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수아 10:1-15

여리고 아이가 무너지고 기브온이 이스라엘과 화친을 맺어 이스라엘의 속국이 되었다는 소식을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이 들었다. 예루살렘 왕 아도니세덱은 아이보다 크고 강한 기브온이 이스라엘에 굴복하여 속국이 되었다는 소식에 헤브론 왕 호함, 야르뭇 왕 바람, 라기스 왕 야비아, 에글론 왕 드빌과 동맹을 맺어 이스라엘과 대항하기로 하기로 했다. 이들 아모리 족속 다섯 왕들은 연합군을 편성하여 우선 이스라엘의 속국이 된 기브온과 대진하여 싸웠다.

이에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 본진이 머물고 있는 길갈에 사람을 보내어 여호수아에게 도움을 요청했다. “당신의 종들 돕기를 더디게 하지 마십시오. 우리를 구하소서.” 여호수아는 모든 군사와 용사와 더불어 길갈에서 기브온으로 올라갔다. 그것도 밤새 올라갔다고 한다. 주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군대대장으로 여호수아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신다. (여호수아의 군사작전을 허락하신 것이다.) 여호수아는 밤새 기브온으로 가서 주하나님께서 약속하신 대로 아모리 다섯 왕을 무찔렀다. 이번 전쟁도 이스라엘의 침략전쟁이 아니라 주하나님께서 범죄한 아모리 족속을 심판하시는 전쟁이었다. 사관은 이스라엘의 칼에 죽은 자보다 주하나님게서 하늘에서 우박을 내려 죽인 자가 더 많았다고 기록한다. 여호수아는 주하나님의 심판의 칼이 되어 아모리 사람들을 진멸한 것이다. 여호수아는 아모리 사람들을 진멸하기까지 태양은 기브온에 머물고 달도 아얄론 골짜기에 머물게 해달라고 주하나님께 요청했고 주하나님은 초자연적으로 태양과 달이 멈추기를 주하나님의 백성이 그 대적에게 원수를 갚기까지 하셨다. 이 사건이 야살의 책에 기록되었다고 사관은 토를 단다. 사관은 주하나님께서는 사람의 목소리를 듣고 초자연적인 역사를 행하신 날은 전에도 없었고 후에도 없었다고 기록한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목소리를 들으신이유는 주하나님께서 (심판의 도구로 사용하시는) 이스라엘을 위하여 싸우셨기 때문이다. 여호수아는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길갈 본영으로 돌아왔다.

// 사관은 기브온 전투를 주하나님께서 사람의 목소리를 들어주신 전무후무한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의 기도를 들어주신 이유는 다름이 아니라 범죄한 가나안에 대한 심판이라는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기도를 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여호수아 개인적인 (지도자로서의 권위) 야망이나 이스라엘 민족적인 자랑을 위한 기도였어도 들어주셨을까?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기도는 근본적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에 순종할 수 있는 힘을 구하는 것이어야 한다. 여호수아의 기도는 이 두가지를 만족시켰던 것이다.

여호수아는 약속의 땅을 차지하는 것이 단순한 침략전쟁이 아니라 범죄한 가나안에 대한 주하나님의 심판전쟁이라는 것을 깨달았을까? 아모리 연합군의 기브온 침공은 여호수아 입장에서는 자신들을 속인 기브온 족속을 멸절시킬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평화조약을 맺은 자신들의 손에는 피를 묻히지 않고 아모리 사람들의 손을 빌려서 기브온을 진멸시킬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여호수아는 밤새 기브온을 도우러 올라갔다. 주 하나님께서는 주하나님의 진영에 굴복하여 살아 남은 기브온 족속을 주하나님이 선택하신 이스라엘 백성과 동일시 하신다는 것을 알았던 모양이다. (사관은 기브온을 이스라엘 중에 있다고 분명히 기록한다.) 그래서 기브온의 구원요청에 여호수아로 하여금 온 이스라엘을 데리고 밤새 기브온에 올라가 기브온 족속을 아모리 다섯 왕들로부터 지켜주셨다. 그리고 주하나님을 대적한 아모리 다섯나라를 심판의 칼로 진멸하셨다.

성도들은 개인적으로 신앙을 고백하지만 교회의 지체로 부름을 받는다. 하나님나라의 속성이다. 바울은 “우리 강한 자가 마땅히 연약한 자의 약점을 담당하고 자기를 기쁘게 하지 아니할 것이라.” 라고 가르친다. 성도들은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야 한다.  교회로 부름을 받은 이후에는 나를 위해서가 아니라 교회를 위해서 하나님의 뜻에 순종해야 한다. 임마누엘은 개인적으로 누려야할 축복이 아니라 교회의 본질이다.

여호수아 9:16-27

기브온과 조약을 맺은 후 사흘이 지나서 기브온이 가나안에 거주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이 들통났다. 이스라엘이 길갈에서 떠나 세째 날에 이른 성읍 넷중 (기브온,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 하나가 기브온이었다.

아마도 그비라, 브에롯, 기럇여아림을 차례로 진멸시키고 전리품을 취했을 것이다. 그런데 기브온은 건드릴 수 없었다. 각 지파의 대표들이 이미 주하나님께 기브온은 치지 못한다고 맹세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회중들은 지파의 대표들을 원망했다. 기브온을 살려두는 것으로 말미암아 오히려 진노가 임할까 염려하였지만, 약속대로 살려주는 대신 기브온 족속을 이스라엘 회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종으로 삼았다.

여호수아가 기브온 사람을 불러다 왜 속였느냐고 물었다. 너희들이 속였기 때문에 대를 이어 종이 되어 하나님의 집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일을 해야 한다고 명했다.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대답했다. ‘우리는 이스라엘의 주하나님게서 모세에게 명령하사 이땅을 다 이스라엘에게 주고 이땅 모든 주민을 멸하라 하신 것을 분명히 들었습니다. 우리는 목숨을 잃을까 두려워서 속였습니다. 이제 우리가 당신 손에 있으니 당신의 처분대로 행하십시오.’

여호수아는 약속대로 기브온을 살려주는대신 기브온 사람들을  주하나님의 제단을 위하여 나무를 패며 물을 긷는 자들도 삼았다. (이들이 느디님 사람들의 조상이 되었을 것이다.)

// 느디님사람들, 성전 막일꾼의 시조가 기브온 사람들이 아닐까 한다. 이들은 포로기 이후 귀환할 때도 성전 막일꾼으로 참여한다. 시인은  “주님의 집 뜰 안에서 지내는 하루가 다른 곳에서 지내는 천 날보다 낫기에, 악인의 장막에서 살기보다는, 하나님의 집 문지기로 있는 것이 더 좋습니다” (시 84:10 새번역) 라고 노래하는데 이들에게 딱 어울리는 구절이다.

예수님은 제자도를 가르치실 때,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나가려면, 이만 명을 거느리고서 자기에게로 쳐들어오는 그를 자기가 만 명으로 당해 낼 수 있을지를, 먼저 앉아서 헤아려 보아야 하지 않겠느냐? 당해 낼 수 없겠으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동안에 사신을 보내서, 화친을 청할 것이다” (눅 14:31,32) 라고 말씀하셨다. 딱 기브온의 이야기다. 이들은 이스라엘의 신 주하나님이 어떤 분이신 지 알았다. 주하나님을 알았기에 주하나님께 화평을 구했다. 예수님께서는 화평케 하는 자가 복이 있나니 그들이 하나님의 아들이라 일컬음을 받을 것이라고 하셨다. (신약적 사고를 가졌던) 라합은 주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가족들을 구할 수 있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주하나님을 알았기 때문에 온 족속이 살아 남았다.

주하나님을 알고 그 권세에 굴복하는 것이 제자다.

여호수아 9:1-15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 성을 무너뜨렸다는 소식이 요단 서쪽에 있는 헷, 아모리, 가나안, 브리스, 히위, 여부스 사람의 모든 왕들에게 퍼졌다. 이들은 동맹을 맺어 여호수아가 이끄는 이스라엘에 맞서서 싸우려고 했다. (‘기르가스’족속은 동맹에서 빠졌나?)

그런데 기브온 주민들은 달랐다. 기브온 주민들은 여호수아가 이끄은 이스라엘 여릭고와 아이에 행한 일을 듣고 이스라엘과 맞서 싸우는 대신 화친을 맺을 꾀를 내었다. (기브온 사람들은 이스라엘이 여리고와 아이에게 행한 일을 이스라엘의 가나안 침략전쟁으로만 이해하지 않았다. 자신들이 맞아 싸워야 할 대상이 이스라엘이 아니라 이스라엘의 신 주하나님, 곧 심판의 주재라는 것을 알았을 것이다.)

기브온 주민들은 자신들이 먼 곳에서 (마치 가나안 지경 밖에서) 온 듯 해어진 전대와 해어지고 찢어져서 기운 가죽 포도주 부대를 나귀에 싣고, 낡은 신을 신고 낡은 옷을 입고 마르고 곰팡이가 난 떡을 준비해서 이스라엘이 머물고 있는 길갈 진영에 있는 여호수아를 찾아가서 화친을 맺자고 제안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처음에는 히위 사람인 기브온 사람이 가나안 사람이 아닐까 의심했다. 그래서 가나안에 거주하는 기브온 사람들과는 조약을 맺을 수 없다고 했다. 그러자 기브온 사람들은 여호수아에게 자신들과 군신관계의 화친을 맺어 이스라엘은 임금나라가 되고 자신들은 종나라가 되겠다고 화친의 조건을 제시했다.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에게 너희는 누구며 어디서 왔는지 꼬치꼬치 캐물었다.

기브온 사신들은 여호수아의 질문에 자신들이 심히 먼 나라에서 왔지만 이스라엘의 신 주하나님이 하신 일에 대해 모두 들었는데, 주하나님이 하신 일을 듣고 기브온 장로들과 주민들이 이스라엘에게 가서 군신의 조약을 맺자고 결의하였기 때문에 찾아 왔다고 대답했다. 그리고 그 증거로 마르고 곰팡이 난 떡과 찢어지게 된 포도주 가죽부대, 그리고 자신들이 신고 있는 낡은 신과 입고 있는 낡은 옷을 증거로 제시했다.

이스라엘은 주하나님께 최종 결정을 묻지 않고 기브온이 가져온 양식을 취했다. 여호수아는 그들과 화친을 맺어 기브온의 목숨을 보장한다는 조약을 체결했다. 각 지파의 족장들도 기브온과 화친에 맹세로 동의했다.

// 대적이 누구인지 알아야 한다. 기브온 주민과 달리 나머지 족속들은 대적이 이스라엘이라고 생각해서 자신들끼리 동맹을 맺으면 싸움이 될 것이라고 자신했을 수 있다. 그러나 대적이 이스라엘 너머 계시는 이스라엘의 신 주하나님이심을 안 기브온 주민은 이스라엘의 종이 되더라도 항복을 해서 죽음을 면하고자 했다. 기브온 주민은 주하나님을 알았다. 그래서 결국 살았다.

한편 기브온이 여호수아에게 나왔을 때 여호수아는 기브온 사람들이 아닌 주하나님께 꼬치꼬치 물어야 했다. 주하나님께 묻는 것이 기도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있다. 똑같은 말씀이라도 어제와 오늘의 적용이  다를 수 있다. 예수님께서는 사두개인들과 부활에 대해 논쟁하시면서 ‘하나님은 죽은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자의 하나님이시라’ 라고 말씀하셨다. 돌판에 새겨진 말씀을 오해하지 않으려면 우리 마음판에 새기신 말씀, 보혜사 성령하나님께서 풀어주시는 말씀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여호수아 8:30-35

아이 성 전투에서 이겼다. 여호수아는 이스라엘의 신, 곧 주하나님을 위하여 에발 산에 제단을 쌓았다. 제단은 주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들었다. (제단을 만들기 위해 인위적인 수고가 필요없다는 의미일까?) 무리가 주하나님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여호수아가 만든 제단 위에 드렸다.

여호수아는 제단을 만든 곳에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제단을 쌓은) 돌에 기록하였다. 온 이스라엘,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언약궤를 멘 제사장 좌우에 섰다. 전에 주하나님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한 명령대로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산 앞에 섰다. 그러자 여호수아는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의 모든 말씀을 백성들엑 낭독했다. 모세가 명령한 모든 것을 가감없이 이스라엘 온 회중, 곧 남녀노소 모두와 동행하는 거류민들에게 읽어주었다.

// 에덴동산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가 있었다면, 이스라엘에 언약궤가 있었다면, 우리에게는 말씀이 있다.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 언약궤, 말씀은 모두 하나님과 우리와의 관계를 가르쳐준다. 하나님은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하나님나라의 백성됨을 알려준다.

제단을 쌓기 위해 돌들을 다듬지 말라는 뜻은 무엇일까?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모양 그대로 받으신다. 오히려 있는 모양 그대로의 돌인 우리에게 새겨져야 할 것이 하나님 말씀이라고 하신다. 내가 다듬어져야 하는 것은 주님 앞에 나가기 위한 조건이 아니라 주님의 말씀 대로 살기위해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에게 “너희는 우리로 말미암아 나타난 그리스도의 편지니 이는 먹으로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살아 계신 하나님의 영으로 쓴 것이며 또 돌판에 쓴 것이 아니요 오직 육의 마음판에 쓴 것이라” (고후3:3 ) 라고 편지한다. 바울은 고린도 성도들이 바울자신이 사역하여 돌판에 새긴 결과물이 아니라 그리스도께서 쓰신 편지요 성령께서 성도를 마음판에 하신일이라고 강조한다.)

주일 새벽이다. 모난 그대로 주님 앞에 나아간다. 주님께서 내 심령에 주님의 말씀을 새겨 주시길 간절히 바라면서. 성령께서 말씀에 순종할 힘 주시길 소망하면서.

여호수아 8:18-29

아이 성 전투는 유인과 매복이라는 굉장히 전형적인 군사작전같지만 이번 싸움도 이스라엘이 아닌 주하나님의 군대가 하는 싸움이었고 군대대장도 여호수아가 아닌 주하나님이셨다.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라고 명하셨고 여호수아는 순종했다.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은 손을 드는 순간 복병이 (빈) 성읍으로 들어가서 점령하고 성읍을 불살랐다. (자연적인 작전 같지만 초자연적이다. 복병들이 여호수아가 단창을 든 것을 어떻게 알았을까? 오히려 매복조가 아이 성 군대가 유인조를 추격하자 성이 빈 것을 알고 성에 들어가서 불을 질렀고, 하늘로 치솟은 불길을 보고 여호수아가 단창을 들어 반격을 했다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이다.)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보니 성이 불타고 있었다. 아이 사람들은 여호수아가 이끄는 유인조가 자신들을 향해 반격해 오자 성으로 도망할 수도 없게 되었다. 성읍을 차지하고 불사른 복병들은 다시 나와 아이 군사들을 뒤쪽에서 쳤다. 이쪽 저쪽 양쪽에서 아이 사람들을 쳐죽여서 한사람도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다고 한다. 아이 왕을 사로잡았고 이스라엘을 추격하던 아이 사람들을 진멸하였고, 이스라엘이 아이 성으로 돌아와 주민들도 진멸하였는데  진멸한 남녀가 모두 만이천명이라고 기록한다. 그리고  사관은 아이 주민을 진멸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은 손을 거두지 않았다고 토를 단다. (지극히 인간적인 군사작전 같지만 아이 성 전투역시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역사였다.)

이스라엘은 아이 성에서는 주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가축과 전리품을 차지했다. 그리고 아이 성은 불살라 영원한 무더기로 (무덤으로) 만들었고 아이 성은 이렇게 황폐하였다. 사로잡았던 아이 왕을 나무에 매달아 죽였다. 왕이라도 아이의 운명과 달리할 수 없었다.

// 여호수아의 단창을 든 손은 누가 붙잡아 주었을까? 여호수아는 광야에서 이스라엘이 아멜렉과 싸울 때 모세의 명령에 따라 전장에 나가 있었다. 승전 후 돌아왔을 때 모세가 손을 들면 이기고 내리면 졌다는 얘기와 그래서 승전하기까지 아론과 훌이 모세의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잡아 주었다는 얘기를 들어서 잘 알고 있었을 것이다. 여호수아는 전쟁은 주하나님께 속한 것이라는 것을 이미 경험한 지도자였다. 그래서 주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단창을 들어 아이 성을 가리킨 손을 승전하기 까지 (아이를 진멸하기까지) 내리지 않았을 것이다. 모세에게 아론과 훌이 있었듯이 여호수아에게도 단창을 든 손이 내려가지 않도록 돕는 참모가 있었을 것이다.

순종에는 쉼이 있을 수 없다. 그런데 혼자서 지속적인 순종을 하기란 쉽지 않다. 그러나 성도들은 외톨이가 아니다. 성령 안에서 하나님이 거하실  처소가 되기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지어져 가는 성도들이 있다.  예수님은 ‘누구든지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가 내 형제요 자매요 어머니이니라’ 라고 말씀하셨다. 성도들은 한 가족이다.

주님은 나는 단창을 들고 있어야 할 지도자가 아니라고 하신다. 단창을 들고 있는 손이 내려오지 않도록 돕는 자가 되라고 하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