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린도전서 10:14-11:1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들에게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명령했다. 어쩌면 오늘 본문은 넘어질까 조심하는 방법을 제시한다. 그런즉 내 사랑하는 자들아 우상 숭배하는 일을 피하라.

우상숭배를 피해야 하는 이유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몸과 피에 참여한 자들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의 몸된 교회의 성도이기 때문이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우상에게 제사하는 자들은 귀신에게 제사하는 것이지 하나님께 제사하는 것이 아니라고 한다. 하나님과 사귀는 것이 아니라 귀신과 교제하는 것이라고 단정한다. 바울은 하나님 식탁과 귀신의 식탁에 겸하여 참여할 수 없다고 지적한다. 주께서는 귀신과 사귀지 않으실뿐 아니라 우리가 귀신을 하나님의 식탁에 데려갈 수 없기 때문이다.

바울은 다시한번 모든 것이 가하나 모든 것이 유익하지도 덕을 세우지도 못한다고 반복해서 적용한다. 굳이 유익을 구해야 한다면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실 때 그 기준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느냐 아니냐로 판단하라고 명한다. 그런데 자세히 읽으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다는 것은 자기의 유익을 따라 결정되는 것이 아니고 다른 사람의 유익과 공동체의 덕을 세우는 것임을 알 수 있다. 자기의 유익을 위하는 것은 유대인들과 헬라인들과 하나님의 교회에 거치는 자가 되는 것이라고 적용한다. 그 어떤 공동체에도 유익이 되지 않는다는 뜻이다. 그래서 바울은 모든 일에 모든 사람을 기쁘게 하여 바울 자신의 유익을 구하지 않고 다른 많은 사람의 유익을 구해 그들로 구원을 받게한 것을 본받으라고 권한다. 바울은 자신의 행위가 그리스도를 본받은 것이라 말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자신을 본받아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권면한다.

>> “누구든지 자기의 유익을 구하지 말고 남의 유익을 구하라” 예수께서 이땅에서 본을 보여주신 삶이다. 십자가에서 죽기까지 아버지 하나님 뜻에 복종하신 그리스도의 마음이다. 바울은 이런 그리스도를 본받았다. 그리고 나에게 도전한다. 바울이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된 것 같이 나도 그리스도를 본받는 자가 되라고. 그리스도를 본받는 것이 우상숭배를 피하는 유일한 길이다.

고린도전서 9:24-10:13

바울은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여하는 성도의 삶을 육상경주에 비교한다. 오직 상을 받도록 달음질 하라고 명령한다. 바울은 오직 한 사람만 상을 받는다는 것을 강조하는 것이 아니다. 상을 받도록 달음질 하라고 교훈하는 것이다. 경기에 참여하기 위해서는 승리을 위해 절제해야 한다. 세상 경주에 참여하여 썩을 승리의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자들도 절제 해야 하는데 하물며 썩지 아니할 면류관을 얻고자 하는 성도라면 절제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절제를 참고 인내하는 것에 촛점을 맞추지 않는다. 절제란 한눈팔지 않는 것이다. 결승점을 바라본다. 푯대이신 주님을 바라본다. 또 바울은 싸울 때 허공을 치면 안된다고 말한다. 오히려 자신의 몸을 쳐 복종케 한다고 말한다. 다시말해 복음을 말로 이래라 저래라 하면서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바울 스스로가 복음의 말씀대로 살아냈다는 것을 뜻한다. 말로만 복음 전하면 전파한 후에 자신이 도리어 버림을 당할 수도 있기 때문에 스스로를 삼갔다고 한다.

바울은 출애굽 사건을 언급하면서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홍해를 건너고 신령한 음식 만나를 먹고 신령한 음료, 곧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셨으나, 곧 구원받았으나 하나님께서 악을 즐겨하는 그들을 기뻐하지 않으셨고, 결국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했다는 역사를 언급한다. 바울은 이 일을 본보기로 성도들은 악을 즐겨하지 말라고 교훈한다. 그들처럼 우상을 숭배하는 자가 되지 말라고 경고한다. 그들처럼 음행하는 자가 되지 말자고 경고한다. 그들처럼 하나님을 시험하는 자가 되지 말자고 다짐한다. 그들처럼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고 명령한다. 광야 사건을 본보기 삼아 말세를 살아갈 교훈을 얻으라고 편지한다. 바울은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 경고한다. 구원받은 성도라고 교만하지 말라고 하는 것이다. 성도라도 시험당할 수 있다. 그렇지만 미쁘신 하나님은 성도로 하여금 시험을 감당할 수 있게 하시고, 성도들이 시험을 피할 수 있도록 하신다.

>> 사도인 바울은 자신도 복음을 전파한 후에 버림을 받을 수 있기에 모든 일에 절제한다고 가르친다. 바울은 출애굽을 구원에 비유하며 세례를 받고 (홍해를 건너고) 성찬에 참여하는 (만나를 먹고 반석에서 나온 물을 마셔도) 성도라 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지 않으면 이땅에서 멸망할 수 밖에 없음을 강조한다. 사역자라로 절제가 없으면 믿음의 경주를 완주할 수 없고 구원받은 성도라도 하나님께 대적하면 멸망의 길을 가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사도라고 성도라고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고 경고한다. 누구나 넘어질 수 있다. 그러나 미쁘신 하나님께서 넘어진 나를 일으켜 주시고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도록 도우신다. 다만 내가 한눈팔지 않고 푯대이신 그리스도를 바라봐야 하고, 내가 교만하지 않고 오직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려고 순종해야 한다.

고린도전서 9:1-23

바울은 자신의 정체성을 자유인, 사도, 예수를 만난 사람, 주 안에서 일하는 사람이라고 밝힌다.  특별히 주안에서 고린도 성도들에게 행한 일에 대해서는 고린도 성도들이 아는 바가 아니냐고 반문한다. 고린도 성도들에게 행한 일을 통해 자신의 사도성도 입증된다고 밝힌다. 그럼에도 바울의 사도권은 의심받았다.

바울의 사도권이 의심받은 이유는 지극히 세상적이었다. 첫번째가 먹고 마시는 것이었다. (하나님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성령 안에서 의와 화평과 희락이라고 바울을 로마성도들에게 편지하지 않았던가?) 두번째는 결혼이었고 세번째는 100% 후원을 받지 못해 일을 해야 했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매매하는 것은 일상이다. 고린도 성도들은 일상에서의 축복과 거리가 먼 바울이었기에 사도권을 의심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바울은 일상의 복을 누리는 권리를 받지 못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게 하려고 이런 권리를 쓰지 않는 것이라고 받아친다. 주께서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고 명하셨다고 가르친다. 복음을 전하는 자들은 복음을 받은 사람들로부터 일용할 양식을 공급받는다고 가르친다. 그러나 바울은 복음을 받은 사람들에게 이것을 요구하지 않았다고 말한다. 복음을 전하는 것이 바울의 일용할 양식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이라고 한다. 바울은 복음 전도의 삶이 자신의 자의로 하는 것이 아니라 사명이라고 고백한다. 따라서 복음전도로 먹고마시는 것이 결코 자랑할 일이 아니라고 고백한다. 복음전도의 댓가는 복음으로 받아야 할 권리를(일상의 축복을) 자신을 위해 다 쓰지 않고 더 많은 사람에게 복음을 전해, 그들을 얻는 것이라고 밝힌다.

바울은 더 많은 사람을 얻기 위해 복음을 받는 사람 과 같이 되었다고 말한다. 유대인인들에게는 유대인과 같이,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는 율법아래 있는 자 같이, 율법 없는 자에게는 율법없는 자와 같이, 약한 자들에게는 약한 자와 같이… 바울은 여러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어 몇 사람이라도 (더) 구원하고자 원했다. 바울은 복음전도의 댓가를 위해 (복음을 전하기위해) 산 것이 아니라 복음이 (복음자체가) 되기 위해 살았다고 고백한다.

>> 바울은 단순히 자신의 사도권을 변호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사도권변호보다 하나님나라에 대해 가르친다.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물건을 사고 파는 일상 속에서, 곧 세상에서 상을 받고 축복을 받는 것이 하나님나라가 아니라고 가르치는 것이다. 더 많은 사람들을 구원하기 위해 일상의 삶을 살았다. 하늘의 시민권을 가진자로 높아진 삶을 살지 않았다. 복음을 위하여 복음에 참여했다. 열매를 맺기 위해 포도나무이신 예수께 붙은 가지가 되었다. 그리스도 예수의 남은 고난에 참여했다. 바울은 골로새 성도들에게 복음이 천하 만민에게 전파되도록 복음의 일꾼이 되어 받는 모든 괴로움을 그리스도의 남은 고난이라고 정의했다. 성도들도 이 일을 위해 부름을 받은 사람들이다.

>> 복음에 참여하라고 하신다. 나의 삶이 다른 사람들에게 복음이 되도록 살라고 하신다.

고린도전서 8:1-13

바울은 (교회공동체가) 음행을 피하기 위한 또 다른 적용으로 우상 제물에 관하여 교훈한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에 대한 지식이 있어도 지식은 교만하게 한다고 지적한다. 대신 사랑이 덕을 세운다고 교훈한다. 바울은 지식이 많다고 해도 마땅히 알아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 알 수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한다. 그러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하나님의 아신 바 된다고 교훈한다.

바울은 우상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가르친다. 따라서 우상의 제물을 먹고 마시는 일도 아무일도 아니라고 한다. 중요한 것은 유일하신 한분 하나님 밖에 없다고 강조한다. 하늘과 땅에 신이라고 불리는 자가 많이 있지만 모두 우상이라고 가르친다. 그러나 성도들에게는 한 하나님, 성부 하나님이 계시며, 성부 하나님이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성도들은 아버지 하나님을 위한 존재라고 한다. 성자 하나님, 곧 예수 그리스도도 바로 창조주 하나님이시고 성도들은 성자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존재한다고도 말한다.

바울은 모든 사람이 성부하나님과 성자하나님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우상을 섬긴다고 지적한다. 이런 우상을 섬기는 습관으로 우상의 제물을 먹고, 하나님을 아는 선한 양심이 약하여 지고 더러워졌다고 한다. 바울은 우상의 제물을 먹고 안먹고로 하나님앞에서 (믿음을) 내세울 수 있는 것이 아니라고 말한다. 우상의 제물을 먹는 자유가 믿음이 약한 자들을 실족하게 하는 것이 되지 않도록 조심하라고 가르친다. 그리스도께서 그 믿음이 약한 자들을 위해서도 죽으셨다고 말한다. 따라서 형제를 실족케 하지 말라고 경고한다. 형제를 실족케 하는 것은 곧 그리스도에게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한다. 바울 자신은 형제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필요하다면 영원히 (우상의 제물로 드려진)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약속한다.

>> 예수께서는 아버지 하나님을 알고 아버지가 보내신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 아는 것은 사귐이다. 오늘 바울은 창조주 삼위 하나님을 아는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가르친다. 왜냐하면 삼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형제들을 실족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삼위 하나님을 아는 지식은 형제들을 정죄하기 위해 주어진 것이 아니라 사랑하기 위해 필요한 것이다. 사랑이 없는 지식은 또 다른 분쟁을/분파를 낳는다. 앞에서 바울은 하나님의 성전인 교회공동체를 더럽히는 첫번째 이유로 분쟁/분파를 지적했었다. 창조주 하나님과의 온전한 사귐에 필요한 것은 지식이 아니라 사랑이다. 머리가 아니라 가슴이다. 말이 아니라 능력이다.

고린도전서 7:25-40

바울은 결혼/비혼에 관한 의견을 이어간다. 미혼자들에게 비혼으로 지내는 것이 좋다는 의견을 제시한다. 그렇다고 이미 혼인관계에 있다면 이혼하지 말라고 한다. 만약 이미 이혼을 했다면 아내를 새로 구하지도 말라고 한다. 결혼자체는 죄를 짓는 것이 아니지만 결혼으로 육신에 고난이 있을 것이라고 경고한다.

바울은 마지막 때를 살아가는 사람들은 결혼을 했어도 결혼관계에 얽매이지 말아야 한다고 가르친다. 마찬가지로 슬픈 일이나 기쁜 일에도 얽매이지 말고 소유에도 얽매이지 말라고 교훈한다. 세상에서의 소유는 지나갈 것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세상일에 얽매여 염려하지 말라고 한다. 결혼관계에 얽매이지 말라는 것은 부부관계의 의무를 무시하라는 것이 아니라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는 것보다 주를 기쁘시게 하는 것이 더 유익하기 때문이라고 교훈한다.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 것이 이치에 합당하고 흐트러짐 없이 주를 섬기는 것이라고 가르친다.

바울은 다시한번 획일된 적용을 하지 않는다. 결혼이든 비혼이든 (물론 바울은 비혼을 더 선호하지만) 주안에서 행하라고 명령한다. 바울 자신은 비혼으로 지내는 것이 더욱 복이 있다고 한다. 왜냐하면 그것이 자신이 하나님께 받은 영적인 은사라고 고백한다.

>> 주님말고 기쁘게 해야할 배우자가 있고 또 자녀가 있다는 것은 온전히 주님을 기쁘시게 하는데 걸림돌이 된다. 남녀관계에 있어서 결혼은 분명 음행을 피할 수 있는 좋은 제도지만 말이다. 그러나 예수께서도 장가들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제자들에게 비혼은 오직 타고난 자라야 할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바울 자신은 하나님의 영을 받아, 곧 천국을 위해 고자된 자라고 적용한다. 그렇다고 결혼을 금하는 것은 아니다. 바울은 에베소 성도들에게는 그리스도를 경외함으로 피차 복종하라고 가르친다. (엡 5:21) 성도라면 개인적인 탐욕으로 남편이 아내를 아내가 남편을 기쁘게 하지말고,  ‘그리스도를 경외하라’ 라는 말씀을 적용하기 위해  서로를 기쁘게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