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6:15-34

하나님께서는 피투성이를 데려다가 키워주고 아내로 삼아 왕후가 되게 해 주었는데, 왕후가 된 예루살렘은 족보를 파는 가증한 행위를 했다. 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영화롭게 화려하게 온전하게 해 주셨는데, 예루살렘은 이 화려함을 믿고 자기 명성을 가지고 행음하기 시작했다고 말씀하신다. 호가호위한 것이다. 그것도 음란을 많이 행하고, 결국 그 몸이 주 하나님의 소요가 아닌 그들의 것이 되었다고 한탄하신다.

주 하나님은 이런 행음은 전무후무하다고 하신다.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이라는 것이다. 예루살렘은 주 하나님께서 주신 것(복)으로 우상을 만들고 주 하나님게 주신 것을 우상에게 제물로 바치며 주 하나님께서 주신 먹거리로 우상에게 베풀었다. 심지어 낳은 자녀까지 이방신들에게 제물로 불살라 드렸다. 그것도 모자라 다른 하나님의 자녀들도 우상에게 넘겨 불살라 드렸다고 노하신다.

주하나님은 다시한번 예루살렘이 어떤 존재였는지 기억을 되돌리신다. 주 하나님께서 버려진 피투성이 갓난아이를 살려주셨다는 것을 잊어버리고 이 모든 가증한 일과 음란을 행하였다고 책망하신다. 책망정도가 아니라 ‘화 있을진저 화 있을진저’라고 진노를 쏟아 놓으신다.

주하나님의 ‘화’의 말씀이 이어진다. 예루살렘이 온 이스라엘에서만 모든 악을 행한 것이 아니라고 하신다. 주변 국가들과의 관계에서도 마찬가지라고 하신다. 안에서 새는 바가지가 밖에서 안샐 수 없으리라. 애굽사람들과도 음행했다고 하신다. 블레셋, 앗수르 그리고 포로로 잡혀와 있는 갈대아에까지 심히 행음했으면서도 아직도 족한 줄을 알지 못한다고 한탄하신다. 탐심/탐욕은 끝이 없다.

왕후로 세워주셨는데 방자한 음녀의 행위를 했다고 하신다. “네 마음이 어찌 그리 악한지”라고 하신다. 이제는 대놓고 행음을 한다고 하신다. 창기처럼 돈을 받고 하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면서, 즉 성매매를 한다고 하신다. 생계를 위해서 창기밖에 될 수 밖에 없는 사회적 약자의 아픔이 아니라 본인의 쾌락과 정욕을 따라 행음을 한다고 노를 발하신다.

“욕심이 잉태하면 죄를 낳고 죄가 자라면 죽음을 낳습니다.”(약 1:15) 오늘 본문 예루살렘이 야고보의 가르침에 딱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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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스겔 16:1-14

8월도 에스겔과 함께. 주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한다. 예루살렘으로 자신들의 가증함을 알게 하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에게 “네 근본과 난 땅은 가나안이요 네 아버지는 아모리 사람이요 네 어머니는 헷 사람이라” 이라고 전하라고 하신다. 한마디로 족보를 바꾼 사람들이라고 하시는 것이다. 다르게 말한다면 예루살렘 사람들이 히브리족, 유다민족의 족보를 팔아버리고 이방족속의 족보를 샀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래서 이방사람들을 따르는 가증한 일을 한다고 하시는 것이다.

주 하나님은 족보를 팔아버린 예루살렘 사람들을 출산 후 피투성이로 버려진 아이와 같다고 하신다. 탯줄도 제대로 자르지 않았고 씻김을 받지도 않았고 소금으로 소독도 해 주지 않았고 강보로 감싸주지도 않은채 들에 버려진 아이라고 하신다. 그때 주 하나님께서 지나가시면서 피투성이가 되어 발짓하는 것을 보고 “너는 피두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다시 이르기를 너는 피투성이라도 살아 있으라” 하시며 살려 주셨다. 어떻게든 갓난아기 스스로 살아있기를 바라는 것이 아니라 인큐베이터에 넣으시고 치료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이다. 피투성이야 걱정말아라 내가 너를 살리리라. 내가 너를 살리리라. 그래서 들풀 같은 이 아이를 심히 아름다운 여인으로  성장시켜 주셨다. 그러나 여전히 자기 몸 하나를 가릴 수 없는 처지였다. 주 하나님은 또 지나치시며 주 하나님의 옷으로 벌거벗은 몸을 덮어주셨고 그녀를 아내로 삼아 언약을 맺어 주셨다. (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삼아 언약을 맺고 하나님의 소유가 되게 하셨다.) 주 하나님의 말씀이다.

주 하나님께서 (피투성이를) 물로 씻어주시고 기름을 바르고 수놓은 옷을 입히고 가죽신을 신기고 가는 베옷과 모시로 입혀주시고 패물로 단장해 주시고 화려한 왕관을 머리에 씌워주셨다. 치장만 시켜주신 것이 아니라 고운 밀가루와 꿀과 기름을 먹게 해 주셨다. 왕후가 되어 왕의 밥상에서 먹게 해 주셨다. 피투성이로 하여금 이방중에 명성을 얻게해 주셨다. 주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영화롭고 화려하고 온전하게 해 주셨다. 주님의 말씀이다. 무엇하나 버려진 피투성이가 스스로 한 것은 전혀 없다.

// 예루살렘이 바로 왕후가 된 버려졌던 피투성이었다. 그런데 그 예루살렘이 족보를 팔아버리고 가나안, 아모리, 헷족속의 가짜 족보를 사서 이방인들처럼 살아간다. 주 하나님은 이것을 가증하다고 하시는 것이다. 우리도 족보를 회복해야 한다. 그런데 성도들의 진짜 족보는 혈통이 아니라  하나님께로부터 났다는 것이다. “그러나 그를 맞아들이는 사람들, 곧 그 이름을 믿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특권을 주셨다. 이들은 혈통에서나, 육정에서나, 사람의 뜻에서 나지 아니하고, 하나님에게서 났다.” (요 1:12,13 새번역)

주 하나님께서 자비와 긍휼로 근본도 없는 피투성이로 버려진 우리를 자녀 삼아 주셨다. 하나님의 족보에 우리의 이름을 올려 주셨다. 품안의 자식이라고 했다. 다시말하면 주 하나님의 품에 머물러야 한다는 것이다. 그래야 하나님의 자녀다. 머리가 컸다고 양자삼아 주신 하나님을 버리고 호적에서 자신의 이름을 파는 것이야 말로 가증한 일이다. 호적에서 파지 않았다고 해도 아버지께 불순종하면 무엇이 다를까?  세상에서도 부모와 자식 관계는 한 번 법률적으로 맺어진 이상, 당사자의 결정으로 바꿀 수 없는 천륜이다. 부모와 가족관계를 끊고 호적에서 판다라는 말은 우리 법상으로도 불가능한 것이라고 하는데… (법하는 사람들의 확인이 필요하다.)

아버지 하나님과의 관계에 다른 것은 없다. 효뿐이다. 순종이다. #임마누엘

에스겔 15 (1-8)

하나님의 말씀이 내게 임하여 이르시되… 요즘 정말 반복되는 이 표현이 나를 설레게 한다. 심판의 말씀이라도 주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다는 것은 축복이다.

오늘은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포도나무가 다른 나무보다 나은 것이 무엇이냐고 물으신다. 포도나무는 목재로 쓸 수 없다고 하신다. 불쏘시개나 땔감이 될 뿐이라고 하신다. 목재로 쓸 수 없고 불쏘시개나 땔감 밖에 안되는 포도나무가 만약 불살라진다면 그때는 아무소용이 없다고 하신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들을 바로 불쏘시개와 땔감으로 타버릴 포도나무가 되게 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예루살렘을 포도나무처럼 불사르실 때에야 심판하시는 이가 하나님이신 줄 알것이라고 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포도나무를 불쏘시개와 땔감으로 불사르시듯 예루살렘을 황폐하게 하시는 이유를, 포도나무가 목재로서의 가치가 없듯이 예루살렘도 하나님의 백성으로서의 가치가 없어서가 아니라 범법했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지적하신다.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나는 참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농부시다. 내게 붙어 있으면서도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아버지께서 다 잘라버리시고, 열매를 맺는 가지는 더 많은 열매를 맺게 하시려고 (주변 가지들을) 손질하신다.” 포도나무의 나은 점은 무엇인가? 당연히 목재가 아니다. 포도 열매를 맺는 것이다. 열매를 맺으려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어야 한다. #임마누엘이다. 열매를 맺지 못하는 가지는 잘라 버려져 불쏘시개나 땔감이 된다. 열매 맺는 가지를 방해하는 옆가지도 잘라 버려져 불쏘시개나 땔감이 된다. 나무에 붙어있어도 수액을 빨아들이지 않는 가지는 말라버릴 것이다. 열매를 맺는 가지와 함께 있어도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가지라면  손질을 받을 것이다. 수액을 빨아들이지 않는 것도 다른 가지가 열매 맺는 것을 방해하는 것도 (예수님 시대의 서기관이나 바리새인처럼 마:23:13) 다 농부의 입장에서는 쓸모없는 가지다. 잘라 버리신다. 모아 불에 던져 태워버리신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고 있던 시기 예루살렘은 열매 맺지 못하는 가지요, 열매 맺는 다른 가지를 방해하는 가지였다. “그들이 범법함이니라”라고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그러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은 예수님께서 친히 포도나무가 되어주신다는 것이다. #임마누엘. 에스겔에게 주신 말씀을 요한복음 15장에서 예수님은 재해석하신다. 내가 친히 너희를 위해 목재로써는 쓸모없는 그 포도나무가 되어주겠다. 너희는 내게 붙어서 (열매 맺는) 가지가 되어라. 은혜다.  열매는 결과물이 아니라 ‘전과정’이다. 임마누엘의 삶이다. 불쏘시개나 땔감으로 사라질 인생을 다른 사람들을 회복시키고 다른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포도열매를 맺는 영원한 삶으로 바꿔주신다. 예수님이 포도나무시기 때문이다. 예수님이 나의 포도나무시고 나는 그분의 가지다.

에스겔 14 (1-23)

// 13장은 몸이 아파 읽기만 하고 기록은 못했다. 거짓 선지자, 허탄한 묵시나 복술로 백성들을 사냥하는 자들도 심판을 피할 수 없다. 심판의 목적은 반복된다. 내가 하나님인 줄 너희가 알리라.

이스라엘 장로 두어 사람이 에스겔 앞에 나아왔다. 8장에서는 유다 장로들이 에스겔 집에 찾아왔는데 (분위기상 여러명이 민족적인 문제로) 오늘은 두어 장로만 (아마도 개인적인 문제로) 나아왔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이 두어 장로는 우상을 마음에 들인 자들이고 죄악의 걸림돌을 자기 앞에 둔 자들이라고. 하나님께서 이런 그들에게 아무것도 응답하시지 않겠다고 하신다. (약 1:6-8) 대신 이들에게도 심판의 말씀을 전라하고 하신다.

이들 두어 장로는 에스겔에게 나아왔지만 거짓 선지자들을 찾아가는 사람들과 다를게 없다고 하신다. 하나님을 우상취급하는 자들이요 죄를 짓게 하는 것을 따르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자들이다. 결국 하나님을 우상의 하나로 여기는 자들이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두 마음을 품어 모든 일에 정함이 없는 자라고 하시는 것이다. 이들에게는 우상의 수효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우상은 하나님을 배반하게 한다. 두 주인을 섬길 수 없는 이유다. 이런 그들은 하나님은 심판하실 것이다. 그래도 주님은 기회를 주신다. “너희는 마음을 돌이켜 우상을 떠나고 얼굴을 돌려 모든 가증한 것을 떠나라”

이것은 이스라엘 족속과 이스라엘 가운데 함께 지내는 이방인에게 차별이 없다. 하나님을 떠나 우상을 마음에 들여 죄를 짓고자 하면 하나님의 백성가운데서 끊어지게 될 것이다. 심판의 목적은 하나님이신줄 알리는 것이다. “내가 여호와인줄을 너희가 알리라” 끊임없이 반복되는 말씀이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시는 것이다. 거짓 선지자의 꾐에 빠졌더라도 심판을 면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거짓 선지자나 거짓 선지자에게 나아가는 자나 다 자기 죄악에 따라 심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이 다시는 미혹되어 하나님을 떠나지 않도록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정결한 사람들을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삼으시고 그들의 하나님이 되어 주신다.

하나님께서 불법을 행하는 나라에 대해서는 심판하실 것을 예로 드신다. 기근으로 심판하실 때 노아 다니엘 욥 세사람이 그들 중에 있다면 이 세사람은 자기의 공의로 자기 생명만을 건질 것이라고 하신다. 불법의 나라를 황폐하게 하실 때에도 이 세사람만 건짐을 받을 것이라고 하시면서 그들이 자기 자녀도 건지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구원하시는 분은 주님이시다.) 칼로 심판하실 때도 마찬가지다. 전염병으로 심판하실 때도 동일하다.  // 그나저나 다니엘이 대단하다. 세월이 얼마나 지났다고 노아와 욥과 자리를 나란히 하다니… 하나 더, 이 세사람 모두 이스라엘 땅이 아닌 곳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 공의를 행했다는 것. 음~ 다니엘만 유다 사람이고 노아와 욥은 히브리 사람 이전 사람.

하나님은 이 기근과 황폐케 됨과 칼과 전염병을 동시에 예루살렘에 내리 심판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결국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이 불법을 행하는 어떤 나라요, 범죄한 어떤 나라라고 하시는 것이다. 그럼에도 그 가운데서 노아 다니엘 욥처럼 피하는 자가 남아 있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들을 ‘자녀’들이라고 부르신다. 이들을 구원함을 통해 범죄함에서 돌이킨 자들을 자녀 삼으시는 하나님의 위로를 받을 것이라고 하신다. 재앙을 통해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이유없이 재앙(심판)을 내리시지 않으신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에스겔 12:17-28

주님은 또 말씀하신다. 에스겔에게 떨면서 음식을 먹으며 놀라고 근심하면서 네 물을 마시라고 하신다. 포로로 잡혀온 백성들에게 예루살렘과 이스라엘 땅이 처한 상황을 상징행위로 보이라고 하신다. 쉽게 말하면 포로로 잡혀온 것이 예루살렘에 남아 근심하면서 음식을 먹고 놀라면서 물을 마시다가 자신들의 포악함으로 결국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이 황폐해 지는 것을 목도하는 것보다 낫다고 하시는 것이다. 그러니 하나님을 알고 순종하라는 것이다. // 예루살렘의 패망은 정해진 것이다. 굳이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반복해서 예루살렘과 온 이스라엘 땅의 폐망을 예언하는 것은 사로잡혀 온 사람들에게도 남아 있는 잘못된 성전신앙, 곧 하나님의 성전은 무너지지 않는다는 잘못된 믿음을 버리라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 곳이 곧 성전임을 가르치시는 것이다.

주님은 또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난 세월동안 주님의 환상이 이루어진 것을 본적이 있느냐?’ 라는 속담이 어찌됨이냐고 물으신다. 주님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더 이상 이런 말을 하지 못하도록 심판의 날과 묵시, 곧 하나님 말씀이 곧 이루어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 말씀대신 높아진 허탄한 묵시나 아첨하는 복술이 다시 있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이 더디지 않고 속히 응하겠다고 하신다. 너희 생전에 말씀하신 것을 이루시겠다고 하신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주님은 거듭 거듭 말씀하신다. 주님의 묵시는 반역의 이스라엘 족속이 생각하듯 먼 미래의 일이 아니다. 주님의 묵시는 한 말씀도 더디지 아니할 것이다. 주님의 말씀이시다.

// 포스트모던 세상에 사는 우리에게도 묵시는 사라지고 있다. 주님은 교회의 몰락을 통해서라도 교훈을 배우게 하실지 모를 일이다. 주님은 거듭 거듭 말씀하시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