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브리서 5:11-6:8

히브리서 저자는 ‘큰’ 대제사장이신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계보를 잇는다고 말했다. 멜기세덱이 누구인가? 1차독자들은 당연히 ‘멜기세덱’이라는 이름만 들으면 잘 알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독자들의 반응에, 독자들을 생각하고)히브리서 저자는 주춤한다. 멜기세덱에 관하여 설명하기가 쉽지 않다고 한다. ‘멜기세덱’ 이름의 뜻은 ‘의의 왕’이다. 쉽게 생각하면 ‘의로우신 하나님’이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것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 숨을 고르다가 결국 하나님의 말씀의 초보에 머물러 있는 독자들을 책망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선생이 되어있어야 할 독자들이 여전히 초보에 머물러 가르침을 받아야 할 처지로 단단한 음식은 못먹고 (신령한) 젖을 여전히 먹어야 하는자가 된 것을 책망한다. 젖을 먹는 자는 의의 말씀, 즉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하지 못한 자다. 침대에 누워 베드타임 스토리를 듣는 아이들처럼 상상의 나래를 펼 수는 있어도 현실에 적용할 수는 없다. 단단한 음식을 먹어야 지각을 사용하고 연단을 받아 현실에서 선악을 분별할 수 있게 된다. 히브리서 기자는 ‘예수 믿으면 구원받는다’라는 말만 붙드는 그리스도 도의 초보를 버리라고 권면한다. 행함이 없는 믿음을 (죽은 행실을) 회개하라고 한다. 하나님을 믿고 세례받고 안수받고 부활을 소망하고 심판이 있음을 상상속의 이야기로 가둬놓지 말고 현실 삶에 적용하는 완전한 데로 나아가라고 명한다. 우리로 실천하라고 (들은 말씀은 실천하라고) 하나님께서 허락(인정) 하셨다.

말씀의 조명을 받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의 도우심과 깨닫게 하심을 알아 하나님의 선한 말씀의 능력과 새로운 세상, 즉 하나님나라의 능력을 맛보고도 타락한 (하나님께 불순종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되어 회개할 수 없다고 경고한다. 이런 자들에게는 ‘성도의 견인’이 해당되지 않는다. 왜냐하면 이들은 성자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계보를 잇는 ‘큰’대제사장으로 인정하지 않고 다시 제사를 드려달라고 그리스도를 모욕을 하는 자들이기 때문이다.

성도들은 하늘의 단비를 흡수하여 합당한 채소를 내어야 하는 사람들이다. 하늘의 단비를 맞고도 우리 마음속에 있는 더러운 것으로 가시와 엉겅퀴를 내면 버림을 당할 수 밖에 없다. 우리 속에 있는 더러움으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한다면 버림을 당하고 저주를 받고 불살라지게 될 것이다.

하늘에 계신 성부 하나님의 뜻대로 하지 않는 자들에게는 (말씀을 듣기만 하고 내 멋대로 하는 자들에게는)  “내가 너희를 도무지 알지 못하니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라는 예수님의 심판이 기다리고 있다.

두렵다.

히브리서 4:14-5:10

우리는 아직 (여전히, 영원히) 안식을 누려야 한다. 그러므로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대제사장, 그것도 큰 대제사장이 계시다고 소개한다. 이 큰 대제사장이 성자 예수시다. 성부 하나님의 아들 성자 예수에 대한 신앙이 우리 믿음의 도리다.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에게 있는 ‘큰’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신다고 소개한다. 그냥 머리로 아는 것이 아니라 우리와 (똑)같이 연약하셔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를 짓지는 않으셨다고 한다. 성부 하나님과 어긋남이 없으셨다. 성부하나님과 엇박자를 낸적이 없으셨다. 다시말해 온전히 순종하셨다.

대제사장은 일년에 한번 온 이스라엘을 위해 속죄제를 드린다. 이 속죄제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 나아가 개인적인 속죄제를 드릴 자격을 얻는다. 쉽게 말하면 하나님의 백성 년회원권을 갱신하는 것이다. 그런데 히브리서 저자는 우리(독자)는 긍휼하심을 받고 평생회원권을 가졌으니 은혜의 보좌앞에 담대히 나아가라고 권면한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은 평생회원권을 주시는 분이시다.)

대제사장은 사람가운데 선택을 받아 하나님의 백성을 위하여 제사를 드리는 직무를 맡았지만 자신도 연약하기 때문에 백성을 위해 속죄제를 드림같이 자기 자신을 위해서도 속죄제들 마땅히 드려야 한다. 물론 속죄제를 드릴 수 있는 영예로운 직무는 아무 사람들 가운데서 택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아론의 자손들에게 주어졌다.

우리의 ‘큰’ 대제사장 그리스도 예수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자다. 그러나 예수님은 아론의 자손이셔서 대제사장으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것이 아니시다. 히브리스 저자는 성자 예수님은 멜기세덱의 계보를 따르는 제사장이라고 설명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성자 예수님을 멜기세덱의 계보를 잇는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하면서 굳이 멜기세덱에 대해 따로 설명하지는 않는다. 1차독자들은 ‘멜기세덱’하면 바로 알아차렸을 것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예수님을 멜기세덱 계보를 잇는 ‘큰’ 대제사장이라고 하면서 사람의 모양으로 오신 성자 예수님께서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성부 하나님께 통곡과 눈물로 기도하셨고 성부하나님께서는 성자 하나님의 경건을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경외를) 보시고 성자 예수님의 기도를 들어주셨다고 말한다. 성자 예수님은 이렇게 고난을 통해 성부 하나님께 복종하는 것을 배우셨고 성부 하나님의 뜻에 온전한 순종을 하심으로 성자 예수님께 순종하는 모든 사람들에게 영원한 구세주가 되어주셨다. 다시말해 순종의 본을 보여주셨다. 따라서 구원은 순종을 통해 이뤄진다. 순종이 믿음이라는 것이다. 이것이 멜기세덱의 계보를 따른 ‘큰’ 대제사장 직분이라고 하신다. 일년마다 갱신해야 하는 회원권이 아니라 평생회원권 영원회원권을 주신다. 그렇다고 회원권을 박탈당하지 않는다는 법이 있는 것은 아니다. 회원자격을 유지해야 한다. 이미 주어진 안식을 누려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히브리서 4:1-13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3:12)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해야 한다. 안식에 들어갈 약속이 남아 있어도 안식에 이르지 못할자가 있다고 한다. 복음을 전함을 받았어도 들은 말씀(약속)을 믿음과 결부시키지 않으면 말씀(약속)이 소용이 없다. 이미 믿는 (약속을 받은) 히브리서 저자와 독자들은 창조때부터 있는 안식에 들어간 자들이다. 그러니 안식은 약속이다. 따라서 안식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은 약속을 끝까지 지키지 못한다는 의미가 담겨있다. (약속이 무효가 된다는 것이다. 당근 계약파기의 책임은 지키지 않은 사람 몫이다.) 히브리서 저자는 그들이 (복음을 전해 받았지만) 불순종으로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오지 못한다고 한다. 안식은 일회성으로 주어진 것이 아니다. 안식은 진행형이다. 예로 여호수아 때 가나안에 들어간 것이 안식이라면 다윗 때에 다시 안식을 언급을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라고 한다. 안식은 하나님 앞에서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는 것이다. 다시말해 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이 사귐이 영원히 지속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다. 이미 이 영원히 지속되는 안식에 들어간 자들도 있다. 그들은 하나님과 안식을 누린다. 그래서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과 영원히 누리는 ‘이’ 안식에 들어가기를 힘쓰라고 권면한다. 순종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은, 약속은 살아있다. 하나님과의 약속은 두루뭉실하지 않다. 약속 한조항 한조항은 예리한 칼처럼 우리의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를 파헤치고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을 판단한다. 우리의 일거수일투족이 하나님 앞에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게 된다. 이렇게 우리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을 것이다. 심판대 앞에선 우리에게 주님은 우리를 안다고 하실 수도 우리를 도무지 알지 못한다고 하시면서 불법을 행하는 자들아 내게서 떠나가라 하실 수도 있다. 두려워해야 한다.

안식은 진행형이다. 오늘도 하나님과의 약속을 지켜야할 이유다. 성도의 견인은 순종하(려)는 자에게 주어지는 은혜다. 마음이 완고한 자들에게는 해당되지 않는다.

히브리서 3:7-19

히브리서 저자는 7절에서 성령께서는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광야에서 시험하던 날에 거역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지 말라고 권면한다. 그리고 15절에 성경에 일렀으되 오늘 너희가 그의 음성을 듣거든 격노하시게 하던 것 같이 너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라고 한번 더 권면한다. 성령하나님을 통해, 성경말씀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때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말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시험하여 원망과 불평으로 가득했던 이스라엘 조상들의 예를 든다. 하나님의 말씀을 신뢰하지 (믿지) 않는 것이 곧 악한 마음이요, 악한 마음을 품으면 곧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진다고 경고한다. 그래서 오늘 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피차 권면하여 죄의 유혹으로 완고하게 되지 않도록 하라고 권면한다. 이것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할 성도의 삶이다. 성전이신 그리스도께 참여하여 성전의 지체로 지어져 가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은 하나님을 거역하는 것이요 곧 하나님을 격노하시게 한다. 원망과 불평이 곧 우리 마음을 완고하게 하는 것이다. 히브리서저자는 출애굽의 은혜를 입은 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도 원망과 불평으로 하나님을 격노케 한 자들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광야 사십년동안 악한 마음을 품고 (범죄하여) 하나님을 격노케 한 그들이 광야에서 죽지 않았느냐고 반문한다.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순종하지 않아서 그들은 하나님의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냐고 반문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이로보건대 그들이 밎지 아니함으로 하나님을 격노케하고 범죄하고 불순종해서 안식에 들어가지 못한 것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출애굽의 은혜를 입었으면서도 범죄하고 불순종한 광야 이스라엘 백성들은 지리적으로 안식(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했다. 아니 이미 광야 생활에서부터 안식을 (하나님과의 사귐, 임마누엘을) 누리지 못했다. 참 안식은 지리적으로 시간적으로 이곳이 아닌 저곳에 있는 것이 아니다. 지리적으로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한 모세는 안식을 (하나님과의 사귐, 임마누엘을) 누리지 않았던가? 안식은 오늘 하나님의 음성을 듣거든 마음을 완고하게 하지 않고 순종함으로 누리는 것이다. 순종은 쉽지 않다. 예수 이름으로 두세사람이 모여서 기도로 순종할 힘을 구해야 한다. 이렇게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여 가야 한다. 성도로 부르심을 받았으면 영생을 누려야 (성령 안에서 성부 하나님을 알고 성자 예수님을 아는 임마누엘을 누려야) 한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 가운데에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서, 살아 계신 하나님을 떠나는 사람이 아무도 없도록, 여러분은 조심하십시오.” (12 새번역)

형제 여러분, 여러분 중에는 믿지 않는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 계신 하느님께로부터 떨어져 나가는 사람이 없도록 조심하십시오 (공동번역)

 

히브리서 2:10-3:6

창조주이시며 하나님나라를 다스리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구원받을 상속자들이 하나님나라의 시민이 되는 영광에 참여할 수 있도록 구원의 창시자, 곧 맏아들을 고난을 통하여 온전하게 하셨다.

구원의 창시자, 성자 예수님이 구원받을 상속자들을 거룩하게 하시고, 구원받을 상속자들은 거룩하게 함을 입는다. 모두 하나님에게서 난 자들이다. (그러므로) 서로 형제다. 예수님은 성도를 형제라 부르시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신다. 우리도 서로를 형제라 부르기를 부끄러워하지 않아야 하는데…예수님은 형제들에게 (보이지 않는) 성부하나님을 선포하고 형제들 가운데서 성부하나님을 찬미하시는 분이시다. 형제들 가운데서 예수님은 성부하나님만을 따르겠다고 고백하신다. 그리고 형제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녀들이라고 말씀하셨다.

구원받을 상속자들인 형제들이 육신을 입고 사는 인생이기 때문에 예수님은 사람과 같이 피와 살을 가지고 이땅에 오셔서 죽으시고 부활하심으로 죽음의 세력을 잡은 자 곧 악마를 멸하셨다. 구원받을 상속자들, 곧 형제들이 더이상 죽음의 공포에 싸여 살지 않도록 해방(구원)시켜 주셨다. 예수님은 구원받을 상속자들, 즉 아브라함의 자손들이 구원을 받을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은 당신의 형제들 가운데 사람의 모양으로 오셨다. 그래서 성부하나님의 자비롭고 진실한 대제사장이 되셔서 백성들, 형제들의 죄를 대신 갚아 주셨다. 예수님은 사람과 같이 되셨고, 사람의 모양으로 이땅에 오셔서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순종하셔서 십자가에 죽는 시험과 고난을 당하셨다. 그래서 시험(고난과 박해를)받는 자들을 능히 도우실 수 있다.

히브리서 저자는 독자들을 함께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거룩한 형제들이라고 부른다. 그리고 구원의 창시자이신 예수를 우리가 믿는 도리의 사도이시며 대제사장이라고 소개한다. 이 예수를 깊이 생각하라고 권면한다.

히브리서 저자는 하나님의 종된 모세와 비교해서 예수님은 하나님의 맏아들, 상속자라고 소개한다. 아니 창조주 하나님이시라고 소개한다. 하나님나라를 지으신 분이라고 소개한다. 그리고 우리가 끝까지 이 소망을 확신하고 이 소망을 자랑하면 우리가 ‘그의 집’이라고 (하나님나라의 지체라고) 선언한다. 성전이신 예수님과 성전을 이루어가는 지체가 된다.

성도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엡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