 날이 계속되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택하신 자들을 위해 환난의 날을 감하셨다고 하신다.

21-23 다시 한번 거짓 그리스도가 사람들을 미혹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조심하라고 하신다. 이렇게 미리 경고하신 것을 명심하라고 하신다.

24-27 환난 후에 해가 어두워지고 달이 빛을 내지 않으며, 별이 하늘에서 떨어지며 하늘에 있는 권능들이 흔들릴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그 때에 사람의 아들이신 예수께서 구름을 타고 큰 권능과 영광으로 오실 것이라고 하신다. 그때에 천사들을 보내셔서 택하신 자들을 땅끝부터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모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28-31 무화과나무의 비유를 배우라고 하신다. 가지가 연하여지고 잎사귀를 내면 여름이 가까운 줄 알듯이 앞서 말씀하신 일이 일어나면 사람의 아들로 오신 분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신다. 예수께서는 이 세대라 지나가기 전에 이 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하신다. 천지는 없어지지만 예수의 말씀은 없어지지 않는다고 하신다.

32-37다시한번 ‘때’는 예수께서도 모르시고 오직 성부 하나님만 아신다고 하신다. 그래서 주의하라고 깨어 있으라고 하신다. 주인이 집을 떠나 타국으로 갈 때 종에게 일을 맡기고 깨어 있으라고 명하였으니 종된 너희들은 깨어 있어라고 하신다. 주인이 언제 오실 지 모르기 때문이다. 주인이 왔을때 종들이 자고 있는 것을 보지 않도록 하라고 경고하신다. 깨어있으라. 제자들뿐만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하시는 말씀이다.

>>  이야기가 이어지지 않는다. 한절 한절이 어렵다. 성전의 무너짐을 예수께서 성전을 헐라 내가 사흘동안 일으키시겠다는 말씀, 곧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로 막연히 이해했는데 성전의 무너짐과 종말은 어떤 관계가 있는지. 복잡하다. 그러고 보니 성전 건물의 무너짐은  예수님 승천이후에 벌어질 일이다. 예수께서는 성전의 무너짐과 마지막 때를 이 세대가 끝나기 전에, 이 모든일이 다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그렇다면 성전의 무너짐은 곧 종말을 시작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우리 성도들은 예수의 제자들 때부터 이미 시작된 종말의 때를 살고 있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께서는 내가 너희에게 하는 말은 모든 사람에게 하는 말이다 라고 하신다. “깨어 있어라”

>> 하나님의 구원사역은 예수의 십자가와 부활로 끝이 아니다. 인자가 큰 권능과 영광에 싸여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봐야한다. 천사들이 땅끝에서 하늘 끝까지 사방에서 선택된 사람들을 모으실 것이라고 한다. 종말의 때, 곧 환난의 때를 인내하고, 연단을 거쳐 소망에 들어가야 한다. 성도들은 예수께서 너희가 세상에서는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다고 하신 말씀에 소망을 두어야 한다. 성도들은 예수의 재림을 소망중에 봐야 한다. 스데반이 성령 충만하여 하늘을 우러러 보았을 때 하나님의 영광과 예수께서 하나님 우편에 서신 것을 보았듯이. 요한이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하나님께로부터 하늘에서 내려오는 환상을 보았듯이.

>>  종말을 징조는 성전이 무너짐이후로 계속 나타났다고 본다. 이런 일이 일어나는 것을 보거든 인자가 가까이 곧 문 앞에 이른 줄 알라고 하신다. 지난 이천년의 역사다. 요한은 환상중에 예수께서  라오디아 교회에 주신 말씀을 이렇게 전한다. “보아라, 내가 문 밖에 서서, 문을 두드리고 있다.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나는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와 함께 먹고, 그는 나와 함께 먹을 것이다.” 주께서 지금도 문을 두드리고 계신다.

>>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본문이다. 아마 마가는 십자가와 부활을 경험하고도 환난의 날을 살아가고 있는 1차 독자들에게 예수께서 죽으시기 전에 환난의 날에 대해서도 미리 말씀하셨음을 강조하기 위해 종말의 이야기를 포함시켰을 것이다.

>> 어려운 때에 하나님만으로 즐거워 하라고 말씀하신다.  어려운 상황 그대로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하라고 말씀하신다. 구원의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기뻐함이 내가 깨어 있을 수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