욥기 31:1-23

욥기 31:1-23

욥은 자신이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 했음을 구체적으로 나열한다. 욥은 금욕적인 삶을 다짐하고 실천했다. 또 욥은 권선징악의 세상지혜를 하나님의 지혜의 일부로 받아들였다. (욥의 한계다.) 

욥은 하나님이 자신의 일거수일투족을 낱낱이 아신다고 말한다. 이것을 바탕으로 욥은 하나님을을 증인 삼아 자신의 무죄를 맹세한다. 하나님도 자신이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했다는 것을 잘 아실 것이라고 확신한다. 자신이 죄를 지은 흔적이라도 있다면 유구무언이라고 말한다. 욥은 자신이 범죄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종들의 탄원을 공평하게 처리했다고 말한다. 종들 역시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받은 인격체로 대했다고 말한다. (욥은 하나님께 자신을 제발 공평하게 심판해 달라고 간청하는 것이다.) 욥은 악을 멀리하고 선을 행했다. 가난한자, 과부, 고아들을 돌봤다. 재판에서도 이들 편에 섰다. 욥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심판이 얼마나 무서운지 알고 있기 때문에 파렴치한 짓은 할 수 없었다고 말한다.

//욥은 세상 지혜 너머에 있는 하나님의 지혜를 온전히 알지는 못하지만, 그래도 세상 지혜 너머에 하나님의 지혜가 있을 수 밖에 없음을 자신이 처한 사정으로 충분히 유추하고 있다.  흠없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고 악을 멀리한 자신이 고통을 받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 자신의 고통에 하나님께서 침묵하고 계시기 때문이다. 욥은 자신이 가난한 자들과 고아와 과부들을 대했듯 하나님께서 자신을 자비와 공평으로 대해 주시길 노래한다. 극심한 고통중에 내뱉는 욥의 노래는 자기자랑처럼 들릴지도 모르지만, 하나님 앞에서하는 통곡이요 애곡이다. (애통하는 자에게는 위로의 복이 기다린다.)

욥기 30:16-31

욥기 30:16-31

욥은 기진맥진해서 죽을 지경이다. 고통이후 평안을 누리지 못했다. 뼈를 깎는 아픔이 그치지 않는다. (뼈를깎기 위해서는 먼저 피부를 도려내야 한다.) 욥은 이 모든 일이 하나님으로부터 생긴 일이라는 것을 의심하지 않는다. 하나님이 욥을 진흙 속에 던지셨다고 노래한다. 

문제는 욥의 신음에, 아니 고통에 찬 외침에 하나님께서 여전히 침묵하신다는 것이다. 들은 체도 않으신다. 욥은 이런 주님이 너무 잔인하다고 표현한다. 욥은 이것을 하나님의 갑질(핍박)이라고 말한다. 자신을 바람에 나는 겨처럼 취급하신다고 말한다. (악인을 대하듯 하신다고 말하는 것이다.) 욥은 이렇게 주님이 자신을 죽음으로 몰아넣고 계신다고 노래한다. 그리고 어차피 죽을 목숨을 치시는 이유를 묻는다. 하나님의 자비 밖에 달리 구할 것이 없는 자신을 이렇게 고통 속에 몰아 넣는 이유를 묻는다.

욥은 고난 받는 사람을 위해 함께 울었고 궁핍한 사람을 위해 함께 마음 아파했다고 고백한다. 자신은 이웃들과 동병상련했는데, 자신의 고통을 위로해 주는 친구 하나 없다고 말한다. 행복 대신 화가, 빛 대신 어둠이 밀어 닥쳤다고 말한다. 그러니 욥의 마음이 찢어질 수 밖에 없다. 하나님은 침묵하시고 사람들에게 애걸해도 위로해 주는 사람이 없다. 자연 미물들은 혹여 욥의 고통을 알아줄까? 피골이상접하여 겨우 호흡만 붙어 있는 욥이 부르는 노래는 통곡이요 애곡이다.

//주여, 우리를 위로의 도구로 사용해 주소서

욥기 30:1-15

욥기 30:1-15

한 때 모든 사람에게 존경 받던 욥은 지금 몸의 고통보다도 모든 사람들의 조롱거리가 된 것에 한탄한다. 그것도 쓸모없는 자들로부터 조롱을 받는다고 노래한다. 욥은 자신의 처지보다 낫지 못한 사람들이 자신을 조롱한다고 노래한다. 어리석은 자들이요 고향에서 쫓겨난 자들로부터 조롱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자신들의 처지도 모르고 욥을 비웃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욥은 이 모든 것이 하나님께서 자신을 고통가운데 버려두셨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아니 그들로 하여금 자신을 파멸시키려고 포위망을 좁히고 있다고 말한다. 그래서 욥은 사면초가의 상황이다. 욥은 두려워 떤다. 한 때 존경받던 욥이 이제는 구원의 희망이 사라졌다고 노래한다.

욥은 구원의 희망을 끝까지 놓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 그러나 고통가운데 친구들의 위로도 받지 못하고, 심지어 자신보다 처지가 훨씬 못한 사람들로부터도 조롱까지 받는데 하나님은 침묵하고 계시자 구원의 희망이 사라진 것처럼 느껴진다. ㅠㅠ 욥의 상황이 십분 이해가 된다. 

우리는 이웃의 아픔을 온전히 위로할 수 없지만, 잘못된 말로 (세상지혜로) 이웃의 희망마져도 빼앗을수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그만큼 말을 조심해야 한다. 세상의 존경은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아침이슬과 같다. 푸른 초장 쉴만한 물가만을 기억해서는 안 된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지나왔었다는 것을기억해야 한다. 그리고 우리 앞에 꽃길만이 아닌, 여전히 헤쳐 가야할 가시덤불도 기다리고 있음을 알아야 한다. 무엇보다도 하나님께서 더디 응답하시고 때론 오랫동안 침묵하심도 알아야 한다. (하나님께서 침묵하셔도 마음 속에 주님의 말씀이 거하고 보혜사 성령 하나님께서 내주하심이 성도에게 임마누엘을 보증한다.)  

욥기 29:1-25

욥기 29:1-25

욥이 이번에도 비유로 말을 이어간다. (비유로 말을 한다는 것을 세상 지혜로 말하는 것이라고 적용했었다. 욥의 한계다. 하여간)

욥은 하나님이 자신을 보호해 주시던 과거로 되돌아 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욥은 과거에는 자신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걸을 때에도 주님이 자신을 인도해 주셨다고 노래한다. 하나님과 친밀하게 사귀었던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으면 좋겠다고 노래한다. 과거에는 전능하신 하나님이 자신과 함께 계셨다고 노래한다. 임마누엘! 욥은 임마누엘 의 증거로 자녀들과 많은 가축들과 풍성한 올리브 기름이 있었다고 노래한다. 욥은 마을에게 존경을 받았다. 젊은이로부터 노인들까지, 원로들과 귀족들도 욥이 행한 일을 칭송했다. 사람들은 욥이 (친구들의 고발과 달리) 가난한 사람을 구제하고 의지할 데가 없는 고아를 잘 보살펴 주었다고 칭찬했다. 비참하게 죽어가는 사람들에게도 자비를 베풀었고 과부들의 마음도 즐겁게 해 주었다. 욥은 늘 정의를 실천하고 매사를 공평하게 처리했다. 욥은 눈 먼 자의 눈이 되어 주었고 저는 자의 발이 되어 주었다. 궁핍한 사람들을 자식같이  돌보았으며, 모르는 이웃의 하소연도 들어주었다. 악인으로부터 희생당하는 사람들을 구해 주었다. 그래서 욥은 죽을 때까지 건강하게 살 것이고 장수할 것이라고 기대했다고 한다. 욥은 자신은 시냇가에 삼은 나무라고 고백한다. 사람들에게도 칭찬받는다고 고백한다. 사람들이 자신의 말을 들으려고 한다고 말한다. 욥은 미소로 사람들에게 확신을 주었으며, 웃는 얼굴로 새로운 용기도 주었다. 때로는 왕처럼, 때로는 슬퍼하는 사람을 위로해 주는 사람처럼, 그들이 갈 길을 정해 주곤 했다.

//욥의 (과거의) 선한 행실은 욥이 지금 받는 고통을 더 이해하기 어렵게 한다. 욥의 과거를 돌아본다면, 욥이 선한 행실을 해서 복을 받은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수있다. 욥의 과거가 욥의 선한 행실의 열매가 아니라면, 지금 욥이 받는 고통도 욥의 악한 행실에 대한 벌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이렇듯 세상 지혜로는 하나님께서 욥을 통해 하시고자 하는 일을 풀어낼수없다. //나의 형통이 임마누엘의 증거가 아니다.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에도 주님의 막대기와 지팡이로 보살핌을 받는 것이 임마누엘이다.

욥기 28:1-28

욥기 28:1-28

//지혜와 슬기는 어디에 있는가? 사람들은 아무리 진귀한 보물이라도 찾아낼 수 있지만 지혜와 슬기는 어디 있는지 모른다. 피조세계에서 발견되는 보석과 달리 지혜는 사람에게서 발견되는 것이 아니다. 사람은 지혜의 참 가치를 알지도 못하기 때문이다. 지혜는 깊고 넓은 바다에 감추어 있기 때문에 발견되지 않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고 지혜를 값을 치르고 살 수도 없다. 지혜는 정금으로도 살 수 없는, 그 무엇보다도 값진 것이다. 그렇다면 지혜와 슬기는 어디에 있는가? 지혜는 피조물에게는 감추어져 있다. 오직 하나님만 지혜가 있는 곳을 아신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혜를 아신다. 우리에게 지혜란 주님을 경외하는 것이다. 슬기는 악을 멀리하는 것이다. 지혜와 슬기가 동격이듯 주님을 경외하는 것과 악을 멀리하는 것이 같다. 말씀을 마음에 두고 순종하는 것이 지혜와 슬기의 출발점이다. ////지혜는 예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예수 안에서만 지혜를 찾을 수 있다. 예수 안에 거하기 위해서는 주님의 말씀을 마음에 두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