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41:1-34

욥기 41:1-34

주님은 욥에게 리워야단을 낚을 수 있느냐고 물으신다. 한마디로 욥은 리워야단에게 쨉도 안 된다고 하신다. 리워야단을 보기만 해도 기가 꺾여 (스스로) 고꾸라질 것이라고 하신다. 세상에 리워야단과 싸워 무사할 사람은 없다고 하신다. 땅 위에 리워야단과 겨룰만한 것이 없다고 하신다. 왜나하면 하나님께서 리워야단을 그렇게 (교만한 것들을 우습게 보고, 거만한 것들 위에 군림하도록) 지으셨기 때문이다. //주님과 리워야단과 욥. 욥은 리워야단과 맞설 수 없다. 그래도 욥이나 리워야단이나 피조물이라는 점에서는 동급니다. 한편 리워야단은 주님과 맞설 수 없다. 왜냐하면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리워야단도 다스리신다. 리워야단에 대해 모든 것을 알고 계시는 창조주이시기 때문이다. 어제 언급하신 베헤못이든 리워야단이든 하나님의 손바닥 안에 있기는 마찬가지다. 하물며 베헤못과 리워야단에 못 미치는 인생은 오죽할까? //그렇다면 인생이 의지해야 할 바가 분명하다. 세상은 리워야단 천지다. 교만하고 거만한 것들은 하나님을 대적하게 마련이다. 성도는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들로 인해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복음에는 고난이 따른다.

욥기 40:1-24

욥기 40:1-24

주님께서 욥에게 말을 해보라고 말씀하시나, 욥은 입을 다물고 만다. 그러자 주님께서 폭풍가운데 다시 말씀하신다. 주님은 욥이 자신이 옳다고 말하기 위해 하나님의 판결이 잘못되었다고 지적하려 하는지 물어신다. 주님은 우리가 교만한 자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그들의 기백을 꺾고, 교만한 자들을 비천하게 하고, 악한 자들을 짓밟는 것이 바람직한 것인지 물으신다. 왜냐하면 우리는 하나님처럼 그들을 심판할 자격이 없기 때문이다. 사실 우리에게는 자격만 없는 것이 아니라, 악을 심판할 능력도 없다. 하나님께서는 만약 욥이 악을 심판할 수 있으면, 오히려 욥을 찬양하고 욥의 승리를 인정하겠다고까지 말씀하신다. 하나님이 응답하시면 자기의 무죄를 변론하려던 욥의 입은 하나님의 질문에 오히려 굳게 닫히고 말았다. 유구무언이다. 아무리 하나님께서 직접 욥을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하는 사람이라고 평가하셨어도 어찌 전능하신 하나님과 다툴(하나님을 비난할) 수 있으랴!  //우리가 무엇이라고 하나님께 감 놔라 배 놔라 기도할 수 있으랴. 그래서 예수께서 주님의 이름으로 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의 기도가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드려지니 감사할 뿐이다. 우리의 기도가 예수 그리스도와 성령하나님의 간구로 대체되니 감사할 뿐이다. 기도한다면 우리는 주님의 말씀과 보혜사 성령 하나님의 깨닫게 하심에 청종해야 한다. 

욥기 38:39:39:30

욥기 38:39:39:30

//사람들은 미물인 (지혜가 없는) 동물의 세계도 이해할 수 없다. 하나님께서는 욥에게 동물의 질서에서도 하나님이 왕이심을 선포하신다. 인간의 지혜로는 동물의 왕국에서 일어나는 일도 알 수 없으니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음받은 만물의 영장인 사람들의 세계에서 일어나는 일을 우리의 지혜로 왈가왈부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 예수께서 말씀하신다. [공중의 새를 보아라. 씨를 뿌리지도 않고, 거두지도 않고, 곳간에 모아들이지도 않으나, 너희의 하늘 아버지께서 그것들을 먹이신다. 너희는 새보다 귀하지 아니하냐?] 창조주 하나님을 아는 것이 우선이다.

욥기 38:19-38

“하늘을 다스리는 질서가 무엇인지 아느냐? 또 그런 법칙을 땅에 적용할 수 있느냐?”

33절에서 하나님은 욥에게 하늘을 다스리는 질서를 알고 있는지, 또 그 법칙을 땅에 적용할 수 있는지 물으신다.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께서 그분의 뜻을 하늘에서 이루신 것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게 해달라고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아버지 하나님이 뜻도 잘 모르고, 하나님의 뜻을 땅에서 이루는 도구로서의 역할도 잘 감당 못한다. 천하의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한 욥이라고 크게 다르지 않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기를 기도해야 한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려고 우리의 열심을 다해야 한다. 그러나 우리는 순종보다 뭐 그리 따질 게 많은지 모르겠다. 가령 우리는 서로 사랑하라는 명령을 순종하지 못한다. 하나님의 뜻을 몰라서라기보다 땅에 적용할 때 하나님의 뜻보다 내 뜻, 곧 나의 유익을 따지기 때문은 아닐까?

하나님께서 하늘을 다스리는 질서를 우리가 땅에 적용하기 위해서는 결국 나는 죽고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셔야 한다. 우주만물이 주님의 다스림에 한치의 어긋남도 없이 순종한다. 그런데 오직 사람만이 자기 꾀를 낸다. 그러나 모사인재라도 성자재천이다. 하나님의 다스림에 순종하는 것이 이 땅에서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길이다.

욥기 38:1-18

욥기 38:1-18

갑자기 하나님께서 욥에게 말씀하신다. 세 친구와 엘리후까지 싸잡아 그들에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욥에게 말씀하신다. 더 이상 사람의 지혜로 깨달은 하나님의 지혜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욥에게 “네가 나를 아느냐?” 하고 물으신다. 창조주와 피조물은 차원이 다르다. 창조주 하나님이 사람의 언어로 말씀하신다고 사람이 창조주 하나님을 온전히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나, 욥에게는 이보다 더 큰 위로가 없다. 욥이 그토록 고대하던 하나님이 말씀하시기 때문이다. 네가 나를 아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께 욥은 무엇이라고 대답할까?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세번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욥의 대답도 다르지 않을 것 같다.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하나님을 아는 줄을 하나님께서 아십니다.” – 내가 하나님을 아는 것은 코끼리의 한 부분도 안 될 것이지만, 하나님은 나의 전부를 아신다. 하나님과의 교제의 시작이다. 이 보다 더 큰 위로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