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21:18-30

하나님의 사자가 선지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주님을 위하여 제단을 쌓으라고 말씀하셨다.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 후에는 주님은 다윗에게 선지자 나단과 갓을 통하여 말씀하신다. 이전에는 다윗이 직접 묻고 직접 하나님 말씀을 들었던 것 같은데…)

갓을 통해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다윗은 말씀에 순종한다. 다윗은 오르난에게 가서 타작마당을 비용을 주고 사서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다. 하나님께서는 하늘로부터 번제단 위에 불을 내려 응답하셨다. 비로소 일단정지된 천사의 칼은 칼집에 다시 꽂혔다.

이때 다윗은 주님이 하늘에서 불을 내려 응답하신 여부스 사람 오르난의 타작마당에서 제사를 드렸다.  모세 때 지은 성막과 번제단이 기브온 산당에 있었으나 다윗이 여호와의 천사의 칼이 두려워 그곳에 가서 하나님께 묻지 못했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음. 다윗은 용서를 구하며 제사하려고 갓을 통한 하나님의 명령을 무시하고 전통이 있는기브온 산당으로 가려고 했을지 모르겠다. 하나님께로부터 직접 듣는 귀가 막혀버린 다윗이었지만 기브온에서 에봇을 입고 하나님께 물으면 직접 들을 수 있다고 생각했는지도 모르겠다.  (다윗의 비극은 온 이스라엘의 왕이 된후 자신을 모세와 동일시 하는 교만에서부터 시작되었던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그러자 하나님은 예루살렘을 치려는 천사의 칼을 다윗을 향해 겨누셨을 것이다. 다행이 다윗은 아직 영안을 뜨고 있었다

이 장막 저 장막, 이 성막 저 성막에 계신던(대상 17:5) 하나님께서는 오르난의 타작마당에 새롭게 머무시기로 정하신 것이다.

오 주님 제 마음에도 머무소서.

시편 73편으로 기도합니다. 아멘

역대상 21:1-17

“사탄이 일어나 이스라엘을 대적하고 다윗을 충동하여 이스라엘을 계수하게 하니라.” (1) 드뎌 올것이 왔다. 결코 갑자스런 일이 아니다.

18장 14절에서 사관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 라고 기록했다. 그러나 이어지는 19장 20장의 다윗왕국의 승승장구를 읽으며 하나님과 멀어지는 다윗의 모습을 보았다. 승승장구할 때마다 하나님과의 교제 없이도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진다는 착각에 빠졌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정의와 공의를 행하면서도 주변국과의 관계에서는 정의와 공의 대신 군림했다. 다윗이 암몬왕에게 빼앗은 금 한달란트의 왕관을 자신의 머리에 썼다는 기록은 다윗이 머리에 하나님의 기름부음을 받았다는 것을 망각했다는 충분한 증거라고 할 수 있겠다. 이렇듯 교만이 하늘을 찌를듯한 다윗이 사탄의 먹이감이 된 것은 당연하다. 다윗이 밧세바와의 간음과 우리야에 대한 살인교사를 피할 수 없었던 이유다.

다윗은 사탄의 충동질에 빠져 요압과 백성들의 지도자들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하라고 명한다. 정의와 공의로 백성들에게 행하던 다윗은 어디가고 전쟁과 노역에 동원하고 세금을 부과하기 위해 인구조사를 행하는 세상임금이 되어버렸다. 심지어 하나님과의 교제가 뭔지도 모르는 요압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며 인구조사는 이스라엘이 범죄하게 하는 일이라며 다윗을 만류했다. 그러나 다윗은 요압을 재촉했다. 요압은 하는 수 없이 이스라엘 백성을 계수해서 다윗에게 보고한다.

이스라엘 중에 110만명, 유다 중에 47만명. 사관은 요압이 다윗의 명령을 마땅치 않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 사람은 계수하지 않았다고 토를 달았다. 요압이 마땅치 않게 여긴 이 일을 하나님께서는 악하게 여기시고 이스라엘을 치시기로 하셨다.

하나님이 회초리를 꺼내 들자 다윗은 하나님께 이 일로 큰 죄를 범했음을 자백하고 용서를 구한다. 용서해 주세요. 내가 심히 미련하게 행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의 말씀을 직접 듣는 귀를 잃었나보다. 하나님은 다윗의 선견자 갓을 통해 다윗에게 세가지 벌칙중 하나를 정하라고 하셨다. 1) 삼년 기근 2) 다윗이 패전하여 석달동안 적군에게 쫓겨 다녀야 함 3) 이스라엘에 삼일동안 전염병 창궐하며 하나님의 천사가 이스리엘 온 지경을 멸함.

다윗은 주님의 긍휼하심에 의지하여 3)번을 선택한다. (13절은 곱씹어 봐야한다.) 주님은 이스라엘에 전염병을 내리셨고 이스라엘 백성중에 죽은 자가 칠만명이었다. 주님은 하나님의 천사를 예루살렘에도 보냈다. 그러나 갑자기 천사에게 이르시되 족하다 이제는 네 손을 거두라 명하셨다. 주님이 갑자기 긍휼을 베푸신 이유를 사관은 역설적이게도 칼을 빼어들고 예루살렘을 치려는 하나님의 천사를 본 다윗이 장로들과 더불어 굵은 베옷을 입고 (장로들과) 범죄하고 악을 행한 자는 자신이니 무죄한 백성에게는 재앙을 내리지 마옵소서라고 중보했기 때무니라고 기록한다.

교만은 하나님과 단교하게 한다. 교만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귀를 막아버린다. 그러니 하나님께서는 교만한 자와 함께 하실 수 없으시다. 오직 심판만 하실뿐이다. 주님께 겸손히 죄를 자복하고 자비를 구할 때  주님은 다시 만나주신다. 겸손 겸손 또 겸손! 술취함이 방탕한 것이며 형통함에 취하는 것은 교만한 것이다.

 

역대상 20 (1-8)

해가 바뀌어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었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해마다 조공계약을 갱신하러 다니면서 조공을 거부한 주변국은 징벌하는 때라는 것인지. 아니면 기후상 전쟁하기 좋은 계절때마다 출정해서 주변국을 다스렸다는 것인지.

왕들이 출전할 때가 되어 다윗대신 요압이 군대를 거느리고 나가서 (19장에서 밉상을 산) 암몬과 싸워 암몬 왕이 있는 랍바성을 함락시켰다. 승전소식에 다윗은 랍바성으로 달려가서 암몬왕의 왕관을 빼앗아 무게를 달아보았다. 왕관 무게가 금 한달란트였다. 다윗은 그 왕관을 자기가 썼다. 그리고 전리품을 챙기고 암몬 백성들은 노역을 시켰다. 그리고 다윗은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오호 통재라! 하나님과의 교제가 줄어든 (끊겼다고까지 말하기는 그렇다) 다윗은 결국 하나님의 기름부음 대신 금 한달란트의 왕관을 택했다. 정의와 공의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스리는 왕이라면 당연히 주변국에 대해서도 정의와 공의로 다스려야 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금 한달란트 왕관의 무게를 이기지 못했다. (금 한달란트는 고고학적으로 따져 약 34kg 이라고 한다. 머리에 쓰는게 아니라 머리에 이는 것도 쉽지 않았을 것이다. 아니면 달란트 단위가 달랐을 수도)

정의와 공의로 주변국과의 관계를 확립하지 못한 다윗왕국은 전쟁과 전쟁을 거듭한다. 살아 남기 위헤서라기 보다 군림하기 위해서 (자꾸 삐딱하게 성경을 읽게 된다. ㅠㅠ) 블레셋과의 전쟁에서는 후사 사람 십브개가 전쟁영웅으로, 이어지 블레셋과의 싸움에서는 야일의 아들 엘하난이, 블레셋과의 또 다른 전쟁에서는 다윗의 형 시므아의 아들 요나단이 전쟁영웅으로 떠오른다. 이들은 모두 블레셋의 거인 골리앗을 물리친 전쟁영웅 다윗 왕의 아류들이다. 사관은 전쟁 영웅들의 이야기로 역사를 채움으로 다윗왕국의 역사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부터 점점 멀어져가고 있음을 꼬집는 것은 아닐까?

나는 머리에 무엇을 쓰려고 하는가?

 

역대상 19 (1-19)

암몬왕 나하스 문상 조문단을 파견한 다윗은 예상치 않은 나하스 아들 암몬 왕 하눈의 박대를 당한다. 더군다나 하눈은 다윗에게 밉게 보였다는 것을 깨닫고 사과하는 대신 전쟁이라는 악수를 두고 만다. 혼자 힘으로 안되니 아람사람의 군대를 용병으로 사서 전쟁에 임했다. 용병은 병거만 삼만이천대라고 하니 엄청난 규모다.

다윗은 군대장관 요압과 용사들을 보내 전쟁에 임한다. 요압은 암몬과 아람 연합군을 대항하기 위해 군대를 둘로 나눴다. 요압은 아람군대를 그리고 요압의 동생 아비새는 암몬 군대에 대하여 진을 치고 싸우기로 했다. 요압은 아비새에게 “만일 아람 사람이 나보다 강하면 네가 나를 돕고 만일 암몬 자손이 너보다 강하면 내가 너를 도우리라” 라고 말했다. 멋진 말이다. 그리고 ‘우리가 우리 백성과 우리 하나님의 성읍들을 위하여 힘을 내자. 여호와께서 선히 여기시는 대로 행하시기를 원합니다.’ 라고 기도하는 마음으로 아람과의 싸움을 시작했다. 돈받고 싸우는 아람군대는 요압군대 앞에서 도망했다. 당연히 암몬 군대도 도망(철수)하였고 요압은 승전가를 부르며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문제는 패주한 아람군대였다. 아람군대는 패전을 만회하기로 했다. 그래서 전쟁에 참여하지 않았던 요단 건너편에 있는 동족 아람사람들 모두를 참여시킨다. 이 소식을 들은 다윗은 이번에는 친히 군대를 모으고 요단을 건너가 아람사람들과 전쟁을 했다. 다윗은 아람병거 칠천대의 군사와 보병 사만명을 죽이고 아람군 대장을 죽이는 대승을 거뒀다. 이후로 아람은 다윗과 화친을 맺고 조공국이 된다. 당연히 아람은 암몬과의 동맹을 원하지 않게 된다.

// 왕국으로서의 체계가 갖춘 다윗왕국의 승전소식이다. 암몬과 아람 용병의 연합군과의 싸움에는 다윗이 직접 나가지 않고 군대장관 요압만 보내도 될 정도로 다윗왕국은 군사적으로 주변 부족국가들을 압도했다. 아람과의 전쟁에서도 다윗이 친히 출정했지만 싸움이 되지 않았다. 잘나가는 집안의 문제점이 여기서 보인다. 굳이 하나님께 묻지 않아도 잘나가는 다윗. 다윗왕조가 영원하리라는 약속을 받은 다윗은 과연 하나님과 더 친밀해졌을까? 그렇게 보이지 않는다. 또 내가 삐딱하게 보는 것일까? 매순간 하나님과의 교제가 중요하다. 성도들도 하나님의 약속만 믿고 더이상 하나님과 교제하지 않는 잘못을 범하기 쉽지 않은가? 신실한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가 하나님과 신실한 교제를 지속할 때 유효하다.

역대상 18 (1-17)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6b)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셨더라 (13b)

(그래서)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할새(14)

다윗의 승승장구(1-13)와 다윗왕국의 정치체계완성 (15-17) 사이에 다윗이 온 이스라엘을 다스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였다는 구절이 삽입되어있다. 5.18 아침이다. 잠언 29장 2,7절을 다시 소환한다.

“의인이 많아지면 백성이 즐거워학 악인이 권세를 잡으면 백성이 탄식하느니라(2)”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7)”

사실 7절이 없었으면 2절은 나에게도 그냥 성경 한 구절에 지나지 않았을 것이다.  우리는 악인이 권세를 잡아 백성이 탄식함을 핏대세우며 떠들지만 의인이 적음은, 아니 내가 의인이 되고자 하는 열정은 적다. 그렇게 살아왔다. 5.18은 악인이 권세를 잡아 백성이 탄식한 사건이기도 하지만 의인이 적어서 일어난 사건이기도 하다.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 믿음으로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산다고 추상적으로 대답하면 쉽다. 그런데 예수님의 가르침을 따라 산다고 하면 서서히 어려워진다. 산위에서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치신 예수님의 일성이 무엇인가?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 가 아닌가? 예수 믿으면 의롭다하심을 받는다. 의인이라는 소리다. 의인은 하나님의 사람이다. 그리고 잠언에서는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는 사람이라고도 적용한다. 물질적 가난함만 의미하지는 않을 것이다. 사회적 약자 모두를 아우를 수 있는 가난함이다. 5.18은 가난한 자를 알아 줄 지식이 없는 악인이 권세를 잡아 잔행된 사건만이 아니라 의인이 많아지지 않아, 아니 소위 의인들이 의인됨을 망각해서 그 치유마저 제대로 이루지지 못한 사건이다.

늦었지만 지금이라도 의인이 많아져서 백성들이 기뻐하면 좋겠다. 모든 백성에게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나라를 기대한다면 가난한 자, 소외된 자, 사회적 약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의인들이 많아져야 한다. 나부터 앞장서라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