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07:1-22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8,15,21)

삼세번은 중요하다는 뜻이다. 시편기자가 노래한 주님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 무엇인가? 태평성대 (풍요와 평화)가 아니라 대적으로부터 받는 고통에서 속량을 받은 것이다. 광야 길에서 주리고 목마르고 영혼마저 피곤한 고통에서 건짐을 받고 바른 길로 인도하심을 받는 것이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곤고의 쇠사슬에서 구원을 받는 것이다.

시편 106편에서 노래한 것처럼 거역의 백성들이 고통가운데 부르짖을 때 주님이 들으시는 것이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이요, 거역한 백성들에게 크신 사랑을 베푸시는 것이 주님의 인자다.

심령이 가난한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위로를 받을 것임이요 / 온유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땅을 기업으로 받을 것임이요 /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배부를 것임이요 / 긍휼히 여기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긍휼히 여김을 받을 것임이요 / 마음이 청결한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을 볼 것임이요 / 화평하게 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임이요 /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은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그들의 것임이라 / 나로 말미암아 너희를 욕하고 박해하고 거짓으로 너희를 거슬러 모든 악한 말을 할 때에는 너희에게 복이 있나니 / 기뻐하고 즐거워하라 하늘에서 너희의 상이 큼이라 너희 전에 있던 선지자들도 이같이 박해하였느니라

주님의 인자는 부자가 되는 것도 아니요 다른 사람의 아픔과 상관없이 사는 것도 아니요 권세만 주장하는 것도 아니요 탐욕으로 배부른 것도 아니요 세상법대로만 판단하는 것도 아니요 사람의 꾀로 가득한 것도 아니요 당파를 지어 잇권을 챙기는 것도 아니요 박해를 면하기 위해 공의를 피하는 것도 아니다.

주님의 인자는 잘먹고 잘사는 데 있지 않다. 하나님나라는 먹고 마시는데 있지 않다. 주님의 인자는 의와 희락과 화평이다. 물론 개인적이지 않다. 공동체적이다.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은  거역하는 백성들에게도 주님은 약속을, 언약을 지키신다는 것이다. 어떻게?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신다. 결국은 말씀이다. (말씀이 육신이 되어 이땅에 오셨다. ) 우리에게는 주어진 말씀이 있다.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20)

 

 

 

시편 106:32-48

이 사람 모세는 온유함이 지면의 모든 사람보다 더하더라. 민수기의 사관은 모세를 이렇게 (민 12:3) 평가했다. 모세오경을 모세가 기록했다고 본다면 모세는 온유한 사람의 최고봉에 자기 자신을 올려놓았었다. 그런 모세도 결국에는 성깔을 부리고 말았다(33). 반복되는 거역에 함부로 말을 하고 만것이다.

시편기자는 주의 백성들의 거역을 “그래도 주님은 여러 번 그들을 건져주셨건만, 그들은 간악하게 항거하면서 죄악으로 자꾸만 빠져들었다.” (43 공동번역)라고 강조한다. 세상 사람들 중에 가장 온유했던 모세는 결국 실패하고 성깔을 부려, 자신도 화를 입게 되었지만 주님은 어떠하신가?

그러나 주님은 “그들의 아우성 소리를 들으실 때마다 고생하는 그들에게 눈길 돌리시고 그들과 맺으신 계약을 생각하시며 그 크신 사랑에 마음이 누그러져 그들을 잡아간 자들의 마음을 돌려 그들에게 동정을 베풀게 하셨다.” (44-46 공동번역)

그 크신 사랑에 마음이 누그러지셨다. 주님은 범죄와 죄악에 진노하신다. 심판하시고 벌을 내리신다. 그러나 주께 부르짖을 때마다 언약을 기억하신다. 파기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영원부터 영원까지 지키시기 위해서다. 시편기자는 이런 주님을 찬양한다.

순종 못하기로 말하면 나도 이스라엘 백성 못지 않다. 이땅 사람들과 함께, 이땅 사람들의 가치관을 배우며, 이땅 사람들처럼 처세한다. 결국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사는 나에게 올무로 다가 올것이다.  오늘도 주의 도우심을 바라고 부르짖는다. 이것저것 내가 원하는 것 말고 주님의 뜻대로 살 수 있게 해달라고.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신 것을 조금이라도 실천하며 살 수 있게 해달라고. 그래서 영원토록 주님을 찬양할 수 있게 해달라고.

시편 106:13-15

주님의 권능과 은혜를 곧 잊어버리는 백성들. 주님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않는 백성들.(13)

찬양의 노래를 부르던게 엊그제 같은데 욕심을 크게 내며 (탐욕에 빠져) 하나님께 도전장을 내밀었다. (14)

주님께서는 그들의 몸은 살찌게 하셨으나 (요구를 들어주셨으나) 그들의 영혼은 말라비틀어지게 하셨다. (15)

요구를 들어주셨다고 다 기도응답이 아니다. 주님은 탐욕으로 도전하는 사람들을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사람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이루게도 하신다.

피골이상접한 육체가 말라 비틀어진 영혼보다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답다. 주의 은혜를 기억하는 자가, 주님의 가르침을 기다릴 것이다.

감사 찬양이 그치는 순간 은혜도 잊어버리고 주님의 가르침도 기다리지 않게 된다. 그래서

시인은 역사를 노래하고 또 노래한다.

시편 106:1-12

요며칠 시편기자는 역사를 노래한다. 우리는 성경 66권을 외우기 위해서 노래를 지어 부른다. 조선의 왕들을 외우기 위해 태정태세문단세를 나리나리개나리 운율에 맞춰 불렀다. 확실히 노래는 암기에도 군가처럼 공동체정신을 불러일으키는데 도움이 된다.

시편기자는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에 감사하면서, 주의 권능을 찬양하고 선포하면서, 주께서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를 기억하면서, 주의 구원과 돌보심을 자랑하면서 노래를 부른다. 이런 노래를 지어부르는 이유는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짓는 자신을 보기 때문이다. 그러니 주의 기이한 일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않은 , 그래서 불순종한 조상임에도 불구하고 조상들을 대적에서 구원하신 그 주님의 인자와 권능에 다시 목을 매는 것이다. 홍해를 가르시고 백성들을 구해주신 주님을 찬양하는 노래는 그당시 백성들만 불러야할 노래가 아니라 자손대대로 불러야 할 노래고 우리도 불러야 할 노래다.

시편기자는 생뚱맞게 3절에 정의를 지키고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노래한다. 전체 구성상 뭔가 흐름에 맞지 않아 보인다. 그렇다. 복은 정의와 공의에 있다. 그런데 우리는그렇게 못산다. 주의 은혜와 인자가 필요한 이유다. 정의와 공의로 산다면 굳이 옛일을 노래하지 않아도 된다. 오늘을 노래하면 될것이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주의 은혜와 인자가 필요하다. 인생의 항해를 광야를 지나감 같이 가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주의 은혜와 인자를 노래하는 것이다.

복이 있는 사람은 정의를 지키고 항상 공의를 행하려는 사람들이다. 주의 선하심과(은혜와) 인자를 암기하고 노래하는 자들이다.

 

 

시편 105:45

시편기자는 출애굽을 노래한다. 주님은애굽땅에서 나그네로 사는 주의 포백성을 번성하고 강하게 하셨다. 한편으로는 대적들로 하여금 주의 백성을 미워하고 종으로 착취당하게 하셨다. 주님은 모세와 아론을 보내셔서 열가지 징조를 행하시고 마침ㄴ주의 백성들을 즐겁게 출애굽하게 하셨다. 그리고 가나안을 소유하도록 인도하셨다. 왜?

이는 그들이 그의 율례를 지키고 그의 율법을 따르게 하려 하심이로다 할렐루야! (45)

구원은 번성과 강함을 위함도 아니요 즐거움을 위함도 아니다. 물론 소유에 있지도 않다. 주의 율법을 지키고 따르게 하기 위해서다.

주님은 우리가 번성하고 강하게 다른 나라에서 나그네로 살다가 결국은 미움받고 착취 당하는 것보다, 하나님나라에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나라 법을 지키고 따르기를 원하신다. 그러나 우리는 번성과 강함에 미련을 버리지 못하고 있다.

45절 시편기자의 결론은 모두가 잘 알지만 싫어하는 정답이다.

할렐루야! 우리에게는 예수님이라는 본보기도 있고,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도 있다. 무엇보다 우리가 지키고 따라야 할 율법은 사랑이 되었다.

그 값으로 이스라엘은 주신 법규를 따르고 가르쳐주신 법을 지켜야만 하였다. 할렐루야.(공동번역)

그 값으로! 하나님나라를 소유했으면 (하나님의 소유된 백성이면) ‘그 값’을 내야한다. (하나님나라를 상속받았으면 상속세를 내야지.)

하나님나라를 소유했으면 그값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