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 3:40-51] 돈으로 대신

[민 3:40-51] 돈으로 대신

“당신들은 태를 처음 열고 나오는 모든 것을 주님께 바치십시오. 그리고 당신들이 기르는 짐승이 처음 낳은 수컷은 다 주님의 것입니다.” [출 13:12 새번역]

하나님께서는 주님의 것을 세라고 하신다. 태어난지 한달이 넘은 장자의 수가 22273명이다. 장자대신 레위인을 자신의 것이라고 하셨는데 어제 계수한 레위인 수는 22000명이니 장자수가 273명이 더 많다. 그래서 레위인으로 대신할 수 없는 273명 분은 돈으로 내라고 하셨다.

// 레위인 수는 게르손(7500), 고핫(8600), 므라리(6200) 다 합하여 22300 명인데 정작 합산하여 22000 명으로 기록된 이유는 무엇일까? 혹자는 고핫자손의 수 8600명은 8300명을 잘 못 받아 적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아론집안 300명을 제외했기 때문이라고도 하고… 아무리 주석을 뒤지며 따져보았자 정답은 모른다. 그냥 번역된 성경은 오류가 있다는 것을 인정하자

속전(돈으로 대신함)은 한명당 5세겔씩 총 1365세겔이다. 세겔단위도 일반 세겔과 성소 세겔이 달랐나보다. 성소세겔로 하라고 하신다. (주석에 의하면 성소 세겔이 더 가치가 낮은 것으로 나온다.) 어떤면에서 백성에게 부담이 덜되는 쪽으로 적용했다고 할까? 그리고 이 속전의 금액을 아론과 그의 아들들에게 주라고 명령하신 것을 보아 앞에서 언급한 300명의 차이가 아론집안 300명 제외가 타당해 보이기도 한다.

// 속전을 내는 273명은 어떻게 결정되었을까? 가장 그럴듯한 설은 제비 22273개를 만들고 그중 273개에는 꽝을 넣어 꽝을 뽑은 장자들이 속전을 하였을 것이라고 한다.

민수기의 첫부분은 모든 이야기가 하나님께서 모세(와 아론)에게 말씀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은 명령대로 하였다로 끝난다.

하여간 오늘도 명령대로…

[민 3:14-39] 명령을 따라

[민 3:14-39] 명령을 따라

하나님께서는 레위인들을 ‘내것’이라고 구별하셨다.[12] 이 레위인도 인구조사를 하라고 하신다. 레위에게는 게르손, 고핫, 그리고 므라리 세명의 아들이 있었다. 출애굽기를 통해 아론은 고핫의 아들 아므람의 아들이라고 알고 있다. 여기서도 하나님은 ‘장유유서’의 질서를 적용하지 않으셨다. 고핫사람의 종족과 조상의 가문의 지휘관으로 임명받은 사람도 웃시엘의 (고핫의 네번째 아들) 아들 엘리사반이었다. 레위인 전체를 통솔할 책임자로 아론의 세째아들 (두 형이 죽었으므로 장자가 된) 엘르아살이 임명되었다.

레위인들도 성막주위를 배치되었고 해야 할 일들이 주어졌다. 이들에게 주어진 일에는 귀천이 있을 수 없다. 모두 거룩한 일이었다. 구별된 일이다. 따라서 외인이 가까이 할 수 없다.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일지니라.”[38] 어제는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 라는 다소 완곡한 표현이었는데 오늘은 정결케 하는 책임이 레위인들 스스로에게 있다고 말씀하신다. (같은 표현 다른 번역일수도 있다.)

하나님의 공동체에 속한 사람은 모두 계수된다. 하나님의 아신바 된다. 마치 선한목자가 자기 양들의 이름을 아는 것과 같다. 하나님께서 몰라서 세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오합지졸의 백성들을, 스스로 메뚜기 같다고 생각하는 백성들을 잘 훈련된 군대로 바꿔가시는 하나님의 인원점검이다. 하나님나라 군대의 제식훈련이다.

명령을 따라 레위인을 계수하니 이만 이천명이었다.

[민 3:1-13] 다른 불

[민 3:1-13] 다른 불

“너는 아론과 그의 아들들을 세워 제사장 직무를 행하게 하라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10]

아론에게는 4명의 아들이 있었다. 나답, 아비후, 엘르아살, 그리고 이다말이다. 그런데 장자 나답과 아비후가 여호와 앞에 다른 불을 드리다가 여호와 앞에서 죽었다. 하루 아침에 넘버2와 넘버 3가 죽었다.[4] //아론이 넘버1

아론 집안이 어떤 집안인가? 그들은 기름부음을 받고 거룩하게 구별되어 제사장 직분을 위임받은 사람들이다.[3] 하나님께서는 아론과 그 아들들을 회막에서 일을 하는 레위인들의 우두머리가 되게 하셨다.[8] 내 (하나님) 것이라고 구별하신 레위인을 맡은 집안이다.[12]

이런 아론의 집안이라도 외인이 되면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명령에 예외가 될 수 없다. [10] 넘버 2 나답과 넘버 3 아비후가 죽었다. 다른 불을 드리다가 죽었다. 이때 사용된 ‘다른’ 이라는 단어와 “외인이 가까이 하면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에 사용된 ‘외인’은 히브리어로 같은 단어라고 한다.

‘다른’ 불을 드렸다는 것은 결국 ‘외인’이 가까이 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 단어는 간음과도 연결되어 있다. 그러니 ‘다른’ 불과 ‘외인’은 다 부정함을 의미한다.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신약에서도 우리는 아나니아와 삽비라 부부가 각각 성령을 속이다가 죽은 사건을 알고 있다. [행 5]

하나님 앞에 뭔가 감춘 것이 있다면 (불가능 하지만) 그것이 하나님을 속이는 것이다. 그런 사람을 하나님은 ‘외인’이라고 하신다. ‘외인’은 제사장의 직무를 행할 수 없다. 아니 하고자 하여도 죽게 된다.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

세상 사람들로부터 ‘뭔가 달라’라고 평가 받는 것은 괜찮으나 하나님께서 ‘외인’이라고 판단하시면 나는 죽은 것과 마찬가지다.

[Numbers 1] Census

[Numbers 1] Census

How hard would it be to count those over the age of 20 and fit for war from a crowd of roughly 2 million people? Yet they managed, and counted 603550 people.

600 thousand strong. They say the Armed Forces of the Republic of Korea have around 650 thousand enlisted men (4 million if we count the reserves). That means the Israelites had an army of a similar scale to the standing army of Korea. This is a very large force.

In most ancient wars, an army’s capability for war was directly proportional to the number of men deployed. 600 thousand, is therefore a massive number. For the Israelites, who had just been chased out of Egypt, this would have been a surprise. They would have considered themselves a useless rabble, but one census changes their perspective.

In addition, they had an army that was logistically efficient (as proven by the fact that they managed to count 600 thousand people).

The reason that a rabble of people could be transformed into a might army was this: “The Israelites did all this, just as the Lord had commanded Moses.” [54]

We know the rest of Israel’s history. We know that when they forsake the Lord’s commands, there army is not much better than a rabble. War is not a fight of numbers, but is in God’s hands.

What we need to trust in is NOT numbers, or statistics. We need to rely on God.

// Starting from March, we will be meditating on Numbers. The passages are long, so we will focus on specific verses that give us insight.

[John 14:25-31] Peace

[John 14:25-31] Peace

“Peace I leave with you. My peace I give you.”[27a]

The Greek word translated into ‘peace’, can also mean ‘calmness’ or ‘tranquility’. In Paul’s letters, peace is often paired with Grace. ‘Grace and peace’ is a phrase used frequently as greetings or farewells in his letters.

Jesus promised us peace, peace that the world cannot have, peace that the world cannot understand.

And the more I meditate on the word ‘peace’, the more I think that this word is referring to a communal peace instead of an individual peace. A peace of unity.

“On that day you will realise that I am in my Father, and you are in me, and I am in you.” [20] The ‘you’ used in this passage is actually in the plural form. Peace is knowing that Jesus lives within us. Worry and fear only come when we forget that Jesus lives within us.

“Blessed are the peacemakers, for they will be called children of God” [Matthew 5:9]. Jesus already called his disciples his children.

Grace may be received personally, but peace is received as a community.