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7: 61-73

느헤미야 7: 61-73 (공동번역)

귀환자들 명단에는 가문이 밝혀지지 않아 이스라엘 후손인지 아닌지 알 길이 없는 사람들도 있었다. 귀환한 사제 가문에도 족보가 분명하지 않는 사람들이 있었다. 유다 가문에 장가들어 족보에 오른 사람들도 있었다. 이들은 사제직에서 제외할 수 밖에 없었다. 대사제가 임명되어 우림과 둠밈으로 결정할 때까지 제사장의 식탁에 참여하지 못한다고 지시를 내렸다. 이렇게 귀환자 등록부와 비교해 주민등록을 마치고 보니 온 회중이 사만이천삼백육십명에 종 칠천삼백삼십칠명이나 되었다. 남녀 가수도 이백사십오명이 따로 구분되어 기록되었다. 말이 칠백삼십육마리, 노새가 이백사십오마리, 낙타가 사백삼십오마리, 나귀가 육천칠백이십마리. 각 가문의 대표들은 공사에 필요한 돈을 바쳤다. 각하 (느헤미야?)도 금화 천 드라크마, 은 오백 미나, 쟁반 오십개, 제복 삼십 벌을 바쳤다. 각 가문의 대표들이 바친 것은 금화 이만 드라크마 은 이천이백 미나나 되었고, 일반 백성이 바친 것도 금화가 이만 드라크마, 은 이천 미나, 제복이 육칠십 벌이나 되었다. 사제들과 레위인들과 일부 일 백성은 예루살렘에 자리를 잡았고, 합창대원들과 수위들과 성전막일꾼들은 예루살렘에 딸린 촌락들에, 그리고 나머지 일반 백성들은 저희의 성읍에 각각 자리를 잡았다.

//호적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들, 특별히 제사장의 경우에는 사역과 혜택이 제한 되었다. 대제사장이 우림과 둠밈으로 제사장들의 자격을 확인하기로 했다. 사람이 작성한 호적이은 분명하지 않을 수 있어도 하나님은 아신다. //특이하게 가축들도 등록하였다. 가축의 규모를 보면 귀환한 유다 공동체가 일정수준의 경제력을 유지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앞서 언급한 가난한 동족에 대한 착취가 없었어야 했다. 성벽재건에 일반백성에 바친 금화와 은의 양이 가문의 대표가 바친 양과 같다. 대표들이 일반 백성이 모은 만큼 채운 모양새다. 대표들이 자신들이 바친 만큼 백성들에게 착취했다면 그것도 바람직 하지 않다. 대표나 일반 백성이나 자원하는 마음이었기를… //밤새 계엄농단이 있었다. 계엄을 사욕을 위해 선포하는 일이 가능했다니… ㅠㅠ 이제라도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는 착한 사람이 세력을 펼쳐주길 바랄뿐이다. 나쁜 사람이 정권을 잡으면 백성이 한숨 짓는다.(잠29:2)

느헤미야 7: 39-60

느헤미야 7: 39-60 (공동번역)

//귀환자들의 명단이 이어진다. 성전막일꾼들이 함께 귀환했다. 앞서 언급했듯이 이들은 천한 신분이었다. 사실 귀환한 유다 공동체에 이들이 포함되었다는 것이 신기할 정도다. 유다인들은 성전 막일을 위해서 이들이 필요했기 때문에 함께 귀환했다고 할 수 있겠지만, 성전막일꾼 입장에서는 신분세탁을 하고 바빌론/페르시아에 그냥 머물러 사는 것이 더 좋았을 수도 있다. 이들이 귀환에 참여한 것은 순전히 성전에서 일하는 것이 좋아서였을 것이다.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 준비로 섬길 수 있다는 기쁨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성전에서 일하는 기쁨이 막일꾼으로 천대받는 것보다 나았다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나라에서의 기쁨이 아닐까 생각해 본다. 이들은 찬양대와 동일하게 하나님나라의 한 자리를 차지할 것이다. 모두가 귀한 조각들이다. 교회에서 숨은 봉사자로 섬기는 분들께도 동일한 기쁨이 있기를…

느헤미야 7:1-38

느헤미야 7:1-38 (공동번역)

성수축이 끝나자 느헤미야는 성문을 만들어 달고 수위드를 배치했다. 그리고 동생 하나니와 성채수령 하나니야에게 예루살렘 수비를 맡겼다. 느헤미야는 하나니야가 진실한 사람이고 하느님 두러운 줄을 아는 사람이라고 평가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문을 해가 뜨거워 진 후 열고 해지기 전에 닫게 했다. 예루살렘 성민이면 누구나 보초를 서게 했으며, 집마다 제 집 앞에서 보초를 서게 했다. 예루살렘 성은 컸고 넓었으나 새 집을 세워야 만큼 인구는 얼마되지 않았다. 하느님께서는 주민등록을 하도록 느헤미야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느헤미야는 첫 귀환민들의 등록부를 찾았다. 거기에는 바빌론으로 사로잡혀 갔다가 예루살렘과 유다 지방 성읍으로 돌아온 지방민들의 가문과 인원이 적혀있었다.

//느헤미야는 물리적 성벽을 수축하고 지켰다. 느헤미야는 임무를 완수했다는 안도감도 잠시 지켜야 한다는 무게감을 느낀 것 같다. 사실 성벽 수축은 두 달이 채 걸리지 않았지만, 성벽을 유지하는 것은 남은 평생의 과제다. 느헤미야가 십이년 동안 유다 총독을 지냈다고 했으니 느헤미야가 정말 바랐던 것은 물리적 성벽의 수축보다는 유다 공동체의 회복이었을 것이다. 가난한 자들에게 불법적 돈놀이를 하지 않고, 과도한 세금으로 백성들을 착취하지 않은 것이 그 증거다. 하나님께서는 보다 많은 사람들이 거할 수 있도록 새 집을 짓고 주민등록을 실시하도독 느헤미야의 마음을 움직이신다. 느헤미야로 하여금 유다 공동체의 회복을 꿈꾸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나의 마음 속에 꿈꾸게 하신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나라! 교회 공동체다. 내 집 앞은 내가 지켜야 하는데… 나는 내게 주어진 의무를 오롯이 감당하고 있는지…

느헤미야 6:1-19

느헤미야 6:1-14 (공동번역)

성문을 제외하고 성벽 재건이 마무리 되었다는 소식이 원수들의 귀에 들어갔다. 산바랏과 게셈은 느헤미야에게 전갈을 보내 만나자고 했다. 느헤미야를 해치려는 속셈이었다. 느헤미야는 공사마무리를 핑계로 회동을 거부했다. 그들은 4번이나 느헤미야를 청하였지만 느헤미야는 같은 말로 거부했다. 그들이 다섯번째는 초청서한을 밀봉도 하지 않은채 보내왔다. 그 내용은 느헤미야가 유다인들의 왕이 되기 위해 성벽을 재건한다는 소문이 있는데 이것이 황제의 귀에 들어가고 말 것이니 좀 만나자는 것이었다. 한마디로 반역죄목을 씌워 겁을 주어 성벽재건을 그만두게 하려는 심산이었으나 느헤미야는 도리어 힘을 내었다. 

느헤미야가 스마야라는 사람이 아프자 그의 집으로 병문안을 갔다. 그는 원수들이 느헤미야를 죽이러 올 것이니 하느님의 성전으로 들어가 숨으라고 조언했다. 느헤미야는 살기 위해 성전 본관에 들어갈 수 없다고 대답했다. 사실 스마야는 느헤미야에게 겁을 주어, 해서는 안 될 일을 하게 한 다음, 느헤미야를 조롱거리로 만들 심산이었다. 느헤미야는 하느님께 원수들이 하는 짓거리를 잊지 말아달라고 기도했다. 자신에게 겁을 주려고 하는 무리들도 잊지 말아 달라고 기도했다.

//느헤미야는 성벽재건에 앞장 선 자신을 암살하려는 산발랏 등의 시도를 기록한다. 성벽재건을 마무리 하지 못하도록 그들은 느헤미야를 죽이려고 했다. 성 밖으로 유인하여 암살하려는 계획이 틀어지자, 성전 안으로 도피해 들어가게 하는 속임수로 느헤미야를 겁박하여 조롱거리로 삼고자 했다. 느헤미야가 원수들의 계획을 무력화 시킬 수 있었던 능력은 기도에서 나온다. //느헤미야가 독자와 공유하는 기도는 개인적이지 않다. 개인적인 기도를 하지 않아서가 아닐 것이다. 그러나 철저히 성벽재건의 소명을 기억하고 받은 사명에 대한 완수에 촛점을 맞추어 기도한다. //오늘날 성도는 개인적으로 부르을 받지만 공동체, 곧 교회로 부름을 받는다. 그리고 받은 사명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로 세워지는 것이다. 이것이 우리의 기도 제목이 되어야 한다. 이것을 가로막는 온갖 생각들을 버릴 수 있도록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6

6:15-19

오십이 일간의 성수축 공사가 끝났다. 원수들도 성수축 공사가 끝났다는  소식을 들었다. 주변 모든 민족들은 이 일을 눈으로 보고 놀랐다. 그들은 이 일을 이루신 분이 다름 아닌 우리 하느님이심을 알게 되었다. 

많은 유다 유지들이 토비야와 자주 편지를 교환하고 있었다. 그들은 자녀들을 서로 결혼시켜 맹약관계를 유지하고 있었다. 이들은 느헤미야에게는 토비야를 칭찬했고, 토비야에게는 느헤미야의 말을 일러 바치곤 했다. 토비야도 (산발랏처럼) 느헤미야에게 여러통의 협박 편지를 보내왔었다.

//52일 간의 성벽 보수 공사는 느헤미야의 일이 아니라 하나님의 일이었다. 세상 사람들도 알았다. 쉽지 않았다. 방해자들이 많았다. 특별히 내부적으로 기득권자들이 외부와 내통하여 방해했다.  성벽을 수축하는 일은 유다 공동체의 재건하기 위함인데 유다 유지들은 하나님 대신 주변 실세들을 의지해서 기득권을 지키고자 했다. 이것은 겨레를 팔아먹고 공동체를 파괴하는 일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약에 따라 유다 공동체를 보존하신다. //기득권을 지킬 것인가? 정의와 공의로 살 것인가? 후자가 하나님을 세상에 드러낸다. 

느헤미야 5:14-19

느헤미야 5:14-19 (공동번역)

느헤미야의 유다출장은 십이년이나 되었다. 느헤미야는 그 기간동안 총독으로서의 급여를 받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선임 총독들이 양식과 술값으로 세금을 걷어 백성들을 괴롭히고 수하들이 백성을 착취하던 것을 답습하지 않았다. 하느님을 두려워하였기 때문이다. 느헤미야는 수하 사람들과 아무런 보상 없이 성벽재건에 온 힘을 다했다. 느헤미야에게는 방문객을 제외하고도 돌봐야 할 관리들이 백오십명이나 되었다. 느헤미야는 이들을 자기 부담으로 먹였다. 그렇지 않아도 부역으로 허덕이는 백성들의 형편을 알기 때문에 총독의 녹을 받겠다고 백성을 착취하지 않았다. 느헤미야는 하느님께 자신이 한 일을 기억하시고 잘 보살펴 주시기를 기도한다.

//형편이 어려운 백성들을 위해 이자를 받지 않기로 서약하는데 앞장 선 느헤미야. 느헤미야는 12년 동안 백성들의 세금으로 마련되는 총독의 급여도 받아지 않았다. 오히려 수하 관리들의 식탁까지 책임졌다. //총독의 급여를 받는 것과 총독의 수하들이 백성들을 착취하는 것은 일종의 관행이라고 적었다. 그러나 느헤미야는 가난한 자들의 사정을 알아주었다. (잠29:7) //원수 갚는 것을 하나님께 맡기듯, 느헤미야는 자기의 착한 행실에 대한 보상도 하나님께 맡겼다. 느헤미야는 개인적인 보상보다, 성벽재건이라는 사명 완수가 보상이기를 바란 것 같다. //은혜의 구원 외에 바랄 보상이 무엇인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