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11:12-12:14

호세아 11:12-12:14 (공동번역)

주의 백성의 거짓말과 속임수로 하느님을 에워쌌으나 유다는 사뭇 하느님과 함께 살아가고 거룩한 하느님께 충성을 바친다고 호세아는 기록한다.
거짓과 속임수의 에브라임(북이스라엘)은 허풍이나 피우며 아시리아와 동맹을 맺고 이집트에 도움을 청한다. 야훼께서 유다를 심판하시고 야곱을 그 행실에 따라 벌하실 것이다. 모태에서 형의 발꿈치를 잡고, 어른이 되어서는 하느님과 겨루었고, 하느님의 천사에 짓눌리자 울며 애걸했던 야곱. 베델에서 하느님을 만나 약속을 받았던 야곱. 야훼 만군의 하느님의 그의 이름이 야훼라고 선포하신다. 그러니 야훼 하느님께 돌아와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하느님만 바라고 살라고 말한다.
거짓 저울로 남을 속이기 좋아하는 가나안 사람들처럼 행하지 말아야 한다. 에브라임이 자신은 부정축재하지 않았다고 말하지만 이집트에서 이끌어내어 풍요롭게 하신분이 하느님이시다. 하느님은 주의 백성을 처음처럼 다시 천막에서(하느님만 의지하며) 살게 하실 것이다. 하느님은 예언자를 보내셔서 말씀하셨다. 환상도 많이 보여주셨다. 하느님의 계획을 예언자들을 통해 알려주셨다. 그런데도 주의 백성은 헛된 것으로 가득찼다. 범죄했다. 하느님은 다른 신에게 제물을 바치는 제단을 돌더미가 되게 하실 것이다. 야곱은 아람 평야로 도망쳤고 장가들려고 머슴을 살았고 색시 하나 얻으려고 남의 양을 쳤다. 야훼께서 한 예언자(모세)를 시켜 이스라엘을 이집트에서 데려 나오시고 그 예언자(모세)를 시켜 지켜주셨지만, 에브라임은 하느님의 속을 썩여드렸다. 이렇게 죽을 죄를 지었다. 하느님께서 그 죄를 벗겨주지 않으시고 당신께서 받으셨던 모욕을 이 백성에게 되돌려 주실 것이다.

호세아 11:12-12:14
//거짓과 속임수의 북이스라엘이 허풍을 부리는 이유는 앗수르와 이집트 사이에서 외교적 줄타기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믿었던 앗수르에게 망하고 만다. 세상에는 믿을 구석이 하나도 없다는 좋은 예다. //이스라엘은 처음처럼 살아야 한다. 천막 같은 집에서 하나님이 내려주시는 만나와 메추라기와 물로 살아야 한다. 곧 전적으로 하나님만 의지하며 살아야 한다. 이집트에서 나와 이어진 광야 생활은 약속의 땅에 정착한 후와 비교하면 많이 부족해보여도, 결코 부족함이 없었던 때였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공급해주셨다. //그러나 풍요로워지면서 주의 백성은 헛된 것들로 자기 배를 채우느라 하나님의 속을 썪였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죄를 벗겨주지 않으시고, 받으신 그대로 주의 백성에게 되돌려주시겠다고 하신다. //하나님의 열심을 기억해야 한다. 선지자들을 통해 말씀하시고 환상을 보여주시기 까지 주의 백성이 하나님께 돌아와 사랑과 정의로 살아가길 원하셨다. 하나님의 바람은 지금도 동일하다. 마침내 하나님은 독생자 예수를 이땅에 보내셔서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하나님만 바라고 사는 삶이 어떤 것인지 보여주셨다. 우리에게도 예수를 본받아 사랑과 정의를 지키며 하나님만 바라고 살라고 하신다.

호세아 11:1-11

호세아 11:1-11 (공동번역)

내 아들 이스라엘 어렸을 때, 너무 사랑스러워 나는 이집트에서 불러냈다. 그런데 부르면 부를수록 이스라엘은 나에게서 멀어져만 갔다. 바알 우상들에게 제사했다. 걸음마를 가르쳐고 팔에 안아 키워주고 죽을 것을 살려주었지만 나를 몰라본다. 인정으로 끌어주고 사랑으로 이끌고 젖먹이처럼 들어올려 볼을 비비기도 하며 허리굽혀 먹을 것을 입에 넣어주었지만 나를 몰라본다. 이 백성이 나를 저버리고 이집트로 되돌아 가려고 하지만 결국 아시리아의 지배를 받을 것이다. 전쟁의 난리가 온 성읍을 휩쓸 때, 점치던 사제들은 죽고 제단들은 허물어 질 것이다. 내 백성이 바알을 불러 예배하지만 바알은 저희를 구하지 못할 것이다.
그럼에도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버리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을 남에게 내어주지 않으신다. 결코 이스라엘을 아드마 스보임처럼 만들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이 너무 불쌍해서 간장이 녹아 마음을 바꾸신다. 아무리 노여워도 분을 터뜨리지 않으신다. 멸하지 않으신다. 왜냐하면 하느님은 사람이 아니고 신이시기 때문이다. 거룩한 신으로 백성들과 함게 하시는 것은 백성을 멸하기 위함이 아니다. 백성들은 사자처럼 포효하시는 하느님의 뒤를 따라야 한다. 하느님 앞에 달려와야 한다. 이집트에서 아시리아에서 하느님 앞으로 날아오면 주의 백성을 저희 집에서 살게 하실 것이다. – 야훼의 말씀이시다.

호세아 11:1-11
//하나님의 끝없는 사랑은, 하나님께서 사람이 아니고 신이시기 때문이다. 참 신이신 하나님이 우리 아버지시다. 그런데 자녀된 주의 백성이 자랄수록 부모되신 하나님을 멀리한다. 멀리하다못해 부모되신 하나님을 몰라본다. 하나님을 몰라보니 바알 신을 예배한다. 그러나 다른 신이 주의 백성을 구할 능력이 없다. 그럼에도 하나님은 주의 백성을 불쌍히 여기신다. (잠시?) 벌을 내리시지만 영원히 멸하지는 않으신다. 하나님의 호통소리를 사랑의 회초리로 알고 하나님 앞에 달려와야 한다. 이집트 앗수르 등 제국에 머물러서는 안 된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아야 한다. 하나님의 집에서 살아야 한다. 이것이 주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시다.

호세아 10:1-15

호세아 10:1-15 (공동번역)

이스라엘이 무성한 포도 덩굴이요 많은 열매를 맺은 번영을 누렸어도, 이방제단이 늘고, 우상 석상만 화려해졌다. 변덕이 죽끓듯 하는 죄를 지었으니 하느님께서 제단과 석상을 부수실 것이다. 야훼를 두려운 줄 모르니 임금도 못모시는 날, 곧 나라가 망하는 날이 올 것이다. 지도자들이 진심이 없는 약속을 하고 입발린 소리만 하고, 악법만 만들어 낸다고 하신다. 송아지를 만들어 섬기는 사제를 돌팔이라고 하신다. 송아지 우상이 없어지면 슬퍼하는 그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이렇게 사마리아는 끝장난다. 이스라엘 왕은 물에 떠내려가는 나무토막 신세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이 죄를 짓던 산당은 무너지고 황폐해질 것이다. 사람들은 차라리 죽겠다고 할 것이다. 이스라엘의 죄는 기브아에서부터 시작되었다고 하신다. 왕이 없던 시대에 왕을 달라고 하던 이스라엘 왕국 초기부터 범죄했다고 하신다. 하느님이 그죄를 물으시고 벌하신다. 에브라임에게 멍에를 메우고 쟁기를 메우신다. 그리고 묵은 땅을 기경하고 써래질을 하게하신다. 묵은 땅을 기경하여 정의를 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라고 하신다. 지금은 야훼를 찾을 때요, 야훼가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는 그들에게복을 내리신다고 하신다. 그런데 주의 백성이 밭을 갈아 악을 심었으니 거둘 것은 악독밖에 없을 것이다. 남을 속이다 보니 병거를 믿고 군인이 많다고 우쭐대도 된다고 스스로를 속인다. 이것이 죄다. 오히려 반란이 일어나고 요새가 함락된다. 이것이 범뵈한 이스라엘의 운명이다. 하느님은 죄를 그대로 두시지 않으신다. 때가 되면 이스라엘 왕은 영락없이 망할 것이다.

호세아 10

//많은 열매를 맺어 번영하자 번영이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하고 말았다. 하나님 대신 번영할 수 있는 것을 찾아 변덕이 죽끓듯 한다고 (두 마음을 품었다고) 지적하신다. 야고보는 두 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사람은 하나님께 아무것도 받을 수 없다고 교훈한다. //많은 열매가 장땡이 아니다. 바른 것을 심고 바른 것을 거두어야 한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정의를 심고 사랑을 거두는 것이다. 정의를 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야 복을 내리신다고 약속하셨다. //그런데도 악을 심고 악독을 거둔다면 많이 거둘수록 악이 번영한다. 악중의 악은 교만이다. 하나님보다 세상 번영을 쫓으니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에도 진정성이 있을리 없다. 그 결국은 사망이다. ////정의를 심어 사랑의 열매를 거두라고 하신다. 정의와 사랑은 공동체적인 열매로 드러난다. 가정과 일터와 교회에서

호세아 9:1-17

호세아 9:1-17 (공동번역)

하느님을 떠나 바람을 피우고 간음을 행하는 이스라엘에게 기뻐하지 말라고 명하신다. 추수의 기쁨을 빼앗으시겠다고 하신다. 에브라임은 야훼의 땅에서 살지 못해 이집트로 아시리아로 가서 부정한 것을 먹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방 땅에서는 배고플 때 부정한 것을 먹을 수는 있어도 야훼의 성전에 바칠 정한 것은 없다고 하신다. 축제일이나 순례절에 돌아와도 할 일이 없을 것이라고 하신다. 이집트와 아시리아로 향하는 발걸음은 전란을 피해 가는 피난길이라고 하신다. 남은 땅은 폐허가 될 것이다. 

이스라엘은 벌을 받을 날이 다가 왔다는 것을 알라고 하신다. 죄지은 만큼 벌을 받아야 한다. 하느님을 거스린 벌을 받아야 한다. 예언자들을 미친놈 취급하며 하느님의 성전에서도 그들이 한 악행을 하느님은 기억하시고 벌하실 것이다. 

이스라엘은 처음에는 사막에 열린 포도송이요 맏물 무화과 같았는데 바알브올에게 몸을 바치고 말았다. 우상을 좋아하다 우상처럼 추한 꼴이 되고 말았다. 에브라임의 자랑거리는 종이비행기를 태우는 것에 불과하다. 자손을 보지도 못할 것이다. 태어난 자녀도 성인이 되기 전에 죽을 것이다. 하느님이 떠나고 나면 이런 끔찍스러운 일을 당하게 될 것이다. 심지어 자식을 화살받이로 사냥꾼 앞에 내세우고 백정에게 넘겨주게 될 것이다. 야훼께 손을 써달라고 빌게 될 것이다. 차라리 임신하지 못하면 좋겠다고 요청할 것이다. 

주의 백성의 온갖 불의는 길갈에서 싹텄다. 햐웨 하느님은 거기서부터 이 백성이 싫어졌다. 그래서 하느님의 집에서 몰아내고 다시는 사랑하지 않겠다고 다짐하신다. 하느님을 배반하지 않은 지도자들이 없다고 하신다. 결국 에브라임은 찍혀 그 뿌리가 말라 열매를 맺지 못하게 되었다. 아이를 낳아도 그 갓난 아기를 죽이시겠다고 말씀하신다. 하느님의 말씀을 듣지 않다가 쫓겨나 이 민족 저 민족 가운데로 떠도는 신세가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호세아 9

//우상을 좋아하다 우상처럼 추한 꼴이 되었다. 10절 하반절 마지막을 새번역도 우상을 좋아하다 우상처럼 추해졌다고 번역한다. (개역개정은 우상에게 몸을 드림으로 저희가 사랑하는 우상같이 가증하여졌다고 번역한다.)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것을 닮아간다. 생명 없는 우상을 좋아하면 결국 생명을 잃는다. 죽는다. 죽음이다. 영벌이다. –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랑하면 영생이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데 실패했다. 하나님을 우상처럼 섬기고자 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보이지 않는 영이신 하나님을 섬기는/사랑하는 방법은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다. 내 마음대로가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행해야 한다. 정의와 공평이 이웃사랑의 핵심이다. ////나의 편리와 욕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자비를 기억하자.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을 수 없다. 이웃을 긍휼히 여길 수 밖에 없다.

호세아 8:1-14

호세아 8:1-14 (공동번역)

성전지기에게 나팔을 불라고 말씀하신다. 이스라엘이 주님의 계약을 파기하고 주님의 법을 어겼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저희 하느님을 안다고 외치면서도 계약을 파기하고 법을 어겼으니 적에게 쫓기는 신세가 될 것이다. 하느님이 세우지 않은 것을 왕으로 모시고 하느님이 알지도 못하 것을 대신이라고 받들며, 금은으로 우상을 만드니 제발로 죽을 땅에 들어가는 꼴이라고 책망하신다.
송아지 우상을 버리지 않으면 주님의 진노가 백성 위에 떨어질 것이라고 하신다. 이스라엘 백성에게 언제쯤 순결해지겠느냐고 물으신다. 송아지 우상은 대장장이가 만든 신 따위도 못되는 것, 토막나고 말것이라고 하신다. 하느님은 이런 백성에게 소출을 허락하지 않으신다. 이스라엘이 열방가운데 쓰레기처럼 버려질 것이라고 하신다. 아시리아에 도움을 청하기 위해 선물을 보내도, 이 민족 저 민족에게 선물을 뿌려도 하느님은 이스라엘을 흩으실 것이다. 왕과 지도자들이 끊어질 것이다.
에브라임은 제단을 많이도 세웠으나 오히려 죄를 더해주는 제단이 되었다. 주님의 법을 남의 것인양 거들떠보지도 않는다고 하신다. 제사도 젯밥에만 관심있으니 야훼는 하나도 달갑지 않다고 하신다. 그래서 주의 백성의 죄를 잊지 않고 벌하시겠다고 하신다. 종되었던 이스라엘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대궐을 짓고 튼튼한 성을 둘러쳤지만 주님께서 그 성을들과 대궐들을 불살라버리실 것이다.

호세아 8
//나팔을 불어라. 닥쳐올 재앙에 대한 경고다. 재앙을 생각하면 하나님의 저주이지만, 나팔을 불라고 하시는 이유가 재앙에 대한 경고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자비다. //이스라엘이 재앙/벌을 받아야 할 이유가 여러가지 있겠지만 결국은 하나님 대신 다른 신들을 섬겼기 때문이다. 그것도 생명이 없는 목석과 금은으로 만든 우상과 이웃 나라를 의지하니 하나님의 질투는 당연하다. //이스라엘은 형식적으로는 제단을 세우고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지만,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도 젯밥을 위한 것이지 진심이 아니었다. 하나님은 제사보다 순종이 낫다고 하셨다. 우리가 드려야 할 제사/예배는 제단/교회당에서만 드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해서 현장/일상에서 우리 몸을 산 제물로 드려야 한다. 이웃사랑이 곧 하나님 사랑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고 삼가 행하는 것이 일상의 예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