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나 1:1-17 읽기

1-3 주님께서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너는 어서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 성읍에 대고 ‘너희의 죄악이 내 앞에 까지 이르렀다’ 하고 외쳐라” 하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요나는 주님의 낯을 피해 스페인으로 도망가려고 길을 떠나 욥바 항구에서 스페인으로 가는 배를 만나, 표를 사고 사람들과 함께 배를 탔다. 요나는 스페인으로 가면 주님의 낯을 피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4-6 주님께서 스페인으로 가는 배가 거의 부서질 정도로 바다에 큰 태풍을 일으키셨다. 뱃사람들은 두려워, 저마다 자기 신들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는 한편, 배를 가볍게 하려고 배 안의 짐을 바다에 던졌다. 요나는 풍랑에 아랑곳하지 않고 배밑창으로 내려가 누워서 깊이 잠들어 있었다. 선장이 배밑창으로 내려와서 잠자고 있던 요나를 깨웠다. 선장은 요나에게도 요나의 신에게 부르짖으라고 말했다. 행여라도 요나의 신이 자비를 베풀어 주시면 배가 부서져 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7-10 뱃사람들은 제비를 뽑아 누구 때문에 이런 재앙이 내리는지 알고자 했다. 제비를 뽑으니 요나가 뽑혔다. 뱃사람들은 요나에게 “누가 이런 재앙을 내렸소? 당신은 무엇을 하는 사람이요? 어디서 오는 길이오? 어느나라 사람이오? 어떤 백성이오?” 하고 물었다. 요나는 “나는 히브리 사람이오. 하늘에 계신 주 하나님, 바다와 육지를 지으신 그 분을 섬기는 사람이오” 하고 대답했다. 요나는 뱃사람들에게 자기가 주님의 낯을 피해 달아나고 있기 때문에 일어난 재앙이라고 말했다. 뱃사람들은 어쩌자고 이런 일을 했느냐며 겁에 질린채 요나에게 말을 했다.

11-16 풍랑이 점점 더 거세게 일어났다. 뱃사람들은 요나에게 어떻게 하면 바다가 잔잔해 지겠는지 물었다. 요나는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바다가 잔잔해 질 것이라고 대답했다. 요나는 자신 때문에 태풍이 닥쳤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했다. 뱃사람들은 차마 요나를 바다에 던질 수 없어 육지로 되돌아 가려고 노를 저었지만 큰 파도로 인해 헛수고였다. 뱃사람들은 할 수 없이, 주님께 요나를 바다에 던진다 해도 자신들을 벌하지 (죽이지) 말아 달라고 간구한다. 뱃사람들은 주님께서는 자신이 뜻하시는 대로 하시는 분이심을 알고 있었다.  뱃사람들이 요나를 들어서 바다에 던지자 폭풍이 일던 바다가 잔잔해졌다. 사람들은 주님을 매우 두려워하게 되었다. 뱃사람들은 주님께 희생제물을 바치고 주님을 섬기기로 약속했다.

17 주님께서는 큰 물고기 한마리를 마련해 두셨다가 요나를 삼키게 하셨다. 요나는 사흘 밤낮을 그 물고기 뱃속에서 지냈다.

//아밋대의 아들 요나. 아밋대는 ‘진리’ ‘성실’ 이라는 의미를 갖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요나는 진리의 아들이요 성실한 아들이다. 그런데 ‘요나’는 비둘기라는 뜻의 이름이다. 진리의 말씀을 따른다면 비둘기처럼 순결하겠지만, 불순종한다면 더럽고 불결하다는 이미지를 갖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씀에 순종하지 않고 스페인행 배를 탄 요나는 후자다. 소위 선지자가 어떻게 그럴 수 있었을까? 요나에게 하나님은 이스라엘 민족의 하나님(신)에 불과 했던 것일까? 그래서 스페인으로 가면 하나님의 영향(낯)을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었나? 그러나 요나는 자기의 고백대로 하늘에 계신 창조주 하나님의 손바닥을 벗어날 수 없다. //하나님은 요나가 탄 배에 큰 광풍을 일으키셨다. 사람들이 감당할 풍랑이 아니었다. 사람들은 각자의 신들에게 살려달라고 부르짖어야 했다. 그런데도 요나가 평온할 수 있었던 이유는 니느웨의 구원보다 차라리 죽음을 택했기 때문이다. 민족주의자 요나에게 니느웨의 구원은 죽기보다 싫었다. //뱃사람들의 성화에 못이겨, 요나는 재앙이 자신 때문이라고 고백한다. 그리고 자신을 바다에 던지면 잔잔해 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면 될 것을, 여전히 자기 고집을 꺾지 않았다.) 사람들은 차마 요나를 바다에 던질 수 없었으나, 거세지는 풍랑에 결국 요나를 희생제물로 바쳤다. 사람들은 요나의 하나님(신)을 매우 두려워하여 주님으로 섬기기로 약속했다. 그러나 이런 약속은 보통 사건/문제만 해결되면 잊혀지고 만다.ㅠㅠ 왜냐하면 ‘하나님을 위하는’ 신앙이 아니라 ‘우리를 위하는’ 종교적 열심에 그치기 때문이다. //주님은 뱃사람들이 바친 희생제물인 요나를 받지 않으셨다.ㅎㅎ 대신 살리셨다. 하나님은 우리가 희생제물이 아니라 우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산 제물(예배)로 드리길 원하신다. 주님은 요나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산 제사를 드리길 원하시는 것이다. 요나에게 그 기회를 다시 주신 것이다. 예수께서 성도를 구원하신 이유다. 나를 구원하신 이유다.

요한복음 21:15-25 읽기

15-19 아침을 먹은 후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 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 하고 물으셨다. 베드로가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 떼를 먹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두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가  “주님, 그렇습니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 떼를 쳐라”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세번째로 베드로에게 물으셨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그때에 베드로는 예수께서 세번이나 물으시므로 불안했다. 베드로는 “주님, 주님께서는 모든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을 주님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내 양 떼를 먹여라”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이어서 말씀하셨다.

“내가 진정으로 진정으로 네게 말한다.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를 띠고 네가 가고 싶은 곳을 다녔으나, 네가 늙어서는 남들이 네 팔을 벌릴 것이고, 너를 묶어서 네가 바라지 않는 곳으로 너를 끌고 갈 것이다.” 예수께서는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 암시하셨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20-25 베드로가 뒤를 돌아보니 예수께서 사랑하시던 제자가 따라오고 있었다. 마지막 만찬 때, 예수의 가슴에 기대어 배신자가 누구인지 물었던 그 제자였다. 베드로가 주님께 그 제자는 어떻게 되겠는지 물었다. 예수께서 “내가 올 때까지 그가 살아 있기를 내가 바란다 한들, 그것이 너와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너는 나를 따라라” 하고 말씀하셨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베드로는 다른 사람들 보다 더 주님을 사랑한다고 대답한다. 두번째는 비교적 우위의 사랑이 아니라 주님을 절대적으로 사랑한다고 고백한다. 마지막 세번째에는 자기의 의지가 아니라 예수 안에서 사랑한다고 조심스럽게 고백한다.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 떼를 먹여라/쳐라/”고 하신다. 먹이는 것은 말씀을 가르치는 것이고 치는 것은 말씀을 지키게 하는 것이라고 적용할 수 있을 것이다. 성도가 매일 먹어야 할 양식은 말씀이고, 성도는 말씀에 순종해야, 곧 말씀으로 다스림을 받아야 하기 때문이다.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만이 다른 사람에게 주님의 말씀을 가르치고, 주님의 말씀을 지키게 할 수 있다.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신 예수께서 베드로에게 “나를 따라라”하고 마지막 명령을 하신다. 죽기까지 예수의 길을 따르라고 하신다. //베드로는 다른 제자의 삶에도 관심이 있었으나 예수께서는 ‘너는 나를 따라라’하고 강조하신다. ///주님의 사랑은 용서의 사랑이다. 부활후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첫번째 나타나셔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부활의 주님, 성령으로 충만하신 주님은 베드로를 용서하신다. ‘너는 나를 따라라!’ 성령의 능력으로 용서하며 살라고 하신다. 나에게도 용서받은 사람으로 용서하며 살라고 하신다. ////요316의 하나님의 사랑은 용서다.

요한복음 21:1-14 읽기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 평안을 축복을 받고, 성령까지 (혹은 성령 약속까지) 받은 제자들 중 갈릴리 출신들은 디베랴 바닷가로 돌아갔다. 그곳에서 예수께서 다시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셨다.

베드로와 도마와 갈릴리 사람 나다나엘과 세베대의 아들들과 또 이름을 밝히지 않은 두 제자가 함께 있었다. 베드로가 그들에게 고기를 잡으러 가겠다고 하자, 다른 제자들도 함께 나갔다. 배를 타고 고기를 잡았으나 그 날 밤에 고기를 한 마리도 잡지 못했다. 동틀무렵 예수께서 바닷가에 서계셨으나, 제자들은 그가 예수인줄 알지 못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뭘 좀 잡았는지 물으셨다. 그들은 못잡았다고 대답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면 잡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이 순종하자 그물을 끌어 올릴 수 없을 정도로 많은 고기가 잡혔다. 예수가 사랑하시는 제자가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했다. 베드로는 주님이시라는 말을 듣고는 벗었던 몸에다 겉옷을 두르고 바라로 뛰어 내렸다. 나머지 제자들은 작은 배를 탄채 고기가 든 그물을 끌면서 해안으로 나왔다. 그들은 육지에서 멀지 않은 곳에서 고기를 잡고 있었다.

그들이 땅에 올라와서 보니, 숯불을 피워놓고 그 위에 생선을 굽고 있었다. 빵도 있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너희가 지금 잡은 생선을 조금 가져오라고 명하셨다. 베드로가 배에 올라가서 그물을 땅으로 끌어내렸는데 큰 물고기가 153마리나 있었다. 고기가 그렇게 많았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와서 “아침을 먹어라” 하고 말씀하셨다. 제자들은 아무도 “선생님은 누구십니까?” 하고 물을 필요가 없었다. 그들은 주님을 알아봤다. 예수께서 친히 빵을 집어서 그들에게 주시고 이와같이 생선도 주셨다.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아나신 뒤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신 것은 이번이 세번째였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나고도 제자들의 삶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예수를 물리적으로 따를 수 없으니, 예수를 만나기 전의 일상으로 돌아갔다. ///주님이 제자들에게 세번째로 나타나셨다. 승천하시기까지 40일을 지내시면서 하나님나라의 일을 가르치셨는데… 이렇게 드문 드문 나타나셨으면, 어제 묵상한대로 예수께서는 제자들과의 물리적 동행을 끝내시고, 영적 동행을 준비시키시는 것 같다. 

//확실히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은 보통 사람의 모습과 달랐던 모양이다. 마리아도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라아야” 하고 불러주시기 전에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제자들도 그물에 고기가 너무 많이 걸리기 전에는 예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물을 배 오른쪽에 던지라는 목소리가 들릴 정도의 거리에서도 알아보지 못했다. 아니 목소리를 듣고도 다들 몰랐다. 예수께서 사랑하시는 제자가 (가장 먼저 목자의 음성을 알아차린 양처럼) 베드로에게 “저분은 주님이시다” 하고 말을 하자, 그제서야 베드로는 주님께 향했다. 깊은 곳에 그물 던져 많은 물고기를 잡았을 때 베드로는 “주님, 저를 떠나 주십시오. 저는 죄인입니다.” 하고 고백했는데, 이번에는 곧바로 주님께 향했다. 주님은 죄인이 떠나야 할 분이 아니라, 죄인이 찾아야 할 분이심을 깨달았던 모양이다. //잡히시기 전날 유월절 만찬에서 허리에 수건을 동이고 제자들의 발을 씻기시며 수종들었던 예수께서 부활 후 세번째 만남에서 아침을 차리시고 빵과 생선으로 제자들을 수종드신다. 물고기와 빵. 예수께서는 제자들이 깨닫지 못했던 오병이어의 표징을 기억나게 하시고 깨닫게 하신다. 일용할 양식을 책임지시는 주님의 모습이다. ///일회성에 그치는 믿음이 아닌, 지속되는 믿음이 영생이라고 했다. 매일 주님이 차려주시는 간단한? 밥상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 이 밥상을 이웃에게 나눠야 한다. 이것을 알고 행하는 자가 복이 있다고 하실 것이다. 

요한복음 20:19-31 읽기

19-23 그날, 곧 주간의 첫 날 저녁에 제자들은 유대 사람들이 무서워 문을 모두 닫아 걸고 있었다. 그 곳에 그들 가운데 예수께서 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두 손과 옆구리를 제자들에게 보여주셨다. 제자들은 주님을 보고 기뻐했다. 예수께서 그들에게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빈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낸다” 하고 말씀하셨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숨을 불어 넣으시며 “성령을 받아라. 너희가 누구의 죄든지 용서해 주면, 그 죄가 용서될 것이요, 용서해 주지 않으면 그대로 남아 있을 것이다.” 하고 말씀하셨다.

24-29 열두 제자 중 하나인 쌍둥이라고 불리는 도마는 예수께서 오셨을 때 다른 제자들과 함께 있지 않았다. 다른 제자들이 도마에게 “우리는 주님을 보았소” 하고 말했지만 도마는 “나는 내눈으로 그의 손에 있는 못자국을 보고, 내 손가락을 그 못자국에 넣어보고, 또 내 손을 그의 옆구리에 넣어보지 않고서는 믿지 못하겠다” 하고 말했다. 여드레 뒤에 제자들이 모여 있을 때, 도마도 함께 있었는데, 문이 잠겨 있었으나 예수께서 제자들 가운데 들어오셔서, “너희에게 평화가 있기를” 하고 인사하셨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도마에게 “네 손가락을 이리 내 밀어서 내 손을 만져보고, 네 손을 내 옆구리에 넣어보아라. 그래서 의심을 떨쳐버리고 믿음을 가져라” 하고 말씀하셨다. 도마가 예수께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도마에게 “너는 나를 보았기 때문에 믿느냐? 나를 보지 않고도 믿는 사람은 복이있다” 하고 말씀하셨다.

30-31 예수께서는 (요한이) 이 책에 기록하지 않은 다른 표징도 많이 행하셨다. 그런데 이것이나마 기록한 목적은 여러분으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믿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두려워하지 말고 평안하라고 하셨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난 제자들은 기뻐했다. 예수께서는 다시 한번 제자들에게 평안하라고 축복하셨다. 그리고 제자들을 파송한다. 제자들에게 성령을 주신다. 성령의 능력 중의 능력은 ‘용서’다. 성도의 선교적 삶의 핵심은 정죄가 아니라 용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는 여드레가 지난 뒤 다시 제자들에게 나타나셨다. (여전히 두려워하는? 닫힌 문이 증거?) 제자들에게 한 번 더 평화를 기원해 주셨다. 그리고 첫번째 나타나셨을 때 자리에 없었던 도마를 지목하시고, 도마가 제시한 부활의 증거를 보여주셨다. 그제야 도마는 예수를 나의 주님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했다. 예수께서는 부활하신 예수를 보지 않고도 예수의 부활을 믿는 사람은 복이 있다고 말씀하셨다. 성도는 복이 있는 사람들이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제자들과 오래 지속적으로 함께 하지 않으셨던 모양이다. 8일만에 다시 나타나셨다. 음. 물리적인 동행보다, 영적인 동행을 연습시키시는 것일까? 첫번째 나타나셔서 ‘성령을 받아라’ 하신 말씀은 왜 오순절에서야 이루어진 것일까? 승천하시기 전까지 여전히 예수께서 보혜사로 함께 하셨기 때문일까? //요한은 복음서를 기록한 목적을 독자로 하여금 예수가 그리스도요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게 하고, 또 믿어서 예수의 이름으로 생명을 얻게 하려는 것이라고 밝힌다. 믿음이 곧 생명이다. 믿음이 일회성이 아니라 지속되는 것이 영생이다.

요한복음 20:1-18 읽기

1-10 주간의 첫 날 (곧 안식일 다음날) 이른 새벽에, 막달라 마리아가 무덤에 갔는데, 무덤 입구를 막은 돌이 이미 옮겨져 있었다. 막달라 마리아는 그 길로 베드로와 예수께서 사랑 하시던 그 다른 제자에게 달려가서 ‘누가 주님을 무덤에서 가져갔습니다.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습니다’ 하고 보고했다. 베드로와 그 다른 제자가 무덤으로 달려갔다. 다른 제자가 베드로보다 먼저 도착해서 무덤 입구에서 안을 보니, 삼베가 놓여 있는 것을 보았으나 안으로 들어가 확인하지 않았다. 뒤따라 도착한 베드로가 무덤 안으로 들어갔더니 삼베만 놓여있었고, 예수의 머리를 싸맸던 수건은 삼베와 함께 놓이지 않고 한 곳에 따로 개켜 있었다. 먼저 도착한 제자도 뒤따라 들어가 보고 믿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께서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반드시 살아나야 한다는 성경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들은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11-18 마리아는 무덤 밖에서  서서 울었다. 울다가 몸을 굽혀 무덤 속을 들여다 보았다. 흰 옷을 입은 천사 둘이, 예수의 시신이 놓였던 자리 머리쪽과 발쪽에 각각 앉아 있었다. 천사들이 마리아에게 왜 우는지 물었다. 마리아는 누가 주님을 가져갔는데, 어디에 두었는지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이렇게 대답하고 뒤돌아 섰는데, 예수께서 서 계셨다. 마리아는 몰라봤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여자여 왜 우느냐? 누구를 찾느냐?” 하고 물었다. 마리아는 예수를 동산지기로 착각해서 “여보세요, 당신이 예수를 옮겼으면 어디에 두었는지 말해주세요. 내가 그를 모셔가겠습니다.” 하고 말했다.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그때서야 마리아는 돌아서서 히브리말로 ‘선생님’ 하고 불렀다. 예수께서 마리아에게 “내게 손을 대지 말아라. 내가 아직 아버지께로 올라가지 않았다. 이제 내 형제들에게로 가서, 내가 나의 아버지, 곧 너희의 아버지, 나의 하나님, 곧 너희의 하나님께로 올라간다고 말해라” 하고 말씀하셨다. 막달라 마리아는 제자들에게 가서 자기가 주님을 보았다는 것과 주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을 전했다.

//무덤으로 달려간 베드로와 또 다른 제자는, 빈무덤이라는 마리아의 말을 보고 믿었으나, 빈무덤을 보고도 부활의 말씀을 깨닫지 못했다. 그래서 자기들이 있던 곳으로 다시 돌아갔다. //마리아는 울며 두 제자를 따라 다시 빈무덤으로 왔다. 그는 예수의 시신의 흔적을 찾았다. 마리아에게도 빈무덤은 결코 예수부활의 증거가 아니었다. //마리아는 시신이 뉘었던 곳에 흰옷을 입은 천사 둘을 보게 된다. 슬픔에 천사를 보고도 놀라지 않는다. 마리아의 관심은 오직 예수의 시신에 있었기 때문에, 시신을 향품으로 처리하기 위해 왔기 때문에, 또 슬픔에 잠겨서 부활하신 예수를 보고도 알아보지 못한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마리아야” 하고 부르시자, 마리아는 “선생님” 하고 대답한다. 양들은 목자의 음성을 안다. 부활하신 예수의 모습은 천사의 모습과 같았을까? 눈물에 가렸을까? 눈에 보이는 것이 다가 아니다. 마리아는 이름을 불러 주시는 주님의 음성에  주님을 다시 볼 수 있었다. ///부활의 말씀은 주님의 음성을 들을 때 깨달아 진다. 빈무덤이 곧 예수부활의 증거는 아니다. 다시 만나주시는 예수가 부활의 증거 자체다. 따라서 말씀의 교제가 없다면 예수를 만날 수도, 부활을 경험할 수도 없다. 부활을 만끽하려면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성도는 말씀을 통해 역사하시는 삼위 하나님을 앙망해야 한다. ///사셨네 사셨네 예수 다시 사셨네. 말씀하시네 말씀하시네 예수 다시 말씀하시네.

요한복음 19:31-42 읽기 (04.16)

31-37 유대 사람들은 그날이 유월절 준비일이므로 안식일에 시체들을 십자가에 그냥 두지 않기 위해 빌라도에게 치워달라고 부탁했다. 유월절 안식일은 큰 날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병사들이 예수와 함께 달린 좌우 사람의 다리를 꺾고 난 후, 예수께 와서는, 이미 죽으신 것을 보고 다리를 꺾지 않았다. 그러나 병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 옆구리를 찌르니 곧 피와 물이 흘렀다. (이것은 목격자의 증언이다. 이 목격자의 증언은 진실하다. ) 일이 이렇게 된 것은 ‘그의 뼈가 하나도 부러지지 않을 것이다’ 한 성경 말씀이 성취된 것이다. 성경에는 ‘그들은 자기들이 찌른 사람을 쳐다볼 것이다’ 한 말씀도 있다.

38-42 그 뒤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의 시신을 거두겠다고 빌라도에게 요청해서 허락을 받았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의 제자지만 유대 사람이 무서워서 그것을 숨기고 있었다. 그는 예수의 시신을 내렸다. 또 전에 예수를 밤중에 찾아갔던 니고데모도 몰약에 침향을 섞은 것을 백근쯤 가지고 와서 예수의 시신을 모셔다가 유대 사람의 장례 풍속대로 향료와 함께 삼베로 감았다. 예수가 십가가에 달리신 곳에도 동산이 있었는데, 그 동산에는 아직 사람을 장사한 일이 없는 새 무덤이 하나 있었다. 그날을 유대 사람이 안식일을 준비하는 날이고, 가까운 곳에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그들은 예수를 거기에 모셨다.

//십자가에 달린 사람의 다리를 꺽는 이유는? 죽음을 재촉하기 위해서? 죽어야만 십자가에서 내릴 수 있었다. 그래서 이미 죽으신 예수는, 다리를 꺽이지 않고도 시체가 내려져 장례가 치러졌다.   이는 예수께서 유월절 어린 양의 요건을 갖추셨고, 또 의인이심을 드러낸다. //숨은 제자들. 아리마대 사람 요셉과 니고데모. 이 둘이 예수를 장례치러 주었다. 요셉은 숨은 제자였고, 요한은 “또” 라는 접속사를 써서 니고데모도 숨은 제자였음을 암시한다. 이 둘의 역할은 여기까지였을까? 성경은 이들을 더 이상 언급하지 않는다. 예수를 배반하고 뿔뿔히 흩어졌던 제자들의 이야기는 이어지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