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대하34:14-33 읽기

14-18 성전보수를 명받은 힐기야 제사장은 성전에서 궤에 보관된 돈을 꺼내다가, 모세가 전한 율법책을 발견하고 사반 서기관에게 주었다. 사관 서기관은 요시야 왕에게 나아가, 성전을 보수를 명받은대로 성전에 있는 돈으로 감독들과 건축하는 사람들에게 맡겼다고 성전 보수에 관해 먼저 보고하고나서, 힐기야 제사장이 율법책을 건네 주었다고 보고했다. 그리고 사반은 그 율법책을 요시야 앞에서 큰 소리로 읽었다.

19-21 요시야는 율법의 말씀을 다 듣고 애통해 하며 자기 옷을 찢었다. 요시야는 힐기야와 사반의 아들 아히감과 미가의 아들 압돈과 사반 서기관과 왕의 시종 아사야에게, 자신과 백성을 대신하여 주님께 나아가, 율법 두루마리의 말씀에 관한 주님의 뜻을 물어보라고 명령했다. 요시야는 조상이 주님의 말씀을 지키지 않고, 율법에 기록된 모든 것을 지키고 따르지 않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진노를 내리셨다고 적용했다.

22-28 힐기야와 왕의 명령을 받은 사람들은 훌다 예언자를 찾았다. 훌다는 살룸의 아내였다. 살룸은 히스라의 손자요 독핫의 아들로서 궁중 예복을 관리하는 사람이었다. 훌다는 예루살렘 제 이 구역에 살고 있었다. 훌다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나 주가 이렇게 말한다. 요시야 왕 앞에서 낭독한 율법 책에 기록된 모든 저주대로 내가 이곳과 여기에 사는 주민에게 재앙을 내리겠다. 그들이 나를 버리고 다른 신들에게 분향하고, 그들의 행위가 나를 노엽게 하였기 때문이다. 내가 분노를 쏟을 것이니 아무도 끄지 못할 것이다.] 훌다는 이어서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주었다. [요시야 왕이 율법책을 낭독하는 것을 듣고, 마음에 느낀 바 있어서, 하나님 앞, 곧 내 앞에서 겸손해져서, 네가 옷을 찢으며 통곡하였으므로, 내가 네 기도를 들어주었다. 나 주가 말한다. 내가 내리기로 한 모든 재앙을, 네가 죽을 때까지는 내리지 않겠다. 네가 너를 네 조상에게 보낼 때에는 평안히 무덤에 안장되게 하겠다.] 그들이 돌아와서 요시야에게 훌다의 말을 전했다.

29-33 요시야 왕이 유다와 예루살렘의 모든 장로를 불러 모아 성전에 올라갔다. 유다의 모든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과 제사장들, 레위 사람들 남녀노소 모두 다 성전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왕은 성전에서 발견된 언약책에 적힌 모든 말씀을 회중에게 크게 읽어주도록 했다. 그리고 요시야는 주님을 따를 것과, 마음과 목숨을 다 바쳐 그의 계명과 법도와 규례를 지킬 것과, 율법 책에 적힌 언약의 말씀을 지킬 것을 맹세했다. 주님 앞에서 언약을 맺었다. 요시야는 모인 회중들에게도 이 언약에 참여하도록 했고, 예루살렘 주민이 하나님이 세우신 언약을 따랐다. 이와같이 요시야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속한 모든 땅에서 혐오스러운 것들을 다 없애 버리고, 이스라엘의 모든 사람으로 하나님을 섬기게 하였다. 요시야가 살아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주 조상의)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

// 요시야는 율법책에 기록된 말씀을 듣고 바르게 반응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뜻을 찾아 기도했다. 제사장, 서기관, 행정관이 요시야의 기도에 답을 줄 수 없었다. 그래서 예언자 훌다를 찾아야 했다. 훌다는 요시야의 기도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전해주었다. 하나님의 진노는 요시야가 죽은 뒤로 미뤄졌다. 훌다의 대답에서 요시야의 기도는 회개, 뉘우침의 기도였음을 알 수 있다. 하나님은 히스기야 때도, 히스기야가 마음의 교만함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회개하자 진노를미루셨다. (32:26) 회개, 뉘우침은 진노를 뒤로 미룬다. 아니 용서를 받는다. 후대는 후대의 잘못으로 하나님의 진노를 자초할 뿐이다.

// 여호야다가 죽은 후 요아스, 스가랴가 죽은 후 웃시야는 하나님의 뜻을 찾지 않았다. 하나님의 사람의 말을 듣지 않는 왕은 미래가 없음을 교훈한다. 본문은 요시야가 살아 있는 동안에는 백성이 하나님께 복종하고 떠나지 않았다고 마무리 한다. 하나님을 찾고 섬기는 왕이 있는 나라는 소망이 있음을 보여준다. 건강한 나라에는 건강한 지도자가 있고 건강한 지도자 뒤에는 하나님의 사람이 있다.

// 훌다. 여선지자. 사관은 그저 남편 살룸만 어떤 사람인지 설명한다. 살룸은 조선시대로 따지면 상의원 관리였다. 요시야 왕이 어렸을 때부터, 살룸은 훌다와 요시야 사이에 중계자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상상의 나래를 펴본다. 하나님은 한 남자의 아내도 예언자로 부르셔서 하나님의 열심을 이뤄가신다.

역대하 34:1-13 읽기

1-2 요시야는 여덟살에 왕이 되어 예루살렘에서 31년동안 다스렸다. 사관은 요시야를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고, 그의 조상 다윗의 길을 본받아서, 오른쪽으로나 왼쪽으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았다.” 라고 평가한다.

3-7 요시야는 통치 8년에, 열여섯의 매우 어린 나이였지만,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통치 12년 되는 해에, 산당과 아세라 목상과 우상들을 없애,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다. 요시야는 바알 신들우상들을 빻아 가루로 만들어 바알 제사장들의 무덤에 (바알 제사장들도 죽였다는 뜻이리라) 뿌렸다. 제사장들의 뼈를 제단 위에 불살라서 유다와 예루살렘을 깨끗하게 하였다. 요시야는 유다와 예루살렘에서뿐만 아니라 므낫세와 에브라임과 시므온과 저 멀리 납달리 지역에 이르기까지, 직접가서 깨끗하게 하였다. 이렇게 온 이스라엘 땅에 있는 분향단도 모두 부수어 버린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8-13 요시야는 나라와 성전을 깨끗하게 한 뒤, 통치 18년에 아살랴의 아들 사반과 마아세야 성주, 요아하스의 아들 요아 서기관을 보내서 하나님의 성전을 수리하게 했다. 이 세사람은 대제사장 힐기야에게 가서 므낫세, 에브라임, 북이스라엘의 나머지 지역에 사는 백성, 유다와 베냐민 모든 배성, 예루살렘 주민들이 성전세로 바친 돈을 성전 수리를 위해 건네 주었다. 이돈은 성전 수리를 맡은 이들에게 맡겨졌고, 성전 수리을 맡은 관리들은 성전 수리을 맡은 건축하는 자들에게 주어서 성전수리를 했다. 건축하는 이들은 목수, 석수들을 고용해 유다의 왕들이 폐허로 만들어 버린 성전 건물을 손질하게 했다. 일을 맡은 사람들은 정직하게 일을 했다. 일의 감독은 네명의 레위 사람들이었다. (특이하게도 네명의 감독 모두 음악에 익숙한 사람들이라고 한다.) 레위 사람들은 각종 공사 책임자들을 감독하였고, 어떤 레위 사람은 공사 기록원과 사무원과 문지기의 일을 맡았다.

// 요시야는 열여섯에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했다. 사관은 열여섯을 아직도 매우 어린나이라고 말한다. 요시아는 부왕 아몬이 열넷에 낳은 아들이었다. 그렇게 따지면 열여섯이면 생리적인 나이로는 이미 어른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굳이 ‘아직도 매우 어린 나이’라고 수식한 이유는 무엇일까? 어린 요시야를 가르친 사람이 누군지 궁금하다. 사관은 히스기야 왕 이후로는, 므낫세부터 어머니가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 히스기야의 경우 외조부 스가랴로부터 하나님에 대해 배웠다고 유추할 수 있는데… 하여간 요시야는 전도자의 가르침처럼 젊을 때에 창조주를 기억했다. 인생의 희노애락을 맛보기 전에, 인생의 헛됨을 노래하기 전에 하나님의 자비와 인자하심을 노래하게 되었다. 마치 어린 목동 다윗이 하나님을 묵상했듯이. 그렇게 대장부가 된 (스무살이 된) 요시야는 백성에게도 참되게 사는 길이 하나님을 두려워하며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키는 것이라는 것을 가르치려고 했다. 우선은 외적 성결이었다. 유다뿐만 아니라 패망한 북이스라엘 전역에 이르기까지 산당과 목석 우상을 제거했다. 그리고 스물 여섯의 (성숙한) 요시야는 외적 성결에 이어, 내적 성결, 곧 성전 보수를 명령했다.
// 주님께서 보시기에 옳은 일을 하였고 다윗의 길을 본받아서 우로나 좌로 곁길로 벗어나지 않았다는 요시야에 대한 사관의 평가로부터, 요시야는 하나님이야 말로 모든 은밀한 행위를 선악간에 심판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찾아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요사야가 하나님을 찾았다에서 찾았다는 히브리 동사는 것은 따른다, 의지한다, 묻는다, 예배한다의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요시야가 하나님이 누군지 어떤 분이신지 알아갔다는 뜻이리라. “하나님을 두려워하여라. 그분이 주신 계명을 지켜라. 이것이 바로 사람이 해야 할 의무다.” 다윗의 하나님을 찾기 시작한 어린 요시야가 깨달은 것도, 바로 이 전도자의 가르침일 것이다.

역대하 33:1-25 읽기

1-2 므낫세는 열두살에 왕이 되어, 55년간 예루살렘에서 다스렸다. 사관은 므낫세 어머니가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 므낫세에 대한 사관의 한줄평가는 ‘그는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다’ 이다. 악한 일이란 이방 사람의 역겨운 풍속을 따르는 것이었다.

3-9 므낫세는 선왕 히스기야가 헐어버린 산당을 오히려 세우고, 바알 제산을 쌓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별을 숭배하여 섬겼다. 심지어 성전안에도 이방 신을 섬기는 제단을 만들었다. 성전 안팎 두 뜰에 하늘의 별을 섬기는 제단들을 만들어 세우고, 아들들을 힌놈의 아골 골짜기에서 번제물로 살라 바쳤고, 점쟁이를 불러 점을 치게하고, 마법사를 시켜 마법을 부리게 하고, 악령과 귀신들을 불려내어 묻곤했다. 이 모든 것이 이방 사람의 역겨운 풍속으로 주님 보시기에 악한 일이요, 주님의 진노를 사는 일이었다. 므낫세는 자기 손으로 목상을 만들어 성전안에 갖다 놓았다. 성전이 어떤 곳인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이름을 두시겠다고 한 곳이 아닌가? 하나님께서 명하신 말, 곧 모세의 율법과 규례를 지켜 그대로 하면, 하나님께서 주신 이 땅에서 결코 쫓아내지 않겠다고 하셨는데, 므낫세는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을 꾀어서 악행을 저지르게 하고 말았다. 본래 가나안 땅에 살라다 이스라엘 자손이 보는 앞에서 주님께 멸망당한 여러 민족이 저지른 악보다 더욱 흉악한 악을 행했다.

10-13 주님께서 므낫세와 그의 백성에게 말씀하셨으나 그들은 듣지 않았다. 하나님께서 앗시리아를 일으켜 유다를 치게하셨다. 앗시리아 왕의 군대 지휘관들은 므낫세를 사로잡아 바빌론으로 끌고갔다. 므낫세는 고통 속에 주 하나님께 간구했다. 므낫세는 하나님 앞에서 아주 겸손해 졌다. 므낫세가 겸손히 주님께 기도하니, 주님께서 므낫세의 기도를 받으시고 므낫세의 간구를 들어주셔서, 므낫세를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다. 이렇게 므낫세는 주님만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깨달았다.

14-17 예루살렘으로 복귀한 므낫세는 유다를 요새화 하였다. 성전 안에 있는 이방 신상들과 목상을 없애버렸다. 이교의 제단들을 모두 성밖으로 버렸다. 주님의 제단을 다시 고치고 화목제와 감사제를 드렸다. 므낫세는 유다 모든 백성에게 주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섬기라는 명령을 내렸다. 산당에서 제사드리는 백성이 여전히 있었지만 제사는 오직 하나님께만 드리는 것이었다.

18-20 므낫세의 나머지 일들은 이스라엘 왕 역대지략과 호새의 역사책에 기록되어 있다. 므낫세가 죽고 왕자 아몬이 므낫세를 이어 왕이 되었다.

21-25 아몬은 스물 두살에 왕이되어 예루살렘에서 두해를 다스렸다. (사관은 므낫세부터 어머니가 누군지 밝히지 않는다.) 아몬에 대한 한줄평가는 ‘그는 아버지 므낫세처럼, 주님께서 보시기에 악한 일을 하였고’ 이다. 아몬은 므낫세가 손수 만든 우상에게 제사를 드리며 섬겼다. 므낫세는 나중에 스스로 뉘우치고 주님 앞에서 겸손해졌으나 아몬은 겸손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더 죄를 지었다. 결국 신하들이 반역을 일으켜 왕을 살해했다. 그러나 유다 백성들은 아몬에게 반역한 신하들을 죽이고 아몬의 아들 요시야를 왕으로 삼았다.

// 뉘우침! 회개! 므낫세와 아몬을 구분하는 잣대다. 므낫세는 나중에 스스로 뉘우치고 주님 앞에서 겸손해졌으나, 아몬은 겸손할 줄도 모르고, 오히려 더 죄를 지었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이 회개다. 하나님께서는 돌아와서 하나님을 찾는 자를 결코 버리시지 않는다. 사관은 한줄평가로 주님보시기에 악한 일을 행하였다고 므낫세를 평가하지만 뉘우친 므낫세는 조상과 함께 잠들 수 있었다. 그러나 더 죄를짓다 반역에 살해된 아몬은 어떻게 묻혔는지 기록조차 하지 않는다.
// 므낫세의 회개로 오직 하나님께만 제사드리게 된 그 땅의 백성들이 아몬 왕에게 반역한 신하들을 다 죽였다. 므낫세는 적어도 47년 정도 악한 일을 행했고, 회개하고 백성에게도 하나님을 섬기라고 명령한 것은 8년이 채 안될 것인데, 아몬은 왕이 되어 범죄한 지 2년만에 살해당한다. 주님은 므낫세가 회개하기까지 47년을 기다리셨는데, 사람들 중에는 2년을 못참은 반역자들이 있었다. 시인은 시편에서 하나님은 자비롭고 은혜로우시며 노하기를 더디하시며, 사랑이 그지없으시다고 노래한다. 하여간 하나님은 다윗의 왕위를 사람의 손으로 끊으시는 것을 그냥 두시지 않으시는 것 같다. 사밧여호사밧으로 하여금 요시아를 죽이신 것이 하나님의 심판으로 기록되지만, 이들도 아마샤에 의해 처형되고 말았다. 아몬에게 반역한 자들도 마찬가지다. 하나님 손에 맡겨야 한다. 나의 열정이 하나님의 열심을 앞서서는 안된다고 교훈하신다.

역대하 32:24-33 읽기

24-26 얄궂다.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겨, 사방 여러나라로부터 존경을 받게된 히스기야가 병들어 거의 죽게 되었다. 히스기야는 주님께 기도했고 주님께서는 히스기야의 기도에 히스기야가 회복될 것이라는 징조로 응답하셨다. 히스기야는 교만해져서 받은 바 은혜에 감사하지 않았다. 그로말미암아 하나님의 진노가 히스기야와 유다 백성과 예루살렘 주민에게 내려졌다. 히스기야가 교만하였던 자신을 뉘우치고, 예루살렘 주민들도 함께 뉘우치자, 주님께서는 히스기야가 살아있는 동안 벌하지 않으셨다.

27-29 히스기야는 부유하게 되었고, 천하의 영화를 누리게 되었다. 그는 귀중품 보관소를 만들어 은과 금과 보석과 향품과 방패와 온갖 귀중품을 보관했다. 창고를 지어 곡식과 농산물을, 짐승우리를 지어 온갖 짐승을, 양 우리를 만들어 양 떼를 먹였다. 더 많은 성읍을 세우고 양떼와 소떼를 치도록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에게 재산을 많이 주셨다.

30-33 히스기야는 기혼의 심 물줄기를 다윗 성 안으로 곧바로 끌어들였다. 히스기야가 하는 일마다 다 잘 되었다. 심지어 바빌로니아 사절단이 와서 히스기야가 이룬 기적을 묻고 갔다. 그러나 하나님은 히스기야의 인품을 시험하시려고 히스기야가 마음대로 하게 두셨다. 히스기야의 나머지 행적과 주님께 헌신한 일은 이사야의 묵시록과 열왕기에 기록되었다. 히스기야가 죽으니, 유다와 예루살렘 온 백성이 그의 죽음을 해도하고, 존경하여 다윗 자손의 묘실 가운데서 제일 높은 곳에 장사했다. 히스기야의 아들 므낫세가 왕위를 이었다.


//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겼던 히스기야도 잠시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진노를 받았다. 교만을 뉘우쳐야 용서 받는다. 교만이란 하나님을 떠나는 일이다. 교만을 뉘우치는 것은 결국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것이다. 사관은 하나님과 함께 한 히스기야의 형통함을 강조한다. 형통함이 절정에 달했을 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 사절단으로 히스기야를 시험하셨다. 이번에는 마치 하나님께서 히스기야를 떠나신 것 처럼 사관은 기록하나, 결국은 히스기야가 하나님께 묻지 않고 마음대로 바벨론 사절단을 접대했다는 평가다. 사관은 히스기야가 병낫고 교만했을 때, 히스기야와 예루살렘이 받은 하나님의 진노도, 바벨론 사절단이 왔을 때, 히스기야가 하나님을 떠나 심중에 있는대로 행한 것의 결국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는다. 히스기야가 주님께 헌신한 것에 집중한다. 사관은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온 귀환자들에게 굳이 아픈 역사를 상기시킬 필요가 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했을 때의 형통을 거듭 강조한다. 임마누엘이 답이다. 물론 형통의 쓰나미는 하나님을 모른다, 하나님이 누구냐라고 교만하게 한다. 하나님 말고도 자랑할 것이 너무 많게 된다. 그래도 사관은 임마누엘을 강조하기 위해 주님께 헌신한 히스기야의 형통을 강조한다. 좋은게 좋은 모양새다. 그러나 핵심은 부유함과 천하의 영화를 누리는 것이 아니라 임마누엘임을 알자.

1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는데도 불구하고 앗시리아 산헤립이 유다로 쳐들어 왔다. 산헤립은 유다쯤은 쉽게 점령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2-8 히스기야는 산헤립이 예루살렘까지 쳐들어 올 것을 알고 대비했다. 많은 인원을 동원하여 우선 성 밖의 물줄기를 메워 앗시리아가 진군해 오더라도 물을 얻지 못하게 할 생각이었다. 무너진 성벽도 다시 쌓고 망대도 높였고, 성벽 밖으로 또 한 겹의 성벽을 쌓아 다윗 성을 견고한 요새로 만들고 창과 방패로 많이 만들었다. 군대를 정비하고 다음과 같이 격려했다. [굳세고 담대하라. 앗시리아 왕이나 군대를 보고 두려워하거나 놀라지 말아라. 우리와 함게 계시는 분은 앗시리아 왕과 함께 있는 자보다 더 크시다. 앗시리아 왕은 군대의 힘을 의지하지만,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우리의 하나님이 계신다.] 백성은 히스기야 왕의 말을 듣고 힘을 얻었다.

9-15앗시리아 산헤립은 라기스를 치고 있으면서 부하를 예루살렘에 보내 다음과 같이 말했다. [앗시리아 산헤립이 말한다. 예루살렘은 포위되었다. 너희는 무엇을 믿고 버티느냐? 히스기야가 너희의 하나님이 앗시리아 왕의 손에서 건져 줄 것이라고 하지만, 이것은 너희를 굶어 죽게하고 목 말라 죽게 하는 일에 불과하다. 산당을 다 없애 버리고 오직 하나의 제단에서만 경배하고 분향하라고 한 것이 히스기야가 아니냐? 나 산헤립과 나의 선왕들이 어떻게 했는지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여러나라의 신들이 과연 그들의 땅을 앗시리아의 손에서 건져낼 수 있었느냐? 내 선왕들이 전멸시키지 않았느냐? 누가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기에, 너희의 하나님이 너희를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있다고 생각하느냐? 히스기야에게 속지 말아라. 히스기야의 꾀임에 넘어가지 말아라. 히스기야를 믿지도 말아라. 어떤 백성, 어떤 나라의 신도 그 백성을 내 손에서 건져낼 수 없었는데, 하물며 너희의 하나님이랴?]

16-19 산헤립의 부하들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종 히스기야에게 비방하는 말을 퍼부었다. 산헤립이 직접 편지를 써서 하나님을 욕하고 비방했다. 산헤립의 부하들은 유다백성들이 알아 듣도록 유다 말로 크게 소리질러 백성을 공포에 몰아넣고 예루살렘을 점령하려고 했다. 그들은 하나님도 마치 사람이 손으로 만든 목석 우상을 대하듯 거침없이 말했다.

20-23 히스기야는 모스의 아들 예언자 이사야와 함께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했다. 하나님께서는 한 천사를 보내셔서 앗시리아 진영에 있는 모든 지휘관과 장군들을 다 죽여버리셨다. 앗시리아 왕은 망신만 당하고 앗시리아로 철수했다. 산헤립이 자기 신전에 들어갔을 때 친 자식들에 의해 죽임을 당했다. 이처럼 하나님께서 히스기야와 예루살렘 주민을 앗시리아의 손에서 극적으로 구해주셨다. 주님께서 사방의 적으로부터 그들을 보호하여 주셨다. 주변 여러나라들이 예루살렘에 예물을 바쳤다. 그때부터 히스기야는 여러나라에서 존경을 받았다.

// “그러나 우리에게는 우리를 도우시고 우리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주 우리의 하나님이 계신다.” 역대 왕들이 이것을 잊어버렸을 때 하나님의 버림을 받았다. 본문은 히스기야 왕이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기고 난 뒤에 앗시리아 산헤립 왕의 침곰을 받은 사건이다. 하나님을 성실하게 섬긴다고 만사형통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평안할 때에 하나님은 주기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시험하신다. 교만해서 하나님을 잊어버리거나 절망가운데 하나님 대신 지푸라기라도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된다. 성도에게는 성도를 도우시고 성도를 대신하여 싸우시는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가 있다. 사방의 적들로부터 보호받고 존경받는 것은 임마누엘의 결과다. 세상은 하나님을 잊어버리고 (모르고) 떠들어도 성도는 하나님을 모르면 (잊어버리면) 안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