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12:1-16

심판의 말씀이지만 끊임없이 주의 말씀이 임한다는 것은 축복이다. 아직까지는 듣는 귀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만약 말씀에 순종하는 자가 없다면 말씀은 희귀해질 것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온 사람들도 반역하는 족속이라고 하신다. 예루살렘에 남아 반역하는 자들보다 나을게 없다는 뜻이다. 이들도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못하는 눈뜬 소경이요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는 청각장애인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보지도 듣지도 못하니 반역하는 족속일 수 밖에 없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포로로 끌려가는 행위를 시연해 보이라고 명하신다. 혹 반역하는 족속이라도 에스겔의 행위를 보고 생각하는 바가 있을 것이라고 기대하신다. 성문을 지나서가 아니라 성벽을 뚫고 야반도주해야 하는 자들처럼 얼굴도 들지 못하고 포로로 잡혀갈 예루살렘의 운명을 상징적인 행동으로 보여주라고 하신다. 에스겔은 순종했다.

다음날 하나님은 다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이스라엘, 곧 반역의 족속이 에스겔에게 에스겔이 하는 행위에 대해서 무엇을 하느냐고 묻거든 에스겔의 행위가 예루살렘 왕과 그 가운데 있는 이스라엘 온 족속에 대한 묵시라고 대답하라고 알려주신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자들도 포로로 사로잡혀 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유다) 사람들과 왕이 수치를 당하지 않으려고 한 밤에 얼굴을 가리고 성벽을 뚫고 도망하겠지만 결국 포로로 잡혀갈 것이라고 하신다. 올무에 걸린 먹이감처럼 바벨론에 끌려갈 것이고 (왕은) 다시는 땅을 보지 못할 것이라고 하신다. 열왕기하 사관은 바벨론 군사들은 시드기야 왕의 두 눈을 빼고 그를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끌고갔다고 기록한다. 왕을 호위하는 모든 군대도 에스겔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씀처럼 시드기야를 떠나 흩어졌다.  심판은 목적은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알라고 계시하는 것이다. 예루살렘과 이스라엘에 남은 자들 몇 사람을 남겨 칼과 기근과 전염병에서 벗어나게 하신 은혜를 베푸신 것도, 남은 자들이 자신들이 한 일을 자백하는 (회개하는) 모습을 이방인들로 보게하여 그들에게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시기 위함이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심판을 통해서 백성들에게, 은혜를 통해서 이방인들에게 하나님이신 줄 알리신다. 심판과 은혜를 통해서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음. 이제는 말과 혀로는 안통한다. 진실한 행동이 필요하다. 특별히 교회에서 가르치는 위치에 있는 사람들에게 더욱 그러하다. 하물며 선교지에서의 삶이랴.

에스겔 11:14-25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한다. 예루살렘에 남아 있는 사람들이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사람들에게 ‘너희는 하나님에게서 멀리 떠나라 예루살렘은 이제 포로로 잡혀가지 않고 남은 자들에게 주어진 것이다’ 라고 주장한다고 하신다. 그러나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내가 비록 그들을 멀리 이방인 가운데로 쫓아내어 여러나라에 흩었으나 그들이 도달한 나라들에게 내가 잠깐 그들에게 성소가 되라라’ 라고 전하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잠깐 (즉 포로로 흩어져 있는 동안) 그들에게 성소가 되시겠다고 하신다. 임마누엘이다. 즉 성소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다. 성전에 하나님께서 머무시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는 곳이 성소다. // 교회당이냐 아니냐가 중요하지 않다. 흩어진 가나안 성도들에게도 성소가 되어주신다.

또 하나님께서 ‘내가 너희를 만민 가운데에서 모으며 너희를 흩은 여러나라 가운데에서 모아 내고 이스라엘 땅을 너희에게 주리라’ 라는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회복에 대한 분명한 메시지다. 그런데 회복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땅을 다시 차지하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 땅에 있는 모든 미운 물건과 모든 가증한 것들을 제거하여 버리는 것이다. 대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한마음, 새 영으로 돌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으로 하나님의 율례를 따르며 하나님의 규례를 지켜 행하는 것이다. 순종하는 자가 하나님의 백성이되고 순종하는 자들의 하나님이 되신다고 선언하신다. 한편으로 미운것과 가증한 것을 마음으로 따르는 자는 하나님께서 그 행위대로 갚으시겠다고 하신다. // 교회당에 남겨진 성도나 가나안성도나 그 행위대로 심판받는다. 성령에 이끌리어 순종해야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가는 것이다.

에스겔은 그룹들이 (네 생물이) 날개치며 하나님께서 영광가운데 하시는 음성을 듣는다. 하나님의 영광은 예루살렘에서 떠올라 성읍 동쪽 산위에 머물렀고 에스겔은 주의 영에 이끌리어 예루살렘에서 환상을 다본 후에 다시 갈대아에 있는 사로잡힌 자 중에 돌아왔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모든 일을 말했다. // 에스겔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감없이 전했을 것이다. 심판의 두려움과 회복의 소망이 교차되었을 것이다. 포로지에서 하나님께서 친히 성소가 되어주신다는 말씀은 힘든 이 세상에서도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신다는 위로의 메시지다. 성령에 이끌리어 순종하라.

에스겔 11:1-13

주의 영이 에스겔을 들어올려서. 하나님께서는 끊임없이 에스겔을 성령으로 이끄신다. 이번에는 성전 동문에 있는 고관 스물다섯 명의 작태를 들려주신다.

백성의 고관들을 불의를 품고 성중에서 악한 꾀를 꾸미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들은 (새)집을 지을 필요가 없고, 즉 집은 이미 잘 지어 놓았으니 성 안의 백성들을 착취하여 뒤룩뒤룩 살찌자고 서로 말하고 있었다. 예루살렘 성이 자신들이 압제하고 착취할 가마솥이요, 백성들은 자신들의 탐욕을 채울 고기가 된다고 속삭인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에게 이들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하라고 명하신다.

하나님의 영이 에스겔에게 임하여 불법을 행하는 고관들에게 예언할 하나님의 말씀을 친히 알려 주셨다. 하나님께서는 고관들의 탐욕스럽고 불법이 가득한 마음을 다 아신다고 책망하게 하신다. 예루살렘 성읍에서 애꿎은 백성들을 많이 죽여 그 거리를 시체로 채웠다고 하신다. 그들이 죽인 시체가 너희들이 생각하는 고기라고 정곡을 찌르신다. 예루살렘 성읍을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는 가마라고 생각하는 모양인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예루살렘에서 끌려 나오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고관들은 예루살렘은 멸망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하나님께서 (혹은 성전이) 가마솥의 솥두껑이 되어 주실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니 고관들에게 이스라엘에서 이보다 더 좋은 압제와 착취의 성읍이 어디 있으랴. 하나님께서는 계속해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하나님을 (성전을) 솥두껑처럼 의지하여 너희가 두려워 하는 칼을 피하려고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이방나라를 사용하셔서) 칼로 치시겠다고 하신다. 그들을 타국인의 손에 넘겨 하나님의 벌을 받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탐욕으로 백성들을 압제하고 착취한 고관들의 결국은 칼에 엎드려 질것이다. 아마도 이들은 포로로 잡혀가다가 변경에서 죽을 것이다. 그러니 지금 살아 있을 때 하나님을 알라고 하신다. (불순종하면 죽을 때 심판의 하나님만 알게될 것이다.)

고관들은 예루살렘 성을 가마로 삼고 백성들을 착취하여 뒤룩뒤룩 자신들의 탐욕을 채우고자 불법을 꾀하나 그렇게 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제발 내가 하나님이신줄 알라고 하신다. 왜 하나님의 율례를 행하지 않고 규례를 지키지 않으며 오히려 이방인의 규례대로 행하느냐고 책망하신다. (불순종의 백성들에게 평안이 아니라 심판을 통해 하나님을 계시하신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예언할 때 고관 중의 한 명인 브나야의 아들 블라댜가 죽었다. 에스겔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다 멸절하고자 하시나이까 하고 부르짖었다. “하나님, 하나님의 백성을 남겨두소서.”

// 바벨론의 속국이 되어버린 상황에서도 고관들은 마지막까지 자신들의 배를 채우고자 했다.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것이 정의와 사랑과 임마누엘이라는 것을 잊어버렸다. 아니 모른채했다. 하나님도 이들을 모른채 하실 것이다.

에스겔 10 (1-22)

가는 베옷을 입은 자가 돌아와서 하나님께서 명령하신대로 다 행하였다고 보고한 후에 에스겔은 그룹들 위에 있는 보좌의 형상을 본다. 에스겔이 처음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을 때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네 생물 네 바퀴의 환상과 비슷하다.

하나님께서는 가는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그룹 밑 바퀴 사이로 들어가 그속에서 숯불을 두 손에 가득히 움켜 가지고 성읍위에 흩으라고 하신다. 베옷을 입은 사람은 순종하여 바퀴 사이로 들어갔다.

그룹들은 성전 오른쪽에 있었다. 그곳에 있던 여호와의 영광이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자 안뜰에 가득했던 구름이 성전에 가득했고 하나님의 영광의 빛이 뜰에 가득함을 에스겔은 보았다. 그리고 그룹들이 날개치는 소리가 하나님의 말씀하시는 음성처럼 들렸다고 한다.

이번에는 하나님께서 베옷을 입은 사람에게 바퀴들 (그룹들) 사이에 있는 불을 가져가라 하신다. 그룹들이 그 사람에게 불을 집어 주자 그는 불을 받아가지고 나갔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보았던 환상을 다시본다. 네 생물과 네 바퀴위 보좌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그룹에서 올라와 성전 문지방에 이르러 성전에 하나님의 영화로운 광채로 가득채우셨는데 (4) 다시 하나님의 영광이 성전 문지방을 떠나 그룹들 위에 머무르신다.(18)

하나님의 영광은 네생물 네바퀴가 (그룹들이) 나아가는 곳에 덮였다. 하나님의 영광은 사람이 세운 성전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그룹들 위에 머문다. 하나님의 음성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음성을 날개치는 소리로 스피커처럼 증폭시켜 전하는 그룹들 위 보좌에 거하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순종하는 백성들과 함께 하신다. #임마누엘. 순종하는 백성들 위에 하나님의 영광으로 거하신다.

에스겔 9 (1-11)

하나님은 계속해서 환상을 통해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큰 소리로 예루살렘을 관할하는 (심판에 따른 벌을 집행할) 자들에게 죽이는 무기를 (사형도구를) 가지고 나오라고 명하신다. 그러자 여섯 사람이 사형도구를 가지고 나왔다. 그런데 그 중 한사람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물통(잉크병)을 차고 (성전에) 들어와서 놋제단 곁에 섰다. 하나님께서 영광중에 가는 베 옷을 입고 먹물통을 찬 사람에게는 벌을 집행하는 대신 예루살렘을 두루다니며 가증한 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를 그리라고 하셨다. 나머지 다섯에게는 성전에서 지작하여 성읍 중에 다니며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자비와 긍휼을 베풀지 말고 치라고 (사형을 집행하라고) 명하신다. 다만 이마에 표가 있는 사람은 건딜지 말라고 하신다. 벌을 집행하도록 부름을 받은 자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하나님님의 벌을 집행하기 시작했다.

하나님께서 성전에 시체를 채워 더럽히라고 하신다. 우상을 섬기고 이방신의 제사에 참여하고 태양신을 향해 절하며 탐욕으로 불법을 행하는 자들의 성전은 산당과 마찬가지 운명이다. 하나님께서 거하실 수 없는 불법이 판치는 곳은 산당과 다를바 없다고 하시는 것이다.

에스겔이 엎드려 부르짖었다. 이스라엘의 남은 자를 모두 멸하시려 하시나이까? 하나님은 단호하시다. 이스라엘과 유다중에 죄악이 심히 중하다고 하신다. 예루살렘부터 유혈낭자하고 불법이 가득하다고 하신다. 어리석은 사람들처럼 대놓고 하나님이 어디 있느냐고 말한다고 하신다. 이런 자들에게 어찌 자비와 긍휼을 베풀겠느냐고 하신다. 그들의 행위대로 갚으신다고 하신다. 오직 한줄기 복음의 빛은 가는 베옷을 입고 허리에 먹물통을 찬 사람으로부터 이마에 표를 받는 것이다. 이 사람이 돌아와 주께서 내게 명령하신대로 내가 준행했다고 보고한다. 얼마나 적었으면 벌써 임무를 마쳤을까? 그만큼 남은 자는 적었다는 뜻이 아닐까?

예수님은 말씀하셨다. “슬퍼하는 사람은 복이 있다. 하늘나라가 그들의 것이다.” 이마에 표을 받은 사람들은 애통하는 자들이다. 불법을 행하는 자들로 말미암아 신음하는 사람들이다. 불법이 자행되는 것으로 탄식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에게는 하나님나라가 주어진다.

나의 탐심을 따라 불법을 자행하는 자들의 편에 설 것인가? 아니면 애통하는 자들의 편에 설 것인가? 답은 분명하다. 하나님나라는 애통하는 자들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