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스겔 4 (1-17)

에스겔은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 왔으나 당시 예루살렘에는 아직 시드기야 왕이 있었다. 포로로 잡혀왔지만 유다(이스라엘) 백성들은 아마도 하나님의 성전이 있는 예루살렘은 예레미야의 예언과 달리 완전히 함락되지는 않을 것이라는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었을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예루살렘의 운명을 토판을 가져다 놓고 시연해 보이셨다. 예루살렘 모형을 철판으로 완전히 에워싸 에스겔과 분리되듯 예루살렘도 하나님과 완전히 분리될 수 있음을 징조로 보여주신다. (//하나님과의 완전한 분리는 곧 함락을 의미한다.)

파수꾼으로 부름을 받은 에스겔은 선지자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할뿐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적으로 살아내야 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이스라엘 족속이 범죄한 햇수 390년을 날수로 계산하여 390일동안 왼쪽으로만 누워지내라고 하신다. 그리고 390일이 차거든 이번에는 오른쪽으로 40일을 누워 유다의 죄악을 담당하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또 얼굴을 포위당한 예루살렘 쪽으로 향하고 팔을 걷어 올리고 예언하라고 하신다. 심지어 예루살렘이 포위당한 것처럼 에스겔을 줄로 동여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까지?) 에스겔로 하여금 꼼짝 못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불순종은 누워있어도 죄악에 얽매인 삶이다.)

하나님께서는 390일동안 하루 이십세겔정도의 (하루 한끼정도 될까?) 밀과 보리와 콩과 팥과 조와 귀로 만든 빵을 먹고 물도 먹을 양을 정해 주셨다. 빵을 인분 불에 구워먹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포로로 잡혀 온 이스라엘 백성들도 이같이 부정한 떡을 먹을 것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라고 하시는 것이다. 여기서 에스겔이 하나님께 간청한다. 에스겔은 자신은 먹을 것으로 영혼을 더럽힌 일이 없었는데 어찌 인분으로 (인분은 하나님께 가증한 것으로 취급되었다.) 떡을 구워먹을 수 있겠느냐고 항변한 것이다. 하나님께서는 에스겔의 간청을 들으시고 인분대신 쇠똥을 사용하여 떡을 구울 수 있게 해 주셨다. (//죄악은 먹을 것도 마실 것도 부족한 삶이다.)

하나님은 예루살렘 성에서도 양식이 끊어지고 물이부족하여 결국 함락될 것이라고 예언하신다. 에스겔처럼 포위 된 예루살렘에서도 떡을 달아먹고 물을 되어 마시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떡과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것이며, 곧 하나님께 범죄했다는 것을 의미할 것이다. 그렇다 쇠패하는 이유는 단 하나다. 죄악중에 거하기 때문이다. 죄악중에 거하는 자는 말라 죽고 말것이다.

// 에스겔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죄악 중에 거하는 이스라엘의 운명을 살아내야 했다. 파수꾼의 삶이다. 악인과 공의를 떠난 의인을 깨우쳐주는 삶을 살아야 했다. 하나님과 단절된 예루살렘은 함락될 것이다. 좌로 누워지내든 우로 누워지내든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은 지난 삶은 죄에 얽매인 삶이다. 떡과 물이 부족하다는 것은 결국 만나를 내려주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을 의뢰하지 않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단절된 이런 자들은 쇠패한다 (말라 죽는다).
파수꾼의 사명을 받은 에스겔은 말이 아니라 삶으로 이스라엘이 쇠패할 것을 삶으로 살아내야 했다. 평화의 삶이면 좋았으련만 하필이면 결박과 굶주림의 쇠패를 살아내라고 하시니.ㅠㅠ 그래도 순종해야 살아 남는다

 

에스겔 3:16-27

에스겔은 주의 영에 이끌리어 포로로 바벨론에 잡혀와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나아왔으나 7일동안 그들중에 두려워 떨며 지내야 했다. (이런 에스겔에게 어떤 하나님의 위로가 임할까 기대하면서…)

칠 일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에스겔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은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명하신 파수꾼의 역할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 대신하여 동족 이스라엘 족속을 깨우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악인에게 너는 죽을 것이라고 말하시면 파수꾼은 그 악인을 깨우치거나 악인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서 그 악인이 악한 길을 떠나 생명을 구원하도록 해야한다. 만약 파수꾼이 그 악인을 깨우치거나 말로 악인에게 전하지 않으면 그 악인은 자신의 죄로 죽지만 하나님께서 그의 피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으실 것이라고 하신다. 파수꾼이 악인을 깨우쳤는데도 그 악인이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키지 않으면 그 악인의 자신의 죄악 중에서 죽을 것이고 파수꾼은 자신의 생명을 보존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파수꾼은 의인에게도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야 한다. 의인도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것이라고 하신다. 의인이 돌이켜 악을 행하면 이미 행한 의인의 공의는 기억할 바가 아니라고 하신다. 하나님께서는 파수꾼이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하는 의인을 깨우쳐주지 않으면 그 의인에게 거치는 것을 두어 의인을 죽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그리고 그 피값을 파수꾼의 손에서 찾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만약 파수꾼이 공의에서 돌이킨 의인을 깨우쳐 그로 범죄하지 않게 하면 그도 살 것이요 파수꾼도 영혼을 보존할 것이라고 하신다.

// 악인이라도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킬 수 있으며 의인이라도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할 수 있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죄중에서 죽는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깨우쳐 범죄하지 않아야 산다.

하나님은 에스겔이 처음 환상을 본 그발 강가 한적한 들로 에스겔을 이끄셔서 그곳에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신다. 에스겔이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일어나 들로 나아갔을 때 하나님의 영광을 보았다. 말씀 앞에 서는 것은 곧 하나님의 영광 앞에 서는 것이리라. 에스겔은 하나님의 영광의 광채 앞에 엎드렸다. 또다시 주의 영이 에스겔을 일으켜 세워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한다. 이번에는 에스겔에게 집에 들어가 은둔하라고 하신다. (은둔하지 않으면) 무리들이 에스겔이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가둬둘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친히 에스겔이 패역한 족속에게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지 못하도록 말못하는 자가 되게 하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께서 (다시) 말씀을 전하도록 에스겔의 입을 열어주실 때가 올 것이라고 하신다. 그때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치라고 하신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듣기 싫은 자는 듣지 않을 것이다. (반역하는 족속임에도 듣는 자가 있다는 것은 희망적이다.)

// 칠일동안 두려워 떨며 지낸 에스겔에게 파수꾼의 사명을 주신다. 그것도 파수꾼의 사명을 다하지 않으면 네 손에서 피값을 찾으시겠다는 (위로와 격려가 아닌) 저주에 가까운 말씀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영광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곧 위로와 격려일 것이다. 들을 자는 들을 것이요. 평생 주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되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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칠 일 후에 하나님의 말씀이 두려움에 떨며 지내던 에스겔에게 임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이스라엘 족속의 파수꾼으로 세웠다고 하신다. 핵심은 분명하다. 악인이든 의인이든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우침을 받고 악한 길, 곧 악한 마음과 악한 행위에서 돌이켜 범죄하지 아니하면 ‘정녕’살고 악인이든 의인이든 깨우침을 받지 않으면 죄악중에서 죽는다. 파수꾼은 악인과 공의에서 돌이켜 악을 행하는 의인을 깨우쳐야 생명(영혼)을 보존할 수 있다. 만약 파수꾼이 저들을 깨우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죄 중에 죽은 그들의 피값을 파수꾼에게서 찾는다고 하신다.
악인으든 의인이든 파수꾼이든 말씀에 순종해야 산다

 

에스겔 3:1-15

에스겔이 발견한 두루마리 책에는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글이 안팍으로 가득했다. 하나님은 에스겔을 ‘너 사람아’라고 부르시며 두루마리 책을 먹고, 가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두루마리책에 기록된 것을) 말하라고 명하셨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도 살아야 한다.)

에스겔은 입을 벌렸고 하나님은 그 두루마리의 말씀을 떠먹여 주셨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얼마나 썼을까? 그러나 하나님은 두루마리의 말씀을 입에서 토해내지 말고 배에 넣으며 창자에 채우라고 하셨다. 에스겔은 받아 먹었다. 순종해서 받아 먹으니 두루마리 말씀이 입에서도 꿀같이 달았다고 에스겔은 고백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 먹었다는 것은 말씀을 자기 것으로 소화했다는 뜻이다. 즉 말씀을 이해했다는 뜻이다. 그것도 배부르게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했다. (더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은 이해가 되지 않아도 먹어야 하고 순종해야 한다.) 하나님은 이제 이스라엘 족속에게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대언하라고 명하셨다. 에스겔은 자신이 이해한 하나님의 말씀을 다른 민족의 언어로 번역해서 전할 필요가 없었다. 동족 이스라엘 족속에게 전하면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부르게 먹고 소화시켰으니 자기 민족의 언어로 잘 전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오히려 언어가 다르거나 말이 어려운 이방 나라에 에스겔이 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다면 그들은 정녕 에스겔의 말을 들었을 것이라고 하신다. 반대로 이스라엘 족속은 충분히, 아니 완벽하게 이해할 수 있는 말을 듣고도 이마가 굳고 마음이 굳어 에스겔의 말을 듣고자 아니할 것이라고 하신다. 철면피를 하고 아예 듣고자 하지도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얼굴을 더 두껍게 하여 이스라엘 족속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들의 얼굴을 무서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부끄러워 하지 말라고 하시는 것이다. (바울은 복음을 부끄러워 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했다.)

하나님은 다시한번 에스겔에게 강조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귀로 들으라고. 그리고 나서 포로중인 이스라엘 민족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셨다. 에스겔은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영광의 보좌에서 들리는 크게 울리는 소리를 들었다. 네 생물들이 날개를 서로 부딪히며, 네 생물들 곁의 바퀴가 굴리며 소리를 증폭해서 들려주었다. “찬송할지어다 하나님의 영광이 하늘 보자로부터 나오는도다.” 그러나 에스겔은 성령에 사로잡혀서 하늘보좌로부터 나오는 소리를 들으면서도 두렵고 떨렸다. 그러나 하나님의 권능의 힘이 에스겔을 감동시켰다. 에스겔은 순종하여 포로가 된 이스라엘 백성, 그발 강가에 거주하는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러 갔다. 처음 일주일동안 에스겔은 그들 가운데서 아무것도 하지 못한채 두려워 떨며 지내야 했다. 성령으로 이끌려 보냄을 받았지만 에스겔은 두려워 떨었다고 고백한다.

마음의 귀를 열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가. 말씀을 먹으라고 하신다. 그것도 하나님께서 말씀을 떠먹여 주시고 보혜사 성령께서 소화까지 시켜주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철면피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일이다. 하나님께서는 어떻게 에스겔을 위로하시고 힘을 불어넣어 주실까?

에스겔 2 (1-10)

하나님은 말씀하시고 에스겔은 듣는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일어나서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사람이 어찌 하나님의 말씀을 온전히 이해할 수 있으랴. 하나님은 성령으로 에스겔과 함께 하사 에스겔을 일으켜 세우시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하신다.

하나님은 바벨론 땅에 포로로 잡혀온 이스라엘 백성, 곧 패역한 백성, 하나님을 배반한 백성을 향해 에스겔을 통해 말씀하신다. 여전히 이스라엘 백성이 조상들처럼 하나님께 범죄한 상태라고 선언하신다. 얼굴이 뻔뻔하여 부끄러움을 모르는 백성이요 마음도 굳은 자들이라고 하신다. 이런 자들에게 하나님은 에스겔을 보내셔서 말씀하신다. 그들이 패역한 족속이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든지 아니 듣든지 적어도 하나님께서 선지자를 통해 여전히 말씀하시고 계시다는 것을 알리라고 하신다.

(이렇듯) 선지자의 삶은 쉽지 않다. 가시와 찔레와 함께 하는 삶이요 전갈 가운데 거주하는 삶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가시와 찔레 전갈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그들의 대꾸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패역한 족속의 말도, 그들의 뻔뻔한 얼굴도 두려워말라고 하신다. 다만 그들이 듣든지 아니 듣든지 하나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신다. (우리가 두려워해야 할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의 말씀이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패역한 족속 같이 패역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오히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말씀을 먼저 받아 먹으라고 하신다. 하나님은 손을 에스겔을 향해 펴시고 말씀의 두루마리를 펴보이신다. (패역한 족속을 향한)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 기록되었다고 한다. 그것도 안팍으로 (빼곡하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 기록되었다.

// 패역한 자들에게 주어진 말씀은 위로와 용서의 말씀이 아니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이다. 다시말해 회개를 촉구하는 말씀이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뜻대로 하는 근심을 하게 해서 구원에 이르게 하는 말씀이다. 바울은 고린도후서 7장에서 다음과 같이 쓴다.

“내가 그 편지로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더라도, 나는 후회하지 않습니다. 그 편지가 잠시나마 여러분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는 것을 알고서 후회하기는 하였지만, 지금은 기뻐합니다. 그것은 여러분이 아픔을 당했기 때문이 아니라, 아픔을 당함으로써 회개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이 하나님의 뜻에 맞게 아파하였으니, 결국 여러분은 우리로 말미암아 손해를 본 것은 없습니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하는 것은, 회개를 하게 하여 구원에 이르게 하므로, 후회할 것이 없습니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합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의 뜻에 맞게 마음 아파함으로써 여러분에게 얼마나 많은 변화가 일어났습니까! 여러분이 나타낸 그 열성, 그 변호, 그 의분, 그 두려워하는 마음, 그 그리워하는 마음, 그 열정, 그 응징은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여러분은 그 모든 일에 잘못이 없음을 보여주었습니다.” (고후 7:8-11 새번역)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은 하나님의 뜻에 맞게 우리 마음을 아프게 하겠지만 구원에 이르게 한다. 그러나 세상 일로 마음을 아파하는 것은 죽음에 이르게 한다.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이라도 은혜의 말씀인 것이다. 복음인 것이다. 세상복만 떠드는 것이 오히려 재앙이다. 오늘 한국교회가 직면한 문제이기도 하다. 선지자도 선교사도 안팍으로 빼곡히 적힌 애가와 애곡과 재앙의 말씀을 복음으로 전해야 한다. 쉽지 않다.

 

 

에스겔 1:15-28

네 생물은 영의 움직임에 따라 번개 모양같이 (빠르게) 왕래했다. (14) 에스겔은 네 생물이 번개처럼 빨리 움직일 수 있는 이유를 바로 네 생물에 달려 있는 바퀴라고 설명한다. 도무지 연상이 되지 않는다. 네 생물 옆 바닥에 바퀴가 달려있다고 하는데… 곧은 다리에 달린 것도 발바닥에 달린 것도 아니고 머릿속에 깨끗하게 그려지지 않는다. 구조도 바퀴 안에 바퀴가 들어있는 것 같다고 하는데… 하여간 어느 방향으로 움직여도 방향을 돌이키지 않고도 갈 수 있는 구조라고 한다. 또 높은 바퀴 둘레가 무엇을 가리키는지도 그 모양이 분명하게 떠오르지 않는다. 둘레가 높고 무섭고 눈이 가득하다는 묘사를 어찌 이해할꼬. 네 바퀴는 네 생물이 타고 다니던 킥보드였나. 생물이 나아가면 바퀴들도 나아갔고 생물이 점프하면 바퀴도 점프했다고 한다. (아뭏든 중요한 것은) 네 생물은 영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고 네 바퀴는 네 생물의 움직임에 따라 움직였다. 결국  네 바퀴, 네 생물은 가운데 임재하는 영에 의해 움직였다.

에스겔은 네 생물의 머리 위에 있는 궁창(하늘)의 형상을 보았다. 하늘은 눈이 상할까봐 보기 두려울 정도로 (눈이 부시도록) 수정같이 환하게 빛났다고 한다. 수정 같이 환한 하늘 밑에서 네 생물은 두 날개 서로를 향해 펴고 나머지 두 날개는 자신들의 몸을 가렸다. 네 생물이 움직일 때 날개(치는) 소리가 많은 물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하나님의 음성같았다고 한다. 보좌위에서 그 소리가 들렸다고 한다. 그러다가 멈출 때에는 날개를 접었다고 한다. (날개를 치는 것은 날기 위해서가, 즉 움직이기 위해서가 아니다. 날개짓에 의해서가 아니라 네 바퀴로 굴러간다.) 또 날개치는 소리, 많은 물소리는 네 생물의 찬양소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이다. 따라서 날개치는 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증폭하는 스피커의 역할이다.

네 생물 머리 위에 있는 궁창 위에는 보좌의 형상이 있다고 한다. 이곳으로부터 음성이 들렸다. 그리고 그 보좌의 형상위에 한 사람의 형상이 있다고  한다. 사람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았으니 그 보좌위의 형상은 분명 하나님의 형상일 것이다. 그러나 영이신 하나님을 온전히 볼 수는 없다. 상반신도 그 속과 주위가 불같고 하반신도 불꽃속에 있으며 그 광채가 사방으로 빛났다고 한다. 그 광채를 무지개 같다고 한다. 무지개는 하나님의 약속을 상징한다. 그래서 에스겔도 무지개 같은 광채를 하나님의 영광의 형상이라고 이해했다. 에스겔은 하나님 앞에 엎드려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다.

// 하늘 보좌 위에서 많은 물소리로 말씀하시는 하나님. 하나님 보좌에 있는 네 생물은 일사불란하게 하나님의 음성, 곧 하나님의 말씀을 따라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인다. (많은 물소리는 네생물의 찬양소리가 아니다. 하나님의 음성을 증폭해서 들려주는 스피커 소리다.) 네 생물은 하나님의 뜻에 따라 번개처럼 빠르게 움직일 수 있도록 네 바퀴까지 옆에 항상 대기 시켜두었다. 하늘에서는 주님의 뜻이 이처럼 완벽하게 이루어진다. 주님은 이땅에서도 성도들이 번개처럼 빠르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기를 원하신다. 에스겔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빠르고 온전한 순종을 기대하심을 ‘네 생물과 네 바퀴 가운데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의 환상’을 통해 보여주셨다. 나에게도 에스겔처럼 엎드려 (겸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라고 하신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깨닫게 하심에 순종하라고 하신다. (말씀과 성령의 깨닫게 하심이 우리에게 주어진 네 생물과 네바퀴가 아닐까?)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 하나님이 우리의 순종을 위해 중보하신다. 나에게는 희미한 환상이 아니라 말씀이 가르쳐 주는 좀 더 분명한 진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