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후서 5:11-21 읽기

11-15 그러므로, 곧 누구나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서 각자가 행한대로 판결을 받기에, 곧 바울 일행이 주님이 두려운 분이심을 알기에 독자들을 설득한다.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환히 아신다고 말한다. 마찬가지로 고리도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도 자신들이 어떤 사람들인지 환히 드러나길 바란다. 그렇다고 바울 일행이 (스스로 의롭다는 것을) 자랑하려는 것은 아니라고 말한다. 오히려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바울 일행을 자랑스러워 해야하고, 자화자찬 하는 사람들에게 주안에서 자랑하라고 대답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께 대하여는 미쳤지만 (성령에 취했지만)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는 온전하다고 (제정신이라고) 말한다.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의 사랑에 취했다고 한다. 성령이 주시는 확신으로 한 사람 (예수가)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셨고, 예수의 죽음으로 모든 사람이 죽은 셈이라고 말한다. 그리스도께서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으신 것은, 살아 있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가르침을 받는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 아니라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아가도록 하려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16-21 바울 일행은 더이상 죽은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알려고 하지 않는 다고 말한다. 이전에는 비록 육신의 잣대로 (썪어질 육신을 가진 사람으로?) 그리스도를 알았지만 이제는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피조물이 (썪지 아니할 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옛 것은 (썪어질 육신은) 지나갔고 새것이 되었다고 말한다. 이것이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가 (요1:13) 누리는 권세다. 하나님으로부터 난 자는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과 화해하고, 또 다른 사람들도 하나님과 화해하도록 하는 직분을 받은 자들이다. 그래서 성도들은 그리스도의 사절(일꾼)이다. 이와 같이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일꾼으로 고린도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권면한다. 하나님과 자신들 사이에 그리스도께서 중보하듯,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를 대리하여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하나님과 화해하라고 간청한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모르시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우리 대신 우리의 죄를 담당하게 하셨다.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만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된다.

고린도후서 5:1-10 읽기

1-5 바울은 보이지 않는 것, 믿음으로 바라보는 것이 하늘에 있는 영원한 집이라고 말한다. 세상에 있는 집이 무너지더라도 하나님께서 지은신 집이 있다고 말한다. 바울은 하늘로부터 오는 집을 덧입기를 갈망하면 이 장막집에서 (세상에서) 탄식하고 있다고 한다. (탄식의 이유를 구체적으로 밝히지는 않는다.) 바울은 장막집을 벗을지라도 벗은 몸이 되지 않을 것이라고 한다. 장막집에서 무거운 짐에 눌려 탄식하고 있다고 다시한번 말한다. 그렇다고 장막을 벗어버리기를 바라는 것은 아니고 하늘로부터 오는 집을 장막집 위에 덧입기를 바란다고 말한다. 죽을 육체가 생명에게 삼켜지게 하려고 한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죽을 육체가 장막집이요 생명이 하늘로부터 오는 집, 거룩한 성임을 알 수 있다. 바울은 이것을 알려주시고 이루어주시는 분이 성령님이요, 이 성령님을 성도들에게 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고 선언한다.

6-10 성령 안에서 확신에 찬 바울은 (성도라면) 언제나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비록 육체의 몸을 입고 살고 있는 동안에는 주님에게서 떠나 살고 있지만, 믿음으로 살아가기 때문에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보는 것으로 (곧 믿음없이) 살아가지 않기에 마음이 든든하다고 말한다. 물론 바울은 몸을 떠나서 (육체의 몸을 벗어버리고) 주님과 함께 살기를 바란다. 바울은 따라서 육신에 머물러 있든지 육신을 벗어 버리든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최우선이라고 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주님과 함께 하는 것이라고 적용하는 것이다. 성도들도 다른 모든 사람과 마찬가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야 한다. 각 사람은 선한 일이든 악한 일이든, 몸으로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아야 한다고 (분명히) 말한다.

>> 시쳇말로 ‘존버’하는 바울. 바울이 존버하는 근거를 소망이요 믿음이라고 말한다. 차라리 죽어버리는 것이 아니라 육신의 장막위에 하늘로부터 오는 장막을 덧입기를 원한다. 곧 (환난과 핍박 중에도) 하나님나라 백성으로 살기를 원한다. 성도라 해도 이땅에서는 주님에게서 떠나 사는 존재들이다. (부활하신 주님은 하늘보좌 우편에 계신다.) 그렇다고 죽어버린다고 주님과 함께 살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는 것이 (죽든지 살든지) 주님과 함께 사는 길이라고 가르친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주님을 기쁘게 해드리는 선한 일을 하며 사느냐, 자신을 기쁘게 하는 악한일을 하며 사느냐의 문제라고 단정한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은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서게 될 것이고, 모든 사람은 자신이 행한 모든 일에 따라 마땅한 보응을 받기 때문이다. 심판의 주 되시는 그리스도를 기쁘게 해드리는 사람이 되라고 하신다. 믿음으로 순종하라고 하신다. 육신을 입고 살지만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로 옷입고 살라고 하신다. 믿음의 삶이 곧 임마누엘의 삶이다.

고린도후서 4:1-18 읽기

1-2 (그러므로, 곧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이니)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의를 베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으니 낙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오히려 하나님의 자비를 힘입어서 하나님의 새로운 일꾼이 되었기 때문에 부끄러운 일들을 하지 않고, 간교하게 행하지도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왜곡하지도 않았다. 대신 진리를환히 드러내고 하나님 앞에서와 모든 사람들에게 의를 베푸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었음을 떳떳하게 내세운다고 말한다.

3-4 (만의 하나) 바울 일행이 전하는 복음이 드러나지 않는다면 그것은 멸망하는 자들에게 가려 있다고 말한다. 멸망하는 자들은 믿지 않는 마음이 어두운 자들이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형상이신 그리스도의 영광을 선포하는 복음의 빛을 보지 못하게 하신 자들이라고 말한다. (요 1:5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 요3:19 심판을 받았다고 하는 것은, 빛이 세상에 들어왔지만, 사람들이 자기들의 행위가 악하므로, 빛보다 어둠을 더 좋아하였다는 것을 뜻한다.)

5-6 바울 일행은 자기 자신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선포한다고 말한다. 예수를 주인으로 선포하는 자신들은 예수로 말미암아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의 종이라고 말한다. 창조주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의 마음속에 빛을 비추셔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을 바울 일행에게 (고리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도) 주셨다고 말한다. (요1:14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그것은 아버지께서 주신, 외아들의 영광이었다. 그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였다.)

7-9 바울 일행은 이 보물을 (곧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지식의 빛, 다시말해 요1:9 참 빛이 있었다. 그 빛이 세상에 와서 모든 사람을 비추고 있다.) 질그릇에 간직하고 있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자신들은 질그릇이요 자신들 속에 간직한 보물은 참 빛으로 세상에 오신 예수 그리스도라고 고백하는 것이다. 자신들이 예수그리스도라는 보물을 간직할 수 있는 능력을 받은 것은 하나님께서 나는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에게서 나는 것이 아니라고 분명히 한다(요 1:12-13). 자신들은 이 능력으로 말미암아 사면초가의 상황에서도 움츠러들지 않으며 답답한 일을 당해도 낙심하지 않으며, (심지어) 박해를 당해도 버림받지 않으며 꺼꾸러뜨림을 당해도 망하지 않는다고 (담대히) 고백한다.

10-12 바울 일행은 언제나 예수의 죽임 당하심을 자신들의 몸에 짊어지고 다닌다고 편지한다. 예수의 죽으심이 질그릇과 같은 자신들이 간직한 보물이라고 말하는 것이다. 예수의 죽으심을 간직하는 이유는 예수의 생명 또한 간직하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살아있는 이유를 바로 예수의 죽으심을 본받기 위해서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그리스도의 복음과 함께 그리스도의 남은고난에 참여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예수의 생명이 자신들의 죽을 육신에 간직할 수 있다고 말한다. 자신들이 죽고 자신들 속에 그리스도께서 사실 때, 생명이 복음을 듣는 사람들에게서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작용한다고 말한다.

13-15 바울은 “나는 믿었다. 그러므로 나는 말하였다.”라는 성경을 인용한다. 바울 일행은 믿음으로, 믿음의 영을 가지고, 곧 성령에 순종하여 말한다고 선언한다. 주 예수를 살리신 창조주 하나님이 예수와 함께 자신들도 살리시고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과 함께 세워 주신다는 것을 알고 있다고 말한다. 이 모든 일, 곧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바울 일행과 고린도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모든 일은 다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을 위한 것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하나님의 은혜가 점점 더 많은 사람들에게 전파되고,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 감사하는 마음이 넘치게 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한다.

16-18 바울 일행은 이렇게 하나님의 자비를 받아서 의를 베푸는 하나님의 일꾼으로 세움을 받았기 때문에 낙심하지 않는다. 자신들의 겉사람은 낡아가나, 자신들의 속사람은 날로 새로워진다고 고백한다. (겉사람은 외면이요, 곧 육체요, 속사람은 내면, 곧 영이라고 해석해 왔는데, 오늘 아침에는 겉사람은 질그릇된 ‘나’요 속사람은 내속에 있는 보물 곧 ‘예수’라고 하신다.)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겪는 고난을 일시적이고 가볍다고 말한다. 왜냐하면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영원하고 크나큰 영광이 주어질 것임을 소망하기 때문이다. 바울 일행은 보이는 것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본다고 말한다. (믿음이다.) 보이는 것은 잠깐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은 영원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 의를 베푸는 하나님의 일꾼은 낙심하지 않고 떳떳하게 일해야 한다. 빛이 어둠에 비치되 어둠이 깨닫지 못한다. 복음을 전하는 자는 자신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종이 되었듯이 전함을 받는 사람들에게도 종이 되어야 한다. 성도들은 예수라는 보물을 담은 질그릇이다. 질그릇이 예수를 간직할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는다. 의를 베푸는 일은 바로 질그릇은 죽고 질그릇 속에 살아 있는 예수를 드러내는 일이다. 복음을 전하는 자와 전함을 받은 자는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그래서 겉사람인 나는 쇠하여야 하고 속사람인 예수 그리스도는 흥해야 한다. 영생을 소망하는 성도의 자세다.

고린도후서 3:1-18 읽기

1-3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일꾼답게,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하나님 앞에서, 또 그리스도 안에서 말하는 것이 자신들을 치켜 올리는 말을 늘어 놓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바울 일행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추천장을 가지고 간 것도 아니고, 또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로부터 추천장을 받아서 떠난 것도 아니라고 밝힌다. 손으로 써준 추천장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 자체가 바울 일행이 자랑할 추천장이라고 말한다. 종이에 써 준 추천장이 아니라 바울 일행의 마음에 적혀 있고, 바울 일행을 만나는 사람들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곧 바울 일행의 추천장인 줄 알고 읽는다고 한다. (왜냐하면)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은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이기 때문이다. (다시말해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을 바울 일행의 사역에 필요한 추천장, 소개장으로 사용하시기 때문이다.) 바울 일행은 그리스도께서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자신들의 추천장이 되도록 봉사했다고 말한다. 거듭 이 추천장은 만년필로 쓴 것이 아니라 살아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썼으며, 돌판에 쓴 것이 아니라 가슴판에 쓴 것이라고 말한다.

 4-6 바울 일행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야 말로 자신들의 추천장/소개장이요, 자신들이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추천장이 되도록 봉사했다는 것을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확신을 가지고 말할 수 있다고 한다. 물론 바울 일행은 자신들이 봉사할 자격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자신들이 봉사할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자격을 주셨다고 겸손히 고백한다. 하나님께서 바울 일행에게 새 언약의 일꾼이 되는 자격을 주셨다고 말한다. 이 언약도 문자로 쓰여진 것이 아니라 영으로 된 것이라고 말한다. 문자로 쓰여진 율법은 죽음을 가져오지만 성령은 생명을 준다고 가르친다.

7-11  바울은 모세가 돌판에 문자로 새긴 율법을 선포할 때도 비록 곧 사라질 것이었지만 모세 얼굴에 광채가 났음을 상기시킨다. 이 죽음을 이르게 하는 율법을 선포한 모세에게도 이런 영광이 나타났는데, 영의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치지 않겠느냐고 고린도 교회와 성도들에게 반문한다. 율법을 선포하는 직분에도 영광이 있었으면, 의를 베푸는 직분은 더욱더 영광이 넘친다고 선언한다. 바울은 지금까지 빛나던 것(율법)의 영광은 이제 훨씬 더 빛나는 영광에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영광으로) 그 빛을 잃게 되었다고 말한다. 사라져 버릴 율법이 주어질 때도 영광이 있었다면 길이 남을 (영생을) 약속하는 성령의 법의 영광은 무궁할 것이라고 말한다.

12-18 바울 일행은 이런 소망, 곧 의를 베푸는 직분, 영생의 소망을 가지고 있기에 대담하게 처신한다고 말한다. 모세는 얼굴의 광채가 사라져 가는 것을 보지 못하도록 얼굴을 가렸지만, 바울 일행은 가리지 않는다고 말한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생각은 완고해져서 구약성경을 읽을 때, 모세가 광채를 가렸듯이 구약성경의 참 뜻을 이해하지 못한다. 구약성경의 참뜻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리스도 안에서 구약성경의 참 뜻을 가리는 것을 제거해야 한다. 사람이 주님께로 돌아서야 구약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다. 주님의 영이시다. 주님의 영이 (성령이) 계신 곳에 자유가 있다. 주님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게 된다. 말씀의 참 뜻을 이해할 수 있게 되었다는 뜻이다. 그럴 때 성도들은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한다.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된다. 이것은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  성도들은 서로간에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는데 추천장이 되어야 한다. 또한 성도들은 다른 지체가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봉사해야 한다.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서로간에 추천장이 되고 서로간에 하나님의 일꾼이 되도록 세워주는 일을 하기 위해서는 완고한 생각을 버려야 한다. 내 맘대로 말씀을 해석하고 내 뜻을 고집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 마음 속에서 역사하시는 성령의 뜻에 순복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지 못하게 하는 완고한 마음을 제거해야 한다. 완고한 마음이야 말로 벗어버려야 할 너울이다. 바울은 자화자찬하지 않는다. 바울의 권면처럼 하나님의 일꾼으로 사는 것은, 나의 영광이 아니라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아야 가능한 일이다. 성도는 결국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해야 할 존재다. 그리스도의 영광에 참여하는 존재다. 영이신 주님께서, 곧 보혜사 성령께서 하시는 일이다.

고린도후서 1:23-2:17 읽기

23 바울은 고린도에 가지 않은 것은 자신이 신실하지 못해서가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을 아끼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예수께서는 도무지 맹세하지 말지니 하늘로도 땅으로도 예루살렘으로도 네 머리로도 하지 말라고 하셨다.) 그런데 바울은 자기 목숨을 걸고, 심지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고린도에 재차 방문하는 일정이 바뀐 것은 하나님께서 바울의 마음에 성령을 주셨기 때문이라고 풀어나간다. 다시말해 맹세한 것을 주께 지키는 것보다 (내 고집보다) 성령께서 깨닫게 해 주시는 것에 아멘으로 순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하는 것 같다.

24바울 일행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의 믿음을 지배하려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다시말해 가르치고 감독하는 자로서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을 방문하기 보다는 동역자의 입장에서 방문해서 함께 기쁨을 누리고자 한다고 전한다.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이미 믿음에 서있는 자라고 선언한다.

2:1-4 이미 믿음에 서있는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가서 동역의 기쁨을 나누기보다 가르치고 감독하고 책망하는 아픔을 주고 싶지 않아서 고린도로 가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말한다. 바울은 자신을 기쁘게 해 줄 사람이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인데, 어떻게 자신이 가서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을 마음 아프게 할 수 있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바울은 방문하기보다 이렇게 편지를 쓰는 것이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을 마음아프게 하지 않고 서로에게 기쁨이 된다는 확신이 있다고 말한다.

4-8바울은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의 상황을 괴로워하며 걱정하는 마음으로 심지어 많은 눈물의 기도로 편지를(전서를) 썼다고 말한다. 물론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려고 한것이 아니라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을 향한 바울의 극진한 사랑 때문이라고 한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의 소식에  괴로워 하면서 아픈 마음과 눈물의 기도로 편지를 썼지만, (바울 자신이 신실하지 못하다는 비난은)  바울의 마음만 아프게 하는 것이 아니라, 편지를 받는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 당사자들 모두의 마음을 아프게 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이렇게 바울과 고린도 교회 성도들을 아프게 한 사람들은 이미 충분한 벌을 받았다고 한다. (누가 어떤 벌을 받았는지?) 그러니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은 바울과 고린도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에게 아픔을 준 ‘그’ 사람을 용서해 주고 위로해 주어야 한다고 편지한다. 그 사람이 지나친 슬픔에 짓눌리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말한다. (지나친 슬픔은, 아마도 구원에서 떨어질 것이라는 근심이 아닐까?) 바울은 오히려 그 사람을 사랑하라고 권한다.

9-11 바울은 고린도전서를 보낸 이유를 고린도 교회와 아가야 성도들이 모든 일에 순종하는 지 시험하여 알아보려고 썼다고 말한다. 바울은 그리스도 앞에서 순종해야 할 가장 큰 제목은 용서라고 한다. 서로 용서해야 사탄에게 속아넘어가지 않는다고 한다. 서로 용서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 사탄의 속셈이라는 것을 우리 모두 알지 않느냐고 말한다.

12-13 바울은 드로아로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러 갔고 주님께서 바울에게 거기서도 일할 수 있는 길을 열어주었으나 형제 디도를 만나지 못해서, 디로를 만나기 위해 드로아 사람들과 작별하고 마케도니아로 갔다.

14-17 바울은 바울 일행의 일정이 그리스도의 개선 행렬에 참여하는 일이라고 말한다. 자신들이 어디를 가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향기를 풍기게 하시는 하나님께 감사한다. 바울 일행은 구원을 얻는 사람들에게는 그리스도의 향기요 멸망당하는 사람들에게는 죽음의 냄새가 된다. 그리스도의 향기는 곧 생명의 향기, 영생의 (그리스도를 아는) 향기가 된다. 바울 일행은 하나님의 말씀을 팔아서 먹고 살아가는 장사꾼이 아니라고 말한다. 장사꾼이 아니라 일꾼이라고 말한다. 그것도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사람들이라고 말한다. 바울은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안에서 자신들이 진실한 마음으로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라고 말한다.

>> 내 고집보다 (내 서원보다) 하나님의 뜻에 (성령의 인도에) 아멘하고 순종하는 것이 중요하다. 가르치려고 드는 것보다 함께 세워져 가는 기쁨을 누리라고 하신다. 책망보다 용서가 필요하다. 하나님 앞과 그리스도 안에서 진실할 마음으로 일하는 하나님의 일꾼이 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