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41:1-20 읽기

1 만군의 주 하나님은 나라들과 백성의 재판관이시다. 2-4 세상의 정복자를 일으키신 분도, 정복자에게 승리를 허락하신 분도,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시는 분도 만군의 주 하나님이 자신이라고 소개한다. 태초에 세상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세상 끝 날에도 있을 것이라고 선언하신다. 5-7섬들, 곧 세상 나라들은 주님께서 하신 일을 보고 두려워한다. 땅 끝에 있는 나라들도 마찬가지다. 두려움에 사람들이 함께 모여 손 발을 맞추고 서로 힘을 내라고 격려해 보지만 기우뚱 거리는 우상을 못을 박아서 고정시키는 것에 불과하다. 8-9 그러나 하나님의 종 이스라엘, 하나님이 택한 민족, 하나님이 친구라고 부른 아브라함의 자손들은 두려움에 우상을 세울 필요가 없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불러 백성을 삼고 버리지 않았다고 선언하시기 때문이다. 10-13 하나님께서 함께 있으니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니 떨지 말라고 위로한다. 심지어 하나님의 백성을 강하게 하고 도와주고 이기도록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스라엘에게 화를 낸 자들이 수치를 당할 것이고, 이스라엘과 다투는 자들은 멸망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그래서 더이상 대적하는 자들이 없을 것이라고, 혹여 덤비는 자들이 있어도 아무것도 아닌, 허무한 것 같은 자들이 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주, 하나님이다. 그 하나님이 이스라엘의 오른손을 붙잡고 계신다. 그 하나님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신다. 그 하나님이 돕겠다고 약속하신다. 14-16 솔직히 이스라엘 백성은 만군의 주 하나님 앞에서 벌레만도 못한 존재다. 그런대도 주님은 이스라엘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도와주시겠다고 약속하신다. 거룩한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구해내시겠다고 약속하신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심판의 도구로 사용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교만한 것들을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을 것이다. 그러나 이스라엘은 주와 더불어 기뻐하고, 거룩한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17-20 가련하고 빈궁한 사람들이 물을 찾지 못하여 갈증에 혀가 탈 때, 그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그들을 버리지 않겠다고 하신다.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백성들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버리지 않겠다고 약속하신다. 메마른 산에서 강물이 터져 나오게 하고 골짜기에서 샘물이 솟아나게 하신다. 광야를 연못으로 마른 땅을 샘 근원으로 만드시겠다고 하신다. 광야에 각종 나무를 심겠다고 하신다. 그러나 사람들이 주님께서 몸소 이 일을 하셨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이스라엘의 거룩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하신 이 모든 일을 알라고 하신다.

//섭리! 역사의 주관자는 창조주 하나님이다. 임마누엘만이 복음이요 영생인 이유다. 세상 정복자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정복도 하고 패망 당한다. 가련한고 빈궁한 사람들도 하나님의 섭리에 따라 도움(구원)을 받는다. 따라서 알 수 없는 두려움에 사람의 손으로 만든 (기우뚱 거리는) 우상에 의지하지 말고, 살아계신 하나님의 약속을 의지하라고 말씀하신다. 세상 역사와 이스라엘 역사에서 하나님이 어떤분이신지 알아가라고 교훈한다. 교만한 자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흩어질 것이고,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하는 자들만 기뻐하고, 하나님을 찬양할 것이다. 임마누엘!

이사야 40:12-31 읽기

12-17 만군의 주가 누군지 다음과 같이 소개한다. 바닷물을 손바닥을 떠서 헤아릴 수 있는 분, 뼘으로 하늘을 재어 볼 수 있는 분, 온 땅의 티끌을 되로 되어 보신 분, 산들을 어깨 저울로 달아 보신 분, 언덕들을 손저울로 달아 보실 수 있는 분이시다. 아무도 주님의 영을 헤아릴 수 없으며, 주님의 조언자가 되거나, 주님을 가르칠 사람이 없다고 선언한다. 심지어 주님은 의논할 사람도 필요 없다고 한다. 그런데도 주님을 깨우쳐 드리며, 공평의 도리를 가르치려 하고, 지식을, 처세술을 가르치려고 하는 사람이 누구냐고 반문한다. 주님께는 뭇나라가 한 방울의 물, 저울 위의 티끌에 불과하다. 섬들도 먼지처럼 가볍게 들어 올리시는 분이시다. 레바논의 산림도 제단의 장작으로 충분하지 않고 짐승들도 번제물로 드리기에 충분하지 않다. 모든 민족도 주님과 비교될 수 없으니, 사람은 무시될 수밖에 없는 존재다.

18-26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에게 하나님은 어떤 분이시며, 어떤 형상에 비교할 수 있을까? 대장장이가 부어 만들고 도금장이가 금으로 입히고 은사슬을 만들어 걸친 우상에 비교할까? 금과 은이 없는 사람은 썩지 않는 나무를 골라서 우상을 만든다. 그러나 하나님은 피조된 우상이 아니다. 하늘과 땅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이시다. 통치자들을 허수아비로 쓸모 없는 사람으로 만드시는 분이시다. 이 세상의 통치자들은 하나님의 입김으로도 말려 버리실 수 있다.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을 창조주 하나님이심을 선포한다.

27-31 이사야는 이스라엘에게 왜 하나님께 불평 불만을 토로하느냐고 묻는다. 주님은 영원하신 하나님,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피곤치 않으시며 지칠줄 모르시고 그 지혜가 무궁하신 분이라고 선언한다. 피곤한 사람에게 힘을 주시고 기운을 잃은 사람에게 기력을 주시는 분이시라고 말한다. 젊은이도 피곤하고 지치고, 장정들도 맥없이 비틀거려도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새힘을 얻는다.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은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 오르듯 올라갈 것이며,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라고 전한다.

//어제는 임마누엘이 복음이요 영생이라고 적용했다. 오늘은 우리와 함께 계시는 (임마누엘) 하나님이 어떤분인지 소개한다. 한마디로 차원이 다른 분이시다. 창조주와 피조물의 차이다. 창조주 하나님은 사람의 손으로 만들어진 우상이 아님을 강조한다. 창조주 하나님은 임마누엘로만 알 수 있다. 창조주 하나님이 피곤치 않으시고 지칠줄 모르시고 그 지혜가 무궁하시기 때문에, 오직 주님을 소망으로 삼는 사람만이, 곧 임마누엘을 누리는 사람만이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 오르듯 올라가며, 지치지 않으며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쓴 편지에서 “누가 주님의 마음을 알았습니까? 누가 그분을 가르치겠습니까?”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습니다.” 라고 쓴다. 그렇다. 그리스도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임마누엘이며,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삶으로만 임마누엘(복음)을 선포할 수 있다. 

이사야 40:1-11 읽기

1-2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에게 “너희는 위로하여라! 나의 백성을 위로하여라!” 하고 말씀하신다. 예루살렘 주민에게 (하나님의 백성에게) 죄에 대한 형벌 받고, 그것도 죄에 비하여 갑절의 벌을 주님께 받고 이제 복역 기간이 끝났다고 선언한다. 3-8 “광야에 주님께서 오실 길을 닦아라. 사막에 우리의 하나님께서 오실 큰 길을 곧게 내어라” 라는 소리가 들려온다. “모든 계곡은 메우고, 산과 언덕은 깎아 내리고, 거친 길을 평탄하게 하고, 험한 곳은 평지로 만들어라. 주님의 영광이 나타날 것이니,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함께 볼 것이다. 이것은 주님께서 친히 약속하신 것이다.” 한 소리는 “모든 육체는 풀이요, 그의 모든 아름다움은 들의 꽃과 같을 뿐이다. 주님께서 그 위에 입김을 부시면,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든다. 그렇다 이 백성은 풀에 지나지 않는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우리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서있다.” 하고 외치라고 명한다. 9-11 좋은 소식을 전하는 시온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는 예루살렘에게 높은 산으로 올라가서 목소리를 힘껏 높여 자신있게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하고 자신있게 외치라고 명령한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오신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권세를 잡고 친히 다스릴 것이다. 만군의 주 하나님께서 백성에게 주실 상급을 가지고 오신다. 백성에게 주실 보상을 가지고 오신다. 만군의 주께서 목자와 같이 그의 양 떼를 먹이시며, 어린 양들을 팔로 모으시고, 품에 안으시며, 젖을 먹이는 어미 양들을 조심스럽게 이끄신다.

//하나님의 백성이라도 죄에 대한 벌은 달게 받아야 한다. 그러나 죄값보다 갑절의 벌이라고 하여도 영원하지 않다. 벌 중의 벌은 하나님이 함께하지 않음, 곧 하나님의 부재다. 그래서 복역기간이 끝난 백성에게 하나님을 다시 모실 길을 닦으라고 명령한다. 야고보가 말한 안개 같은 인생을, 이사야는 마르고 시들 풀과 꽃 같은 인생이라고 노래한다. 인생은 하나님의 약속, 곧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만 영원하다는 것을 노래한다. ‘임마누엘’ 만 영원하다는 것이 좋은 소식, 곧 복음이라고 선포한다. 성도가 자신있게 선포해야 할 것은 오직 “여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계신다” 라는 임마누엘이다. 임마누엘은 하나님의 말씀에, 하나님의 다스리심에 순종하는 삶으로만 선포할 수 있다.한편으로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상급/보상도 임마누엘이다. 영원한 임마누엘이 곧 영생이다.

야고보서 5:13-20 읽기

13-18 고난을 받는 사람은 기도해야 한다. 즐거운 사람은 찬송해야 한다. 병든 사람은 교회 어른들을 불러서 기름 부음을 받고 기도를 받아야 한다. 믿음의 형제자매, 믿음의 어른들이 드리는 기도는 병든 사람을 낫게 할 것이다. 주님께서 병든 자를 일으켜 주실 것이며, 주님께서 병든 자가 혹 죄로 말미암아 병이 들었다면 용서하실 것이다. 그러므로 믿음의 형제자매들은 서로 죄를 고백하고 서로을 위해 기도해야 한다. 그러면 병도 낫고 죄도 용서 받는다. 의인, 곧 믿음의 형제자매들의 간절한 기도는 큰 효력을 낸다. 엘리야는 우리와 같은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비가 오지 않도록 간절히 기도하니 삼년 육개월 동안 비가 오지 않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다시 기도하니 하늘이 비를 내리고 땅은 열매를 맺었다.

19-20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야고보는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지 말라고,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을 돌아서게 하라고 당부한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은 그 죄인의 영혼을 죽음에서 구하는 사람이다. 죄인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는 사람이야 말로 많은 사람의 죄를 덮어주는 사람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많은 죄를 덮어주신 것처럼.  

//야고보는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여러가지 시험을 당하거든 온전히 기쁘게 여기라고 편지를 시작했다. 믿음의 시련은 성도로 하나님께 기도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성령의 도움의 받아야 한다. 야고보는 편지를 마무리 하면서 다시 한번 고난을 받는 사람은 기도하고, 믿음의 시련을 인내로 견뎌낸 자들은 기쁨의 찬송을 부르라고 명령한다. 마무리에는 외부의 시험(핍박)이 아니라 개인적인 시험(병)이 들었을 때 믿음의 가족들의 기도 도움을 받으라고 명령한다. 나의 기도는 나의 욕심을 따르기 쉽기 때문이다. 믿음의 형제자매들을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기도할 수 있어야 한다. 내 뜻을 내려놓고 하나님의 뜻대로 기도해야 한다.

//믿음의 가족들은 병든 믿음의 형제자매를 위해서만이 아니라 진리를 떠나 그릇된 길을 가는 사람들을 위해서도 해야 한다. 기도는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지만, 야고보는 기도역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하는 행위로 드러난다고 편지를 마무리 한다. 죄인들을 그릇된 길에서 돌아서게 하고, 죄인들 마져도 사랑하게 한다. 베드로는 그의 첫 편지에서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라고 명령한다. 야고보의 가르침도 다르지 않다. 기도하는 삶은 서로 사랑하는 것으로 드러나야 한다.

야고보서 5:7-12. 읽기

그러므로 (내일을 염려하여 재물을 쌓아두려는 탐심이라는 인생의 불순물을 제거하기 위해서, 오늘 하나님의 뜻대로 일을 하면서 살아야 하므로) 믿음 안에서 형제자매는 주님 오실 때까지 참고 견뎌야 한다. 농부가 소출을 기다리며 오래 참듯이 인내해야 한다. 야고보는 성도에게 인내하라고 명령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가 가까우니, 두 마음을 품지말고 마음에 주님을 품으라고 명령한다. 주님께서 오실 때에 심판을 받지 않기 위해서는 서로 원망하지 말아야 한다. 심판하실 분께서 이미 문 앞에 서 계신다고 생각하며 살라고 명령한다. 주님의 이름으로 예언한 예언자들을 지금 당하고 있는 고난과 인내을 견디는 본본기로 삼으라고 명령한다. 야고보는 욥의 예를 들면서 참고 견딘 사람이 복이 있다고 말한다. 주님께서는 고난과 인내의 성도를 가여워 하시고 불쌍히 여기신다. 

야고보는 맹세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마치 내일 일을 아는 것처럼 교만하게) 하나님의 이름으로 맹세하지 말라고 말한다. (오늘 겸손하게) 순종해야 할 말씀에 순종하라고 가르친다. 그래야 (불확실한 내일은 알지 못해도) 순종해야 (확실한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않을 것이다.

//말씀에 순종하는 삶, 두 마음을 품지 않고 마음에 주님을 품은 삶,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지 않는 삶. 이런 삶을 위해 믿음의 형제자매들에게 서로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원망이 아니라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복종하는 삶이야 말로 성도의 마음 문을 두드리시는 우리 주님의 바람이다. 쉽지 않기에 주님께서 오실 때까지, 주님의 마음을 품고 참고 기다리라고 명령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