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28:15-35

들어와도 나가도 저주를 받는 방법은 주 하나님의 명령에 불순종하는 것이다. 이 저주는 개인적이지만 공동체를 파괴한다. 민족이 멸망하고 토지소산과 가축들도 저주받는다.

그러니 명령을 지키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다.

불순종은 교회 공동체도 미치게 한다. 사회를 선한 주 하나님께 인도하지 못하고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는 꼴이다. 세상 악의 종으로 살게 된다. 정말 미칠 노릇이 아닌가? 사랑이든 명성이든 주 하나님께서 미치게 하시고 눈멀게 하시는데 어쩌랴.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지 않겠는가?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34)

불순종의 우리를 도울 자는 없다. 순종하라고 하신다. 순종하면 주님이 구원하신다.

신명기 28:1-14

들어와도 나가도 복을 받는 방법은 주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는 것이다. 이 복은 개인적이지 않고 공동체적이다. 민족이 번성하고 (수가 늘어나고) 토지소산이 풍성하고, 가축들도 생육번성한다.

명령을 지키고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고 하신다.

신명기의 복이 이스라엘의 번성이라면 오늘 우리에게 복은 우주적 교회의 번성이다. 우리 (내가 출석하는) 교회만의 번성이 아니다. 모든 성도들이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것이다.

들어가도 나와도 복을 누리는 방법은 주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것이다. 주 하나님이 출석부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우리반 담임 선생님이 주 하나님이시다. 다른 반 아이들이 부러워 한다.

신명기 27

반복되는 ‘명령’. ‘명령’하여 이르되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다는 뜻이다.

이 명령은 개인적이 않다. 그래서 공적으로 기록하라고 하신다. 큰 돌에 석회를 바르고 율법을 새겨 넣으라고 하신다. 돌비에라도 이렇게 율법을 기록하면 주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신다고 하신다. 율법을 기록하고 제단을 쌓고 (화려한 제단을 만들기 위해 시간을 허비하지 말라고 하신다.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아도 된다. 외형이 아니라 마음이 중요하다.) 화목제를 먹으며 주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 하라고 하신다. 율법은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해야 한다.

모세와 제사장들은 돌 위에 새긴 율법이 곧 이스라엘이 주 하나님의 백성되었다는 언약이라고 설명한다. 따라서 주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율법에 기록된 대로 행해야 한다고 명한다. 요단강을 건너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여섯 지파는 그리심 산에서 축복을 선포하고 여섯지파는 에발 산에서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신다.

우상을 세우는 것은 저주를 받는다.

부모를 공경하지 않으면 저주를 받는다.

이웃의 (집을 탐내)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는다.

근친상간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살인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자는 (거짓증언을 하면) 저주를 받는다.

율법을 실행하지 않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각 저주마다. 백성들은 아멘으로 답하라고 하신다.

//…

 

신명기 26

약속의 땅 집들이, 아니 땅들이. 약속의 땅 첫 소산, 맏물을 거둔 후에 그것을 가져다가 주 하나님께서 정하신 곳에 가서 제사를 드리라고 한다. 이 제사는 애굽으로 내려간 때부터 노예생활 그리고 애굽에서 인도하여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여 내신 주 하나님께 감사드리고 경배하는 것이었다. 이 제사는 땅을 분배 받지 못한 레위윈과 함께 거류하는 이방인들과 함께 즐거워 하는 잔치였다.

모세는 다시 한번 셋째 해 십일조를 언급한다. 앞에서와 마찬가지로 십일조에 강조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십일조를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에게 주어 함께 먹고 배부르게 하라는 언약 공동체 돌봄에 있다. 레위인과 객과 고아와 과부를 십일조로 먹고 배부르게 하라는 명령대로 행한 것을 주 하나님의 명령을 범하지도 잊지도 아니한 증거라라고 한다. 이 십일조를 자신을 위하거나 부정하게 사용하지 않고 주 하나님의 명령대로 행하였으니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복을 주시기를 간구하라고 한다.

모세는 주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규례와 법도를 행하라고 다시한번 강조한다. 문자적으로 행하는 것이 아니라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지켜 행하라고 한다.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해 주 하나님의 명령을 지켜 행하는 것이야 말로 주 하나님을 참 신(하나님)으로 인정하는 것이요, 주 하나님의 규례와 명령과 법도를 청종하는 것이다.

주 하나님이 참 하나님이 되시며, 우리는 주의 보배로운 백성이 되어 주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지켜야 한다. 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 된 것은 우리를 지은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신 일이다. 세상에서 찬송과 명예와 영광을 삼으신다고 하셨다. 왜. 주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하신다.

// 주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 된다는 것 이상의 축복은 없다. 굳이 사회법을 정리하면서 셋째년 십일조를 언급한 이유가 무엇일까? 언약공동체를 돌아보는 것이 주 하나님의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지키는 것의 중심이요 주 하나님을 기억하고 인정하는 것의 핵심이라고 하시는 것은 아닐까?

 

신명기 25

재판장은 바르게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해야 한다. 이게 법의 정신인 것은 다 안다. 그러나 팔이 안으로 굽듯이 법을 세상에 적용하기란 쉽지 않다.

사람들 사이의 시시비비를 가리는 일에도 서로에 대한 존중이 필요하다고 가르친다.

(갑자기 탈곡하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라고 한다. 음. 가축에게도 권리가 있는데 하물며 노예에게랴…)

형사취수제도는 좀 긴 설명이 있다.

남편을 구하기 위해서라도 다른 남자의 음낭을 잡는 것은 그 손을 찍어버려야 할 만큼 큰 잘못이다.

저울 눈금을 속여서는 안된다. (공정한 상거래도 장수의 방편이라고 하신다.) 저울 눈금을 속이는, 결국 형제를 속이는 모든 사람을 주 하나님께서 가증히 여기신다.

사회법을 가르치면서 아말렉이 행한 일을 기억하라고 하신다. 아말렉은 주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 않고 광야길에서 뒤쳐진 약자를 쳤던 비열한? 족속이었다. 가나안을 정복하고 안식을 누리게 되면, 아말렉을 멸절시키라고 하신다. 이 명령을 잊어버리지 말라고 강조하신다. 사회법 사이에 이 명령을 넣은 이유는 무엇일까 ? 그 만큼 약자에 대한, 뒤쳐진 자에 대한 공격은 큰 잘못이라는 것을 가르치려는 것은 아닐까?

구약의 법들. 수천년이 지났으니 이 법들을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그러나 법의 정신은 분명하다. 정의와 공의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해 주어졌다. 고관대작은 가난하고 약한 자들을 위해 정의와 공의의 저울이 기울어지지 않게 해야 할 책임이 있다.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형제를 위해서…

가난하고 약한자의 편에 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