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도서 2:1-11

전도서 2:1-11 (공동번역) 읽기

1-2 설교자는 행복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 향락에 몸을 담아보았으나 마찬가지로 헛된 일이라고 말한다. 웃음도 얼빠진 일이요, 향락도 별 수 없었다. 3-7 설교자는 지혜를 깨치려고 술에 빠져보기도 했다. 어리석은 일이었다. 덧없는 인생을 무엇을 하며 지내는 것이 좋을까하여 큰 사업도 해보고, 대궐을 짓고, 포도원과 동산과 정원도 만들어 갖가지 과일 나무를 심고 숲을 조성하고 시내도 끌어왔다. 많은 노예들과 종들을 거느리고 가축도 많아 자신만한 부자가 예루살렘에 없었다고 말한다. 8-10 왕으로 통치할 때도 주변 속국으로부터 많은 조공을 받았고 노래를 불러주는 남녀 가수들과 수청드는 여자들도 얼마든지 있었다. 이전에 예루살렘에서 왕노릇 한  어떤 어른보다도 세력이 컸다. 지혜의 덕을 보았다. 보고 싶은 것을 다 보았고 누리고 싶은 즐거움을 다 누렸다. 스스로 수고해서 얻은 것을 나는 마음껏 즐겼다. 이런 즐거움을 수고한 보람으로 알았다. 11 그러나 내가 한 모든 일을 돌이켜보니, 모든 것은 결국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 하늘 아래서 하는 일로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향락은 행복(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 선)이 아니다. 사람이 꾀를 내서 행하는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아름다운 것도 선한 것도 될 수 없기 때문이다. 지혜자가 술에 빠져 행복해보려고 시도한 것도 자가당착이다. 행복은 부자가 된다고 통치자가 된다고 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부자들과 권력자들을 보면서 행복하다고 말할 수 있는 경우가 얼마나 될까? 이렇게 전도자가 헛됨을 깨달은 것은 그나마 지혜의 덕이다 (9절). 이 지혜는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 선물 아닌 것, 자기 손으로 한 모든 일은 결국 바람을 잡듯 헛된 일로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고 노래한다. //예수께서 (눅17:10) 말씀하셨다. “너희도 명령대로 모든 일을 다 하고나서는 ‘저희는 보잘것없는 종입니다. 그저 해야 할 일을 했을 따름입니다’ 하고 말하여라.” 전도자가 자기 손으로 한 모든 일이 헛되고 쓸만한 것은 하나도 없다고 노래한 것과 일맥상통 한다. 우리 역시 무익한 종이다. 다만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을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불릴 뿐이다.  

https://quietwaters.blog/2022/11/29/

전도서 1:12-18

전도서 1:12-18 (공동번역) 읽기

12 설교자는 자신이 예루살렘에서 이스라엘 왕으로 있었을 때의 경험을 말한다. 13 설교자가 하늘 아래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을 알아보아 지혜를 깨치려고 무척 애를 써보았지만 하느님께서는 사람에게 괴로운 일을 주시어 고생이나 시키신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한다. 14 하늘 아래서 벌어지는 모든 일이 바람을 잡듯 헛된 일이었다고 말한다. 15 구부러진 것을 펼 수 없고 없는 것을 셀 수 없다. 16 설교자는 선왕들 중에 자신만큼 지혜를 깊이 깨친 사람이 없다고 자신한다. 이런 자신을 가지고도 17 어떻게 사는 것이 지혜로운 일인지, 어떻게 사는 것이 어리석고 얼빠진 일인지 애를 써서 알아보았지만 바람을 잡는 것 같은 일이었다고 말한다. 18 지혜 많으면 괴로운 일도 많아지고 알면 알수록 걱정도 많아지는 법이라고 말한다.

//인생의 기쁨은 어디 있을까? 꾀를 부리지 않고 창조섭리에 따라 살 때 진정한 기쁨이 있다. 사람의 꾀로는 기쁨을 찾을 수 없다. 사람의 지혜와 지식은 괴로움과 걱정을 더할뿐이다. 애를 쓸수록 하나님에 대해서도 괴로움을 주시는 분으로 오해할 뿐이다. 예수께서는 말씀을 듣고 행하는 사람이 지혜롭다고 하셨다. 말씀을 듣기만 하고 행하지 않으면 어리석다고 하셨다. 답은 분명하다. 나의 잣대로 말씀을 판단하지 말라는 것이다. 나의 잣대로 생각하니 복잡하고 그 결과는 헛되다. 진보 없이 다람쥐 챗바퀴 도는 것 같으나 자연만물처럼 꾀를 부리지 말고 순종하라고 하신다. 말씀대로 깨닫고 순종하기 위해 보혜사 성령의 도움을 구하라고 하신다. 기도해야 할 가장 큰 이유다.

https://quietwaters.blog/2022/11/28/

전도서 1:1-11

전도서 1:1-11 (공동번역) 읽기

1 전도서를 다윗의 아들 예루살렘의 왕이었던 설교자의 말이라고 소개한다. // 솔로몬을 가리키나 다윗의 후손 중 왕위에 올랐던 누구도 될 수 있다. 2 설교자는 세상만사가 헛되다고 반복에 반복을 더한다. 3 사람이 아무리 수고해도 무슨 보람도없다. 4 세대가 지나가도 땅은 영원히 그대로다. //자연법칙은 변하지 않는다. 5 해는 일정하게 졌다가 다시 뜨기를 쉼없이 반복란다. 6 바람도 돌고 돈다. 7모든 강이 바다로 흘러들지만 바다는 넘치비 않는다. 강물이 떠났던 곳으로 돌아가서 다시 흘러내리기 때문이다. 8 세상만사가 속절없다. 보는대로 보이지 않고 듣는대로 들리지 않는다. 9 하늘 아래 새것이 있을리 없다. 11 새것이라고 하는 것을 믿지 말라고 말한다. 오래 전에 이미 있었던 일이기 때문이다. 11 과거가 기억에서 사라지듯 오는 세월도 기억에서 사라질 것이다.

//세상만사가 헛되다. 헛되다는 히브리 단어는 ‘헤벨’로 덧없음을 텅 비었음을 뜻하는 단어다. 진리가 아닌 공허함을 말한다. 하나님 없는 세상만사가헛되다는 것이다. 하나님 없는 사람의 수고가 헛되다. 하나님 없이는 자연의 창조질서도 사람의 눈에는 헛되게 보일 뿐이다. 사실 모든 자연 활동은 창조섭리대로 돌아간다. 오차없이 운행되는 삼라만상을 헛되다 할 수 없다. (바울을 말을 빌리면 (롬1:19)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신 때부터 창조물을 통하여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과 같은 보이지 않는 특성을 나타내 보이셔서 인간이 보고 깨달을 수 있게 하셨다. 그러니 사람들이 핑계를 댈 수 없다. 그럼에도) 다만 사람이 하나님의 섭리를 읽어내지 못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니 헛되다 노래할 뿐이다. 찰라의 유한한 생을 사는 사람이 어찌 유구한 하나님의 일을 알 수 있을까? 오직 그리스도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전도서 1:1-11 읽기 – 쉴만한 물가_quiet waters (2022.12)

고린도후서 13:5-13

고린도후서 13:5-13 (공동번역) 읽기

5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자기의 믿음을 제대로 지키고 있는지 스스로살피고 따져보라고 권한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시는 것을 깨닫고 있는지 묻는다. 깨닫지 못한다면 그리스도인으로는 낙제라고 말한다. 6 바울은 바울 일행은 낙제생이 아님을 고린도 성도들에게 알린다. 7 바울 일행은 고린도 성도들이 아무 잘못도 저지르지 않게 되기를 하느님께 바란다. 설령 자신들이 낙제생처럼 보이는 한이 있어도 고린도 상도들은 옳은 일을 행하게 되길 바란다. 8 바울 일행은 진리에 어긋나는 일은 할 수없고 다만 진리에 맞는 일만 할 수 있다고 말한다. 9 자신들은 약하더라도 고린도 성도들이 강하면 기쁘다고 말한다. 바울 일행은 고린도 성도들의 인격이 완성되길 바란다. 10 바울는 사도랍시고 권위적으로 고린도 성도들을 대하지 않기를  바란다. 사도적 권위는 고린도 성도를 망치기위해서가 아니라 고린도 성도의 성숙을 위해 받았다고 말한다. 11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을 형제라고 부르며 편지를 마무리 한다. 자신의 권고를 듣고 온전하게 되라고 당부한다.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도 권면한다. 그러면 사랑과 평화의 하느님께서 함께하실 것이다. 12 모든 성도의 문안을 전한다. 13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느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모두가 누리길 축복한다.

//그리스도인으로 합격과 낙제의 기준이 있다. 바로 임마누엘이다. 그리스도께서 함께 계심을 깨닫느냐 깨닫지 못하느냐로 나뉜다. 깨닫지 못하면 낙제다.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은 성도를 낙제생처럼 보이게 하지만 진리에 어긋나는 일을 하지 않고 진리에 따라 옳은 일을 하고 있다면 합격이다. 그리스도를 믿는 (따르는) 것은 언(言)에만 있지 않고 언행(言行一致)에 있다. 그리스도인은 사도적 권위로 완성되지 않고, 임마누엘의 인격으로 완성된다. 임마누엘의 가장 큰 증거는 화평이다. 서로 사랑하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은총과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께서 이루어 주시는 친교를 누리는 것이다. 

고린도후서 12:11-13:4

고린도후서 12:11-13:4 (공동번역) 읽기

11 바울은 고린도교회 성도들이 자신을 인정해주지 않아서 자기자랑으로 어리석은 사람이 되고 말았다고 인정한다. 그래도 보잘 것 없는 자신이 특출하다는 사도들보다 조금도 못할 것이 없다고 담대히 말한다. 12 바울은 고린도에서 인내로 표징과 놀라운 일과 기적을 행하며 자신이 진정한 사도라는 증거를 보여주었다. 13 바울는 고리도교회에 폐를 끼치지 않은 것이 오리려 잘못인지 반문한다. 14 바울은 세번째로 고린도교회 방문을 계획한다. 바울은 자신의 방문이 고린도교회의 짐이 되는 것을 원치 않는다. 부모된 입장으로 자식의 돈/재물을 구하지 않는다. 15 오히려 고린도교회를 돕고자 한다. 자신이 쓸 비용을 기쁜 마음으로 감당하고 스스로를 희생까지 하면서 고린도교회를 열렬히 사랑한다. 이런 자신을 덜 사랑하려는지 반문한다. 16-17 이런 바울이 꾀를 내어 고린도교회를 속여 잇속을 챙겼다고 말하는사람이 있다. 바울은 자신이 사람을 보내 착취했느냐고 묻는다. 18 바울이 디도와 교우 한 사람을 보냈지만 자신과 같은 정신을 가지고 있는 디도가 착취했을리 없다고 확신한다. 19 바울은 지금  변명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따르는) 사람으로서 하느님 앞에서 말한다. 고린도교회 성도들의 성숙을 위해서다. 20 바울은 대면했을 때, 서로의 기대에 어긋나지 않기를 바란다. 서로의 기대에 어긋나서 서로 다투고 시기하고 성을 내고 자기 속만 채우고 남늘 욕하고 험담하고 거만을 떨고 난동을 부리는 일이 있을까 염려한다. 21 바울은 여전히 음란하고 방탕한 생활에 빠져있는 사람들이 아직도 그 죄를 회개하고 있지 않다면 그들을 보고 슬피울게되며, 하느님께 부끄러움을 당하게 될까 걱정한다.그런 일이 없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13:1-3 바울은 세번째로 고린도교회를 방문하려고 한다. 두세사람의 증언이 효력이 있듯이 삼세번이 중요하다. 두번째로 방문하여 죄를 지은 사람에게 한 경고를 편지를 통해 또다시 경고한다. 이번 방문에서는 그런 자들을 그냥두지 않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바울을 통하여 말씀하신다는 증거를 보여줄 것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강력하신 분으로 고린도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나실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사도의 권위로 일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따르는) 사람으로서 하나님 앞에서 행했다고 말한다. 우리에게도 사도라는 권위가 필요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따르는) 일상의 순종이 요구된다. 순종할 때, 나 대신 그리스도께서 드러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