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레미야애가 5:1-10

시인은 자신들이 받은 치욕이 무엇인지 살펴본다.

나라를 빼앗겼다. 땅도 집도 빼앗겼다.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 근본을 빼앗긴 것이다.)

나라만 잃은 것이 아니다. 부모도 잃었고 남편도 잃었다.

당연히 경제권도 빼앗겼다.

핍박을 당하고 쉴 새없이 노예처럼 일해야 한다.

침략자 약달자 편에 서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하였다.

(조상들의 불순종으로 조상뿐 아니라 후대들도 벌을 받는 것이다.)

애굽의 바로도 아니고 앗수르의 왕도 아니고 그들이 파견한 종들 밑에서 종살이 해야 했다.

도망친들 칼에 죽거나 살아도 겨우 목숨을 부지 할 수 있다.

굶기를 밥먹듯 하니 (쓰레기 더미를 뒤지느라) 몸을 씻을 수도 없다.

 

// 치욕중의 치욕은 나라를 잃은 것이다. 시인은 조상들의 불순종의 결과라고 언급한다. 검뎅이가 묻어도 씻을 수 없는 치욕! 10절 “굶주림의 열기로 말미암아 우리의 피부가 아궁이처럼 검으니이다.”라는 말씀이 ‘하나님 말씀을 먹지 않고 세상 것에 탐욕하니 우리가 죄악중에 있나이다.’로 들린다. 하나님나라 백성은 하나님 말씀을 먹고 사는 사람들이다.

 

 

예레미야애가 4:11-22

주님은 기초까지 불태우셨다. (우리의 믿음을 근본부터 살펴야 한다.)

대적과 원수들을 이용하신다. (설마가 사람잡는다.)

종교지도자의 죄악때문이다. (의인도 피를 흘린다.)

앞을 못보는 더러운 지도자들 (아무도 가까이 하거나 따르지 않는다.)

부정하다고 비키라고 하니 그들은 떠돌이가 된다. (이방인들도 맞아주지 않는다.)

주님께서 지도자들을 흩으시니 (이방인들도 지도자들을 높이거나 대접할리 없다.)

동맹국을 향해 도움을 바랐으나 (희망고문이었다.)

침략자들이 우리를 감시한다. (한마디로 끝났다.)

곳곳에  CCTV를 설치해서 감시한다. (우리가 숨을 곳은 없다.)

우리의 콧김!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 함정에 빠졌다. (왕이든 종교지도자든 마찬가지다.)

세상아 즐거워 하라. (그러나 심판의 잔을 마시면 네 죄악도 밝히 드러나게 될 것이다.)

교회야 벌을 받아라. (그러나 벌을 다 받으면 주께서 다시는 벌 받지 않게 하실 것이다.)

 

죄악의 형벌은 기초까지 싹 불살라야 끝난다. 대충 씻어서는 깨끗해 지지 않는다. 용광로에 들어가 불순물을 다 태워야 정금이 된다. 불순물을 넣은 것이 종교지도자요, 사회 지도자라고 시인은 노래한다. 부정하다. 저리가라 저리가라 저리가라. 저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게 해야 하는데 온통 다 부정하다. 심지어 검뎅이가 ‘누가 내게 돌을 던질 수 있습니까’ 라고 반문하는 세상이다.

또 정결함을 구한다. 정결한 맘 주시 옵소서. 오 주님. 정직한 영을 새롭게 하소서. 성령을 거두지 마옵소서.

 

예레미야애가 4:1-10

// 솔직히 슬프다 슬프다 또 슬프다하니 성경읽는 나도 힘들다. 그런데 이 모든 슬픔은 자초한 것이다.

금이 빛을 잃었으니 순금이 변질 되었으니 성전이 무너저 내렸다.

(소금이 맛을 잃고 소금이 변질 되면 마찬가지로 밟힐뿐이다.)

순금같던 이스라엘이 던저버리면 깨어질 질항아리가 되었다.

갓태어난 자녀들도 돌볼 능력도 없다.

혹시나 쓰레기 더미를 뒤져보지만 무엇하나 건질 수 없다.

소돔의 무너짐보다 더 큰 죄가 넘치는 성이 되어버렸다.

화려한 보석같던 모습이 피골이 상접한 몰골이 되었다.

차라리 칼에 죽었더라면 대가 끊어지고 자녀를 삶아 먹는 비극은 면할 수 있었을 것이다.

// 시인은 패망한 예루살렘에서 벌어지는 일을 한탄하고 있다. 자녀를 삶아 먹는 극심한 굶주림을 언급한다. (쓰레기 매립장 같은 곳에서 사는) 자신들의 처지를 소돔의 멸망에 빗댄다. 금이 빛을 잃을 수 있듯이 소금이 맛을 잃을 수 있다. 성전의 돌들이 무너지듯 맛을 잃은 소금도 밟힌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라고 했는데 말씀의 기근으로 우리의 영적 모습도 피골이 상접해 보이지는 않을까? 자녀세대에도 신령한 젖대신 곰팡이가 쓴 빵만 주려고 하는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자비로운 부녀들이 자기들의 손으로 자기들의 자녀들을 삶아 먹었도다.”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사회적으로 이런 일이 일어나고 있다는 생각이다. (금그릇이든 질항아리든 더러우면 쓸 수 없다.) 비참하다.

소금이 그 맛을 잃으면 예배당의 벽(돌)들이 무너져 내릴 것이다.

예레미야애가 3:55-66

시인이 주의 이름을 부르는 곳은 깊은 웅덩이 속이다. 요나를 삼켰던 큰 물고기 뱃속을 연상케 한다. 이 캄캄한 어둠속에서 시인은 탄식이 아니라 희망을 노래한다.

주께서 시인의 기도를 들으셨다는 것을 알기에, 자신의 탄식과 부르짖음을 외면하지 말라고 기도한다. 기도할 때마다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던 주님의 대답을 기억한다. (간구할 때마다) 시인의 원통함을 풀어주시고 생명을 주신 것을 기억한다.

그러니 지금의 억울함도 원통함도 풀어달라고 희망을 노래한다. (시인이 동일시 하는 주의 백성에 대한) 대적들의 모든 보복과 모해함을 주께서 아시고 보시고 들으셨다는 것을 시인은 잘 알고 있다. 대적들의 조롱함도 주께 봐 달라고 기도한다. 그리고 저들의 악한 행위대로 갚아달라고 , 교만한 저들에게 저주를 내려달라고, 저들의 마지막까지 진멸해 달라고.

시인의 희망은 갇힌 사람들의 신음 소리를 들으시고 죽게 된 사람들을 풀어 놓아 주시는 주님이시다. 뭇 백성이 다 모이고  뭇 나라가 함께 주님을 섬기는 하나님나라다. (시102)

시인은  bring him home 을 노래한다.

God on high, hear my prayer, in my need, you have always been there~~~~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다시 살기를 노래한다. 억울함도, 원통함도, 보복도, 모해함도, 비방도, 조롱도, (손으로 행하는) 모든 악함도, 거만도 없는 나라. 이 모든 것을 주님의 진노로 멸하신 그 나라로. Bring us home

예레미야애가 3:40-54

회개하자.

주께 나아가 기도하자.

// 회개와 기도가 주께 인자와 긍휼을 구하는 유일한 방법이다. 시인은 회개하지 않는 우리에게 멸절할 때까지 하나님께서 자신을 가리신다고 애끓는 탄식의 노래를 이어간다.

주님은 범죄한 우리를 용서하지 않고

진노하셔서 우리를 죽기까지 내버려 두시고 긍휼을 감추셨다.

우리의 기도를 못들은 척하셨다.

뭇나라들도 우리를 돕지 못하게 하셨다.

오히려 우리의 대적이 되어 공격하게 하셨다.

두려움! 함정! 파멸! 멸망! 이 모든 것이 우리에게 임했다.

파멸을 목격하니 내 눈에는 눈물이 시내처럼 흐른다.

내 눈에 흐르는 눈물이 마를새 없다.

주님이 하늘에서 (기도를 들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 (울며 기도하리라)

성노예 신세 여인들을 내 눈으로 보니 내 심령이 상한다.

나도 사냥꾼의 올무에 걸린 새가 되었다.

나를 함정에 넣고 돌을 던진다.

함정에 물을 채워 익사시키려고 한다. 이제 나는 멸절된다.

// 시인만 운다고 (울며 기도한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주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돌아보실 때까지 공동체적으로 회개하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야 한다. 우리가 스스로 우리의 행위를 조사하고 여호와께로 돌아가자. 우리의 마음과 손을 아울러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 들자. 여호와께서 하늘에서 살피시고 (우리를) 돌아보실 때까지. 주님은 선하시다. 주의 인자와 긍휼은 무궁하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