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8:1-18

주님은 끊임없이 말씀하신다. 아버지도 아들도 주인되신 하나님께 범죄함으로 죽으리라고 하신다. 안되면 조상탓으로 돌릴 수 없다고 하신다. 조상탓 내탓이 아니라고 하시는 것이다. 핑계 댈 곳이 없다. 우리는 (우리 영혼은) 주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만일 사람이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한다면 그는 의인이니 반드시 살리라고 하신다.

주님은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는 것을 다음과 같이 말한다. 우상에게 드린 제물을 먹지 않는다. 우상에게 도움을 구하지 않는다. 이웃의 아내를 더럽히지 않는다. 생리중인 여인을 가까이 하지 않는다. 사람을 학대하지 않는다. 빚진 자의 저당물을 돌려주며 강탈하지 않는다. 주린 자에게 음식물을 주며 벗은 자에게 옷을 입힌다. 변리를 위하여 꾸어주지 않는다. 이자를 받지 않는다. 죄를 짓지 않는다. 사람과 사람 사이에 진실하게 판단한다. 하나님의 법을 따르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진실하게 행한다. 정의와 공의를 따라 행하는 의로운 삶은 종교적이기 보다 훨씬 더 사회적이다.

의인은 반드시 산다. 그러나 의인의 아들이라도 정의와 공의 삶에서 /하/나/라도 벗어나면 결코 살지 못할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반드시 죽을 것이라고 하신다. 자기의 피가 자기에게 돌아간다고 하신다. 주님은 노아 욥 다니엘이라도 자녀들을 구할 수 없다고 하셨다.

범죄한 자는 반드시 죽는다. 그러나 그 아들이 그 아버지가 행한 모든 죄를 보고 두려워하여 아비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의로워서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 하나님의 규례를 지키며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면 이 사람은 아버지의 죄악으로 죽지 아니하고 반드시 산다고 하신다. 물론 의로운 아들이 포악한 아비를 구할 수 없다. 포악한 아비는 동족을 강탈하고 백성들 중에서 선을 행하지 않아 죽을 것이다.

주하나님께서는 각자의 행위대로 갚으신다.

// 주하나님 앞에 설 때 ‘–때문에’라는 핑계는 통하지 않는다. ‘–덕분에’라면 모를까.

에스겔 17:11-24

하나님의 말씀이 또 에스겔에게 임한다. 이번에는 수수께끼처럼 말씀하신 두 독수리 비유를 해설해 주신다.

첫번째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는 바벨론이고 두번째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는 애굽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의 통치를 통해 세상에서도 언약을 지켜야 나라가 유지 될 수 있음을 교훈하려 하셨다. 그런데 유다는 바벨론과의 언약을 무시하고 애굽의 도움을 구했다. 하나님께서는 언약을 배반하고도 형통하겠느냐고 반문하신다. (하물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이스라엘 족속이랴)

주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배반하고 애굽의 도움을 요청한 시드기야의 운명에 대해 말씀하신다. 바벨론 왕이 시드기야를 세워주었는데 그 맹세를 저버린 결과는 바벨론으로 잡혀가 거기서 죽을 것이라고 하신다. 애굽이 결코 도와주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맹세를 업신여겨 언약을 배반한 결과하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는 이것을 하나님의 맹세를 업신여기고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한 죄 값이라고 분명히 선언하신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감을 하나님을 반역한 죄에 대한 심판이라고 하신다. 바벨론에 피해 군대에서 도망가고 사방으로 흩어지는 것을 통해 하나님께서 이 모든 것을 말씀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리고

주하나님께서 역사의 주관자 이심을 알라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흥만성쇠도 세상의 흥망성쇠도 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이루신다. 높은 나무늘 낮추고 낮은 나무를 높이며 푸른 나무를 말리고 마른 나무를 무성하게 하신다.

주님이 말씀하시고 주님이 이루신다.

에스겔 17:1-10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수수께끼와 비유로 이스라엘족속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색깔이 화려하고 날개가 크고 깃이 길고 털이 숱한 큰 독수리가 레바논에 이르러 백향목 높은 가지를 꺾고 그 연한 가지 끝을 꺾었다고 하는데… 아마도 큰 독수리는 바벨론을 상징하고, 그 연한 가지 끝은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것 같다. 결국 이스라엘을 상징하는 포도나무는 독수리 바벨론을 쳐다볼 수 밖에 없는 처지요 독수리 아래서 통치를 받아야 하는 처지가 되었다는 상징이다. (3-6)

그런데 날개가 크고 털이 많은 큰 독수리 하나가 더 있었다. 이번에는 포도나무가 이 독수리에게 물을 받으려고 이 독수리를 향했다고 한다. 두주인을 섬기는 비유다. 이 포도나무는 두번째 독수리의 땅에 옮겨 심기우면 가지를 내고 열매를 맺어서 아름다운 포도나무를 이룰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나보다. 그러나 두번째 독수리를 의지해서도 번성할 수 없다고 하신다. 독수리가 뿌리를 빼고 열매를 따서 포도나무를 시들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포도나무는 결국 잎사귀가 마를 것이라고 하신다. (7-9)

두 주인을 섬겨 정함이 없는 포도나무의 운명은 번성이 아니라 말라버리는 것이다. (10)

// 첫번째 독수리의 통치를 받아야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심판의 벌이다. 그래서일까, 첫번째 독수리 아래에서는 움이 돋았다고 한다. 소망이 보인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하나님이 아니라 두번째 독수리를 쳐다본다. 그러나 그 결국은 말라버리는 것이다.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의 운명이다. 야고보는 이렇게 편지한다.

“그는 두 마음을 품은 사람이요, 그의 모든 행동에는 안정이 없습니다. 비천한 신도는 자기가 높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자기가 낮아지게 된 것을 자랑하십시오. 부자는 풀의 꽃과 같이 사라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해가 떠서 뜨거운 열을 뿜으면,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져서, 그 아름다운 모습은 사라집니다. 이와 같이, 부자도 자기 일에 골몰하는 동안에 시들어 버립니다. 시험을 견디어 내는 사람은 복이 있습니다. 그 사람은 그의 참됨이 입증되어서, 생명의 면류관을 받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약속된 것입니다.” (약 1:8-12)

두 마음을 품지 말아라.

에스겔 16:53-63

주하나님께서는 뜬금없는 회복을 말씀하신다. 소돔과 사마리아와 그리고 예루살렘까지. 벌을 받아 소돔과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서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다시 잘 살게 해주시겠다고 하신다. 은혜가 아니면 도무지 설명할 수 없다. 잘못된 행실이 부끄러운 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시니, 굳이 은혜의 이유를 찾는다면 죄를 깨달았기 때문이다. 지난 모든 행실이 부끄러워질 것이라고 하신다. 자신들의 행실이 부끄러워질 때, 소돔도 사마리아도 예루살렘도 옛 지위를 회복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렇다 은혜다. 예루살렘은 교만하여 소돔을 비웃었다. 그러나 범죄한 예루살렘은 아람사람들과 블레셋 사람들에게 멸시를 받았다. 음란과 가증한 일에 대한 책임을 져야 했다. 주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였기 때문에 예루살렘에게 그 행한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과 세운 언약을 기억하고 다시 영원한 언약을 세우신다. 61절은 정말 어려운 구절이다. 소돔과 사마리아를 예루살렘의 딸로 주시겠다는 것은 어떤 의미일까? 예루살렘을 회복시켜주시듯이 소돔과 사마리아도 회복 시켜 주신다는 의미같은데. 복음이 예루살렘만 아니라 이방에도 차별이 없음을 선언하시는 것 같다. 결국 예루살렘도 소돔과 사마리아도 하나님의 언약에 포함된다. 이런 주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용서의 하나님의 알라고 하신다. 용서받을 때 지난 일들을 생각하면 부끄러워 얼굴을 들지도 입도 열지도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은혜다.

// 회복의 때에 지난 날의 잘못들이 부끄러운 것인줄 알게 될 것이라고 하시니 회복은(용서는) 죄에 대한 깨달음을 수반한다. 지난 일들이 수치스러워 얼굴을 들지도 못하고 입이 열어 핑게를 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이든 소돔이나 사마리아든 차별이 없다. 죄에 대한 깨달음이 있는 곳에 하나님의 용서가 있다. 하나님을 아는 곳에 회복이 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시는 이유다. (벌이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뜬금없는 것이 아니다. 옛언약을 기억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 앞에 나아오라고 하신다.

에스겔 16:35-52

그러므로 너 음녀야!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음녀라고 부르신다. 그리고 음녀에 대한 판결문을 말씀하신다.

음녀 이스라엘이 행음하고 우상을 위하여 자녀의 피를 우상에게 드렸기 때문에, 음녀 이스라엘의 행위를 사방에 알려 모든 사람들 앞에서 수치를 당하게 할 것이다. 수치만 당하는 것이 아니라 간음하고 살인한 자가 받는 심판을 받게 할 것이다. 내가 너를 사람들의 손에 넘겨 주면, 그들이 너의 높아진 것을 허물어 버리고 네 옷을 벗겨 버리고 네 몸의 모든 장식품을 빼앗아 알몸으로 만들고 군중을 앞에서 돌로 치고 창으로 찔러 죽일 것이라고 하신다. 심판의 판결은 여기서 끝이 아니다. 음행을 한 집들을 불태워 음행을 그치게 하신다. 더이상 성매매의 음행이 일어나지 않게 하신다. 그제서야 하나님의 분노가 그치며 하나님의 질투가 떠가고 마음이 평안해져서 다시는 화를 내지 않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이 모든 심판은 예루살렘이 어렸을 때를 기억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신다. 올챙이 시절을 잊어버리고 하나님을 분노하게 하였기 때문에 그 행위대로 하나님께서 심판을 내리신다고 하신다. 심판의 목적은 벌이 아니라 다시는 음란과 가증한 일을 행하지 말라는 것이다. 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 어머니에 그 딸!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을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속담으로 풀어가신다. 예루살렘은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어머니의 딸이요, 그 남편과 자녀를 싫어한 형의 동생이라고 하신다. 네 어머니는 헷사람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며. 피투성이로 버려졌던 근본이 없는 갓난아이가 자라서 왕후의 지위를 얻자 양자 삼아 주시고 아내 삼아 주신 하나님대신 하나님의 족보에서 자신의 이름을 파버리고 이방의 족보를 사서 이방인의 풍습을 좇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사마리아와 소돔을 따랐다고 하신다. 아니 사마리아와 소돔의 가증한 행위대로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그것을 적게 여겨서 더욱 더 부패하였다고 책망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소돔의 가증한 행위와 죄악이 무엇인지 알려주신다. 풍족한 중에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 주지 않은 것이다. 종교적 우상숭배가라고 말씀하시지 않고 자신의 탐욕에 따라 교만해서 가난하고 궁핍한 자를 도와주지 않은 것 (정의와 공의를 행하지 않은 것) 이라고 꼬집어 주신다. 이런 탐욕에 지금 예루살렘을 휩쓸고 있다고 하시는 것이다. 사마리아의 죄는 예루살렘의 죄의 절반도 범하지 않았다고 하신다. 예루살렘의 죄가, 가증한 일이 훨씬 심하다고 하신다. 사마리아와 소돔이 상대적으로 의로와 보일 정도라고 하신다. 사마리아와 소돔이 심판을 받았다면 예루살렘에게 임할 수치와 심판은 당연한 것이다.

// 교회가 더욱 가증한 죄를 범하므로 세상이 교회보다 더 의롭게 되어버렸나니, 교회가 세상을 더 의롭게 하였은 즉 교회는 놀라며 수치를 당하게 될 것이다. 하나님께서 교회를 향하여 ‘너 음녀야’라고 부르시지 않으실 것이라는 보장이 어디 있을까? 머리되신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지어져가지 않는다면 주님께서 분명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고 하실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