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2:4-25

“이것이 천지가 창조될 때에 하늘과 땅의 내력이니 여호와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만드시던 날에”(2:4)

창세기 기자는 천지창조의 내력, 족보, 곧 시조를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밝힌다. 창조주 ‘신들’ (하나님)의 이름을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밝힌다. 개인적으로 ‘여호와’와 ‘여호와 하나님’을 ‘주하나님’이라고 번역할 예정이다.

우주를 창조하신 ‘신들의 신’도 주하나님이시요, 사람을 만드신 하나님도 주하나님이시다. 창세기 기자는 2장 4절부터 마지막절까지 우주의 족보와 사람의 족보를 풀어나가면서 ‘주하나님’을 열한번 언급한다.

주하나님은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사람의 코에 불어 넣어 사람이 생령이 되게 하셨다. 주하나님의 숨(호흡)을 사람의 코에 불어 넣으셔서 사람이 호흡(숨)을 하도록 하셨다. 거듭남의 (흙으로 지음받고, 생기로 생령이 되고) 원형이 아닐까? 이 호흡이 바로 주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복을 주시는 통로다. 사람을 제외한 다른 피조물들에게는 불순종이 없다. 천지가 창조될 때부터 지으신 목적에 따라 그대로 순종한다. 전도서 기자는 이것을 해 아래에는 새 것이 없나니라고 노래한다. 해는 뜨고 지되 그 떴던 곳으로 빨리 돌아간다. 오직 주하나님께서 멈추라고 하실 때 멈추었고 십도 뒤로 물러서게 하실 때 정확히 십도 물러섰을 뿐이다.

그런데 사람은 다르다. 주하나님과 ‘사귐’, 곧 교제하는 존재로 지음을 받았다. 주하나님은 사람을 위해 에덴동산을 만들어 주셨다. 에덴동산은 주하나님과 사람이 만나는 기쁨의 동산이다.  영이신 주하나님과 육으로 지음받은 사람이 사귀는 곳이 바로 에덴동산이다. 주하나님은 사람과의 사귐이 에덴에서부터 온 땅을 두르고 땅끝까지 흘러가기를 바라셨을 것이다. 주하나님은 사람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을 경작하며 지키게 하셨다. 주하나님의 창조사역에 동참하게 하신 것이다. 그 사람 아담으로 하여금 동물들의 이름을 짓게 하셨다.

주하나님은 그 사람 아담에게 돕는 배필이 주셨다. 주하나님이 ‘신들의 신’ 복수형이요, 하나님이  혼자가 아니라 ‘우리(신들)’의 형상대로 사람을 만드셨듯이, 보이지 않게 돕는 영이신 주하나님과의 교제를 육으로 지음받은 돕는 배필 하와를 만드셔서 맛보게 해주셨다. 창세기 1장 28절에서 주하나님이 사람에게 복을 주시며 하신 명령, 곧 주하나님의 축복에 순종할 수 있도록 주하나님께서 가정을 만들어 주셨다.

// 주하나님께서 성도들에게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시조)가 되신다. 주하나님께서 성도들을 성자 예수님의 아내로 삼아 주신다. 결국 기쁨의 동산 에덴은 삼위하나님과의 사귐이다. 임마누엘이다. 창조주 주하나님과 만나는 곳이다.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까? 창조주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불러본다. 신랑되신 예수님의 신부로 거룩하고 정결하게 살 것을 다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행하는 자가 형제와 자매요 어머니, 곧 가족이라는 예수님의 가르침을 떠올려본다.

창세기 2:3 (1:26-2:3)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창 2:3)

1장의 창조는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라고 끝맺는다. 심히 좋았더라. 심히 좋았다는 것은 그냥 좋았던 하루 하루의 부분적인 창조가 전체적으로 완성되었다는 뜻이다. 굳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신 여섯째 날을 화룡점정이라고, ‘더 좋았다’라고 강조하지 않아도 된다.

물론 ‘신들’, 곧 하나님이 ‘신들’의 형상을 따라 ‘신들’의 모양대로, ‘신들’이 사람을 만들고 ‘신들’이 사람에게 복을 주사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충만하며, 땅을 정복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신들’이 만든 바다의 물고기와 하늘의 새와 가축과 온 땅과 땅에 기는 모든 것을 다스리게 하신 것이 창조의 절정임에는 틀림없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복은 축복이지 행복이 아니다. 행복은 축복에 순종하는 자가 누리는 것이다. 여기서 복이란 왕에게 기사작위를 받듯이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명령을 받는 것이라고 이해하면 좋겠다.)

2장은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라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그리고 3절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라고 창조를 거룩함과 안식으로 마무리한다. 작년말 요한계시록 읽기를 통해 요한이 예수그리스도의 계시를 통해 새하늘과 새땅에 펼쳐질 거룩한 성에서의 성도들의 거룩함과 안식으로 성서를 마무리하는 것을 보았다. 창세기를 기록한 기자와 (아마도 모세) 서로 짜고 써내려간 것이 아닐 것인데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

거룩함과 안식의 일곱째 날을 완성된 ‘하나님나라’라고 상상해 본다. 바울은 창세로부터 하나님의 보이지 아니하는 것들 곧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이 하나님이 만드신 만물에 분명히 보여 알려졌다고 로마에 있는 성도들에게 편지한다. 따라서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사람들이 핑계댈 수 없다. 이렇듯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졌다. 요한계시록 21장 6절, 요한이 하늘 보좌로부터 들은 ‘다 이루었도라’라는 음성을  이 땅에서도 속히 듣게하소서. 아멘

사족: 중딩 때 용돈벌이로 천자문을 외운적이 있다. 초딩 육학년 때 조실부모한 나를 한 동네에 사셨던 둘째 백부께서 돌봐주셨다. 백부께 가면 천자문 외운만큼 용돈을 주셨는데… 이젠 다 잊어버렸지만 적어도 앞부분  천지현황 우주홍황 일월영측 진숙열장 까지는 입에 남아 있다. 언재호야로 끝났는데 40년전에 천원받았으니 한자당 1원씩 받은 셈이다. 하여간 천지현황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 우주홍황 (우주는 넓고 황량하다) 일월영측 (해와 달은 차고지고) 진숙열장 (별은 밤하늘에 펼쳐있다)… 창조기사 첫째날에서 세쨋날을 읽을 때 천자문이 떠올랐다. 그래서일까 대학에서 예수님을 믿기 시작한 나에게 창조기사는 그렇게 거부감이 없이 다가왔었다. 감사의 제목이다.

창세기 1:18,21,25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창 1:18,21,25)

오늘 본문의 삼세번은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라는 표현이다. ‘좋았다’ 라는 단어는 ‘선하다’라는 뜻을 품고 있다. 시편에서 시인들이 주하나님의 선하심을 노래하고, 주님의 이름이 선하시다고 노래할 때 사용하는 바로 그 단어다. 예수님은 오직 한 분 참 하나님만 선하시다고 말씀하셨다. 다시말해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다라는 선언은 창조가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그대로, 하나님의 뜻과 한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이루어진다는 의미다. 토기장이가 만든 그릇을 다시 빚거나 구운 후 흠이 있는 것을 깨뜨려버리는 일이 전혀 없다는 뜻이다. 반복되는 다른 표현을 빌리자면 ‘그대로 되니라’이다.

인생에 없는 것이 ‘그대로 되니라’가 아닐까? 천재적인 화가도 자신의 작품에 만족이 없고 천재적인 연주자도 자신의 연주에 만족이 없다고 인터뷰한다. 그들은 쉬지않고 노력하고 연습한다. 이렇듯 인생에게는 ‘무엇 하나 그대로 된적이 없어’가 맞다. 그런데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된다. 그렇기때문에 하나님께 구하는 삶을 살아야 한다.

결국 ‘좋다’, ‘선하다’는 하나님의 뜻에 맞다는 뜻이다. 무엇이 좋은지 아는 방법은 하나님의 뜻인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인지 물어보면 된다. 예수님은 우리가 아버지 하나님께 기도할 때, 아버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을 주신다고 가르쳐주셨다. 이 가장 좋은 것을 ‘성령’이라고 알려 주셨다. 보혜사 성령 하나님이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게 하고 깨닫게 해 주시는 역할을 하시기 때문이다.

피조물이 창조주의 뜻에 합당하게 순종할 때 (그대로 될 때), 피조세계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가 된다. 나는 창조주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에 따라 그대로 된 정직한 존재인가? 혹여 하나님이 지으신 목적에서 벗어난 꾀를 부리고 있지는 않은지 자문해 본다.

창세기 1:1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태초: 태초는 처음이라는 뜻이지만 으뜸이라는 의미도 있다. 따라서 무엇보다도 먼저, 가장 중요하게라고 이해한다. ^하나님: 하나님은  ‘신들, 이라는 단어를 썼다. 그냥 ‘신’이라라고 단수를 사용하지 않고 ‘신들’이라고 복수형을 썼다는 것은 ‘신들의 신’이라는 것을 강조하는 어법이었을 것이다. ^천지: 천지는 하늘들과 땅을 가리킨다. 천자문 첫 사자성어가 ‘천지현황’ 이다. 하늘은 검고 땅은 누렇다고 천자문은 시작한다. 하늘을 푸르다고 하지 않았다는 것은 하늘들, 곧 우주가 깊고 어둡다는 것이 한자 문화권에서는 이미 상식이었다는 뜻이리라. ^창조: 창조는 (우주를) 만드셨다는 의미에서 그치지 않는다. 만든 피조세계를 의미있도록 새롭게 하신다는 뜻이 있다. 창조라는 단어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중요한 의미는 ‘관계’일 것이다. 그래서 창조주 하나님은 창조행위마다 ‘보기에 좋았더라’라고 말씀하신다. 창조주와 피조물과의 관계, 그리고 피조물들 간의 관계가 조화롭게 돌아가는 것이 곧 창조다. 진행형이다. 그래서 관계(창조)에 생명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도 있겠다.

// 신들의 신이 가장 먼저, 가장 중요하게 새롭게 하신 일이 바로 우주적인 창조라고 성서는 시작한다. 하나님, 곧  이 ‘신들’이 성서에서 ‘여호와’라고 부르는, 우리가 하나님이라고 부르는 창조주 신(하나님)이시다. 신들(하나님)이라는 단어에서 삼위 하나님의 사귐을 연상할 수 있다. 바로 이 ‘신들’이 누구인지 바로 아는 것이 중요하다. 예수님은 유일하신 이 참 창조주 신들(참 하나님)을 알고 참 하나님이 보내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영생이라고 하셨다. 성서는 참 하나님께서 우주(천지)를 만드셨다는 선언으로 시작한다. 시작하신 분이 마치실 것이다. (작년 마지막에 읽은) 성서 마지막 책, 요한계시록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을지어다. 아멘” 으로 끝맺는다. 창조주 하나님은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기를 바라시면서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셨다.

& 창조세계에 주 예수의 은혜가 모든 자에게 있기를 바라시는 하나님의 그 계획안에 저도 있습니다. 창조주 하나님 앞에 거룩해야 할 뿐아니라 창조주 하나님의 모든 피조물들에게도 겸손하도록 인도해 주십시오. 2020년도에도 창조주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좋았더라’라고 하실, 우리 주 예수께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도록 제가 말씀에 순종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성령하나님께서 공급하실 힘을 구합니다. 아멘

시편 150

할렐루야!

시인은 하나님의 성소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하나님의 권능의 궁창에서 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성소, 권능의 궁창은 거룩한 성, 곧 하나님나라다. 성도들이 하나님의 다스리심을 받는 곳이다. 그곳에는 오직 하나님의 역사와 하나님의 위대하심에 대한 찬양만 있다. 시인은 나팔소리로, 비파와 수금으로, 소고치며, 춤추며, 현악기와 퉁소로, 큰 소리 나는 제금과 높은 소리 나는 제금으로 찬양하자고 노래한다. 시인은 호흡이 있는 자마다 주하나님을 찬양하라고 노래한다.

할렐루야!

// 하나님나라는 할렐루야의 나라다. 할렐루야 외 다른 것이 있을 수 없다. 호흡이 있는 자들은 살아있는 자다. 죽은 자가 아니다. 하늘 보좌 우편에 계신 우리 주님은 살아있는 자와 죽은 자를 심판하러 다시 오신다. 할렐루야는 성도들의 숨소리다. 삶에 할렐루야가 없다는 것은 이미 죽은 자라는 뜻이다. 기도는 성도의 호흡이라고 한다. 결국 기도하지 않으면 죽은 자요, 찬양의 기도가 없으면 기도해도 온전히 사는 것이 아니다. 감사 찬양과 경배를 받으실 주님을 찬양하라.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