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행전 27:1-11

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닷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결박당한 신분이지만 로마행 배를 탄 바울의 입에서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배 저배 바꿔타며 로마로 가는 길은 험한 길이었어도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니 바울에게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다른 죄수들과 끌려가는 신세지만 (유죄로 항소한) 다른 죄수와 달리 무죄를 상고한 것이라 인솔하는 백부장 율리오의 특혜도 받았다. 아니 9절에서는 로마행의 진짜 인솔자이신 하나님을 대신하여 배의 일정에도 관여했다.

백부장은 바울과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지 못하고 선주와 선장을 믿고 배의 일정을 따랐다.

세상에게 우리와 (나와)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여 주는 것은 쉽지 않다. 천국행 열차를 타고 있어도 마찬가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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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를 저어가자 험한 바닷물결 건너 저편 언덕에~~~

결박당한 신분이지만 로마행 배를 탄 바울의 입에서 이런 노래가 나오지 않았을까. 이배 저배 바꿔타며 로마로 가는 길은 험한 길이었어도 이년 넘게 기다린 사명의 길을 가는 것이니 바울에게는 희망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복음의 길은 편하고 쉼의 길이 아니다. 편하고 싶으면, 쉬고 싶으면 더이상 안나가는게 상책이다. 왜냐하면 더 나아질 길이 결코 아니기 때문이다. 기대해서도 안된다. (너무 부정적인가) 하나님나라는 의와 희락과 평화의 나라지만 편안하게 등따시게 배부르게 먹고 마시는 나라가 아니다. 그러니 앞으로 나가기가 정말로 쉽지 않다. 내가 그렇다. ㅠㅠ

찬송대신 희망의 나라로를 불러재껴본다.

돛을 달아라 부는 바람 맞아 물결 넘어 앞에 나가자….​성령의 바람에 맡기는 수밖에 없다.

자유 평등 평화 행복 가득찬 곳 하나님 나라로…

 

 

사도행전 26:19-32

바울은 아그립바 왕에게 자기 변론을 하는 것이 아니라 간증을 통해 복음을 전파한다. 자신이 받은 사명이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 끝 (이방인) 까지 이르러 회개하라고 전하고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회개에 합당한 삶을 가르치는 것이라고 하였다. 이것이 바울이 해 온 일이었다고 간증하였다.

함께 듣던 베스도 총독이 바울의 많은 지식이 바울을 미치게 한다고 대꾸하자 바울은 미친소리가 아니라 참되고 온전한 말, 즉 진리라고 답했다. 바울은 다시, 아그립바 왕에게 자신은 한쪽 구석에 숨어서 몰래몰래 일을 한 것이 아니라 드러내 놓고 일했다고 말했다. 아그립바 왕이 믿는 선지자들의 말씀에 근거해서 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아그립바 왕은 바울에게 적은 말로 나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냐고 물었다. 바울은 말으 많고 적음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자신이 결박된 것을 제외하고 그자리에 모인 모든 사람들이 바울 자신처럼 성령에 (예수 그리스도께) 매여 살기를 바란다고 하나님께 기도하는 심정으로 말한다고 답했다.

아그립바 왕과 총독 베스도, 그리고 버니게와 천부장 등등, 함께한 사람들은 따로 모여 바울이 무죄하다고 인정했다. 그러나 황제에게 상소한 것을 트집삼아 석방하지 않았다.사람이 계획하나 일을 이루어 가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사도행전 26:1-18

아그립바 왕 앞에서 선 바울은 변론할 기회를 얻었다. 바울은 손을 들어 변론을 시작했다. 이어지는 바울을 공손함을 생각하면 손을 들었다는 것은 좌중을 잠잠케 함이라기보다 정중한 인사의 방법이었을 것이다. 바울의 변론은 자신의 무죄함에 대한 주장이 아니라 자신이 갇힌 이유에 대한 설명이었다. 한편으로는 간증이었다.

바울은 애초부터 사람들의 재판에는 관심이 없었을지 모른다. 그의 관심은 마지막 다시 올 심판에 맞춰있는 것 같다. 마치 다시 올 심판대 앞에 섰을 때를 준비하며 아그립바 왕 앞에서 예행연습을 하는 것일까?

바울의 간증의 핵심은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라는 주님의 음성을 들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바울은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라는 표현을 덧붙인다. 가시채는 가시가 달린 채찍을 뜻한다. 농부는 밭을 갈 때 말을 듣지 않는 소나 말을 이 가시채로 때렸다. 만약 소가 뒷발길질을 하면 더 심하게 가시채로 맞게 된다는 뜻이다. 다시말해 사울이 주님을 박해하는 것을 소가 뒷발길질 하는 것에 비유하신 것이다. 주인의 말을 들으라는 것이다.

“사울아 사울아” 불러주시는 주님이 누구신지 사울은 물었고, 주님은 예수 그리스도라고 말씀해 주셨다. 그리고 주인의 뜻이 무엇인지 들었다. 자신이 무엇을 해야할 지 알게 되었다.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그가 들으시죠  그러나

내가 들어야 한다. 내가 겸손히 들어야 한다.

내 이름 아시죠/ 내 모든 생각도/ 아바라 부를 때/ 주님 말씀하시죠

사도행전 25:13-27

아그립바 왕과 (왕의 누이) 버니게가 새로 부임한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가이사랴에 와서 여러날을 묵었다. 베스도는 아그립바 왕에게 바울의 일을 의논했다. 전임 총독 벨릭스가 바울을 가둬두었고, 예루살렘을 방문하였을 때 유대인 대제사장들과 장로들도 바울을 고소하여서, 로마법에 따라 처리하려고 지체하지 않고 바울을 재판하였으나, 유대에서 온 원고들이 주장한 악행의 혐의를 하나도 제시하지 못했다고 했다. 베스도 자신이 듣기에는 순전히 유대인들의 종교문제라고 생각되어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가서 (종교) 재판을 받겠냐고 물으니 바울은 황제 가이사의 판결을 받겠다고 호소하여 가이사에게 보내기까지 우선 잡아두라고 명하였다고 했다.

아그립바 왕은 베스도에게 자신도 바울의 말을 듣겠다고 했고 베스도는 다음날 바울을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앞에 세웠다. 베스도는 다시한번 아그립바 왕과 버니게 그리고 그자리에 모인 천부장을 비롯한 고위관리들 앞에서 자신의 판결은 바울이 무죄라고 밝혔다. 다만 바울이 황제에게 상소하였기 때문에 황제에게 보낼 예정인데, 황제에게 이 사건을 어떻게 보고해야 할 지 몰라, 여러분이 심문해서  상소할 자료가 있으면 알려달라고 모인 사람들의 의견을 구했다. 죄목도 밝히지 않고 죄수를 보낼 수는 없다고 하였다.

로마법!

무소불위의 총독도 로마법을 운운하며 한 사람의 생명을 존중한다. 물론 유대인의 여론과 맞물려 판결을 미루고 미루었지만. 오늘날 정치적 판단이나, 돈, 여론에 밀려 굽어진 법적용이 얼마나 많은가? 법을 맡은자들이 법을 존중만 하여도 세상은 좀 더 나아지지 않을까? 법치가 어려운 이유는 법이라는 잣대가 굽어졌기 때문이다. 말씀 앞에 선 우리가 말씀을 대하는 태도도 이렇지 않을까?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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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로 총독으로 부임한 베스도는 전임 벨릭스 총독이 남겨놓은 바울건으로 고민했다. 로마법에 따른 그의 판결은 명료했다. 무죄. 그러나 전관예우도 해야하고 야당의 입장도 고려해야 하고 여론도 반영해야 했다. 그래서 무죄선고를 하고 바울을 풀어주지 못하고 유대인 종교재판에 넘겨줄 생각을 했다. 그런데 바울이 자신은 석방이 아니라 종교재판을 받아야 한다면 로마법에 따라 판결을 받겠다고 황제에게 상고해 버렸다. 베스도는 어찌할 것인가?

유대땅에서는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들 수 있는 베스도였다. 그런 베스도도 로마법 법치를 존중했다. 로마에서도 그리스도 예수를 증거해야 하는 바울은 두해동안 허송세월을 하고 있는 것일까? 주님은 로마법을 사용하셔서 바울을 지켜주시는 것일까? 1세기 불의한 재판관도 법치를 생각하는데, 21세기 오늘도 돈, 여론, 권력에 정의는 왜곡되고 있다. 불의한 재판관 정도가 아니라 탐욕적인 재판관들이 많은 탓이다.

바울은 전임 벨릭스에게 의와 절제와 다시 올 심판에 대해 가르쳤었다. 지도자에게 꼭 필요한 덕목이다. 탐욕이 지배하는 세상에서 의와 절제와 다시 올 심판은 나를 돌아보게 한다. 정말 깨끗한 사람이 드문 세상이다.

사도행전 24:24-25:12

하루 쉬었다.

무죄가 뻔한 바울을 벨릭스는 (유대인들의 소동이 귀찮아) 판결을 미루고 그냥 바울을 영내에서 자유롭게 지내도록 했다.

시간이 지나 벨릭스는 유대인 아내 드루실라와 바울을 불러서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다는 것이 삶에 구체적으로 어떻게 적용되는지 들었다. 바울은 의와 절제와 다시 올 심판에 대해 강론했다. 의와 절제는 지도자인 벨릭스에게 필요한 덕목이요, 다시 올 심판을 염두에 두고 권력을 행세해야 한다.

벨릭스는 의와 절제의 삶 대신 탐욕을 추구했다. 자주 바울을 불러 얘기를 들은 이유는 복음을 배우고자 함이 아니요 (보석금을 대신해서) 자신에게 돈을 주면 바울을 놓아줄 심산이었다. 이렇게 두해가 지났다. 벨릭스 대신 베스도가 총독이 되었다. 벨릭스는 바울을 잡아둔 채 이임했다.

베스도가 가이사랴에 부임하고 삼일 후 예루살렘을 방문해 종교 자도자들을 만났다. 대제서장들과 지도자들은 바울을 예루살렘으로 호송해 줄 것울 요청했다. 호송중에 죽일 계획이었다. 베스도는 바울이 가이사랴에 잡혀있고, 자신도 곧 가이사랴로 돌아가니 가이사랴에 와서 고발하라고 하였다.

가이사랴에 돌아 온 베스도는 바울 사건을 재판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고발에 대해 증거를 대지 못했다. 바울은 자신은 유대법이나 로마법에도 무죄라고 변론했다. 똑똑똑. 무죄 판결을 받아야 하는데…

신임 베스도는 (총독 기간을 편히 보내고자) 유대인들의 마음을 얻고자하여 바울에게 예루살렘에 거서 재판을 받겠느냐고 물었다. 바울은 유대인들의 간계를 알았을까?) (하루 속히 로마에서도 증거해야 하는 사명을 다하기 위해) 지난 이년동안 유대법에는 무죄하다는 것은 베스도 총독도 이미 아시지 않냐고 반문하며 예루살렘이 아니라 가이사 법정에서 심문 받겠다고 상소하였다.

이렇게 두해가 지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