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1:2-16

고전 11:2-16

//바울은 자신이 전해 준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으니 정말 잘한 일이라고 고린도 성도들을 칭찬한다. 실컷 파벌과 음행 등등에 관해 책망의 교훈을 주고도 전통을 그대로 지키고 있다고 칭찬을 하니… 앞으로의 권면도 잘 받아 달라는 역설적 의도를 포함한 칭찬이라고 할 수 있다. //바울은 모든 사람의 머리는 그리스도요 아내의 머리는 남편이요 그리스도의 머리는 하나님이라고 말한다. 머리는 권위를 뜻한다. 그런데 바울은 남녀의 머리 모양과 관련된 설명을 이어간다. 오늘날 여전히 가부장적인 우리 사회에서도 남자가 여자보다 위에 있다는 선언은 적용하려고 한다. 그런데 남녀의 머리 모양에 대해서는 적용하지 않는다. 같은 성경말씀인데… 말씀은 글자 그대로가 아니라 현실에 맞게 성령의 조명아래 재해석 되어야 한다. 그래서 바울은 “주님을 믿는 세계에서는 여자나 남자나 다 같이 상대방에게 서로 속해 있습니다.” (11절 공동번역) 하고 앞의 내용과 어쩌면 맥이 다른 결론을 맺는다. 다른 편지에서 바울은 성도는 그리스도를 경외 함으로 피차복종해야 할 관계라고 가르친다. 남편과 아내, 부모와 자식, 주인과 종… 사회적 문화적 배경은 변화하지만 성도라면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해야 한다는 이 원리는 변하지 않을 것이다. ////말씀을 읽을 때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

고린도전서 10:14-11:1

고린도전서 10:14-11:1 (공동번역)

그러므로 사랑하는 형제 여러분, 우상 숭배를 멀리하십시오. 여러분은 사리를 분별할 수 있는 사람들이니 내 말을 잘 판단해 보십시오. 우리가 감사를 드리면서 그 축복의 잔을 마시는 것은 우리가 그리스도의 피를 나누어 마시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또 우리가 그 빵을 떼는 것은 그리스도의 몸을 나누어 먹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빵은 하나이고 우리 모두가 그 한 덩어리의 빵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이니 비록 우리가 여럿이지만 모두 한 몸인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관습을 생각해 봅시다. 제물을 나누어 먹는 사람들은 모두 하느님의 제단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아닙니까? 여러분은 이 말을 어떻게 알아들으십니까? 우상 앞에 놓았던 제물이나 우상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다는 말이겠습니까? 아닙니다. 아는 이교도들이 바치는 제물이 하느님께 드리는 것이 아니라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라는 말을 하려는 것입니다. 나는 여러분이 마귀들과 상종하는 자가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주님의 잔을 마시는 여러분이 마귀들의 잔을 마실 수는 없습니다. 또 주님의 식탁에 참여하는 여러분이 마귀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 는 없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질투하게 해드려서야 되겠습니까? 우리가 주님보다 강하단 말입니까?
누구나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 하고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무슨 일이든지 해서 다 유익한 것은 아닙니다. “나는 무슨 일이든지 할 자유가 있다.” 하고 마할 수 있지만 모든 것이 다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누구든지 자신의 이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이익을 도모해야 합니다. 시장에 나온 고기를 사 먹을 때에는 구태여 양심을 따지지 않아도 좋습니다. “땅도 주님의 것이요, 그 안에 가득히 있는 것도 다 주님의 것입니다..” 어떤 교우 아닌 사람의 초청을 받아 그 집에 가거든 구태여 양심을 따지지 말고, 차려 내온 음식은 무엇이든지 잡수십시오. 그러나 누가 “이것은 우상 앞에 놓았던 음식입니다.” 하고 일러주거든 그 말을 한 사람과 그의 양심을 위해서 먹지 마십시오. 여기에서 양심이라고 하는 것은 자기 양심이 아니라 남의 양심을 말하는 것입니다. “왜 내 자유가 남의 양심 때문에 제약을 받아야 하느냐? 그리고 내가 하느님께 감사를 드리고 음식을 먹는데 감사를 드린 그 음식 때문에 내가 욕을 먹어야 할 이유가 무엇이냐?” 하고 반문할 사람이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은 먹든지 마시든지 그리고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일을 오직 하느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십시오. 여러분은 유다인에게나 그리스인에게나 하느님의 교회에나 어느 누구에게든지 양심의 가책을 받게 하는 일을 해서는 안 됩니다. 나도 무슨 일을 하든지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려고 애씁니다. 그럿은 나 자신의 이익이 아니라 많은 사람들이 이익을 구하여 결국 그들을 구원하려는 것입니다. 내가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처럼 여러분도 나를 본받으십시오.

고전 10:14-11:1
//출애굽 이스라엘 백성이 만나와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 바울은 이것을 영적 양식과 영적 음료라고 적용했다. 그리고 고린도 성도들에게는 영적 양식과 영적음료를 성찬에 적용한다. //성찬은 성도가 구원에 감사하며 구원의 축복을 나누는 것이다. 그리고 성찬의 핵심은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는 것이다. //앞서 8장에서 먹는 것이 우리를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가게 해주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 안 먹어도 손해될 것이 없고 먹어도 이로울 것이 없다고 했다. 그러나 음식이 형제를 넘어뜨리는 것이 되어서는 안 된다고 적용했듯이, 따라서 성찬을 우상 제물 먹듯이 해서는 안 된다고 가르친다. 우상 제물이나 우상 자체에 어떤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우상 제물은 마귀들에게 바치는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주의 성찬에 참여하는 성도는 마귀들의 잔을 마실 수 없으며 마귀들의 식탁에 참여할 수 없다. 주님이 질투하신다. 결론적으로 음식이 아니라 우상과 주님을 겸하여 섬길 수 없다는 것이다. //성도가 자유인으로 사는 기준은 자신의 이익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 남의 이익을 도모하는 것이어야 한다. 다른 사람의 양심을 위하여 나의 양심이 제약을 받더라도 다른 사람의 양심이 가책을 받게 해서는 안 된다. 예수께서도 다른 사람을 실족시키느니 스스로 연자맷돌을 목에 매고 물에 빠지는 것이 낫다고 하셨다. 다른 사람을 기쁘게 하라! 교리에 빠지면 실천하기 어려운 말씀이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이렇게 사셨다.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를 본받았다. 그래서 고린도성도들에게 이런 자신을 본받으라고 말한다.

고린도전서 10:1-13

고린도전서 10:1-13 (공동번역)

형제 여러분, 여러분은 다음과 같은 사실을 꼭 기억해 두셔야 하겠습니다. 모세 때에 우리 조상들은 구름의 인도를 받았고 모두가 홍해를 무사히 건넜습니다. 말하자면 그들은 모두 구름과 바다 속에서 세례를 받아 모세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똑같은 영적 양식을 먹었고 또 똑같은 영적 음료를 마셨습니다. 그들의 동반자인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다는 말입니다. 그 바위는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러나 하느님께서는 그들의 대부분을 못마땅하게 생각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들은 죽어서 그 시체가 여기저기에 흩어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우리 조상들처럼 악을 일삼아서는 안 된다는 것을경고하는 본보기입니다. 그들의 일부는 우상을 숭배하였는데 여러분은 그들처럼 우상 숭배자가 되지 마십시오. 그들에 대해서 성서에는 “백성들이 앉아서는 먹고 마셨고 일어서서는 춤을 추었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음행을 일삼다가 하루에 다 죽어 넘어졌는데 그 수가 이만삼천 명이나 됩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음행에 빠져서는 안 되겠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주님을 떠보다가 뱀에게 물려 죽었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주님을 떠보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리고 또 어떤 사람들은 불평을 하다가 살육의 천사의 손에 멸망을 당하였습니다. 우리는 그들처럼 불평하는 자가 되어서는 안 되겠습니다. 그들이 이런 일들을 당함으로써 다른 사람들에게는 경고가 되었으며 그것이 기록에 남아서 이제 세상의 종말을 눈 앞에 둔 우리에게는 교훈이 되었습니다. 자기 발로 서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넘어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여러분이 겪은 시련은 모두 인간이 능히 감당해 낼 수 있는 시련들이었습니다. 하느님은 신의가 있는 분이십니다. 하느님께서는 여러분에게 힘에 겨운 시련을 겪게 하지는 않으십니다. 시련을 주시더라도 그것을 극복하고 벗어날 수 있는 길을 마련해 주실 것입니다.

고전 10:1-13
//바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구름기둥의 인도를 받고 홍해를 건넌 것을 세례에 비유했다. 그 옛날 세례는 누구에게 속한 (어느 파벌에 속한) 사람이 되느냐의 의식이다. 그래서 바울은 그들이 모세의 사람이 되었다고 적용한다. 모세는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스라엘 백성은 당연히 하나님께 속한 사람이다. -그렇다면 성도가 물과 성령으로 받은 세례는 삼위 하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으니 성도도 하나님의 사람이 되었다고 적용해야 한다. 하나님께 속한 사람들이 되었다. //그렇다면 세례받은 사람은 속한 곳에 충성해야 한다. 순종해야 한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나님께 속해야 마땅한 이스라엘 사람들을 못마땅해 하셨다. 그들이 악을 일삼았기 때문이다. 세례를 받아 하나님께 속했어도 악을 일삼은 사람들의 결국은 죽음이다. 더러는 우상숭배로, 더러는 음행으로, 더러는 하나님을 시험하다가, 더러는 불평하다가 멸망당했다. 성도라면 이 사건들에서 경고와 교훈을 받아야 한다. //이 모든 일은 구원받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일어난 일이다. 마찬가지로 구원받은 성도에게도 일어날 수 있기에 바울은 교훈/경고한다. 지금 서있다고 넘어지지 않으리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다행히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넘어지지 않도록 도우신다. 시련을 감당하게 하신다. 우리는 신의가 없을지 몰라도 하나님께서는 신의가 있으시다. 그래서 시련을 감당하게 하시고 이기게 하신다. 하나님께 성도가 순종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 ////바울은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이 마신 영적 음료를 말하면서, 그들이 영적 바위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고, 그 영적 바위는 그리스도라고 적용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악한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영적 양식, 영적 음료를 먹고 마시는데서 그쳐서는 안 된다. 성경을 읽기만 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신실하시듯, 성도도 하나님께 신실해야 한다. 곧 하나님과의 언약관계에 신실해야 한다. 무엇을 먹고 무엇을 마시느냐보다 중요한 것이다.

고린도전서 9:19-27

고린도전서 9:19-27 (공동번역)

나는 어느 누구에게도 매여 있지 않는 자유인이지만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으려고 스스로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습니다. 내가 유다인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유다인처럼 되었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나 자신은 율법의 지배를 받지 않으면서도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의 지배를 받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나는 그리스도의 법의 지배를 받고 있으니 실상은 하느님의 율법을 떠난 사람이 아니지만 율법이 없는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율법이 없는 사람처럼 되었습니다. 그리고 내가 믿음이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그들을 얻으려고 약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내가 어떤 사람을 대하든지 그들 중에서 다만 몇 사람이라도 구원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무슨 일이라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그들과 다 같이 복음의 축복을 나누려는 것입니다. 경기장에서 달음질 하는 사람들이 다 같이 달려가지만 상을 받는 사람은 하나뿐이라는 것을 여러분은 모르십니까?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십시오. 경기에 나서는 사람들은 온갖 어려움을 이겨내야 합니다. 그들은 썩어 없어질 월계관을 얻으려고 그렇게 애쓰지만 우리는 불멸의 월계관을 얻으려고 애쓰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을 하되 목표 없이 달리지 않고 권투를 하되 허공을 치지 않습니다. 나는 내 몸을 사정없이 단련하여 언제나 민첩하게 움직일 수 있게 합니다. 이것은 내가 남들에게는 이기자고 외쳐놓고 나 자신이 실격자가 되지 않게 하려는 것입니다.

고전 9:19-27
//자유인과 사도의 길에서 바울은 사도의 길을 택했다. 앞서 사도란 그리스도의 종이라 말했다. 바울은 자유인 대신 종의 길을 택한 것이다. 나아가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만이 아니라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한다. 그리스도의 종이라고 말하면 사도직이니깐 뽀대난다. 그러나 모든 사람의 종이 되었다고 말하는 순간 철저하게 낮아진다. 가오도 버린 것이다. 그 이유는 되도록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서였다. //19절 많은 사람을 ‘얻는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 22절의 표현으로 바꾼다면 ‘구원을 받게 한다’라는 의미다. 이것이 바울이 복음을 전하는 이유다. 모든 성도와 복음의 축복을 나누기 위해서다. //24절에서 달리기에서 상을 받은 사람은 하나뿐이라고 말하면서 여러분도 힘껏 달려서 상을 받도록 하라는 말은 모순처럼 들린다. 어차피 일등은 한 명인데 다른 사람들은 들러리가 되고 만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성도는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 하라는 바울의 권면은 모든 성도가 그리스도의 한 몸에 참여하라는 뜻이다. 그리스도의 몸에서 잘려나가지 말라는 경고다. 심지어 바울 자신도 실격자가 될 수도 있다는 여지를 보인다. ////모든 사람의 종이 되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몸에서 잘려나갈 수도 있다는 것을 염두에 두라고 하신다. 그리스도인이라는 나의 정체성은 기독교의 종교적 열심으로 보장되지 않는다. 오직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발견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9:12b-18

고린도전서 9:12b-18 (공동번역)

그러나 우리는 이 권리를 행사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리스도의복음을 전하는데 조금이라도 방해가 되지 않도록 모든 것을 참고 지냈습니다. 성전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성전에서 나오는 것을 먹고 살며 제단을 맡아보는 사람들은 제단 제물을 나누어가진다는 것을 모르십니까? 이와 같이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도 그 일로 먹고 살 수 있도록 주님께서 제정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권리를 조금도 써본 일이 없습니다. 또 내 권리를 주장하고 싶어서 이런 말을 하는 것도 아닙니다. 그러느니 차라리 죽는 것이 낫겠습니다. 내가 보수를 받지 않고 일한다는 이 긍지만은 아무도 빼앗지 못할 것입니다. 내가 복음을 전한다 해서 그것이 나에게 자랑거리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것은 내가 마땅히 해야 할 일이기 때문입니다. 만일 내가 복음을 전하지 않는다면 나에게 화가 미칠 것입니다. 만일 내가 내 갖유로 이 일을 택해서 하고 있다면 응당 보수를 바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은 내 자유로 택한 것이 아니라 하느님께서 그 일을 내 직무로 맡겨주신 것입니다. 그러니 나에게 무슨 보수가 있겠습니까? 보수가 있다면 그것은 내가 복음을 전하는 사람으로서 응당 받을 수 있는 것을 요구하지 않고 복음을 거저 전할 수 있다는 사실입니다.

고전9:12b-18
//자유인과 사도의 갈림길에서 바울은 사도의 길을 택한다. 어제 적용했듯이 사도의 길은 그리스도의 노예의 길이다. 사도의 권리/권위를 주장하는 삶이 아니라 보냄을 받은 종으로서 보내신 주인의 명령에 마땅히 따르는 삶이다. 바울은 자유인이라서 긍지를 갖는다고 말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긍지를 가지고 산다. 나아가 자신이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긍지를 갖는 것보다 더 나은 보수는 없다고 말한다. //시편 84편에서 시인은 “당신의 성전 마당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좋사옵니다. 악인의 장막에서 사느니, 차라리 내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되겠습니다.” 하고 노래한다. 시인은 악인의 장막에서 주인 노릇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 문지기가 (종이) 되는 것이 낫다고 노래한 것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보다 더 나은 것이 없다. //성도에게 하나님나라에서 (무보수) 자원봉사자로 일할 수 있다는 것보다 더 큰 기쁨은 없을 것이다. 성도에게는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것, 곧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최상의 보상(보수)이기 때문이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지고 하늘의 법도를 따라 살자. 하늘 시민권이야말로 천국에 입국할 수 있는 유일한 여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