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명기 5:22-33

신명기 5:22-33

주님은 시내산에서 큰 목소리로 십계명을 처음 주셨다. 그리고 친히 두 돌판에 새겨서 모세에게 주셨다. 그러나 백성들은 하나님의 영광과 위엄을 보았고 주님의 큰 음성을 들었음에도 (아직 살아 있는 증인들이 있다.) 큰 불길이 무서워 주님의 음성을 다시 듣기를 원치 않았다. 주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았음에도 다시 듣는다면 죽을 것이라고 반응했다. 그래서 모세에게 중재자가 되어 달라고 간청했다. 주님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백성들의 요구가 타당하다고 인정하셨다. 그래서 항상 이런 마음을 품고 주님을 경외하며 주님의 모든 명령을 지키면서 자자손손 형통하게 살기를 바란다고 축복하셨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장막으로 돌아가고 모세만 남아서 주님의 모든 명령과 규례와 법도를 받았다. 이것이 이스라엘 자손은 약속의 땅에서 그대로 실행해야 하는 율법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주 하나님이 명하신 모든 것을 성심껏 지켜야 한다. 좌우로 치우치면 안 된다. 주님이 명하신 그 모든 길만을 따라가야 한다. 그래야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복을 얻고 오래오래 살 것이라고 약속하신다.

//쩌렁쩌렁한 주님의 목소리가 두려운 나머지 백성들은 하나님과 직접 소통하는 것을 포기하고 모세를 중재자로 세웠다. 주님께 직접 듣지 않았다고 해서 주님의 명령이 가벼워지지 않는다. 주의 백성의 책임이 작아지지도 않는다. 주님은 모세를 통해 분명히 전달하신다. 주님이 명령한 길로만 다니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라고. 그래야 약속의 땅에서 풍성한 복을 얻고 오래오래 산다고 약속하신다. //우리에게는 중재자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다. 예수께서는 모세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더 나은 중재자이시다. 그렇다고 우리의 책임이 완전히 없어지는 것은 아니다. 우리도 주님이 명령한 길로만 다니고 좌우로 치우치지 말아야 한다. 그래야 하나님나라의 백성으로 복을 얻고 영생을 누린다. 물론 연약한 우리도 주님의 모든 명령을 온전히 준행할 수 없다. 그래서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해야 한다.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이 직접 말씀을 듣기를 포기한다. 직접 성경을 읽는 것도 포기한다. 좋은 설교를 좇아 다니면서 자기 맘에 드는 말씀만 편식한다. 그결과는 불순종으로 이어진다. 오늘도 보혜사 성령 하나님을 의지해서 말씀 앞에 설 수 밖에 없다. 말씀을 마음에 두는 것이 주님을 모시는 확실한 길이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13

신명기 5:11-21

신명기 5:11-21

주 하나님의 이름을 함부로 부르지 못한다. 함부로 주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는 것은 죄다.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켜라. 주 하나님의 명령이다.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해라. 그러나 이렛날은 주 하나님이 안식일이니 어떤 일을 해서도 안 된다. 우리에게 속한 무엇이라도 우리와 똑같이 쉬게 해야 한다. 이집트에서 종살이 하고 있을 때를 기억하라. 주 하나님이 너희를 거기에서 너희를 이끌어 내었다. 주 하나님이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신다.

부모를 공경하여라. 주님의 이 명령을 지켜야  약속의 땅에서 오래 살면서 복을 누린다.

살인하지 못한다.

간음하지 못한다.

도둑질하지 못한다.

이웃을 모함하는 거짓 증언을 하지 못한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못한다. 이웃의 소유는 어떤 것도 탐내지 못한다. 

//십계명은 주님의 백성의 정체성을 드러낸다. 십계명에 삶을 비춰보면 주의 백성인지 아닌지 알 수 있다. //안식을 거룩히 지키는 것에는 나와 공동체에 속한 다른 사람 사이에 차별이 없다. 내가 안식일을 지키기 위해 다른 누군가가 안식하지 못해서는 안 된다. 주님은 심지어 종들도 ‘너와 똑같이 쉬게 하여야 한다.” 하고 명령하신다. 이 구절은 ‘네 이웃을 네 몸 같이 사랑하라.’ 하신 말씀의 연장선이다. 주의 백성의 정체성은 차별없는 사랑이요, 차별없는 주의 말씀에 대한 적용으로 드러나야 한다. //나의 예배적 삶을 위해 다른 사람을 희생시켜서는 안 된다. 다른 사람을 희생시키는 순간 나의 예배는 더 이상 예배가 아니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12/

… 예수님은 ‘하지말라’라는 계명을 ‘하라’라는 계명으로 완성하셨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은 형제를 미워하는 것도 살인이라 하시며 화목하라 하셨다. 간음하지말라는 계명은 음욕한 마음을 품어도 간음한 것이니 (성적으로) 정결하게 살라고 하셨다. 도둑질 하지 말라는 계명은 가난한 자를 구제하라고 가르치셨다. 이웃에 대해 거짓증거하지 말라는 계명은 (원수같은 이웃을 위해) 오히려 축복하고 기도하라고 하셨다.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하지 말라는 계명은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고 가르쳐주셨다.

신명기 4:44-5:10

신명기 4:44-5:10

44-49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선포한 율법은 이집트에서 나온 직후 한 곳에 이르러서 주님께 받아 출애굽 1세대에게 이미 선포했던 그 율법이다. 이제 요단 강 동쪽 벳브올 맞은쪽 골짜기에서 출애굽 2세들에게 율법을 다시 가르친다. 요단 강 동쪽은 아모리의 두 왕들, 곧 헤스본 왕 시혼과 바산 왕 옥을 멸절시키고 차지한 땅이다.

5:1-5 모세는 호렙에서 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과 세운 언약을 상기시킨다. 이 언약은 조상들과 세운 것이 아니라 출애굽한 이스라엘 자손들, 지금 이자리에 있는 우리 모두와 세운 것이라고 입을 연다. 지금 모세의 말을 듣고 있던 상당수는 어렸지만 그 때에도 있었던 자들이다. 주님께서는 불 가운데서 이스라엘 자손들과 서로 얼굴을 맛대고 말씀하시길 원하셨지만, 백성들은 두려워 산에 올라가지 못하고 모세가 중재자가 되어 주님의 말씀을 전했다. 그 말씀을 모세는 다시 전한다.

6-10 십계명의 처음 두 계명이다. 출애굽의 하나님이 주의 백성들은 다른 신(하나님)들을 섬기지 못한다고 선언하신다. 주의 백성들은 우상을 만들지 못한다고 선언하신다. 사람이 만든 우상에게 절하거나 섬기지 못한다고 선언하신다. 주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다. 주님을 미워하는 사람에게는 그 죄값으로 본인과 삼사대 자손에게까지 벌을 내리실 것이다. 주님을 사랑하고 주님이 계명을 지키는 사람에게는 수천대 자손에 이르기까지 한결같은 사랑을 베푸실 것이다.

//말아라VS못한다 – 개역개정에서 ‘말지니라’로 번역한 것을 새번역에서는 ‘못한다’로 번역한다. 그게 그뜻이지만, 새번역이 더 맘에 든다. ‘말아라’라는 명령어다. 하고 안 하고는 전적으로 명령을 받은 사람의 의지에 달렸다. 그러나 ‘못한다’는 내 의지와 상관 없이 이며 결정된 정체성이다. 적절한 예가 될지 모르겠지만, 남자는 여자 화장실을 사용하지 말아라야 하는데, 누가 하지 말라고 명령해서가 아니라, 남자는 여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성도가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아야 하는 이유는, 다른 신들을 섬기지 못하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다른 신들을 섬길 수 있는데도 의지적으로 안 섬기는 것이 아니라 섬기지 못하는 정체성 때문에 안 섬기는 것이다. 이렇듯 주의 백성은, 성도는 언약으로 말미암아 정체성이 바뀐 존재들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순종하게 되는 것은 내 의지가 아니라 육신의 연약함 때문이다. 만약 주의 백성이 하지 말아야 할 것을 의지적으로 한다면 그 사람은 아직/이미 주의 백성이 아니다. 세상이 한다고 성도가 못하는 것을 따라 하려고 해서는 안 된다. 해야 하는 것을 잘하면 된다. 말장난인가? 요즘 세상은 하지 말아야 할 것만 아니라 못하는 것도 하려고 든다. 정체성 혼돈의 시대를 산다. 두 돌판에서 새겨진 십계명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의 백성으로의 정체성을 깨닫게 해주는 시금석이라면, 성도에게는 성경말씀이 있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11/

신명기 4:32-43 

신명기 4:32-43 

32-40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경고한 모세는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창조주 하나님을 기억하라고 가르친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것을 기억하라며 질문한다. 불가운데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도 살아남은 백성이 있는가? 한 민족을 다른 민족의 억압으로부터 이끌어내신 신이 있는가? 이스라엘에게는 주님이 곧 하나님(신)이시고, 그분 밖에는 다른 신(하나님)이 없음을 알라고 가르친다. 하나님이 불가운데서 말씀하신 것은 이스라엘을 단련하기 위함이고, 이집트에서 이스라엘을 이끌어내신 것은 주님의 사랑이라고 교훈한다. 그리고 대적을 물리치고 요단 동편을 차지하고, 이 땅마저 유산으로 주신 주님이야말로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참 하나님(신)이시며, 다른 신(하나님)은 없다고 강조한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모세가 알려주는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켜야 한다. 그래야 자자손손 형통할 것이다. 형통이란 주 우리의 하나님이 약속하신 땅에서 (지리적 땅을 떠나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으며) 길이 사는 것이다. 

41-43 약속의 땅에 요단 동편에서 차지한 땅도 포함된다. 요단 동편에도 도피성이 지정되는 이유다. 도피성이란 이웃을 실수로 죽였을 경우 피해 목숨을 건질 수 있는 성이다. 요단 동편을 배정받은 르우벤 지파 성읍들 가운데 한 곳, 갓 지파 성읍들 가운데 한 곳, 므낫세 지파가 차지한 성읍 중에 한 곳이 지정되었다.

//요단 동편이 두지파 반에게 배정된 후 모세는 요단 동편도 약속의 땅에 포함시킨다. 이렇듯 약속의 땅은 지리적 경계로 이미 결정된 땅이 아니라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이 거해야 할 (거하는) 땅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지리적으로 경계가 있는 나라가 아니다. 예루살렘도 마찬가지다. 하나님의 말씀이 나오는 곳이면  (성도가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이면) 어디나 예루살렘이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신)은 우리 가운데 거하신다. 우리의 형통함은 임마누엘을 근거로 하며 임마누엘로 지속된다. 임마누엘을 누리는 곳이 곧 하나님의 나라다.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지켜야 함을 강조한 후 곧바로 도피성을 지정한다. 도피성은 실수로 이웃을 죽인 사람들이 목숨을 보존할 수 있는 곳이다. 우리는 주님의 규례와 명령을 온전히 지킬 수 없는 연약한 존재이기 때문에 심판을 면할 수 없다. 그래서 우리 성도에게 도피성이 필요하다. 우리는 그리스도 예수 안으로 도피하면 목숨을 보존할 수 있다. 우리에게는 그리스도 예수가 도피성인 셈이다. 어디까지나 실수나 부지중에 살인을 했을 때만 도피성이 효력이 있듯이, 성도는 악을 멀리하고 주님의 말씀을 순종하기 위해 마음과 성품을 다해야 한다. 주님의 소유로 살아야 한다. ////말씀으로 창조하신 하나님. 말씀으로 오신 하나님. 말씀을 이해하도록 도우시는 하나님. 생명없는 목석의 우상처럼 되어가는 나를 향해 말씀을 보고 듣고 먹고 마시고 냄새맡고 말하고 살라고 하신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10/

신명기 4:15-31

신명기 4:15-31

약속의 땅을 앞두고 모세는 출애굽 2세대를 가르친다.

15-20 주님께서는 호렙산에서 불길 속에서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말씀하셨다. 주님의 형상을 본 사람은 없다. 아니 영이신 하나님을 사람은 볼 수 없다. 그래서 어떤 사람의 형상이라도 본떠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명령한다. 우상을 만드는 것은 스스로 부패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사람의 형상뿐만 아니라 동물의 형상으로도 우상 만들면 안 되고, 해와 달과 별들 같은 천체만물을 우상시해도 안 된다고 말씀하신다. 다른 민족들이 우상을 섬긴다고 하나님이 친히 건져내신 이스라엘이 우상을 섬겨서는 안 된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이다.

21-24 모세는 또 한번 이스라엘 자손들 때문에 (그들의 불순종 때문에) 자신이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말한다. 자신은 하나님의 말씀대로 약속의 땅에 들어가지 못하지만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 차지하라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과의 약속이라고 말한다. 하나님과의 약속 대로 우상을 만들지 말라고 강조한다. 주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이시라고 분명히 말한다.

25-31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명령은 이스라엘 자자손손 지켜야 할 명령이다. 이 하나님의 명령을 어긴다면 이스라엘이 차지한 땅에서 반드시 멸망할 것이라고 말한다. 살아남은 사람들도 여러 민족 사이에 흩어지고, 그들은  사람이 만든 (보지도 못하고 듣지도 못하고 먹지도 못하고 냄새도 맡지 못하는) 신을 섬기게 될 것이라고 경고한다. 그제서야 하나님을 찾게 될 것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을 마음과 성품을 다해 찾아야만 하나님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한다. 환난을 당하고 마지막 날에 이 모든 일이 닥쳐야 이스라엘 자손들이 주 하나님께로 돌아와 주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 자비로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을 버리시거나 멸하시지 않고 조상들과 맺은 언약을 잊지도 않으실 것이라고 가르친다. 

//주님에게는 이스라엘의 불순종이 뻔히 보인다. 주 하나님 대신 보지도 듣지도 먹지도 냄새 맡지도 못하는 우상을 섬길 것이 뻔하다. 그래도 주님이 모세를 통해 세대를 이어 가르치고 또 가르치시는 이유는 주님이 자비로우시기 때문이다. 마음과 성품을 다해 주님을 찾는 자들에게는 주님의 언약이 변치 않기 때문이다. 주님은 오늘도 마음과 성품을 다해 말씀 앞에 나오는 사람들에게 자비로우시다. – 지리적 약속의 땅에 들어가고 못가고는 그렇게 중요하지 않다. 약속의 땅에 들어가도 마음과 성품을 다해 주님을 찾아야 하나님의 자비를 맛보기 때문이다. //우리로 마음과 성품을 다해 주의 말씀 앞에 서게 하는 것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밖에 없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지 않으면 우리의 불순종(우상숭배)도 뻔하다. 주의 말씀을 마음에 담아두지 않으면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이 없다면 하늘 나라가 아니고, 약속의 땅도 아니다.

https://quietwaters.blog/2018/05/09/

우상을 새겨 만들지 말라라는 계명은 우리가 주님의 피조물임을 다시금 선언한다. 우리가 새기고 만들 수 있는 그 어떤 형상으로도 주님을 가둘 수 없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한 없는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 없는데 어떤 형상으로 주님을 표현해 낼 수 있을까? 결국 남는 것은 언약이다. 말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