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9:5b-11

느헤미야 9:5b-11(공동번역)

야훼 하느님을 기리는 내용이 이어진다. 하느님은 영원히 (옛날부터 길이길이) 노래할 수 없을 정도로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하느님의 이름이 위엄차고 높으시다. 야훼 하느님은 창조주이시다. 만물에생명을 불어 넣으시는 분이시다. 자연만물의 예배를 받으시는 분이시다. 이 하느님이 아브람을 택하시고 아브라함으로 이름을 불러주셨다.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한결같은 마음을 보이자, 하느님은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고, 의리를 지켜 그 약속을 이루셨다. 이스라엘 선조들이 이집트에서 고생한 신음과 홍해에 막혀 아우성 치는 소리를 들으시고 파라오와 그의 신하들과 이집트 백성들에게 놀라운 일로 하느님의 능력을 드러내셨다. 하느님은 바다를 가르시고 이스라엘 자손은 마른 땅으로 건너게 하식, 뒤쫓던 자들은 거센 물결에 잠기게 하셨다.

//말씀은 회개를 불러오고, 회개는 다시 말씀 앞에 서게 한다. 그리고 말씀은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상기시켜 준다. 우선은 창조주 하나님을, 그리고 창조주 하나님이 우리 가운데 무엇을 어떻게 행하셨는지 알려준다. 찬송가 가사처럼, 하늘을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하나님에 대해, 하나님이 우리에게 배푸신 은혜에 대해 다 기록할 수 없지만 말이다. 더군다나 사람의 언어로는 온전히 표현할 도리도 없다. //이 의리 있는 하나님께 한결 같은 마음으로 나아가야 한다. 신실하신 하나님께 우리 역시 신실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가 고생 가운데 은밀하게 내뱉는 신음소리도 들어주시고, 우리 공동체가 당한 어려움에 아우성치는 소리도 들으시고 함께 하신다. 그렇다면 우리도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말씀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성령에 이끌려야 한다.

느헤미야 9:1-5a

느헤미야 9:1-5a (공동번역)

말씀은 회개를 불러 온다. 이스라엘 백성은 베옷을 걸치고 흙을 뒤집어쓴 채 단식을 하기 위해 모였다. 이스라엘 후손들은 다른 민족들과 맺은 관계를 다 끊고, 저희의 잘못과 선조들의 죄를 고백했다. 하루의 사분의 일은 하느님 야훼의 법전을 읽고, 사분의 일은 하느님 야훼 앞에 엎드려 죄를 고백했다. 레위인들이 서는 단위에서 예수아 빈누이 카드미엘 스바니야 분니 세레비야 바니 그나니가 하느님 야훼께 죄를 고백했다. 레위인인 예수아 카드미엘 바니 하삽니야 세레비야 호디야 스바니야 브다히야가 일어나 야훼 하느님을 기리라고 외쳤다. 

//말씀(법)은 기본적으로 우리가 죄인임을 깨닫게 한다. 말씀을 읽은 시간 만큼 회개하게 되어있다. 우리의 회개는 막연하지 않다. 말씀이라는 거울에 비친 우리 자신에 대한 마땅한 반응이 회개다. 하나님을 기리는 것이 회개다. 그러니 회개가 곧 예배다. 예배는 말씀을 듣는데서 시작한다. 그러니 예배는 내가 주도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하나님이 주도하신다.

느헤미야 8:9-18

느헤미야 8:9-18 (공동번역)

온 백성은 하나님이 내려주신 모세의 법전에 기록된 말 한 마디 한 마디를 들으며 울었다. 총독 느헤미야와 선비요 사제인 에즈라와 백성을 가르치던 레위인들이 온백성에게 이날은 하느님 야훼께 바친 거룩한 날이니 울며 애통하지 말라고 말했다. 오히려 가서 잔치를 차려 배불리 먹고 마시라고 권했다. 미처 먹을 것을 마련하지 못한 사람이 있거든 그들 몫도 챙겨주라고 당부했다. 이날은 우리 주님의 날로 거룩하게 지킬 날이니, 슬퍼하지 말고 야훼 앞에서 기뻐하면 야훼께서 지켜주실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게 레위인들과 이날은 거룩한 날이미 슬퍼하지 말고 조용하라며 온 백성을 진정시켰다. 온 백성은 가르침을깨닫고 마냥 기뻐하며 돌아가서 크게 잔치를 벌이고 없는 사람에게도 몫을 나누어주면서 먹고 마시며 좋아했다.
다음날,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일반 백성의 대표들이 선비 에즈라에게 모여 법전에 기록된 말씀을 공부했다. 말씀을 공부하다가 야훼께서 칠월에 초막절을 지키라고 분부하신 것을 알게 되었다. 그들은 각 성읍과 예루살렘에 초막절을 지키도록 전갈을 보냈다. 백성들은 나가서 자기 초막을 만들어 지켰다.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듯이 성대한 절기를 지키기는 눈의 아들 여호수아의 시대 이후로 그날까지 없었던 일이었다. 그 기쁨을 이루 말할 수 없었다. 에즈라는 초막절 기간동안 첫날부터 마지막 날까지 날마다 하느님의 법전을 백성에게 들려주었다. 그들은 팔일째 되는 날 규정대로 폐회 예배를 드렸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울며 통곡하지 않을 사람이 있으랴?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의 자리에서는 하나님과 더불어 기뻐할 수 있어야 한다. 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의 증거는 무엇인가? 온 공동체가 함께 먹고 마시며 즐기는 것이다. 없는 사람들에게도 몫을 나누어주는 나눔의 잔치여야 한다. 있는 자들만의 잔치는 하나님이 기뻐하시지도 않고, 사람들도 진정한 기쁨을 누릴 수 없다. //에스라와 말씀을 공부하다가 초막절을 적용하기로 했다. 초막을 짓고 지내는 것은 오늘날 우리가 문자적으로 적용할 내용은 아니다. 그러나 절기내내 법전(말씀)을 (가르치고) 들었다는 것은 적용이 가능하다. 말씀은 곧 임마누엘이다. 하나님의 사랑 안에 거하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는 것이기 때문이다. 예수께서 아버지 하나님의 계명을 지켜 성부 하나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듯이, 우리도 주님의 계명을 지켜야 주님의 사랑 안에 머물러 있게 될 것이다. (요15:10) //형식은 담을 수 없어도 말씀을 담을 수는 있다.

느헤미야 8:1-8

느헤미야 8:1-8 (공동번역)

//주인공은 에스라로 바뀌었다. 성벽재건과 달리 공동체 재건, 종교적 재건에는 행정가나 정치적 인물이 앞장서야 하는 것이 아니다. 백성들은 공동체 재건을 선비(학사) 에스라에게 맡긴다. 다른 이유는 없다. 에스라가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였기 때문이다. 백성들은 에스라에게 하나님께서 내려주신 모세의 법전을 가지고 오라고 요구한 이유다. //에스라가 공동체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한 일을 특별하지 않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려주었다. 백성들은 하나님의 말씀(법)을 귀담아 들었다. 말씀(법)을 읽는 자는 하나님을 칭송하였고 말씀을 듣는 자는 아멘으로 화답했다. 그러나 말씀은 듣기만 해서 바로 이해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더군다나 귀환한 백성들 중에는 바빌론/페르시아 말이 오히려 편해서 옛글을 읽을 수 있는 사람도 제한적이었을 것이고 옛말을 알아 듣는 백성들도 적었을 것이다. 그래서 에스라와 함께 단 위에 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읽어주는 레위 사람들도 있었고, 백성들 사이를 다니며 풀이해 주는 레위사람들도 있었다. //예배는 … 먼저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목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 예배란 하나님이 주시는 것임을 묵상합니다. (하루 예배의 순간 P121-122)

느헤미야 7: 61-73

느헤미야 7: 61-73 (공동번역)

귀환자들 명단에는 가문이 밝혀지지 않아 이스라엘 후손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환한 사제 가문에도 족보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다 가문에 장가들어 족보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사제직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대사제가 임명되어 우림과 둠밈으로 결정할 때까지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귀환자 등록부와 비교해 주민등록을 마치고 보니 온 회중이 사만이천삼백육십명에 종 칠천삼백삼십칠명이나 되었다. 남녀 가수도 이백사십오명이 따로 구분되어 기록되었다. 말이 칠백삼십육마리, 노새가 이백사십오마리, 낙타가 사백삼십오마리, 나귀가 육천칠백이십마리. 각 가문의 대표들은 공사에 필요한 돈을 바쳤다. 각하 (느헤미야?)도 금화 천 드라크마, 은 오백 미나, 쟁반 오십개, 제복 삼십 벌을 바쳤다. 각 가문의 대표들이 바친 것은 금화 이만 드라크마 은 이천이백 미나나 되었고, 일반 백성이 바친 것도 금화가 이만 드라크마, 은 이천 미나, 제복이 육칠십 벌이나 되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일부 일 백성은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고, 합창대원들과 수위들과 성전막일꾼들은 예루살렘에 딸린 촌락들에, 그리고 나머지 일반 백성들은 저희의 성읍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호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 특별히 제사장의 경우에는 사역과 혜택이 제한 되었다.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으로 제사장들의 자격을 확인하기로 했다. 사람이 작성한 호적이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아신다. //특이하게 가축들도 등록하였다. 가축의 규모를 보면 귀환한 유다 공동체가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가난한 동족에 대한 착취가 없었어야 했다. 성벽재건에 일반백성에 바친 금화와 은의 양이 가문의 대표가 바친 양과 같다. 대표들이 일반 백성이 모은 만큼 채운 모양새다. 대표들이 자신들이 바친 만큼 백성들에게 착취했다면 그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 대표나 일반 백성이나 자원하는 마음이었기를… //밤새 계엄농단이 있었다. 계엄을 사욕을 위해 선포하는 일이 가능했다니… ㅠㅠ 이제라도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펼쳐주길 바랄뿐이다.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 짓는다.(잠29: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