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5:11-21

세번째로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지 말라 하신다. 망령은 죽은자의 영혼이니 주님을 죽은 신(하나님)인양 부르지 말라는 뜻인가 아니면 우리로 허물과 죄로 죽은 자 상태로 부르지 말라는 뜻일까?  망령되이는 정신나가서 하는 헛소리나 행동이니 진정성 없이 부르지 말라는 뜻이다. 결국 주님을 망령되이 부른다는 것은 주님을 목석의 우상으로 취급하는 것이니 죄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성령을 힘입지 않고서는 아무도 “예수는 주님이시다” 하고 말할 수 없습니다’ 라고 편지했다. 주님의 이름은 망령으로, 망령되이 부르지 말아야 한다. 대신 성령으로 불러야 한다. 산 자, 그리스도의 생명을 소유한 자로 불러야 한다.

네번째 안식일 계명은 출애굽 직후 돌판에 새겨진 내용을 더 풍성하게 한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거룩하게 지키는 방법은 똑같이 너나 네 아들 딸이나 남종이나 여종이나, 가축이나 손님 모두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이다. 신명기에서 모세는 여기에 남종과 여종도 너와 같이 안식하게 하라고 덧붙인다. 일을 하지 않는 것과 안식하는 것은 비슷하면서도 다르다. 종들에게 안식하게 하라는 명령은, 안식일에는 주인에게는 주인의 자리에서 내려오라는 명령이고, 주인과 종들 모두에게 주님이 주인이심을 알고 참 쉼을 누리라는 뜻이라고 생각한다.

모세는 돌판에 새겨진대로 (출애굽기) 창조주 하나님께서 일곱째 날에 쉬신 것을 기억하는 대신,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백성을 능력과 권능으로 인도하여 내신 주 하나님을 기억하여 안식일을 지키라고 하였다.

주님은 저 멀리 계시는 분이 아니시다. 매일의 삶에 함께하신다. 우리의 신음과 부르짖음을 들으신다. 창조주 하나님이 더 크고 능력있게 보일 수 있어도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출애굽의 하나님이, 홍해를 가르신 하나님이 더 가깝다. 막달라 마리아에게는 일곱 귀신을 쫓아내신 주님이 창조주 하나님보다 친근할 것이다.

네 남종과 여종도 너와 같이 안식하게 하라는 명령도, 애굽에서 종되었던 역사와 무관하지 않다. 종도 사랑해야 할 이웃이다. 우리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 할 이웃이다. 안식일은 주인과 종의 차별을 허무는 날이고, 그래서 육일도 서로 자신과 같이 사랑해야한다.

예수님은 안식일의 주인으로 오셨다. ‘일하지 말라’ 대신에 생명과 치유와 쉼을 나누셨다. 부모를 공경하라 하셨다. 그러면서도 주님을 더 사랑하라고 하셨다.

예수님은 ‘하지말라’라는 계명을 ‘하라’라는 계명으로 완성하셨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 하시며 화목하라 하셨다. 간음하지말라는 계명은 음욕한 마음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니 (성적으로) 정결하게 살라고 하셨다.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가르치셨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은 (원수같은 이웃을 위해) 오히려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하지 말라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신명기 4:44-5:10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율법을 선포했다. 이 율법은 출애굽 후에요단 동쪽 벳브올 맞은편 골짜기에서 모세가 증언과 규례와 법도로 선포한 것이다. 벳브올 맞은편은 골짜기는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쳐서 멸하고 얻은 땅이다.

//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 말씀을 깨닫게 해주시는 하나님. 이 하나님이 우리 주님이시다.

모세는 ‘율법을 (규례와 법도를) 듣고 그것을 배우며 지켜 행하라.’라고 선포했다. 이 율법은 호렙산에서 언약을 세우실 때 주신 것이었다. 그러나 모세는 이 언약이 단순히 조상들과 세운 것이 아니라 여기 살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과 세운 것이라고 설명한다. (누구든지 가나안에 들어갈 주의 백성에게 주어진 언약이었다고 해야 하나.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고자 하는 우리에게도 주어진 말씀이다.)  모세는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강조한다. 불가운데 너희와 (이스라엘 백성과) 대면하여 말씀하셨다고 천명한다. 다만 이스라엘 백성들이 두려워하여 모세가 중보자로 주님의 말씀을 전하였을 뿐이다.

모세는 주님이 애굽에서 노예된 이스라엘을 인도하여 내신 하나님(신) 여호와라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주님외에는 다른 하나님들을 (신을) 네게 두지 말아라. 우리 자신을 위해 우상을 새기지 말아라. 우상에게 절하지도 말고 섬기지 말라. 너희 신 (하나님) 나 여호와는 질투하는 (목석이 아닌 생명이 있는) 신(하나님)이다.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는 자손 삼사대까지 죄값을 치르게 할 것이고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대까지 (영원히) 은혜를 베푸신다.

하나님(신) 여호와. 여호와(야웨)라는 이름의 신(하나님). 우리에게 ‘하나님’은 ‘여호와 하나님’ 혹은 ‘하나님 여호와’와 동일한 의미로 굳었다. 모세가 선포한 율법의 전문을 통해 다시금 도전 받는다.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도 얼마나 많은 ‘우상’을 세울 수 있는지.  출애굽후 광야에서  송아지 형상을 만들고 아론은 ‘이스라엘아, 이 신이 우리를 이집트에서 데려내온 우리의 신(하나님)이다.’(출 34:4 새번역) 라고 했다. 심지어 35절에서는 ‘내일 야훼 앞에서 축제를 올리자”(공동번역) 라고 우상(송아지 형상)의 이름을 야훼 (하나님 여호와)라고 불렀다. 주님을 만들려고 하지 말자. 주님께 지음 받으려고 하자.

주님은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우상이 아니시다. 말씀하시는 신(하나님)이시다.

신명기 4:32-43

창조때부터 이런 큰 일이 있었을까? 이런 일들을 들은 적이 있었을까? 모세가 말하는 이런 큰 일은 도대체 어떤 일일까?

“너희는 거기서 사람의 손으로 만든 바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리라.” 28절에 답이 있다고 생각한다.

모세는 어떤 국민이 불 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너처럼 듣고 생존하였느냐고 반문한다. 여기서 핵심은 우리의 생존이 아니라 ‘말씀하시는 하나님’이다.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우상들이 어찌 말을 할 수 있을까?

어떤 신이 와서 시험과 이적과 지사와 전쟁과 강한 손과 편 팔과 크게 두려운 일로 출애굽과 같은 행사를 하였느냐, 너희 하나님은 너희 목적에서 이런 일도 행하셨다. 목석의 우상들이 할 수 없는 일이다.

왜? 주님이 우리 하나님이심을 드러내신 것이다. 우리로 아무 신이나 (우상이나) 새겨서 찾는 어리석은 수고를 하지 말라고, 하나님외에는 다른 신이 없음을 알려주신 것이다. 그래서 친히 입을 열어 말씀하시고 큰 불의 형상으로 보여주셨다.

왜? 주님은 주님의 백성을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어쩌면 애굽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주님을 알지 못하면서 고통을 부르짖었을 것이다. 주님은 그 신음소리를 들으셨다. 그리고 큰 권능으로 애굽에서 건지셨다. 그리고 시혼과 옥 두 왕이 다르시던 아모리 민족을 쫓아내시고 오늘과 같이 그들의 땅을 차지하게 하였다.

왜? (이제는 주의 백성들이 반응할 차례다.) 오직 주님만이 신(하나님)이시요 다른 하나님(신)이 없는 줄 알고 명심하라고 이 모든 큰 일을 행하시고 보여주신 것이다. 이것을 명심하고 사는 것은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는 것이다.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키면 주님이 주시는 땅에서 한없이 오래 살 것이다.

모세는 요단 이쪽에서도 세 성읍을 구별하여 도피성으로 지정했다. 베셀은  르우벤 지파를 위하여, 길르앗 라못은 갓지파을 위하여, 바산골란은 므낫세 지파을 위하여.?

//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목석의 우상처럼 되어가는 나를 향해 오늘도 말씀하신다. 말씀을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냄새맡고 말하고 살라고.

 

신명기 4:15-31

모세는 십계명 두번째 “자기를 위하여 어떤 형상대로든지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에 대한 강론을 한다.

(15) 주님의 형상을 보지 못한다. 하나님을 본사람은 아무도 없다. (요1:18)  조심해야 한다.

(16) 주님의 형상을 새겨 만들려고 하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부패하여 자기를 위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을 위함이 아니다.)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받은 남자와 여자라도 하나님의 형상을 드러낼 수 없다. 그림자가 본체의 형상을 온전히 드러낼 수 없는 것과 같다.

(17~19) 주님의 피조물들, 짐승, 새, 곤충, 물고기도 마찬가지다. 하늘에 달아 두신 해와 달과 별들을 경배하며 섬기는 것도 하지 말아야 한다. 부분이 전체를 드러낼 수 없다.

(20~22) 모세는 주님이 너희를 택하시고 (너희가 주님을 택한 것이 아니고) 노예되었던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사 이스라엘을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다고 강조한다. 그러나 자신은 가나안에 들어가는 것을 허락받지 못했으니 (가나안에서 더이상 주님의 대리자로 너희를 지도할 수 없으니 나에게 기대하지 말고, 나의 중보만 믿지말고)

(23) 언약의 주님을 잊지 말고 주님이 금하신 어떤 형상의 우상도 만들지 말아라. 형상의 하나님이 아니시라 언약의 하나님이시다.

(24) 주님은 질투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언약을 어기는 백성을 소멸시키신다.)

(25) 이 계명은 당대뿐만 아니라 자자손손 지켜야 한다. 우상을 새기게 된다면 스스로 부패했다는 증거다. 그것이 곧 주님 앞에 악을 행하는 것이다. 주님의 진노를 일으키는 일이다.

(26) 우상을 새겨 만들면 가나안에 들어간다 하여도 속히 망할 것이다. 오래지나지 않아 전멸될 것이다.

(27~28) (전멸을 면한다 하여도) 겨우 적은 수만 여러 민족으로 흩어져 살아남을 것이다. 흩어진 곳에서 사람들이 만든 우상, 즉 보지도 못하며 듣지도 못하며 먹지도 못하며 냄새도 맡지 못하는 목석의 신들을 섬기게 될 것이다.

(30~31) 그러나 흩어진 곳에서라도 목석 우상이 아닌 주님을 찾는다면,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님을 찾는다면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이다. 환난을 당하겠지만 결국 주님께로 돌아와서 그의 말씀을 청종한다면 주님은 자비하신 하나님이기기 때문에 너희를 버리지 않으시며, 너를 멸하지 않으시며, 언약을 잊지 않으실 것이다.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라는 계명은 우리가 주님의 피조물임을 다시금 선언한다. 우리가 새기고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형상으로도 주님을 가둘 수 없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는데 어떤 형상으로 주님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결국 남는 것은 언약이다. 말씀이다.

신명기 3:1-11

두번째는 바산 왕 옥이다. 옥도 시혼처럼 그의 모든 백성을 거느리고 나와서 이스라엘에 대적했다. 여우 이스라엘 뒤에 호랑이 주님이 계시는 걸 아직 못봤다.

바산의 높고 견고한 성읍들을 진멸했다. 아모리 두 왕 시혼과 옥이 다스리던 지경을 빼앗았다. 바산 왕 옥은 롯의 자손들이 차지한 땅의 사람들(르바임 사람)처럼 거구, 거인이었다. 바산 왕 옥의 침대(혹은 관)의 사이즈가 9×4규빗이니 (4×1.8 미터정도) 키와 덩치가 상상이 안된다.

옥을 보고 한순간 당연히 쫄았을 것이다. 그러나 전쟁은 하나님께 속했다. 전쟁은 수의 많고 적음이나, 덩치의 크고 작음에 따라 결정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