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세아 7:1-16

호세아 7:1-16 (공동번역)

주께서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운명을 바꾸시길 원하신다. 그들의 병을 고쳐주길 원하신다. 그런데 에브라임의 죄, 사마리아의 악행만 드러난다. 아무리 감추려고해도 거짓과 도둑과 강도짓만 드러날 뿐이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악행을 감춘 채 뻔뻔스레 주 앞에 나타나지만 주님은 그들의 악행을 잊지 않고 알고 계신다.
기득권자들이 왕과 대신들의 호감을 사면서도 그들 마음 속에는미운 생각이 가득하다고 지적하신다. 임금과 대신들이 술에 만취하여 술이 그들을 마시는 꼴이 되어버려 그들이 거꾸러지면서도 주님을 부르는 자가 하나도 없다고 책망하신다. 이렇듯 이 민족 저 민족에게 빌붙는 에브라임을 뒤집지 않고 구운 과자라고 하신다. 먹을 수 없게 되었지만 외세가 결국은 이스라엘을 먹어치우게 될 것이라는 것을 모르고 있다고 말씀하신다. 결국 이스라엘은 거드름을 피우다가 납작해 질 것이다. 이런 일을 겪어도 야훼 하느님을 찾아 돌아오지 않는 에브라임은 철이 없고 어수룩하다고 하신다. 엉뚱하게 이집트 아시리아에게 도움을 청하지만 주 하느님이 그들을 낚아채 벌하실 것이다. 심지어 저주까지 하신다. 아무리 건져주고 싶어도 입발린 소리로만 주님을 부른다고 책망하신다. 주 하느님 앞에서도 이방 제사장들처럼 자기 몸을 해하면서 제사를 드리며 하느님을 거스른다고 하신다. 하느님을 괴롭힐 음모를 꾸미고 빗나간 화살처럼 (죄를 지어) 하느님께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다고 하신다. 이렇게 제멋대로 혀를 놀리는 대신들은 칼에 맞아 죽거나 이집트에서 조롱거리가 될 것이다.

호세아 7
//주께서는 주의 백성들의 운명을 바꾸길 원하신다. 그런데 파도파도 악행만 드러난다. 결국 주님은 주의 백성을 찢으시고 때리시기까지 하시며 그들이 주께 돌이키려고 하신다. 그러나 주의 백성은 꺼꾸러지면서도 결코 주님을 찾지 않았다. ㅠㅠ 오히려 외세에 (다른 나라, 다른 신에게) 도움을 구했다. 이보다 더 하나님 앞에서 자고할 수 있을까? //이런 주의 백성을 하나님께서는 철없고 어수룩하다고 하신다. 할 수 없이 주님은 이런 주의 백성을 벌하신다. 주의 백성을 건져주고 싶어도 그들은 입발린 소리로만 주를 부를 뿐, 여전히 이방 제사장들처럼 자기 몸을 해하면서 제사하고 하나님을 거스린다. 생명없는 우상을 섬기는 방법으로 살아계신 하나님을 괴롭히고 하나님께 대적할 수 있다는 생각은 어디로부터 온 것인지 궁금하다. //하나님께로 돌아올 생각도 하지 않는 자들의 결국은 사망이다. 악인들은 결국 망한다. 주께서 이틀을 멀다하고 다시 살리시고 사흘을 멀다하고 다시 일으켜 세워주시는 이유를 알아야 한다. 우리 운명은 주님께 달렸기 때문이다. ////25년의 개인적인 화두는 ‘자비’다. 호세아서에도 하나님의 자비가 면면히 흐른다.

호세아 6:1-11

호세아 6:1-11 (공동번역)

어서 야훼께로 돌아가자! 야훼께서는 주의 백성을 잡아 찢으시지만 아물게 해주시고 치시지만 싸매 주신다. 이틀이 멀다하고 다시 살려주시며, 사흘이 멀다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니 야훼 앞에서 복되게 살리라. 그러니 그리운 야훼 하느님을 찾아나서야 한다. 야훼의 정의가 환히 빛나 올 것이다. 어김없이 동터오는 새벽처럼 그는오시고, 단비가 내리듯 그렇게 오실 것이다.
그러나 에브라임과 유다야 너희를 어떻게 하면 좋겠느냐 하고 반문하신다. 그들의 사랑이 아침 안개 같기 때문이다.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기 때문이다. 그래서 야훼께서는 예언자들을 시켜 경고의 말씀을 전하셨다. 야훼께서 반기시는 것은 제물이 아니라 사랑이다. 제물을 바치기 전에 하느님의 마음을 먼저 알아달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이 아담으로부터 이미 계약을 깨뜨리고 하느님을 배반했다. 요르단 동편에는 폭력과 핏자국뿐이다. 사제들이 강도떼처럼 살인을 하다니 차마 못할 짓이다. 베델에서도 추잡한 꼴뿐이다. 바람을 피우고 간음으로 이스라엘이 몸을 더럽히고 있다. 유다고 심은 대로 거둘 것이라고 하신다.

호세아 6:1-11
//주께서 주의 백성을 찢으셨다 아물게 해주시고 치셨다가 싸매주시는 것은 사람들이 말하는 ‘병주고 약주고’가 아니다. 주께서 이틀이 멀다하고 살려주시고 사흘이 멀다하고 다시 일으켜 주시는 것은 주의 백성을 살리시고 회복시키는데 필요한 과정이지 건강한데 병을 주는 것은 아니다. 병은 사람들이 자기 욕심으로 자초하는 일이다. 이렇듯 주께서 주의 백성을 살리시고 일으키시는 것은 주의 백성으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복되게 살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하나님 앞에서 복되게 사는 것이 영생이다. 그런데 주의 백성의 사랑은 아침 안개와 같고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다. 하나님을 아는 것이 영생이니, 우리의 사랑이 덧없이 사라지는 이슬 같은 이유는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 모르는 사람들은 하나님도 세상의 우상들처럼 여겨 제물만 잘 바치면 되는 줄 안다. 그러나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사랑이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은 정의다. 하나님께 잘 바치는 것보다 이웃에게 잘 하는 이웃사랑으로 정의를 드러내야 한다. //그런데 사람의 역사는 아담 때부터 주를 배반하고 폭력과 핏자욱으로 얼룩져왔다. 호세아 때도 하나님의 법을 가르쳐야할 제사장들과 지도자들이 오히려 강도와 살인과 간음을 저질렀으니 심은대로 거둘 것이다. //심은대로 거둔다. 사필귀정이다. 호세아가 ‘어서 하나님께로 돌아가자’ 하고 외치는 이유다. 우리도 이 말씀을 귀담아 듣고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한다. 예수가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 길이다.

호세아 5:1-15

호세아 5:1-15 (공동번역)

사제들과 예언자들과 왕족들에게 말씀하신다. 법을 세워야 할 지도자들이 오히려 백성들이 죄를 짓도록 덫과 그물과 함정이 되었다고 책망하시며 벌하시겠다고 선언하신다. 야훼 앞에서 숨을 수 없다. 야훼께서 에브라임이 바람 피우고 이스라엘이 몸을 더럽히는 것을 아신다. 이런 짓을 하면서 하느님께로 돌아올 수 없다. 음탕한 바람이 들어서 야훼는 안중에도 없기 때문이다.
이스라엘은 거드름을 피우다 납작해 질 것이다. 에브라임이 자기 죄에 걸려 넘어질 때 유다도 함께 넘어질 것이다. 양 떼 소 떼를 몰고 야훼를 찾아다녀도 이미 떠난 그분을 만나지 못한다. 야훼를 배신하고 사생아를 낳았으니 적군의 침공을 받아 재산과 함께 멸망당할 것이다. 나팔을 불며 하느님을 찾아도 소용없다. 하느님의 형벌이기 때문이다. 하느님의 형벌이 떨어지면 에브라임은 쑥밭이 된다. 이스라엘 온 지파가 정녕코 당할 일이다. 유다도 마찬가지다. 에브라임은 우상을 따르다가 원수에게 짓밟히고 산산조각 난다. 에브라임을 좀먹은 나무같이 유다 가문을 속이 썩은 뼈같이 만드실 것이다. 에브라임이 죽을 병이 든 줄 알아 이웃나라에 도움을 구하고 유다가 다쳐 이웃 왕에게 특사를 보내겠지만 그들은 병을 고치지도 상처를 아물게 하지도 못한다. 야훼 하느님께서 친히 젊은 사자로 에브라임과 유다에게 달려들어 그들을 물어다가 갈기갈기 찢으실 것이다. 아무도 야훼의 입에서 빼내지 못할 것이다. 하느님은 하늘로 돌아가 주의 백성이 죄를 고백하며, 주를 찾기까지 기다릴 것이다. 주의 백성은 괴로움을 참다 못해 마침내 주를 애타게 찾을 것이다.

호세아 5
//예나 지금이나 지도자들의 책임이 엄중하다. 지도자들이 법을 세우고 백성을 제대로 가르치지 못하는 것은 둘째요, 백성에게 바른 본이 되기는 커녕 백성이 죄를 짓도록 만드니 하나님의 형벌을 면할 수 없다. 북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유다도 마찬가지다. (오늘날도 크게 다르지 않은 것 같다.) //그들이 바람을 피우고 간음을 저지를 뿐 아니라, 하나님 대신 이웃나라에 도움을 구하니, 안에서 새는 바가지라서 밖에서도 새는 꼴이다. //하나님은 이런 북이스라엘과 남 유다를 친히 심판하신다. 젊고 힘센 사자 같으신 하나님의 심판에서 주의 백성을 구할 자는 없다. 단지 벌을 받는 주의 백성이 뉘우치는 수밖에 다른 길이 없다. 죄를 자백하고 주를 찾아야 한다. 주께서 주의 백성을 벌하시는 이유는 주의 백성이 괴로움을 참다 못해 마침내 주를 애타게 찾기를 바라시기 때문이다. ////성도도 죄를 자백하고 주님을 애타게 찾아야 한다. 다행히 요한은 첫번째 편지에서 ‘그러나 우리가 우리의 죄를 하느님께 고백하면 진실하시고 의로우신 하느님께서는 우리의 죄를 용서하시고 우리의 모든 불의를 깨끗이 씻어주실 것입니’ 하고 교훈한다.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누리는 구원의 은혜다.

**사족: 연암 박지원의 민옹전에 지도층을 황충에 비유하는 대목이 나온다. 민옹전에서는 민옹이 큰 바가지가 없어서 이 황충 (기득권자)들을 잡지 못한다고 하나,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바가지는 충분히 크다. 두려워해야 한다. 그러나 감사하게도 우리 아버지 하나님의 자비는 이보다도 훨씬 더 크다.

호세아 4:11-19

호세아 4:11-19 (공동번역)

야훼께서는 주의 백성이 술에 마음을 빼앗겨, 생명없는 나무로 만든 우상에게 가르쳐 달라고 하다가, 결국에는 음탕한 바람에 휩쓸려 하느님의 품을 벗어나 바람을 피우게 되었다고 말씀하신다. 주의 백성이 산꼭대기에서, 언덕 위에서, 나무 아래서 제사를 드리다가 딸은 바람을 피우고 며느리는 정부와 놀아났다고 하신다. 사내들이 성소의 창녀들을 찾고 우상에게 제물을 드리는 어둠 가운데 행하는데 바람 피우는 딸과 간음하는 며느리를 벌하겠느냐고 반문하시며, 철없는 백성은 망한다고 말씀하신다. 제사를 드리다가 바람피우고 간음하는 주의 백성에게 속죄의 제사를 드리지도 말고 야훼께서 살아계신다고 맹세하지도 말라고 하신다. 주의 백성을 목자되는 야훼의 꼴을 먹는 어린 양이 아니라, 덤벼드는 코가 센 암소 같다고 하신다. 에브라임은 우상들과 단짝이라고 책망하신다. 술꾼들과 함께 뒹굴며, 바람피우고, 자랑스러운 직책은 버리고 (아마도 사제직을 말하는 듯) 부끄러운 일을 즐기는 악인들은 바람 날개에 채여 제단만 남기고 어이없이 사라질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호세아 4:11-19

//주의 백성이라도 술에 (세상 가치에) 마음을 빼앗기면, 생명없는 목석으로 만든 우상을 찾다가, 결국에는 하나님의 품을 벗어나 바람을 피우게 된다.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바람도 피우고 간음도 일삼는다. 곧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기는 꼴이다. 그러나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섬길 수는 없다. 하나님과 우상을 모두 기쁘시게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어제 주일 말씀처럼 양다리를 걸쳐서는 안 된다. 양다리를 걸치면 가랭이가 찢어지고 말 것이다. 서로 반대 방향이기 때문이다. 여호와 하나님(신)을 따르든지 바알 신(하나님)을 따르든지 결정해야 한다. 침묵은 답이 아니다. 침묵하다보면 결국 우리들도 우상들과 단짝이라고 심판을 받을 것이다.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우리가 받은 이 자랑스러운 직책을 버리고 부끄러운 일을 즐긴다면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것이다. 불효와 살인과 간음을 저지르지 않는다고 안심해서는 안 된다. 작은 일에서라도 하나님 대신 나를 기쁘게 하기 위해 한다면 망한다.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하게 하소서.  

호세아 3:1-4:10

호세아 3:1-4:10 (공동번역)

야훼께서 호세아에게 정부와 놀아난 아내를 찾아가 다시 사랑해 주라고 말씀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도 야훼께서 여전히 사랑하는 것처럼 사랑해주라고 하신다.
호세아는 은 열다섯 세겔과 보리 한 호멜 반을 가지고 다멜을 다시 사서 말했다. [당신은 내 아내니, 다른 남자와 어울려 불의한 관계를 맺지 말고 들어앉아 있으시오. 그렇게 오래 자숙한 뒤에야 당신과 한 자리에 들겠소] 이스라엘 백성도 그처럼 오랫동안 왕도 대신도 없고 제사도 제단도 에봇도 수호신도 없이 지낼 것이다. 그런 뒤에야 이스라엘 백성은 다시 저희 하느님 야훼를 찾고, 저희 왕 다윗도 찾아오게 될 것이다. 먼 훗날 그 때가 되면 이스라엘은 벅찬 마음으로 야훼께 돌아와 온갖 좋은 것을 다 받을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아 야훼의 말씀을 들어라. 야훼께서 하시는 말씀은 다음과 같다. [이 땅에는 사랑하는 자도, 신실한 자도 없고, 야훼 하느님을 알아주는 자도 없, 맹세도 지키지 않고, 살인과 강도질은 꼬리를 물고, 가는 곳마다 간음과 강간이요, 유혈참극이 그치지 않는다. 그래서 땅은 메마르고 주님들은 모두 찌들어 간다. 들짐승과 공중의 새도 야위고 바다의 고기는 씨가 말라간다. 그렇다고 서로 탓하지 마라. 서로 따지지 마라. 주의 백성이 다 사제와 같은 꼴이 되었구나. 사제들이 대낮에 꺼꾸러지고 밤에는 예언자도 함께 꺼꾸러지니, 이 백성은 너희 사제 때문에 망한다. 이 백성 나를 알지 못해서 망한다. 너희 사제들이 나를 알려고 하지 않으니 나도 너희를 사제직에서 몰아낸다. 나 하느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마음에 두지 않으니, 나도 너희 자녀를 마음 두지 않을 것이다. 이런 사제들이 많을 수록, 나에게 짓는 죄가 많아진다. 사제들아 너희 귀한 직책을 부끄럽게도 밥벌이로 만드는구나. 너희는 백성의 허물 덕분에 먹고 살며, 백성이 짓는 죄에 침을 흘리는 구나. 백성은 사제를 닮기 마련이다. 그래서 나는 사제들을 그 행실을 따라 벌하고 그 행위를 따라 갚을 것이다. 나 야훼를 저버리고 음란을 조장하는 것들은 아무리 먹어도 배부르지 않고 아무리 음란을 피워도 자손이 불어나지 않을 것이다.

호세아 3:1-4:10
//이스라엘 백성이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려도 여전히 그들을 사랑하시는 하나님. 물론 하나님은 다른 신에게 마음이 팔린 주의 백성에게 벌을 내리신다. 그러나 그 벌은 자비로우신 하나님으로 인해 영원하지 않다. 하나님께서 주의 백성을 사랑하시는 마음이 영원하시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의 백성이 망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사랑이 부족해서가 아니다. 주의 백성이 하나님을 마음에 두지 않기 때문이다. 사랑도 진실도 없는 삶, 곧 하나님을 모르기 때문에 거짓 맹세와 살인과 강도와 간음과 유혈참극이 끊이지 않는다. //하나님은 특별히 제사장들을 책망하신다. 그들이 백성에게 하나님에 대해 바르게 가르치고 본을 보이지 않은 결과라고 말씀하신다. 백성은 제사장을 닮기 마련이라고 하신다. 제사장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지 않으니 백성들이 하나님의 가르침에 마음을 두지 않는 것은 당연한 열매라고 하신다. //성도는 제사장이다. 우리 사회에 사랑과 진실이 없다면 그것은 우리 성도에게 사랑과 진실이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우리가 세상을 닮아가니 ㅠㅠ 마음이 아프다. //우리가 말씀에 순종해야만 하나님의 사랑을 세상에 익혀줄 수 있다. 말로 아무리 선포하고 가르쳐도 소용없다. 세상이 악하다면 그것은 제사장 된 교회가 제 역할을 하지 못해서라고 반성해야 한다. 다행히 우리에게는 온전하신 대제사장 예수가 있다. 예수를 따라 배우고 익히길 힘써야 한다. 그래야 예수를 닮아 가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