느헤미야 3:1-15

느헤미야 3:1-15 (공동번역)

성벽재건이 순조롭게 진척되었다. 대사제 엘랴십은 사제들을 거느리고 양이 다니는 문을 세워 하느님께 봉헌했다. 양문 옆에 잇닿은 부분은 예리고 사람들이, 그 옆은 이므리의 아들 자구르가, 물고기문은 하쓰나아 일가가, 그 옆은 하코스의 손자요 우리야의 아들인 므레못이, 그 옆은 므세자브엘의 손자요 베레기야의 아들인 므술람이, 그 옆은 바아나의 아들 사독이, 그 옆은 드고아 사람들이 (드고아 사람들 가운데 일부 유력자들은 상전의 말대로 공사에 가담하지 않았다.), 신시가문은 바세아의 아들 요야다와 브소디야의 아들 므술람이, 그 옆은 유프라테스 서부지방 총독의 자리가 위치한 곳까지 기브온 사람 믈라티야와 메로놋 사람 야돈이 기브온 사람들과 미스바 사람들을 데리고, 그 옆은대장장이 하르하야의 아들 우찌엘이, 그 옆은 향료 제조업자 하나니야가, 그 옆은 예루살렘 절반의 구역장이었던 후르의 아들 그라이야가, 그 옆은 하루맙의 아들 여다야가, 그 옆은 하삽니의 하들 하투스, 그 옆은 하림의 아들 말기야와 바핫모압의 아들 하숩이, 그 옆은 예루살렘 절반의 구역장이었던 할로헷의 아들 살룸이 자기 딸들과 함께, 골짜기로 나가는 문은 하눈과 자노아의 주민들이, 쓰레기를 쳐내는 문은 벳하께렘 구역의 장이었던 레갑의 아들 말기야가, 샘터로 나가는 문은 미스바 구역장이었던 골호재의 아들 살룸이 보수하고 장식했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3/

//예루살렘 성벽 재건에는 다양한 부류의 사람들이 참여했다. 대제사장을 비롯한 제사장들, 여러 가문의 후손들, 기브온과 미스바 사람들, 대장장이의 후손과 향료제조업자, 예루살렘 구역장의 후손들, 그리고 살룸의 딸들과 같은 여자들, 자기 집 앞의 성벽을 보수한 사람까지 다양했다. //이들 보수를 맡은 구역은 일터와 혹은 자신의 집과 가까운 곳이었던 것 같다. //느헤미야는 각 구역을 중수/재건한 책임자의 이름들을 거론한다. 그러나 실제 참여한 사람들은 훨씬 더 많았을 것이다. 이렇듯 성경에 나오는 이름은 가문을 대표하고 공동체를 대표한다. 다시 말해 성벽재건은 이들의 개인적인 수고의 열매가 아니다. 소속된 허다한 무명인들의 수고로 성벽이 보수되었다. 하나님의 나라도 무수히 많은 성도들의 수고로 세워져 간다. 이름이 기록되었다고 믿음이 더 큰 것도 아니며, 이름이 안 보인다고 하찮은 역할도 아니다. 모두 다 필요한 존재들이다. //하나님나라는 2차원 직쏘퍼즐이 아니라 레고블럭퍼즐이다. 2차원 직쏘퍼즐은 한 조각 한 각이 모두 같은 비중이다. 그러나 레고퍼즐은 다르다. 수 많은 조각들 중에는 안쪽에 꽂혀 밖에서는 보이지 않는 것들도 있다. 화려한 조각도 있고 단순한 조각도 있고 크기도 다양하다. 그러나 그 조각이 자기 자리에 없으면 레고는 완성되지 않는다. 이렇듯 교회 공동체를 세우는 일은 3차원 레고작업이다. 눈에 보이지 않는 지체들도 있지만 모든 지체들이 다 소중하다. 하나님의 눈에는 성도 모두가 2차 직쏘퍼즐의 한 조각 한 조각처럼 다 소중하게 보일 것이다. //오늘도 나의 위치에서 거룩하게 살게 하소서.

느헤미야 2:11-20

느헤미야 2:11-20 (공동번역)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 도착했다. 그는 자신이 하느님께 받은 사명과 예루살렘에 온 목적을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은 채, 몇 사람과 밤에 예루살렘을 돌아봤다. 느헤미야는 짐승(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을 돌아보았다. 나귀가 지날 수 없는 곳에서는 골짜기를 오르내리며 돌아봤다. 예루살렘 관리들은 느헤미야가 밤에 어디가서 무엇을 하고 왔는지 몰랐다. 느헤미야가 관리들과 동행하지도 알리지도 않았기 때문이었다. (사흘이 지나) 느헤미야는 유다 사람들에게 예루살렘을 돌아본 소감을 말했다. 그리고 어서 빨리 예루살렘 성을 다시 쌓아서 다시는 남에게 수모받지 않도록 하자고 말했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2/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방문을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라고 일기에 적었다. 포로귀환 후에도 여전히 황폐한 예루살렘 소식을 듣고 상한 심정으로 하나님께 아뢴 기도가 사명이 된 것이다. 그러나 일시적인 감상에서 나온 바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는 안다. 서너달 금식하며 기도하는 가운데 하나님께 받은 사명이다. 결국 예루살렘을 방문해 성벽을 재건하는 일은 느헤미야의 뜻이라기 보다,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기도 응답이라고 할 수 있다. //예루살렘 성벽을 살피는데 사흘이면 충분했다. 친척들의 보고와 다를 바 없었다. 그래도 느헤미야의 방문을 언짢아 하는 사람들이 있었기에 신중을 기했다. 예루살렘 성벽을 재건하는 일이 다시는 남에게 수모를 받지 않도록 하는 일이라고 유대인들에게 독려한다. 느헤미야 개인이 받은 사명을 예루살렘 유대인들의 사명이 되도록 했다. //개인이 받은 사명은 공동체적인 사명과 부합해야 한다. 성도의 사명은 교회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일이어야 한다. 하나님은 개개인의 사명으로 교회 공동체가 바로 서기를 기뻐하신다. 그렇다면 나의 사명을 함부로 주장해서는 안 된다. 공동체 안에서 받아들여지도록 노력해야 한다.

느헤미야 2:1-10

느헤미야 2:1-10 (공동번역)

//느헤미야가 예루살렘에서 온 형제로부터 소식을 들은 기슬레우월에서 니산월 사이에는 세개의 달이 끼어 있다. 그러니 2장은 서너달이 지난 후의 일이다. 느헤미야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는 것은 그가 여전히 금식하고 기도하고 있다는 증거일 것이다. 물론 식음을 전폐한 금식은 아니었을 것이다. //세상 임금도 안색으로부터 느헤미야 마음의 걱정을 알았다. 그렇다면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는 느헤미야의 기도를 모르실리 없다. //아버지 하나님은 아르닥사싸 황제의 입을 빌어 느헤미야의 소원을 묻는다. 느혜미야는 창조주 하나님께 기도하고 황제의 귀를 통해 유다에 가서 선조들의 뼈가 묻힌 성읍을 다시 세우게 해달라고 하나님께 소원을 아뢴다. //하나님께서는 황제와 황후의 마음을 움직이셨다. 황제는 느헤미야에게 다녀오라고 허락했다. 느헤미야는 한 술 더 떠, 황제에게 자신이 가는 일이 공무가 되게 해달라는 친서를 받아냈다.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형통하게 해 주신 덕분에 황제가 자신의 청을 들어주었다고 일기에 적었다. //그러나 유다에는 느헤미야의 일을 못마땅히 여기는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호론 사람 산발랏과 그의 심복 암몬 사람 토비야는 느헤미야가 이스라엘 사람의 편의를 봐주기 위해 온(왔)다는 소식에 몹시 언짢았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일을 싫어하는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느헤미야는 이들과 어떤 관계를 맺어갈까?

https://quietwaters.blog/2019/03/02/

느헤미야 1:1-11

느헤미야 1:1-11 (공동번역)

//예루살렘에서 돌아온 친척으로부터 예루살렘의 형편을 들은 예레미야는 여러날 금식하며 기도했다. 느헤미야의 기도는 “야훼, 하늘을 내신 하느님이여, 하느님을 사랑하고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면 한결같은 사랑으로 약속을 지켜주시는 높고 두려우신 하느님께 빕니다.” 하고 시작한다. 느헤미야와 하나님과의 관계는 피차 사랑하는 관계다. 느혜미야는 하나님을 사랑함으로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고, 하나님은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는 (언약관계에 있는) 사람을 사랑함으로 약속(언약)을 지켜주신다. 기도는 언약관계에 근거한 하나님과의 대화다. //느헤미야 가문이 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지 않았는지 언급이 없다. 예루살렘으로 귀한하지 않았기 때문에 덜 경건한 가문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물론 느헤미야는 6절에서 ‘저와 저의 가문도 죄를 지었습니다’ 하고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께 죄를 지었다고 고백하지만, 이 죄가 꼭 예루살렘으로 귀한하지 않은 것이라고 단정지을 근거는 전혀없다. 느헤미야는 분명하게 하나님의 계명과 법규와 명령들을 어긴 것이 이스라엘 백성으로서 죄를 지은 것이라고 말한다. //그럼에도 느헤미야는 하나님께서 약속에 따라 그들을 귀환시키시지 않으셨냐고 반문한다. 예루살렘으로 돌아 간 그들이 하나님께서 능력으로 돌려보내신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자신이 드리는 기도를 들어달라고 간구한다. 기도의 내용은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지 않다. 그러나 귀환한 백성들이 고생하며 수모 받고 있고, 예루살렘 성벽이 무너진 채 있고 성문들은 불에 탄 채 그냥 그대로 있다는 소식에 대한 응전일 것이다. 다시말해 포로귀환은 했지만 예루살렘의 회복에 대한 약속이 미뤄지는 것에 대한 기도일 것이다. //기도는 약속에 근거한 것이어야 한다.

https://quietwaters.blog/2019/03/01/

데살로니가전서 5:1-11

데살로니가전서 5:1-11 (공동번역) 읽기

1-2 주님이 다시 오실 날에 대해서는 쓸 필요가 없다. 그날은 도둑 같이 온다는 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이다. 3-4 그 날은 태평세월을 노래할 때 갑자기 들이닥칠 것이다. 그날은 해산할 여자에게 닥치는 진통과 같아서 피할 도리가 없다. 그러나 빛 가운데 사는 성도들에게는 그 날이 도둑처럼 덮치지 않을 것이다. 5-6 성도들은 빛의 자녀요 대낮에 다니기 때문이고 밤이나 어둠에 속한 사람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어둠에 속한 사람들처럼 잠자고 있으면 안 되고,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깨어 있어야 한다. 7-8 잠자는 사람들은 밤에 속한 사람들이요 밤에 술을 마시고 취한 자들이다. 그러나 성도들은 대낮에 속한 사람이므로 정신을 똑바로 차리고 믿음과 사랑으로 가슴을 무장하고 구원의 희망으로 투구를 써야한다. 9-11 하느님은 우리에게 진노를 내리시기로 작정하신 것이 아니라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구원을 주시기로 작정하셨다.  그리스도께서는 성도가 그리스도의 부활에 함께 참여하도록 우리를 위해 죽으셨다. 그러므로 성도는 이미 하고 있는 그래도 서로 격려하고 서로 도와야 한다. 

//주님이 다시 오실 날은 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도둑 같이 올 것이다. 그런데 빛가운데 사는 성도들에게는 도둑 같이 오지 않는다고 역설적으로 가르친다. 그 날과 시를 알 수 있다는 것이 아니라 이미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하고 있기 때문이다. 성도는 이미 임마누엘을 누리기기 때문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에 참여한 성도들은 빛의 자녀다. 빛 가운데 거한다. 대낮에 다닌다. 반면 어둠에 속한 사람들도 있다. 빛을 모르기 때문에 술취하고 만다. 방탕하다. 빛의 자녀라면 구원의 희망을 가지고 믿음과 사랑으로 살아야 한다. 성도가 서로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해야 하는 이유는 바로 구원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부활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가신 길이다. 성도가 서로 격려하며 협력하여 완주해야 할 길이다. 성령충만을 구해야 할 이유다.

**성도는 깨어 있든지 자든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사람들이다. 이미 죽은 성도도, 아직 살아 있는 성도도 주와 함께 사는 것이 하나님나라의 삶이다. 임마누엘이 아니면 의미가 없다. 죽어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고, 살아서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것이 천국이다. 성도의 죽음이 슬픔이 아닌 이유다. 항상 주님과 함께 있을 그날을 소망하며, 성도는 서로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워야 한다. 나 혼자만의 천국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