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야 32:1-20 읽기

[“주하나님의 불은 시온에 있고 주하나님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1- 한 왕이 공의로 통치하고 지도자들은 정의로 다스리는 곳이 시온이요 예루살렘이다. 한 왕, 곧 시온과 예루살렘을 공의로 통치하는 왕은 광풍을 막아주고 폭우를 가려주고 마른 땅에 냇물이며 곤비한 땅에 큰 바위 그늘 같다고 하신다.  백성은 한눈팔지 않고 이 왕을 바라볼 것이요, 귀를 기울여 왕의 말씀을 청종할 것이라고 하신다. 성급한 자들도 진리를 깨달아 더이상 혀가 꼬이지 않고 분명하게 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어리석고 우둔한 자들을 존귀한 자라고 부르거나 치켜세우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왜냐하면

6- 어리석은 자들이 어리석은 것을 말하며, 불의을 품어 간사를 행하며, 패역한 말로 주하나님을 거스리며, 주린 자의 속을 비게하며, 목마른 자에게서 마실 것을 없어지게 하며, 악한 계획을 세워 거짓말로 가련한 자를 멸하며, 바르게 말하는 가난한 자의 말을 무시하기 때문이다. (전씨에게 딱 알맞은 말이다. 나라고 별수 있겠냐마는) 그 러 나  존귀한 자는 존귀한 일을 계획하고 존귀한 일을 한다.

9- 현실에 안주하는 여인들(백성)에게 말씀하신다. 일년정도 지나면 당황스러운 일이 생길 것이라고 하신다. 추수할 일이 이르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니 현실에 안주하지 말고 두려워하며 하나님앞에 겸손히 나오라고 하신다. 많은 수확을 기대하던 포도원에서 수확하는 일이 없어지면 그때가서 가슴치며 후회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와같이 희락이 넘치던 주하나님 백성의 땅에 가시와 찔레가 뒤덮힐 것이라고 하신다. 궁전이 폐하고 성읍이 적막해져 들짐승과 양 떼들만 거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15- 마침내 위에서부터 영을 우리에게 부어주셔야만 황무해졌던 성읍이 다시 아름다운 밭이 되며 아름다움 밭이 였던 곳을 숲으로 여기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그때에, 정의가 광야에 거할 때 공의가 아름다운 밭에 거하게 된다고 하신다. 공의의 열매는 화평이요 공의의 결과는 영원한 평안과 안전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백성이 살곳이다. 화평한 집과 안전한 거처와 조용히 쉬는 곳. 하나님나라다. 세상 숲과 성읍은 파괴된다. 정의와 공의가 흐르는 아름다운 밭에서 농사짓고 목축하는 백성에게 복이 있다고 하신다.

>>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법과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며 사느냐, 아니면 시온과 예루살렘에서 하나님의 불과 하나님의 풀무에 심판을 받을 것이냐를 두려움으로 결정하라고 하신다. 현실에 안주하지 말라고 하신다. 길어야 일년 남짓의 만족에 희희낙낙하며 하나님을 모르는 어리석은 자처럼 살지말고  정의롭게 살라고 하신다. 공의로운 나라를 만들라고 하신다. 먹는 것과 마시는 것에 얽매이지 말고 의와 희락과 화평의 하나님나라의 백성이 되라고 하신다.

이사야 31:1-9 읽기

[하나님께서는 시온과 예루살렘에 거주하는 백성이 복이 있다고 말씀하시는데]

1-3 도움을 구하러 애굽으로 내려가는 것은 화를 자초하는 일이다. 애굽의 병마를 의지하며 병거의 많음과 마병의 강함을 의지하고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하나님을 앙모하지 않고 주하나님께 도움을 구하지 않는 백성에게 주하나님께서는 재앙을 내리실 것이라고 하신다. 불순종의 백성에게 재양을 내리는 것이 주하나님의 지혜라고 하신다. 악행하는 자들과 행악을 돕는 자들을 치시는 것이 변하지 않는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신다. 애굽은 도움을 청할 신이 아니라고 하신다. 애굽의 말들도 유한한 육체라고 하신다. 주하나님께서 손을 펴시면 도움을 요청한 자(유다)도 돕는 자(애굽)도 다 함께 멸망할 것이라고 하신다.

4-7 시온산과 그 언덕(예루살렘)을 위해 싸우실 분은 지도자들이 (목자들이) 아니라 주하나님이라고 하신다. 오직 주하나님만이 새가 날개치며 그 새끼를 보호함 같이 예루살렘을 보호하시고 호위하시고 건지시고 건너오셔서 구원하실 것이다. 그러니 이스라엘로 하여금 주하나님께 거역했었더라도 돌이켜 돌아오라고 명하신다. 각 사람이 의지하던 은금 우상을 던져버리고 주하나님께 돌아오라고 하신다.

8-9 하나님의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앗수르도 칼에 엎드러질 것이라고 하신다. 사람의 칼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심판에 의해서라고 하신다. 앗수르도 결국은 하나님의 심판(경영)에 따라  칼앞에서 도망하고 포로가 되어 노예생활을 하게 될 것이다. 앗수르가 의지하던 것은 두려움으로 바뀌고 , 앗수르의 지도자들은 하나님의 깃발에 놀랄 것이다.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주하나님의 불은 시온에 있고 주하나님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느니라.”

>> 하나님의 법은 시온에서 하나님의 말씀은 예루살렘에서 나온다고 했는데 오늘 마지막 구절은 하나님의 불은 시온에 있고 하나님의 풀무는 예루살렘에 있다고 정리한다. 시온과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법,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되고 실천되는 곳이다. 한편으로 시온과 예루살렘이라고 하여도 불순종과 죄악에 대해서는 불이 심판이 이루어지는 곳이다. 교회라고 다르지 않을 것이다. 피난처로 돌이켜 돌아왔으면 우상을 던져버리고 순종해야 한다.

이사야 30:18-33 읽기

18-19 그 러 나 (백성 입장에서는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으니 잠잠하고 신뢰해야 한다.) 주하나님편에서는 기다리신다. 은혜를 베풀려고 일어나시려고 엉덩이를 들썩이신다. 긍휼을 베풀려고 하신다. 복있는 사람은 정의의 하나님을 기다리는 자라고 하신다. 시온에 (하나님 법이 선포되는 곳에) 거주하며 예루살렘에 (하나님 말씀이 실천되는 곳에) 거주하는 백성이 복이 있다. 통곡이 기도가 되고 주하나님은 백성의 기도를 들으시고 은혜를 베푸신다. 응답하신다.

20 -24 주께서 백성에거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주신다. 선지자들이 더 이상 숨지 않고 드러내고 평안이 아니라 환난과 고생을 가르치게 될 것이라고 하신다. 이들이 스승이 되어 가르치는 길이 우로나 좌로 치우치지 않은 바른 길이라고 하신다. 스승된 선지자들이 백성에게 사람이 조각한 우상은 부정한 것이니 던져버리라고 가르칠 것이라고 하신다. 농사도 목축도  (우상에게 빌어서가  아니라) 비를 주시는 하나님이 풍성하고 기름지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25-26 크게 살륙하는 날, 망대가 무너지는 때는 아마도 하나님께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을 무너뜨리시는 날이라고 이해하면 좋을 것 같다. 고산과 준령마다 (높아진 모든 것에도)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하수같이 (개울과 시냇물이 되어) 흐를 것이라고 하시는 듯.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모든 것은 무너뜨리시지만 그날에 주하나님께서 자기 백성의 상처는 싸매시고 고쳐주신다. 달빛이 햇빛처럼 빛나고 햇빛은 일곱배나 밝게 빛날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함을 뜻할 것이다.

27-33 (그러나 하나님을 대적하는 열방에게는) 주하나님께서 진노로 분노로 맹렬한 불로 오신다. 열방은(31절까지 읽으면 구체적으로 앗수르를 지칭한다.) 핑계치 못할 것이다. 한편으로 너희가 (유다백성은)  거룩한 절기, 아마도 유월절을 지키듯이 (구원의 하나님으로) 노래하며 피리불며 즐거워할 것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주하나님의 심판의 목소리에 앗수르는 낙담할 수밖에 없고, 주하나님의 회초리를 맞을 수밖에 없다. 주하나님께서 예정하신 몽둥이로 (바벨론으로) 앗수르를 치시고, 도벳 (무덤?)에서 불태우실 것이라고 하신다. 유다가 할 수 있는 일은 소고치며 수금을 타며 하나님의 경영을 찬송하는 것 밖에 없을 것이다.

>> 주께서 주시는 환난의 떡과 고생의 물을 마시는 것은 성도들에게 기본이다. 젊을 때 고생은 사서도 하라는 말과 마찬가지다. 주께서 주시는 환난과 고생은 피할 길이 아니라 바른 길이니 따라야 한다.

이사야 30:1-17 읽기

1-7주하나님께서 패역한 자식들, 곧 불순종의 백성에게 화가 있다고 선포하신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계교를 세우고, 하나님의 영에 순종하지 않고 죄에 죄를 더한다고 지적하신다. 하나님께 의지하고 하나님의 뜻을 묻는 대신 바로 왕에게, 곧 애굽의 그늘에 피하려 했다고 책망하신다. (그러나) 계획은 사람이 할지라도 일을 경영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이 (유다가) 의지하는 바로가 이스라엘의  수치가 되며, 애굽의 그늘에 피한 이스라엘이 수욕을 당할 것이라고 하신다. 사신을 서로 보내 동맹을 맺으나 그결과는 도움이 되거나 유익함이 아니라 수치와 수욕이라고 하신다. 네겝 짐승에 관한 경고라고 하신다. 사신들이 조공물을 실은 나귀와 낙타에 대한 경고하고 해야하나… 하여간 사신들이 조공물 나귀와 낙타에 싣고 사자떼와 독사와 불뱀이 나오는 광야를 지나 무익한 민족 (애굽)으로 갔지만 애굽의 도움은 헛되고 무익하다고 하신다. 애굽도 여리고성에서 가만히 앉아 구원을 바랐던 라합과 같은 처지라고 하신다.

8-14 주하나님께서 (이사야에게) 백성앞에서 하나님 말씀을 써서 (명문화해서) 후세에 영원히 있게 하라고 명하신다. 패역한 백성들이 언제 말을 뒤집을지 모른다고 하신다. 주하나님의 법을 듣기 싫어하는자식들이라고 하신다. 하나님 말씀대신 백성이 듣기 좋은 부드러운 말, 곧 거짓된 말을 해달라고 선지장에게 요구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선지자들에게 하나님의 바른 길을 버리고 첩경에서 돌이키고 아예 하나님을 떠나시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업신여기고 압박과 허망을 믿어, 손해되는 일과 불순종의 일을 의지한다고 책망하신다. 이 불순종의 죄악이 곧 무너질 담벼락 같다고 하신다. 결국 유다의 운명은 토기장이가 그릇을 깨뜨림 같다고 하신다. 산산조각이 나서 불씨나 물을 담을 수 있는 허드렛 조각도 남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15-17 주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너희가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힘을 얻을 것이거늘…” 그럼에도 백성은 이것을 원치 않는다고 지적한다. 오히려 도망하겠다고  빠른 짐승을 타고 피난 길을 떠나겠지만 더  빠른 대적에게 따라 잡힐 것이라고 하신다.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 이스라엘은 일당 천으로 대적을 물리쳤었는데, 불순종한 지금은 대적 한사람에 이스라엘 백성 천명이 도망갈 정도요, 대적이 다섯이면 이스라엘 전체가 다 도망할 정도로 역전되었다고 말씀하신다. 남은 자라곤 버려진 패전기와 같을 것이라고 하신다.

>> 여리고의 라합같이  잠잠히 신뢰해야 한다. 바둥댄다고 나아지는 것은 없다. 감히 말할 수 없었는데 한국교회는 돌이켜 조용히 있어야 구원을 얻을 것이요 잠잠하고 신뢰하여야 다시 힘을 얻을 것이다. 좀 더 극단적을 말하면 폭삭 망해야 구원을 받고 힘을 얻을 것이다.

이사야 29:15-24 읽기

[주하나님께서 기이하고 기이하고 기이한 일로 세상을 경영하시는데 지도자들은 말씀을 봉해버리고 백성들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떠났다. 하나님 대신 사람의 계명만 가르치고 배운다.]

15-16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자들은 자기의 계획을 주하나님께 깊이 숨길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들에게 화가 있다고 한다. 이들은 어둠가운데 행하는 자들이다. 누가 우리를 보랴, 누가 우리를 알랴고 심히 패역하게 행한다.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의 자리를 탐하는 자들이라고 하신다. 그러나

17-21 하나님만이 레바논의 숲을 기름진 밭으로, 기름진 밭을 숲으로 바꾸실 수 있는 창조주로 드러날 때까지 얼마 걸리지 않을 것이라고 하신다. (창조주 하나님은) 귀머거리로 듣게 하시고 맹인으로 보게 하실 것이다. 겸손한 (업압받고 비천하고 온순한) 자에게 주하나님으로 말미암은 기쁨을 주시고, 가난한 (궁핍한) 자로 하여금 거룩하신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하게 하신다. 그러나 의인을 억울하게 하던 강포한 자, 오만한 자, 죄악의 기회를 엿보던 자는 도망쳐 사라지거나 가지치기를 당해 끊어져 버린다.

22아브라함을 구속하신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부끄러움과 수치를 당하지 않게 하실 것이다. 이스라엘 자손들은 하나님이 행하시는 일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부르며 하나님을 경외할 것이다. 두마음을 품어 정함이 없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지혜를 구하라고 하신다. 원망하던 자들에게도 하나님의 교훈을 받으라고 하신다.

>> 한국 교회는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났다. 하나님의 경영대신 자기 계획을 밀어부친다. 피조물인 주제에 창조주의 자리를 탐한다. 전광훈이 같은 자들의 행색이 이렇다. 예루살렘이 망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고 부르짖었던 거짓 선지자와 다를게 없다. (물론 심판의 도구로 사용되었던 바벨론은 폭삭망하고 하나님의 백성이었던 자중에는 남은 자가 있다.) 교회도 마찬가지다. 남은 자만 (자의로 ‘남는 자’가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남은 자’만)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다.

음~~, 업압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한 자들이 하나님만으로 기뻐하고 즐거워 한다는 말씀을 새겨야 한다. 교회는 겸손해져야 한다. 업압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해져야 한다. 마음으로도 물질적으로도.

초대교회가 겸손했다. 1세기 로마교회가 겸손했다. 업압받고 비천하고 가난하고 궁핍했다. 지하에 숨어들어 예배했다. 한국교회는 지하에 숨어들어야 할 때다. 모이는 지 모르게 예배할 때다. 화려한 교회당은 비워두고 삶의 현장에서 세상은 교회가 예배드리는 지도 모르게 예배할 때다. 교회도 자기 상을 이미 받은 바리새인처럼 살아가면 어쩌란 말이냐. ㅠ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