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편 143 (1-12)

나는 주의 종입니다.

1 (다윗의 시로 알려져 있다.) 다윗은 주께 진실과 의로 응답해 달라고 기도한다. 진실과 의. 요한일서 1:9에서 요한은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끗하게 하신다고 가르친다. 다윗은 자신이 죄인임을 안다.

2 다윗은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한다는 것도 알았다. 의인은 없나니 하나도 없다고, 곧 자신도 심판에서 벗어날 수 없음을 고백한다. 그래서 “주의 종에게 심판을 행하지 마소서” 라고 주께 자비를 구한다.

3-6 다윗은 원수가 자신의 영혼을 핍박한다고 탄원한다. 육체적인 힘듦보다 영혼이 주님의 응답을 듣지 못하는 암흑을 더 힘들어 한다. 심령이 상할 수 밖에 없다. 지난 날에는 분명이 주님의 돕는 손이 자신과 함께 했었는데 라고 읊조리며 주님의 능하신 손을 떠올리며 주님을 향하여 손을 펴고 도움을 구한다. 단비를 기다리는 마른 땅같이 주만 바라본다.

7,8 다윗은 주님의 응답만 바라본다. 영혼이 피곤할 정도로 영이신 주님의 얼굴을 바란다. 아니 무덤에 내려가는 두려움에 빠진다. 그러나 다윗은 어둔 밤을 지나 아침에 들려 올 주의 인자한 말씀을 기대한다. 말씀에 신실한 주를 의뢰한다. 자신이 어떻게 해야 할 지, 갈 길을 보이실 주님을 바라보면서 지친 영혼을 주께 드린다.

9 주님 나를 원수들에게서 건지소서. 내가 주께 피난왔습니다.

10-12 (다윗의 탄원에 대한 응답으로 읽는다.) 의인들이 아니라 원수들에게 둘러싸여서도 주님의 뜻을 배워 주님의 뜻을 행해야 함을 깨닫는다. 왜냐하면 주님만이 선하시기 때문이다. 곧 고난도 주님의 길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길 끝에 공평한 땅이 있음도 발견한다. 그래서 그곳까지 주님의 인도로 인내의 경주를 하길 원한다. 믿음의 경주를 완주하는 것이 다윗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라 주의 이름을 위한 것이라고도 고백한다. 다윗은 의로우신 주님이 다윗의 영혼을 환난에서 구해주실 것을 확신하며 기도한다. 주께서 사랑하시는 자들을 위해 원수들의 결박을 끊어주시듯, 다윗의 영혼을 괴롭게 하는 자를 다 멸하실 것도 확신한다. 마지막으로 확신에차 고백한다. “나는 주의 종입니다.”

// 원수에 둘러싸여 있는 다윗. 영혼이 피곤하고 무덤에 내려가는 두려움에 빠진 다윗. 다윗은 환난의 길 끝에 공평한 땅이 있음을 본다. 더 이상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원수를 보지 않고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인자하신 주님을 본다. 자신도 주님의 종이라고 고백한다.

푯대이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해 걷는 성도들의 길도 마찬가지다. 복음과 함께 받는 고난의 길이지만 그 끝은 온전한 하나님나라다. 선하시고 의로우시고 인자하신 하나님이 다스리심이 있는 의와 희락과 화평의 나라다. ‘나는 주님의 자녀입니다’ 라고 고백하는 아버지 하나님의 나라다. 임마누엘의 나라다.

왕하6:15-17

하나님의 사람의 시종이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밖으로 나가 보니, 강한 군대가 말과 병거로 성읍을 포위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그 시종이 엘리사에게 와서 이 사실을 알리면서 걱정하였다. “큰일이 났습니다. 선생님,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엘리사가 말하였다.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들의 편에 있는 사람보다는 우리의 편에 있는 사람이 더 많다.” 그렇게 말한 다음에 엘리사는 기도를 드렸다. “주님, 간구하오니, 저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셔서, 볼 수 있도록 해주십시오.” 그러자 주님께서 그 시종의 눈을 열어 주셨다. 그가 바라보니, 온 언덕에는 불 말과 불 수레가 가득하여, 엘리사를 두루 에워싸고 있었다.

주님 간구하오니 제 눈을 열어서 볼 수 있도록 해 주십시오.

시편 142 (1-7)

구름같이 둘러싼 허다한 증인들

1 다윗은 (이 시편에는 ‘다윗이 굴에 있을 때 드린 기도’ 라는 제목이 붙어있다.) 소리내어 주께 부르짖으며 간구한다. 대적들을 피해 굴에 숨어 있지만 주 앞에는 큰 소리로 간구한다. 주님께 발견됨이 대적들에게 발각되는 것보다 낫다는 것을 알기때문이다.

2 다윗은 자신의 원통함을 주님 앞에 시시콜콜하게 아뢴다. 자신에게 닥친 어려움을 미주알고주알 말한다. (주님께서 어찌 다윗의 원통함과 어려움을 모르실까? 자신의 사정을 들어줄 사람이 있는 사람이야 말로 행복하다고 한다. 아내들이 남편에게 조잘대는 이유도 답을  얻기 위해서가 아니라 그냥 속마음을 쏟아 버려야 하기 때문인 경우가 많다고 한다. 남편의 입장에서는 그냥 들어주기만 해도 된다.)

3 다윗도 주님께서 자기가 얼마나 속상한지 아시겠지만, 곧 다윗의 사정을 잘 알고 계심을 알지만, 대적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올무를 쳐놓았다고 구체적으로 고발한다.

4 좌우사방을 살펴보아도 도움을 청할 아는 사람도 없고 피난할 곳도 없다고 탄원한다. 더군다나  영혼을 돌보는 이도 없다고 하면서 주님의 도우심을 구한다.

5 인생으로부터는 다윗의 처지를 알고 도와줄 사람이 없기에 결국 다윗은 영이신 주님께 부르짖는다. 주님만이 나의 피난처시요, 주님만 있으면 다른 것들은 다 필요없다고 노래한다.

6 대적들로부터 쫓겨 굴에 숨어있는 다윗은 제발 대적에게서 자신을 건져달라고 탄원한다. 대적들이 자신 보다 강하고 다윗 자신은 비천하다고 고백한다. 그래서 주께 부르짖으니 들어달라고 탄원한다.

7 (마지막 절은 다윗의 타원에 대한 주님의 응답이다.) 빈궁한 자신의 영혼을 구원하신 주님의 이름을 감사한다. 당연히 다윗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않고 죄인들의 길에서 서지 않고 오만한 자들의 자리 않지 않고 오직 주님의 말씀을 즐거워하며 묵상하는 복있는 사람처럼 의인의 회중에 들어가 의인들에게 둘러싸인 자신 본다.

믿음의 창시자요  완성자이신 예수를 바라보면서 인내로 믿음의 경주를 하게 하소서. 믿음의 경주를 완주한 의인들의 환호성을 받으며 달리게 하소서. 나에게도 구름같이 허다한 증인들이 있음을 기억하게 하소서. (그렇다. 악한 자의 길은 멸망에 이르나, 의인의 길은 주님께서 보살피신다.)

시편 141 (1-10)

기도가 곧 예배가 되게 하소서

1-3 다윗은 주님을 부른다. 빨리 와서 자신의 기도에 귀를 기울여달라고 탄원한다. 하루를 마치고 (혹은 하루를 시작하면서) 자신의 기도가 주님 앞에 향기로운 저녁 제사로 드려지길 원한다. 그래서 자신의 입을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주님께 호소하는 말조차도 (기도도) 함부로 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이라고 해석하면 안될까? 탄원이 제사, 곧 예배가 되길 바란다.

4-7  다윗은 자신의 마음이 악한 일에 기울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악한 자들과 어울려 악한 일을 하지 않을뿐더러 악한자들과 함께 진수성찬을 (뇌물밥상을) 먹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악한 자들과 함께 밥상을 하지 않겠다는 뜻은 결국 악한 이권을 챙기지 않겠다는 뜻이다. 그래서 악인들의 대접을 받기보다는 의인의 매를 맞겠다고 노래한다. 악인들에게 대접을 받고 악인들의 잘못을 눈감아 주는 것이 아니라 악인들의 악행을 고발하겠다고 노래한다. 시인의 증언이 법정에서 사람들에게 옳다고 채택되면, 뇌물을 받고 악행을 눈감아 준 재판관들은 재판석에서 끌려 내려질 것이다. 저들은 바람에 나는 겨와 같이 바람에 흩어질 것이다.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고 망할 것이다.

8-10 다윗은 주님흘 향한다. 주께 피한다. 악한 자들이 연합 공격을 받는 다윗은  영혼의 빈궁함을 느껴 주님께 자신을 버려두지 말아달라고 기도한다. 다윗을 잡으려고 악인들이 놓은 올무와 함정에서 벗어나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오히려 악인들이 자기가 쳐놓은 그물에 걸리게 해달라고 간구한다. 그리고 다윗 자신은 온전하게 우나 좌로 치우치지 않고 주님의 길을 가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 시인(다윗)은 자신의 탄원(간구)도 빈궁한 영혼을 채우는 제사(예배)가 되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육신의 배를 채우기 위해 악한 일에 기울지 않게 하시고 탐욕의 기도를 버리고 주님께서 기쁘게 받으실 감사와 찬양의 기도가 넘치는 하루를 살게 하소서.

시편 140 (1-13)

1-5 다윗은 주님께 악인에게서 건져달라고, 포악한 자에게서 지켜 달라고 간구한다. 악인의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는 자들로부터 지켜달라고 간구한다. 악인들이 연합해서 자신을 공격함이 뱀처럼 지혜롭고 치밀하며 독사의 독처럼 치명적이라고 한다. 주님만이 악인의 손에 빠지지 않게 하실 수 있으시다고 노래한다. 악인들이 주님의 길을 따라 좌우로 치우치지 않고 걷고있는 다윗을 밀치고 당기려고 하니 보호해 달라고 노래한다. 교만한 자들이 다윗이 걷는 주님의 길에 올무와 덧을 두고 그물을 펼치고 함정을 팠다고 고발한다.

6-8 (험한 인생길에서) 다윗은 주님만이 자신을 지켜주실 수 있다고 고백한다. 자신의 간구소리에 귀를 기울여 달라고 주님께 기도한다. 다윗은 주님을 구원의 능력이라고 고백한다. 다윗이 치른 수많은 전쟁에서 자신의 투구가 되어주신 주님을 노래한다. 악한 꾀를 따르고 죄인의 길에 서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으려는 무리들의 소원을 허락하지 말라고 탄원한다. 스스로 하나님보다 높아지려는 교만한 저들이 악한 꾀를 이루지 못하게 해달라고 기도한다.

9-11 대적들이 머리를 들고 하나님을 대적하여 하나님을 망령되이 일컫는 말들이 악인들에게 자업자득이 되게 해 달라고 노래한다. 자신들이 한말로 스스로 수치를 당해 쥐구멍에 들어가 다시는 일어나지 못하게 해달라고 노래한다. 모함하는 자들, 화평을 깨는 자들은 세상에서 고개들고 살지 못하게 하시고 사회적 약자들을 착취하는 자들은 패망시켜 달라고 간구한다.

12-13 다윗은 주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기억하며 기도한다. 고난 당하는 자들을 위로해 주시고 궁핍한 자에게 정의를 베풀어 달라고 기도한다. 다윗은 의인은 주의 이름에 감사하며 주의 앞에서 정직하게 사는 자들이라고 노래를 맺는다.

// 잠언 29:7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주나 악인은 알아 줄 지식이 없느니라” 하나님의 사람, 곧 ‘의인’은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사람이다.  임마누엘이다. 그런데 우리는 죄인이라 온전한 의를 행할 수 없기에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이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과 함께 행할 수 있게 해 주셨다. 예수님이 오셨다고  ‘의인’의 정의가 달라진 것은 아니다. 예수 안에 거하고 내 안에 예수님을 모시는 삶도 오직 정의를 행하며 인자를 사랑하며 겸손히 하나님과 함께 행하는 삶이어야 한다. 잠언에서 의인은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준다는 표현은 결국 하나님의 마음으로 가난한 자들을 대한다는 뜻이다. 반대로 가난한 자의 사정을 알아 줄 지식이 없는 사람을 악인이라고 한다. 하나님보다 높아졌다는 곧 교만하다는 뜻이다.

누가 주님 앞에 설 수 있는 지는 자명하다.

시편 139:13-24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 

13-16 다윗은 임마누엘의 신비를 주님이 자신을 손수 지으셨음에서 찾는다. 주님이 오장육부를 모태에서 만드셨다. 다윗은 유전자를 주님으로부터 기묘하게 받았음을 감사하며, 육적이 아니라 영적으로 하나님으로부터 났음을 고백한다. 은밀한 곳 땅의 깊은 곳은 사람이 손댈 수 없는 모태를 뜻할 것이다. 이런 모태에서 아직 태아의 형태를 띠기 전, 성별이 결정되기 전부터 주님은 다윗을 아셨고, 다윗의 삶을 프로그램하셨다고 노래한다. // 다윗은 자신의 로봇됨을 노래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전지전능하심을 찬양한다.

17-18 하나님께로부터 난 다윗은 자신에 대한 주님의 생각(프로그램)에 감탄한다. 보배롭다고 하며 한 수 앞도 못보는 인생에 비하여 주님은 백수 앞도 보시는 분이시라고 노래한다. 주님은 인생의 모든 가능성에 대한 답을 가지고 계신 분이라고 노래하는 것이다. 다윗 자신은 전혀 헤아릴 수 없는 인생의 행보, 그러나 다윗은 임마누엘을 노래한다. 셀 수 없는 희노애락의 순간들, 곧 매 순간 순간이 임마누엘이었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19-22 임마누엘에 만족한 다윗은 주님이 함께 하시지 않는 악인들에게 떠나라고 말한다. 주님에 대해 악한 말을 하고 주님의 이름을 망령되이 부르는 자들에게서 떠난다. 주님이 미워하시는 자들을 다윗도 미워하고 주님의 원수들을 다윗도 원수삼는다. 임마누엘이 악인을 미워하는 주님의 영적 유전자를 다윗에게 그대로 물려준 결과다.

23,24 다윗은 주님께 자신에게 버그나 바이러스가 없는지 늘 스캔해달라고 노래한다. 바이러스가 침투해 주님이 프로그램하신 대로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곧 임마누엘이 깨어지는 오류가 일어나지 않도록 간구한다. 다윗은 영원한 임마누엘, 영생을 꿈꾸며 노래한다.

// 주님의 말씀이 나의 삶의 백신임을 고백하게 하는 토욜아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