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니엘 5:1-16 읽기

다니엘 5:1-16 읽기

1-4 벨사살 왕은 큰 잔치를 베풀고 천명이나 되는 귀한 손님들을 초청했다. 벨사살은 아버지 (? 역사적으로 느부갓네살>>아멜말둑>>에월므로>>네르갈사레셀>>라바시말둑>>나보니더스 다음이 벨사루슬 곧 벨사살로 알려졌다. 느부갓네살 통치후 12년 후에 왕위에 올랐으니 앞의 왕들과 형제 관계일 듯. )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에서 가져온 금은 그릇에 술을 담아 손님들에게 대접했다. 그들은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했다.
5-9 그때 갑자기 사람의 손이 나타나서 촛대 앞에 있는 왕궁 석고 벽 위에다 글을 썼다. 벨사살의 얼굴 빛이 창백해지고 공포에 사로잡혀서 넓적다리의 힘이 풀리고 무릎이 서로 부딪히며 떨었다. 벨사살은 지혜자들을 불러모으고 벽에 쓰여진 글을 알려주는 사람을 셋째가는 통치자로 삼겠다고 말했다. 그러나 왕궁의 모든 지혜자가 나왔으나 아무도 그 글자를 읽지도 그 뜻도 몰랐다. 벨사살 왕은 크게 낙심하여 안색 변했다. 손님들도 당황했다.
10-12 소란한 소리에 벨사살의 어머니가 연회장에 왔다. 그리고 그녀는 거룩한 신들의 영을 받은 사람이 있다 말했다. 선왕 느부갓네살이 사람을 지혜자들의 우두머리로 세웠는데 그의 이름은 다니엘이라고 알려주었다. 다니엘은 탁월한 정신과 지식과 꿈을 해몽하는 총명이 있어서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벨드사살이라고 불렀다고 말하면서 다니엘을 부르면 그가 글자를 풀어줄 것이라고 말했다.
13-16 다니엘이 왕 앞에 나왔다. 벨사살은 다니엘의 명성을 들었다며 지혜자들이 풀지 못한 글자의 뜻을 풀어달라고 말했다. 다시한번 뜻을 풀이해 주면 셋째가는 통치자로 삼겠다고 약속했다. (세째는 파병나가 있는 나보니더스 (형이든, 아버지든)와 벨사살 다음이라는 뜻일 듯)

//도대체 다니엘은 어디에서 숨어지낸 것일까? 바빌론 제국과 페르시아 제국에 걸쳐 이인자 삼인자로서의 다니엘의 행적은 드러난 게 없다. 두번에 걸친 느부갓네살의 꿈 해몽과 앞으로 나올 사자굴 이야기가 전부가 아닌가? 다니엘의 바빌론식 이름이 벨드사살로 벨사상 왕과 한끗차이로 다르다는 것도 의미가 있을까? 벨사살의 이름은 ‘벨 신이여 왕을 보호하소서’ 라고 알려져있다. 그렇다면 벨드사살은? 혹자는 ‘벨 신은 왕을 보호할 수 없다’로 해석한다. 그렇다면 오늘 벨사살에게 일어날 일에 대한 예언적 이름일 수도 있겠다. 벨사살 왕은 셋째 통치자를 세울 권한은 있지만 자기 왕위도 생명도 보호하지 못한다. 당연히 벨 신도 무용지물 우상에 불과하다. 반면 다니엘은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느부갓네살의 이인자 노릇을 했는지, 벨사살 왕도 그의 이름을 모를정도로 드러난 것이 없지만, 결정적일 때 나와서 심판자이신 하나님을 배석한다. //누가 나를 보호하는가? 금과 은과 동과 철과 나무와 돌로 만든 신들을 찬양하면 이땅에서 왕으로 산다고 해도 공포에 사로잡혀 생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죽음 앞에 당황한다. 그러나 하나님의 사람들은 죽음 앞에 당당한 사람들이다. 이땅에서 왕으로 혹은 이인자로 사는 것보다, 하나님나라의 문지기로 사는 것이 행복이라는 것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이 믿음이 나를 보호한다.

다니엘 4:19-37 읽기

다니엘 4:19-37 읽기

19-27 느부갓네살의 말이 끝났다. 벨드사살, 아니 다니엘은 한 동안 놀라 당황했다. 느부갓네살이 다니엘에게 꿈과 해몽으로 번민하지 말라고 말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의 꿈은 원수들이 꾸고, 해몽도 원수들에게 들려주면 좋겠다고 입을 열었다. 다니엘은 우선 세상 어디서나 볼 수 있는 그 나무는 바로 강대해진 느부갓네살 임금이라고 말했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이 본 거룩한 감시자의 말에 대해 해석한다. 거룩한 감시자의 말대로 가장 높으신 분이 내리신 명령에 따라 느부갓네살은 사람에게서 쫓겨나서 들짐승과 함께 살며, 소처럼 풀을 뜯고 하늘에서 내리는 이슬에 젖을 것이다. 이렇게 일곱 해가 지나간 뒤에 느부갓네살이 비로소 가장 높으신 분이 세상 나라를 다스리신다는 것과 누구든지 그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 나무 뿌리의 그루터기를 남겨 두라고 명하신 것은 느부갓네살이 하나님이 세상을 다스리신다는 것을 깨달은 다음에, 다시 느부갓네살의 나라가 굳게 선다는 뜻이라고 해석했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에게 공의를 행해서 죄를 속하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서 죄를 속하면 느부갓네살의 영화가 지속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말했다.
28-33 이 모든 일이 다니엘의 해석대로 느부갓네살에게 일어났다. 1년 후, 느부갓네살이 바빌론 왕궁 옥상을 거닐면서 “내가 세운 이 도성, 이 거대한 바빌론을 보아라! 나의 권세와 능력과 나의 영화와 위엄이 그대로 나타나 있지 않느냐!” 하고 혼잣말을 했다. 이 말이 입에서 채 떨어지기도 전에 하늘에서 느부갓네살의 왕권이 떠났다는 말소리가 들려왔다. 그리고 느부갓네살은 꿈의 해석대로 들짐승과 함께 살면서 소처럼 풀을 뜯어 먹으며 일곱 때를 지내게 되었다. 일곱 때가 지나야 느부갓네살은 가장 높으신 분이 인간의 나라를 다스리시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라는 말소리가 들렸다. 그 순간 하늘의 말이 느부갓네살에게 그대로 이루어졌다.
34-37 정해진 시간이 지난후, 느부갓네살은 하늘을 우러러 보고 정신을 되찾았다. 느부갓네살은 가장 높으신 분, 영원하신 분을 찬송하고 그에게 영광을 돌렸다. 하나님의 통치는 영원하고 하나님의 나라는 영원히 이어진다고 찬양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막을 사람은 없다고 찬송했다.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정신을 차리자 자신의 명예와 위엄과 나라와 영화가 회복되었고, 자신의 고문관들과 신하들이 자신을 다시 찾아왔으며, 이전보다 더 큰 영예를 받으면서 왕위를 회복했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자신은 하늘의 왕을 찬양하고 높이며, 그분에게만 영광을 돌린다고 말했다.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모두 참되며 하나님의 모든 길은 공의로우며, 하나님은 교만한 이를 낮추신다고 고백했다.

//확실히 느부갓네살은 자신만의 제국을 건설하고자 했다. 천번째 꿈에서는 백지 상태의 느부갓네살에게 하나님께서는 영원한 나라는 오직 하나님께서 세우신다는 것을 알려주셨다. 그래도 느부갓네살의 나라가 금나라에 해당한다는 명예를 얻자, 느부갓네살은 나라를 세우시는 분이 하나님이심을 그새 망각하고 자신만의 청사진을 그리기 시작했다. 하늘까지 닿은 큰 나무는 느부갓네살이 꿈꾸는 나라였다. 그러나 이번에도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의 꿈에 딴지를 걸으신다. 하나님은 위대한 사람에게 영원한 나라를 맡기시지 않고, 비천해도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맡기신다고 교훈하신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느부갓네살이 겸손해 지도록,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에게 나라를 주신다는 것을 깨닫도록 시간을 주셨다. 정해진 시간이 지난 후 느부갓네살은 자신이 생각한 이상적인 나라가 아니라 하나님의 공의를 겸손히 받아들이는 왕이 되어 이전보다 더 큰 영예를 받으면서 왕위를 회복한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일곱 때의 기간을 피할 수 있는 길도 알려주었다. 공의를 행하고 가난한 백성에게 자비를 베풀어야 했다. 그러나 느부갓네살은 일년만에 공의와 자비의 길을 떠나 다시 교만해졌다. 자신의 권세와 능력과 영화와 위엄에 자만했다. 하나님은 그 즉시 느부갓네살에게 꿈에서 알려주신 대로 행하셨다. 정신을 차리면 하나님의 교훈을 깨닫게 된다. 공의와 겸손이 지도자의 덕목이다. ////개인의 꿈도 마찬가지다. 내가 주인이 되는 꿈은 개꿈이다. 주님이 주인이 되시는 꿈이 돼지꿈이다. 정신을 차린 사람은 공의 앞에 겸손 진다. 하나님의 길을 걷는다. (사람이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계획할지라도 그 걸음을 인도하는 자는 여호와시니라. 마음의 경영은 사람에게 있어도 말의 응답은 여호와께로서 나느니라. 너의 행사를 여호와께 맡기라 그리하면 너의 경영하는 것이 이루리라. )

다니엘 4:1-18 읽기

다니엘 4:1-18 읽기

4장의 화자는 느부갓네살 왕이다. 태평성대를 누리는 느부갓네살은 무서운 꿈을 꿨다. 느부갓네살은 이번 꿈에도 번민했다. 이번에는 첫번째 꿈/환상과 달리 느부갓네살은 바빌론의 박사들을 불러 꿈을 말해주고 해몽하라고 명령했다. 그러나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꿈을 해몽하지 못했다. 결국 느부갓네살은 자신의 신의 이름을 따라 벨드사살이라고 부르는 다니엘에게 꿈을 해몽하라고 명령했다. 다니엘에게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었다. 느부갓네살은 다음과 같이 다니엘에게 꿈에 대해 말해주었다. [굉장히 큰 나무 하나가 세상 복판에 있었다. 그 나무는 우람졌고 키가 하늘까지 닿았고 땅 끝 어디에서나 바라보였다. 그 나무 잎사귀는 싱싱했고 온 세상 사람들이 다 먹을 수 있을만큼 열매가 풍성했으며, 들짐승도 그 그늘에서 쉬었고 날짐승은 그 가지에 깃들였으며, 세상 모든 사람들이 그 나무에서 나는 것을 먹고 살았다. 환상중에 하늘에서 한 천사가 (거룩한 감독이) 내려와서 이렇게 외쳤다. 이 나무를 찍어라. 잎사귀를 떨며 그 열매를 흩어버리고 들짐승과 날짐승을 쫓아내어라. 다만 그루터기는 땅에 남겨두고 철과 놋줄로 잡아맨채 풀밭에 그냥 두어라. 이 사람이 (누구?) 하늘의 이슬을 맞고 짐승들과 어울려 풀을 뜯으며 살게 두어라. 이 사람이 정신을 잃고 짐승처럼 생각하면서 일곱해를 지내야 한다. 이것은 감독원의 결정이다. 거룩한 이들의 명령이다. 인간 나라를 다스리는 분은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이시다.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께서는 겸손한 사람을 좋게 보시고 그런 사람을 높은 자리에 앉히시어 나라를 다스리게 하신다. 이것이 나 느부갓네살이 꾼 꿈이다. 벨드사살아 이제 너는 이 꿈을 해석하여라. 이 나라의 모든 박사들이 해몽하지 못했지만 너에게는 거룩한 신들의 영이 있으니 이 꿈을 풀어낼 수 있다.]

//느부갓네살 왕은 꿈을 꾸는 왕이다. 다니엘은 느부갓네살이 처음 꾼 꿈을 해석하기 앞서, 나라들을 세우는 것은 느부갓네살이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선언했다. 사람들이 세우는 나라는 영원하지 않다고, 영원한 제국의 청사진을 그리고 있던 느부갓네살에게 영원한 라는 하나님이 세우시는 나라라고 교훈했었다. 두번째 꿈도 마찬가지다. 이번에는 느부갓네살의 꿈이 좀 더 자세해졌다. 그래서 이번에는 자신의 청사진을 펼쳐놓고 지혜자들의 도움을 구했다. 느부갓네살의 청사진에 등장하는 천사/거룩한 감독의 말을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바빌론의 지혜자들은 감히 느부갓네살의 꿈을 거역할 수 없어서 잠잠했다. 다니엘의 세 친구처럼 왕의 생각을 거역할 능력이 없었기에 해석할 엄두조차 못냈을 것이다. 느부갓네살은 결국 다니엘을 부른다. 자신의 번민을 가지고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 다시 한번 서기로 했다. 느부갓네살이 위대한 왕이라는 증거다. 자신을 낮출 수 있는 무엇인가가 있다는 것은 감사의 제목이다. 느부갓네살에게는 다니엘이 그런 존재다. 나에게는 말씀이다.

다니엘 3:19-30 읽기

다니엘 3:19-30 읽기

19-23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의 반응에 느누갓네살 왕은 안색이 변할 정도로 화가 치밀었다. 느부갓네살은 화덕을 일곱 배나 더 뜨겁게 하라고 명령한 후 셋을 화덕 속에 던지라고 명령했다. 화덕이 얼마나 뜨거웠던지 셋을 화덕 입구로 데려가서 던진 사람들이 화덕의 열기에 타서 죽었고 셋은 서로 묶인 채로 화덕 속으로 떨어졌다.
24-25 느부갓네살이 화덕 속을 보고 놀라 모사들에게 물었다. 화덕 속에 셋을 던졌는데 네 사람이 보였다. 그들은 모두 결박이 풀린 채로 화덕 안을 거닐었지만 아무런 상처도 입지 않았다. 느부갓네살이 보기에 네째 사람의 모습은 신의 아들과 같았다.
26-27 느부갓네살은 화덕 어귀 가까이 가서 가장 높으신 하나님의 종 사드락과 메삭과 아벳느고는 화덕 밖으로 나오너라 하고 명령했다.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불 가운데서 나왔다. 셋의 몸이 불에 상하지 않고, 머리털도 그을리지 않고 옷의 색깔도 변하지 않고 심지어 불에 탄 냄새도 나지 않았다.
28-30 느부갓네살 왕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돌보신 하나님을 찬송했다. 하나님이 천사를 보내 하나님의 종들인 셋을 구하셨다고 인정했다. 셋이 하나님을 의뢰하여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하나님 말고는 다른 어떤 신에게도 절하거나 섬기지 않았다고 칭찬했다. 그리고 바빌론 제국의 모든 민족과 백성들은 유대의 하나님을 두고서 경솔히 말할면 그 몸을 조각내고, 그 집을 쓰레기 더미로 만들겠다는 조서를 내렸다. 오직 하나님만 자기를 믿는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신이라고 말했다. 느부갓네살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바빌론 지방을 다스리면서 번영을 누리며 살게 하였다.

//죽음을 무릅쓰고 왕의 명령을 거역하고 자신들의 하나님만을 섬긴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를 통해서 제국의 왕 느부갓네살은 오직 유대의 하나님만이 자기를 믿는 사람을 구원할 있는 신이라고 고백한다. 화덕 속에서 불에 타서 죽지 않고 나온 것 이전에 제국의 왕의 명령을 거역할 수 있는 것이 믿음이다. 그래서 세 친구는 하나님께서 살려주시지 않는다고 해도 구원의 길을 걸었던 것이다. 즉각적인 결과가 좋아서 믿음이 증명되는 것이 아니다. 믿음은 쉴만한 물가, 푸르른 초장을 소망하며 목자를 따라 기나 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들어가기를 주저하지 않는 것이다. //여전히 다니엘은 어디에 있었을까? 느부갓네살의 모사 중에 있었던 것은 아닐까? //화덕 속에 있던 네번째 사람의 모습을 한 존재는 누구였을까? 느부갓네살은 신의 아들과 같았다고, 하나님이 보내신 천사라고 증언한다. ////성도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할 수 있는 이유도 선한 목자가 인도해 주시기 때문이다. 선한 목자를 믿고 따르는 삶이 구원의 삶이다. 성도가 서로 사랑할 때 세상은 성도 가운데 함께 하시는 주님을 보게 될 것이다.

다니엘 3:1-18 읽기

다니엘 3:1-18 읽기

1-7 느부갓네갈은 금으로 신상을 만들어 바빌론 두라 평지에 세웠다. 높이가 에순자 정도니 10층 건물정도의 높이라고 생각된다. 느부갓네살은 전령을 보내 모든 관리들은 느부갓네살 왕이 세운 신상 제막식에 참여하라고 했다. 전령은 제막식 날 악기 소리가 나면 모든 민족과 백성들은 그 신상 앞에 엎드려 절을 하라는 명령을 전달했다. 누구든지 엎드려서 절을 하지 않으면 불타는 화덕 속에 던져 넣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신상 제막식 날 악기소리가 울려퍼지자 모든 백성들은 금신상을 향해 엎드려서 절을 했다. (그런데)
8-12 어떤 점성가들이 나서서 유다 사람들을 고발했다. 그들은 느부갓네살 왕에게 가서 바빌론 지방 관리인 유다 사람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임금님께 경의를 표하지도 않으며 임금님의 신들을 섬기지도 않으며 임금님이 세우신 신상에도 절을 하지 않는다고 고발했다.
13-15 느부갓네살은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를 소환했다. 느부갓네살 왕은 이들을 신문했다. 그리고 지금이라고 악기소리가 날 때, 신상에게 엎드려 절을 할 마음이 있다면 괜찮다고 말했다. 그렇지 않으면 공포한대로 불타는 용광로에 던져 넣겠다고 말했다. 어느 신이 자신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낼 수 있겠느냐고 반문했다.
16-18 하나냐와 미사엘과 아사랴는 신상에 절하는 문제는 느부갓네살에게 대답할 필요가 없다고 대답했다. 대신 불속에 던져져도 자신들을 지키시는 하나님이 활활타는 화덕 속에서 구해주시고 느부갓네살의 손에서도 구해 주실 것이라고 대답했다. 비록 그렇게 되지 않더라도 자신들은 임금님의 신들은 섬기지 않고 임금님이 세우신 신상에도 절을 하지 않을 것이라고 대답했다. 그러니 굽어 살펴달라고 (정중히) 말했다.

//지방관리인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가 느부갓네살이 세운 신상에 엎드려 절을 하지 않자, 어떤 점성가들은 거기다가 이들이 느부갓네살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도 않고, 결국 느부갓네살에게 경의도 표하지 않았다는 죄를 덧붙여 고발한다. 이들의 고발에 발끈한 느부갓네살은 지금이라고 신상에 절을 하면 용서하겠다고 자비를 베풀준비를 했다. 그러나 하나냐 미사엘 아사랴는 느부갓네살의 자비보다 하나님의 자비가 더 크다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죽음이 기다려도 하나님 앞에 부끄럽지 않을 길을 택했다. //다니엘은? 바빌론 지혜자들을 죽음에서 구했던 다니엘은 지금은 어디에 있었던 것일까? 왕의 궁정에 있는 사람들에게는 신상이 있는 평지까지 나가서 굳이 엎드려 절하지 않았던 것일까? 아니면 엘리사 시대의 시리아 나아만 장군이 림몬 신당에서 시리아 왕을 보좌하는 것을 사유해 달라고 청했던 것과 같이, 다니엘도 느부갓네살 옆에서 시중을 들었던 것일까? //바빌론 점성가들은 느부갓네살의 절대적 신임을 받는 다니엘을 함부로 건딜 수 없었기 때문에, 다니엘의 세 친구들을 먼저 음모에 빠뜨렸을 것이다. 느부갓네살도 최고의 지혜자 다니엘을 잃고 싶지 않아서 세 친구들로 하나님을 시험했을 수 있다. 유대의 하나님을 신중의 신이요 군주들 중의 으뜸이라고 찬양했던 느부갓네살이지만 금 신상을 세운 것으로 보아 그새 하나님을 잊어버린 것이 분명하다. 느부갓네살 왕은 “세상의 어느 신이 나의 손에서 너희를 구해 낼 수 있겠느냐?” 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아버렸다. //그러나 세 친구는 여전히 느부갓네살보다 크신 하나님을 신뢰했다. 만일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할 수 있을까? 금 신상 앞에 절하지 않는 것은 상대적으로 쉽다. 그러나 왕의 명령을 거역하는 것은 쉽지 않다. 그러나 뜻을 정한 세 친구는 믿음으로 이 어려운 일을 해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신다는 믿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