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18,21,25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8,21,25)

오늘 본문의 삼세번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다. ‘좋았다’ 라는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시편에서 시인들이 주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주님의 이름이 선하시다고 노래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단어다. 예수님은 오직 한 분 참 하나님만 선하시다고 말씀하셨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선언은 창조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대로, 하나님의 뜻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을 다시 빚거나 구운 후 흠이 있는 것을 깨뜨려버리는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그대로 되니라’이다.

인생에 없는 것이 ‘그대로 되니라’가 아닐까? 천재적인 화가도 자신의 작품에 만족이 없고 천재적인 연주자도 자신의 연주에 만족이 없다고 인터뷰한다. 그들은 쉬지않고 노력하고 연습한다. 이렇듯 인생에게는 ‘무엇 하나 그대로 된적이 없어’가 맞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된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좋다’, ‘선하다’는 하나님의 뜻에 맞다는 뜻이다. 무엇이 좋은지 아는 방법은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 물어보면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가르쳐주셨다. 이 가장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알려 주셨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시는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할 때 (그대로 될 때),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된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에 따라 그대로 된 정직한 존재인가? 혹여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에서 벗어난 꾀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본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 태초는 처음이라는 뜻이지만 으뜸이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중요하게라고 이해한다. ^하나님: 하나님은  ‘신들, 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냥 ‘신’이라라고 단수를 사용하지 않고 ‘신들’이라고 복수형을 썼다는 것은 ‘신들의 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어법이었을 것이다. ^천지: 천지는 하늘들과 땅을 가리킨다. 천자문 첫 사자성어가 ‘천지현황’ 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천자문은 시작한다. 하늘을 푸르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들, 곧 우주가 깊고 어둡다는 것이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미 상식이었다는 뜻이리라. ^창조: 창조는 (우주를) 만드셨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든 피조세계를 의미있도록 새롭게 하신다는 뜻이 있다. 창조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행위마다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들 간의 관계가 조화롭게 돌아가는 것이 곧 창조다. 진행형이다. 그래서 관계(창조)에 생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도 있겠다.

// 신들의 신이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새롭게 하신 일이 바로 우주적인 창조라고 성서는 시작한다. 하나님, 곧  이 ‘신들’이 성서에서 ‘여호와’라고 부르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창조주 신(하나님)이시다. 신들(하나님)이라는 단어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귐을 연상할 수 있다. 바로 이 ‘신들’이 누구인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이 참 창조주 신들(참 하나님)을 알고 참 하나님이 보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 성서는 참 하나님께서 우주(천지)를 만드셨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시작하신 분이 마치실 것이다. (작년 마지막에 읽은) 성서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으로 끝맺는다. 창조주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기를 바라시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 창조세계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그 계획안에 저도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거룩해야 할 뿐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겸손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2020년도에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실, 우리 주 예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께서 공급하실 힘을 구합니다. 아멘

시편 150

할렐루야!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성소, 권능의 궁창은 거룩한 성, 곧 하나님나라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곳이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찬양만 있다. 시인은 나팔소리로, 비파와 수금으로, 소고치며, 춤추며, 현악기와 퉁소로, 큰 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자고 노래한다. 시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주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할렐루야!

// 하나님나라는 할렐루야의 나라다. 할렐루야 외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호흡이 있는 자들은 살아있는 자다. 죽은 자가 아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님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 할렐루야는 성도들의 숨소리다. 삶에 할렐루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죽은 자라는 뜻이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라고 한다. 결국 기도하지 않으면 죽은 자요, 찬양의 기도가 없으면 기도해도 온전히 사는 것이 아니다. 감사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주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

시편 149

할렐루야!

시인은 새노래로 주하나님을 노래한다. 성도의 모임에서 찬양한다. 시인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말미암아 즐거워 한다. 시온의 주민들, 하나님의 다스림을 받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왕되심으로 즐거워하라고 노래한다. 춤추며, 소고와 수금으로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주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기뻐하신다. 하나님나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겸손한 자를 구원으로 아름답게 하신다. 겸손한 자들 주님의 신부로 단장시켜 주신다. 성도들은 영광 중에 즐거워하며, 잠들때에도 기쁨으로 노래하라고 한다.

입으로 찬양하면서 손에는 말씀을 들고 열방을 심판하고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왕들과 귀인들을 결박하라고 노래한다.

(요한계시록의 말씀대로 생명책에) 기록한 판결대로 심판을 시행하라고 노래한다. 성도들에게 주님과 함께 심판자의 영광을 누리라고 노래한다.

할렐루야!

// 요한계시록을 읽고 할렐루야 시편들을 읽어서일까? 시인들은 한결 같이 창조주하나님과 종말의 하나님을 노래한다. 예수님의 오심을 보지 못하고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한 시인들이 어떻게 하나님께서 악인들은 심판하시고 성도들에게는 하나님나라 주시기를 기뻐하신다는 것을 노래할 수 있었을까? 주님의 영이 시인들과 함께 했기 때문이리라. 말씀을 읽을 때 보혜사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 하는 이유리라. 성령님 함께 하소서.

시편 148

1-6 시인은 우주적인 찬양을 노래한다. 하늘과 땅과 바다가 구분이 없다. 요한계시록에서 묵상한 새하늘과 새땅, 거룩한 성내에서 울려퍼지는 찬양을 연상케 한다. 하늘에서 찬양하며, 높은 데서 찬양하며, 모든 천사가 찬양하며, 천군이 찬양하며, 해와 달과 별들이 찬양하며, 하늘의 하늘도 찬양하며, 궁창위의 물들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시인은 주의 이름을 찬양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으로 지음받은 피조물의 마땅한 바라고 노래한다. 주님을 찬양하는 것은 영원한 언약이요 명령이라고 선언한다.

7-14 시인은 용들과 바다여 땅에서 주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명령한다. 용들은 요한계시록에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탄을 의미한다. 바다는 사탄이 숨어지내는 깊은 곳을 뜻했다. 시인은 땅과 바다 깊은 곳도 하나님이 통치하심을 노래하는 것이다. 땅과 바다 그 어디에도 하나님의 다스림을 벗어날 곳이 없다는 뜻이다. 불과 우박과 눈과 안개로 악인을 심판하는 그곳에서 찬양한다. 산들과 모든 산과 과수와 백향목 등 자연만물도 주하나님을 찬양하라고 한다. 짐승도 가축도 들짐승도 날짐승도, 세상의 모든 왕들과 백성들도 고관들과 재판관들도, 총각고 처녀와 노인과 아이들에게도, 곧 남녀노소 빈부귀천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피조물에게 주의 이름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주님의 이름만 홀로 높으시고 주님의 영광이 땅과 하늘 위에 뛰어나시기 때문이다. 주하나님이 이땅을 다스리시기 때문이다. (하늘에서 땅에서) 주하나님은 성도, 주님을 가까이 하는 백성, 영적 이스라엘 자손의 찬양을 받으신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