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는데도 불구하고 앗시리아 산헤립이 유다로 쳐들어 왔다. 산헤립은 유다쯤은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8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예루살렘까지 쳐들어 올 것을 알고 대비했다.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우선 성 밖의 물줄기를 메워 앗시리아가 진군해 오더라도 물을 얻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무너진 성벽도 다시 쌓고 망대도 높였고, 성벽 밖으로 또 한 겹의 성벽을 쌓아 다윗 성을 견고한 요새로 만들고 창과 방패로 많이 만들었다. 군대를 정비하고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굳세고 담대하라. 앗시리아 왕이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라. 우리와 함게 계시는 분은 앗시리아 왕과 함께 있는 자보다 더 크시다. 앗시리아 왕은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계신다.] 백성은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9-15앗시리아 산헤립은 라기스를 치고 있으면서 부하를 예루살렘에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앗시리아 산헤립이 말한다. 예루살렘은 포위되었다. 너희는 무엇을 믿고 버티느냐? 히스기야가 너희의 하나님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져 줄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너희를 굶어 죽게하고 목 말라 죽게 하는 일에 불과하다. 산당을 다 없애 버리고 오직 하나의 제단에서만 경배하고 분향하라고 한 것이 히스기야가 아니냐? 나 산헤립과 나의 선왕들이 어떻게 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여러나라의 신들이 과연 그들의 땅을 앗시리아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내 선왕들이 전멸시키지 않았느냐? 누가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아라. 히스기야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아라. 히스기야를 믿지도 말아라. 어떤 백성, 어떤 나라의 신도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없었는데, 하물며 너희의 하나님이랴?]

16-19 산헤립의 부하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히스기야에게 비방하는 말을 퍼부었다. 산헤립이 직접 편지를 써서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했다. 산헤립의 부하들은 유다백성들이 알아 듣도록 유다 말로 크게 소리질러 백성을 공포에 몰아넣고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도 마치 사람이 손으로 만든 목석 우상을 대하듯 거침없이 말했다.

20-23 히스기야는 모스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와 함께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를 보내셔서 앗시리아 진영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장군들을 다 죽여버리셨다. 앗시리아 왕은 망신만 당하고 앗시리아로 철수했다. 산헤립이 자기 신전에 들어갔을 때 친 자식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시리아의 손에서 극적으로 구해주셨다. 주님께서 사방의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여 주셨다. 주변 여러나라들이 예루살렘에 예물을 바쳤다. 그때부터 히스기야는 여러나라에서 존경을 받았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계신다.” 역대 왕들이 이것을 잊어버렸을 때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고 난 뒤에 앗시리아 산헤립 왕의 침곰을 받은 사건이다.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긴다고 만사형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평안할 때에 하나님은 주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절망가운데 하나님 대신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성도에게는 성도를 도우시고 성도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있다. 사방의 적들로부터 보호받고 존경받는 것은 임마누엘의 결과다. 세상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모르고) 떠들어도 성도는 하나님을 모르면 (잊어버리면) 안된다.

역대하 31:1-21 읽기

1 두주에 걸친 무교절을 마친 이스라엘 사람들은 각각 유다의 여러 성읍으로 돌아 다니며 석상들을 산산히 부수고 아세라 목상은 찍어버렸다. 유다와 베냐민과 에브라임과 므낫세 온 땅에서 산당과 제단을 하나도 남기지 않고 없앤 다음에야 각자의 고향으로 돌아갔다.

2 히스기야는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을 가문에 따라 다시 조직하여 임무를 맡겼다.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은 번제를 드리는 일, 화목제를 드리는 일, 성전 예배에 참석하는 일, 성전에서 찬양과 감사의 노래를 부르는 일 등등의 임무를 담당했다.

3-7 히스기야 왕은 자기의 가축 떼 가운데서 아침과 저녁 번제에 쓸 짐승, 안식일, 초하루, 기타 절기의 번제에 쓸 짐승을 율번의 규정대로 바치게 했다. 히스기야는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이 율법을 준수하는 일에만 전념할 수 있도록 예루살렘에 사는 백성에게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에게 내야할 십일조를 가져오도록 명령했다.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유다의 여러 성읍에 사는 이스라엘과 유다 자손도 십일조를 가져와 하나님께 거룩하게 구별하여 드렸다. 이렇게 바친 예물을 정리하는데, 셋째 달부터 일곱째 달까지 걸렸다.

8-10 히스기야와 대신들은 그 많은 예물을 보고 주님을 찬양하고 백성을 칭찬했다. 히스기야 왕이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에게 예물에 대하여 묻자, 아사랴 대제사장이 백성이 성전에 예물을 드리기 시작하면서 제사장들과 레위사람들은 먹을 것을 넉넉하게 공급받고도 남은 것이 이렇게 많은 것이 다 주님께서 주님의 백성에게 복을 베푸셨기 때문이라고 대답했다.

11-19 히스기야는 성전 안에 방을 마련해서 예물과 십일조와 거룩한 물건을 정확하게 보관하도록 명령했다. 히스기야는 대제사장 아사랴와 함께, 레위 사람 고나야를 책임자로, 고나야의 아우 시므이를 부책임자로, 그리고 함께 일할 열명을 임명했다. 또 성전 동쪽문을 지키는 고레에게 예물을 접수하고 제사장들에게 나누어 주는 일을 맡겼다. 고레에게 여섯 동역자를 붙여주어서 제사장들이 사는 성읍으로 다니면서 동료 레위 사람들에게도 임무에 따라 공정하게 먹을 몫을 나눠주도록 했다. (제사장 가문은?) 세살 이상의 모든 남자를 임무에 따라서, 스무살 이상의 일반 레위인들에게도 임무에 따라서 몫을 나눠주었다. 또 족보에 기록된 자녀와 과부에 딸린 자녀들에게도 몫을 나눠주어 제사장과 레위 사람들에게 맡겨진 임무를 수행할 준비에 차질이 없도록 하였다. 아론 자손에게 할당된 성읍과 목장에 사는 사람까지 제사장과 레위사람으로 등록된 남자들에게 몫을 나눠 주었다.

20-21 히스기야는 유다 전역에서 하나님 보시기에 선하고 정직하고 진실하게 일을 처리했다. 성전관리, 율법준수, 예배 등등 하는 일마다 최선을 다했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형통했다.

?? 등이 너무 가렵다. 효자손이 필요하다. 묵상노트는 하루 건너 뛰어야겠다.

역대하 30:13-27 읽기

13-14 둘째 달에 드디어 백성들이 무교절로 예루살렘에 모였다. 모인 백성이 심히 많아 큰 무리를 이루었다. 무교절에 모인 백성은 이방제사를 드리던 제단과 분향단을 모두 뜯어내어 기드론 냇가에 버렸다.

15-17 둘째 달 열나흗 날에 사람들이 유월절 양을 잡았다. 성결예식을 마치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사람들은 성결 예식을 마친 후에, 번제물을 성전으로 가져왔다. 모두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대로 규례를 따라서 진행되었다. 회중 가운데서도 많은 사람이 성결 예식을 치르지 못했기 때문에 레위 사람들이 유월절 양으로 그런 사람들을 위해 성결 예식을 행하였다.

18-20 그러나 에브라임, 므낫세, 잇사갈, 스블론에서 온 많은 사람들은, 규례를 어기고 성결예식을 하지 않고 유월절 양을 먹었다. 히스기야는 규례를 어기고 유월절 양을 먹은 사람들을 선하신 주님이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비록 성소의 성결예식대로 깨끗하게 하지 못했지만, 그들이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께 정성것 예배를 드렸으니 용서해 달라고 기도했다.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를 들으시고 백성의 아픈 마음을 고쳐주셨다.

21-27 예루살렘에 모인 이스라엘 자손은 크게 기뻐하며 이레동안 무교절을 지켰다. 이레 동안 레위사람들과 제사장들은 날마다 노래로 악기로 하나님을 찬양했다. 히스기야는 모든 레위사람들이 주님을 능숙하게 섬기는 것을 보고 그들을 격려했다. 이렇게 이레동안 하나님을 찬송하며 제사를 드린 후 온 회중은 다시 이레동안 절기를 지키기로 결정하고 이레동안 절기를 즐겁게 지켰다. 히스기야 왕은 회중에게 수송아지 천마리와 양 칠천마리를, 대신들은 수송아지 천마리와 양 만마리를 회중에게 주었다. 많은 제사장들이 성결 예식을 치르고 직무를 보았다. 유다 온 회중과 제사장들과 레위 사람들과 이스라엘 각지에서 온 모든 회중, 외국인, 나그네가 다 함께 즐거워하였다. 솔로몬 때부터 이때까지 이런 일이 없었다. 예루살렘 장안이 온통 기쁨으로 가득찼다. 레위인 제사장들이 일어나 백성을 축복했고, 하나님께서는 제사장들의 축복과 기도를 하나님께서 계신, 거룩한 하늘에서 들어주셨다.

// 규례를 지킨 자의 배려. 오랫동안 지켜지지 않았던 유월절과 무교절을 하나님의 사람 모세의 율법에 기록된 대로 진행되는 것은 쉬운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성결예식을 마치지 못한 제사장들은 성결예식을 먼저 해야 했고 백성들도 성결예식을 먼저해야 했다. 제사장들은 성결예식을 마치고 직무에 차례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멀리서 예루살렘에 온 사람들은 성결예식을 미쳐 하지 못하고 유월절 양을 먹어야 했다. 히스기야는 어쩔 수 없이 규례를 어긴 사람들을 사죄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했고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의 도를 들어주셨다.
// 있는 자의 배려. 이레동안 무교절을 지킨 온 회중은 이레동안 절기를 연장하기로 했다. 속속들이 성결예식을 마친 제사장들이 직무에 뛰어들어 부족한 제사장은 확보되었지만, 일반 백성들은 바칠 제물을 구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에 히스기야가 왕가 속한 수송아지와 양을 제공했다. 대신들도 왕을 따라 자신들의 수송아지와 양을 제공했다.
// 먼저된 자의 배려. 율법의 가르침대로, 무교절은 유다 온 회중만이 아니라, 이스라엘에서 온 모든 회중뿐만 아니라, 외국인과 나그네가 다 함께 즐거워 했다.

>> 법과 원칙이 마음을 다하여 정성껏 예배드리는 것을 방해할 수 없다. 가난이 봉헌의 즐거움을 빼앗아서도 안된다. 민족이나 인종의 다름도 교회의 문턱이 되어서는 안된다.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다르다고 차별받는 나라가 아니라, 모두가 함께 먹고 마시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역대하 30:1-12 읽기

1-3 성전을 성결케 하고 성전예배를 회복시킨 히스기야는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예루살렘에 있는 성전에서 주님을 기리며 유월절을 지키도록 초청하였다. 히스기야는 대신들과 예루살렘 온 회중과 의논하여 둘째 달에 유월절을 지키기로 한다. 유월절을 한달 미룬 것은 성결 예식을 치른 제사장이 부족했고 백성들도 정해진 첫째 달까지 예루살렘에 모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4-9 히스기야와 온 회중은 유월절을 한달 미루는 것을 좋게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일로) 여겼다. 히스기야는 유다지역만 아니라 이스라엘 전역에 예루살렘으로 와서 하나님 앞에서 유월절을 지키라고 명령을 선포했다. 이스라엘은 참으로 오랫동안 율법에 기록된 절차대로 유월절을 지키지 못하고 있었다. 파발꾼들은 히스기야의 명을 따라 온 이스라엘과 유다에 두루 다니며 다음과 같이 선포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을 돌보신 하나님께 돌아오라. 그러면 하나님께서도 남아 있는 백성들, 곧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벗어난 당신들에게로 돌아오실 것이다. 범죄한 조상이나 동포들을 닮지 말아라. 범죄한 자들을 하나님께서 멸망하도록 버려두신 것을 여러분은 직접 보았다. 목이 곧은 조상과 같이 고집부리지 말고 주께로 돌아오라.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하신 성전으로 들어가 하나님을 섬겨라. 그래야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향한 진노를 거두실 것이다. 주님께로 돌아오면, 동포들을 포로로 잡아간 자들이 자비를 베풀어 동포들을 이땅으로 돌려보낼 것이다. 하나님은 은혜로우시고 자비로우신 분이시다. 하나님께로 돌아오기만 하면, 하나님은 여러분을 외면하지 않으실 것이다.]

10-12 파발꾼들은 에브라임과 므낫세 지방의 각 성읍을 두루다니며, 멀리 스블론에까지, 히스기야가 보낸 편지를 알렸다. 그러나 사람들는 파발꾼들을 비웃고 조롱했다. 그래도 아셀과 므낫세와 스블론 사람들 가운데서 몇몇은 겸손하게 순종하여 예루살렘으로 왔다. 하나님은 유다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히스기야의 조서에 따르도록 감동시키셨다.

//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히스기야가 선포한 유월절 메세지는 분명하다. 범죄한 조상이나 동포들을 닮지 말고 은혜롭고 자비로우신 하나님께로 돌아오면, 하나님께서 진노를 거두시고, 회복시켜 주시고, 외면하시지 않으신다는 것이다. 히스기야 유월절에서 놀라운 것은 남유다에 국한된 메세지가 아니라 이미 앗시리아에게 망해버린 북이스라엘 동포들을 포함시켰다는 것이다. 물론 패망한 북이스라엘에서는 아셀과 므낫세와 스블론 자손 중 적은 수만 겸손한 마음으로 순조하여 예루살렘에 왔지만 말이다. 그래도 하나님은 유다 사람들은 한 마음으로 유월절에 참여하도록 감동시켜 주셨다.
// 율법에 기록된 절차대로 유월절을 지키고 안지키고가 이스라엘의 운명을 결정짓지는 않는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에게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기회가 되는 것은 분명하다. 절기로 지켜야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돌아오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곧 성탄절이다. 성탄절도 이미 절기로만 남아있는 듯 하다. 세상 사람들은 대부분 동정녀 탄생과 아기 예수 이야기를 비웃고 조롱할지라도, 겸손하게 아기 예수께 돌아오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하나님께서 성도들이 한마음으로 성탄의 의미를 선포하고 이웃들을 초청하도록 감동시켜 주시길…

역대하 29:20-36 읽기

20-24 (성전과 성전 기구들을 깨끗하게 하고 봉헌했다는 레위사람들의 보고를 받은) 히스기야 왕은 다음날 아침 일찍 대신들을 불러모아 성전으로 올라갔다. 히스기야 왕은 왕가의 죄를 속죄가기 위해 아론의 혈통을 이어받은 제사장들에게 명령하여 속죄제를 드리게 하였다. 제사장들은 어명을 받아 (율법이 정한 규정에 따라) 온 이스라엘을 속하는 속죄제를 드렸다.

25-30 히스기야는 하나님께서 다윗 왕에게 지시하신 대로,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성전에서 각종 악기로 연주하고 제사장들은 나팔을 불어 번제의 시작을 알리고, 온 회중이 함께 예배를 드리도록 했다. 번제가 마칠 때까지 찬양과 나팔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제사를 마치고 왕과 온 회중이 다 엎드려 경배했다. 그리고 히스기야 왕은 레위 사람들로 하여금 다윗과 아삽과 선견자가 지은 시로 주님을 찬송하게 했다. 그들은 즐거운 마음으로 찬송하고 경배했다.

31-36 히스기야는 몸을 깨끗하게 한 제사장들이 주님께 구별되었다고 선언하고 백성들에게 각종 제물과 감사제물을 성전으로 가지고 오라고 선포했다. 온 회중이 제물과 감사제물을 드렸고, 자원하는 마음으로 번제물도 가져왔다. 회중이 가져온 번제물이 너무 많은데, 번제물을 잡아 제물을 준비하는 제사장의 수가 너무 모자랐다. 그래서 성결예식을 마친 제사장이 보강될 때까지 제사장들의 친족인 레위 사람들이 제물을 준비하는 일을 거들었다. (사관은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들보다 더 성실하게 성결을 지켰다고 평가한다.) 제사장들은 번제물뿐만 아니라 화목제물도 도맡아 바쳐야했다. 이렇게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는 일이 다시 시작되었다. 이 모든 일이 갑작스럽게 진행되었지만 하나님이 백성을 도우셔서 잘 진행되었고 히스기야와 온 백성은 기뻐하였다.

>> 성결케 된 성전에서 히스기야 왕은 제사장들로 하여금 먼저 속죄의 제사를 드리게 했다. 하나님의 성전은 장소보다 예배자가 성결케 되는 것이 중요함을 알았다. 하나님과의 화목은 속죄에서 시작하기 때문이다. 히스기야는 하나님 앞에 속죄의 제사로 나가는 것이 곧 찬양과 경배의 시작임을 알았을까? 번제의 시작부터 마칠 때까지 찬양과 나팔소리가 끊이지 않도록 명했다. 사관은 번제물을 준비해야 할 성결케 된 제사장이 적어 레위 사람들이 일을 거들었다고 기록하면서,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들보다 더 성실하게 성결을 지켰다고 평가한다. 우선 제사장 수가 부족했던 이유는 아하스의 배교에 참여했던 제사장들을 배제했기 때문이거나, 직무에 참여하려면 제사장들은 더 특별한 정결의식을 거쳐야 했기 때문일 것이다. 그에 반하여 일반 레위 사람들은 숫적으로도 많았고 일상의 거룩함만 유지하면 언제든지 성전에서 제사를 돕는 직무에 참여할 수 있었을 것이다. 레위 사람들이 제사장들보다 더 성실하게 성결을 지켰다는 사관의 평가를, 아하스 때, 배교의 시간에 제사장들은 (어쩔 수 없이) 이방제사에 동원되었지만, 레위 사람들은 거룩함을 지킬 수 있었다고 개인적으로 이해한다.
>> 성전이 성결케 되고, 속죄제와 찬양과 경배와 화목제로 예배자들도 성결케 된 결과는 기쁨이었다. 부와 재물과 영화가 아니라 예배의 기쁨이었다. 하나님께 예배드리는 기쁨이 성도의 거룩한 삶의 기초가 된다. 만약 예배드리는 기쁨이 없다면 일상의 삶이 주께 거룩하게 구별되이 드려지는 지 살펴야 한다. 일상에서 성실하게 성결을 지키는 것이 예배의 첫걸음이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