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상 17:16-27

나단 선지자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과 예언을 들은 다윗은 성막으로 들어가서 하나님 앞에 무릎꿇고 기도했다. 다윗의 기도는 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가장 좋은 것으로 응답하심에 대한 감당할 수 없는 감사와 마찬가지로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약속에 대한 소망의 간절함을 담고 있다. 한마디로 줄이면 ‘주님 뜻대로 이루어지기를 원하나이다” 라고 할 수 있다.

25절 ‘나의 하나님, 주님께서 주님의 종에게, 이 종의 집안을 한 왕조가 되게 하시겠다고 계시하셨기 때문에, 주님의 종이 감히 주님께 이러한 간구를 드릴 용기를 얻었습니다.’

다윗은 주님께서 주신 복을 영원히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한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매일 기도해야 할 내용도 예수님께서 약속하신 임마누엘을 영원히 누리게 해 달라고 기도해야 한다. 주님께서 약속해 주신 것이기 때문에 그냥 가만히 있어도 된다고 생각해서는 안된다는 것이 나에게는 오늘의 교훈이다.

역대상 17:1-15

“나는 백향목 궁에 거주하거늘 하나님의 언약궤는 휘장아래 있도다.” 다윗은 자신의 궁궐과 성막을 비교하면서 선지자 나단에게 성전건축의 뜻을 내비췄다. 선지자 나단은 다윗에게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 라고 권면한다. 지금까지 다윗과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땠을까? 다윗은 하나님과 대화하는 사이였다. 다윗이 하나님께 물으면 하나님께서는 대답해 주셨다. 다윗은 성전건축에 대해서도 하나님께 물었을 것이다. 그런데. 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성전건축을 할까요?’ 라는 물음에 침묵하신 것 같다.  아마도 하나님의 침묵이 길어지자 조바심이 난 다윗이 선지자 나단에게 조언을 구한듯 하다. 선지자 나단도 다윗이 하나님과 마음이 합한자라는 것을 모를리 없었다. 나단은 쉽게 ‘하나님이 왕과 함께 계시니 마음에 있는 바를 모두 행하소서’ 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정직한 다윗이라면 나단에게 성전건축에 대해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대답하지않으신다고 솔직하게 상의했어야 했다. (삼상 14: 37이하 사울도 하나님께 물었다. 하나님께서 바로 응답하지 않으시니 제멋대로 했다.) 그러나

그날 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왕이라는 지위에 겨워  사울처럼 함부로 행하지 않도록  선지자 나단을 소환하셨다. “가서 내 종 다윗에게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너는 내가 거할 집을 건축하지 말라”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과연 침묵만 하셨을까? (개인적인 생각으로 다윗에게도 나단에게와 동일한 응답을 하셨을 것인데 다윗은 열방의 왕들처럼 신전을 세우고 하나님의 궤를 모시려는 공명심(功名心)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응답을 못듣고 있었던 것으로 생각된다.)

하나님께서는  公明心(공명심)의 선지자 나단에게  功名心의 다윗이 하나님의 응답을 들을 수 있도록 말씀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이 장막과 저 장막에서 만나 주셨지 성전건축을 명하신 적이 없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이 강성한 대국과 화려한 왕궁에 살아서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신 것이 아니라 목장에서 목동으로 일할 때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 그리고 다윗을 세상에서도 존귀한 자로, 이스라엘을 악한 사람들이 해치지 못하는 나라로, 오히려 대적들이 복종하는 나라로 다윗왕조를 세워주시겠다고 약속하셨다. 그리고 다윗의 아들 중 하나를 세워 그 나라를 견고케 하실 것이고 그가 하나님을 위하여 성전을 건축할 것이며 하나님은 다윗의 자손의 왕위를 영원히 견고하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는 왕과 백성의 관계를 영원한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로 새롭게 약속하셨다. 하나님께서 새롭게 세우실 ‘그’를 ‘내 집과 내 나라’에 세우신다고 하신다. 결국 하나님나라에 하나님 자녀의 나라를 세우신다고 하시는 것이다. 하나님나라 안에 있으니 당연히 그의 왕위가 (그의 통치) 영원히 견고할 수 밖에 없다.

나단은 이 모든 말씀과 이 모든 계시대로 다윗에게 전했다.

역대상 16:23-43

온 땅이여 여호와께 노래하며 그의 구원을 날마다 선포할지어다.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들을 세워 찬양한 주님은 모든 민족 중에, 만국의 신들 중의 신(하나님)이시다. 단순히 이스라엘 민족의 신이 아니시다.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그래서 다윗의 찬양은 열방이 영광과 권능을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께 돌릴지어다 라고 노래한다.

하늘이 기뻐하고 땅이 즐거워 하는 이유는 바로 하나님께서 통치하시기 때문이다. 땅이 즐거워 하는 이유는 주께서 땅을 심판하러 오실 것이기 때문이다. (갑작스러운 비약이다.) 사실 심판주 앞에서 즐거이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사람들은 숲속의 나무들이기 때문이다. 마치 시편1편의 시냇가에 심기운 나무들이 많아지고 많아져서 숲을 이루는 것이 연상되지 않는가?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자들은 여호와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영원함에 감사하게 된다. 만국의 통치가운데 하나님의 통치를 받는 것이 구원이라고 노래한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송축받으실 분은 하나님이시다. 아멘

다윗은 아삽과 그의 형제들이 언약궤를 섬기도록 하였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가 할 것은 감사찬송뿐이리라. 다윗은 오벧에돔과 그의 형제들과 또 다른 오벧에돔과 호사를 문지기로 삼았다. 제사장 사독과 그의 형제들은 기브온 산당에 있는 성막에서 제사장직분을 담당하게 하였고 그들은 율법에 기록된대로 직분을 담당하였다. 다윗은 이들 외에도 감사기도하는 사람, 찬양대 반주하는 사람, 문지기도 세웠다.

언약궤를 다윗성 성막에 옮겨놓는 이 모든 의식을 마치고 사람들은 각각 자기집으로 돌아갔다. 다윗도 자기 가족들을 축복하려고 돌아갔다.

역대상 16:1-22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다윗성에 쳐놓은 장막 가운데 두었다. (다윗성에 쳐놓은 장막도 하나님이 모세에게 명하신 양식대로 세웠을까?) 하여간 장막에서 번제와 화목제를 하나님께 드리고 (사울이 사무엘을 기다리지 못하고 드린 번제와 화목제와 어떻게 다를까? ) 여호와의 이름으로 백성에게 축복하고 모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떡과 과자를 나누어 주었다.

다윗은 레위 사람들이 하나님의 궤 앞에서 섬기며 하나님을 칭송하고 감사하며 찬송하도록 아삽을 대장으로 하는 찬양대?를 조직하게 했다. 비파와 수금과 제금으로 찬양하는 사람, 나팔을 부는 사람. 사관은 다윗과 아삽이 찬양으로 백성들을 가르친 내용을 적는다. 시편 105편이다.

하나님께 감사하며, 하나님의 기사를 만민중에 알리며, 하나님의 성호를 자랑하며, 하나님께 기도하는 (구하는) 즐거움.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의 능력을 구하고 하나님을 찾도록 했다. 찬양을 통하여 하나님이 행하신 기사와 이적과 율법을 기억하도록 했다… 하여간 말씀을 묵상하고 암송하는데 좋은 운율에 따른 찬양만큼 좋은 방법은 없는 것 같다.

// 하여간 오늘의 궁금증은 다윗이 드린 번제와 화목제는 제사장에 대한 월권이 아니었나?… 사관은 의도적으로 다윗을 모세급으로 승격시키는 것인가? 다윗이 제사장으로 하여금 번제와 화목제를 드리게 했다고 이해하면 간단하긴 한데… 노래를 가르칠 때는 다윗이 아삽과 그의 형제를 세웠다고 구체적으로 기록하는데 (7절)

역대상 15 (1-29)

다윗성에 궁전이 완성되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궤를 둘곳도 마련되었다. 바로 장막을 친 것이다. 13장 정치적 전시행정으로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려고 했던 계획이 틀어지자 다윗은 두려워하였다. 그렇게 석달이 흘러갔다. 그러나 다윗은 석달동안 두려움에 빠져 헤어나오지 못한 것이 아니었다. 무엇이 잘못되었는지 하나님께 묻도 또 묻었던 것 같다. (석달 안에 다윗 궁전을 짓고 블레셋과의 두번의 싸움에서 승전하고… 그러니 13-15장은 시간 순서로 꼭 기록된 것은 아니다.)

하나님의 궤 둘 곳을 위하여 장막을 쳤다는 것이 그 반증이다. 둘째로 하나님의 궤는 레위 사람들만이 메고 옮길 수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의 궤를 옮겨오고자 아론 자손과 레위 사람을 모았다. 장교들이 주가 되고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이 자문관이 되는 군사작전이 아니라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이 주가되는 종교의례가 된 것이다.

작은 궤 하나를 옮겨오는데 얼추 천명가까운 레위 사람들을 모았다고 사관은 기록한다. 그리고 제사장 사독과 아비아달을 중심으로 레위 사람들 중 고핫 므라리 게르솜 엘리사반 헤브론 우시엘 자손의 지도자를 불러 궤를 옮기는 일을 맡긴다. 제사장들과 레위 자손들은 다윗을 따라 몸을 성결하게 하고 모세오경에 있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하나님의 궤를 옮겼다.

16절. 다윗은 또 레위 사람의 지도자 (어른)들에게 명령하여 노래하는 자들과 비파와 수금과 제금 등의 악기를 연주하는 자들을 세웠다. 3장 8절에서 다윗이 나름 이스라엘 온무리와 함께 하나님 앞에서 힘을 다하여 뛰놀며 노래하며 수금과 비파와 소고와 제금과 나팔로 연주한 것과 비교하면 성가대 역시 체계를 갖추었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막춤이나 아무 노래가 아니었다. 몸을 성결하게 한 것뿐만 아니라 세마포 겉옷을 입었다고 한다. (다윗은 에봇을입었다고 한다. 에봇은 제사장이 입는 옷이다. 다윗이 대제사장이 입던 특별한 에봇을 입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음 사관은 왜 굳이 다윗이 에봇을 입었다고 기록했을까? 제사장이 아니었는데…다윗이 종교적으로도 대장임을  보이려고 했을까? 음)

다윗과 이스라엘 장로들과 천부장들은 하나님의 궤를 운반하는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의 행렬에 참여한다. 이스라엘 무리들도 성가대가 뿔나팔과 나팔을 불며 제금을 치며 비파와 수금을 힘있게 타는 소리에 맞춰 하나님의 궤를 메어 올리는 일에 참여했다. 이제 다윗의 두려움은 희락으로 변했다. 왕의 신분을 잊고 하나님 앞에서 종의 신분으로 춤추며 뛰놀았다. (궤가 다윗성으로 들어올 때 다윗의 아내 사울의 딸 미갈은 다윗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업신여겼다. 삼하 6장에서는 이 일로 미갈이 죽는 날까지 자식을 낳지 못했다고 기록한다.)

삼하에서 다윗은 고백한다. 하나님 앞에서 뛰놀아 종처럼 천하게 보일 지라도 하나님께서 자신을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주권자로 삼으셨다고. 하나님 앞에서 뛰노는 삶!